지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의 때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지금 수많은 교회에서 또는 TV, 인터넷, 핸드폰 등 여러 미디어를 통해 주일마다 쏟아져 나오는 설교말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보충해준다는 많은 책들과 자료들이 있음에도 영혼을 살리는 양식인 진리의 말씀을 듣기가 힘듭니다. 그저 육신의 소욕을 만족시키는 기복주의, 번영신학 등으로 신자들을 기쁘게 하는 설교가 범람합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에도 말씀의 기근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들들이 성소의 여인들을 범하고 제물로 드리는 고기를 빼앗기도 하는 등 아주 불량하여 성소가 더럽혀져도 엘리 제사장이 우유부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라고 순종한 사무엘은 계시를 받는 훌륭한 사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부패한 교회들과 거짓 복음과 거짓 성령운동이 만연한 오늘날 사무엘처럼 주님의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를 살리는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까요?
직접 성경말씀을 읽으면 됩니다. 근데 문제는 성경을 펴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읽어도 그냥 소설책이나 역사책처럼 줄거리만 이해할 뿐이지 말씀이 살아 내 심령을 찌르고 각성시키는 그런 역사가 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어떻게 우리가 위의 말씀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지금 드리는 말씀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 임을 밝혀드립니다.
먼저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라는 사실과 말세를 만난 우리의 교훈과 경계로 기록된 것임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저희에게 당한 일이 거울이 되고 말세를 만난 우리들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11)
하루 중 잠시라도 첫 시간을 주님과의 만남의 시간으로 정합니다.
연필과 대학노트를 준비하고 다른 성경 번역본도 있으면 좋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질문(의문)을 갖고 읽어야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구절은 나중에 지울 수 있도록 연필로 “?” 마크를 표시하고 노트에 기록합니다.
이제 성경을 펴기 전 기도로 간구합니다.
“저는 부족하고 아둔한 자요 깨닫는데 더딘 자입니다. 내 선입견과 내 주장을 버리고 성경말씀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사오니 오늘도 주님 말씀하여 주시고 성령님이 오셔서 깨우침을 주십시오!” 간구하며 마음 문을 진솔하게 열어야 합니다.(계 3:20)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 주기를 기뻐하시지만 우리가 받을 마음상태가 안 되면 주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마음 문을 열고 성경을 정독하기 시작하면 뭔가 조금씩 이상한 말씀들이 눈에 뜨입니다.
어떤 내용을 쭉 말씀하시다가 결론도 없이 갑자기 다른 내용이 나오기도 하고 또 동문서답하는 것 같은 말씀들도 있습니다.
어떤 말씀은 서로 상충되는 말씀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말씀은 불가능한 명령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들도 있습니다. 등등.
위와 같은 경우들을 만났을 때 앞 뒤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밑줄을 긋거나 간단히 메모를 해도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는 말아야 하지만 의문을 갖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간략하게 압축해서 쓰여진 것이기에 어디서 그와 비슷한 말씀을 본 것을 다시 찾아 보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씩 말씀이 말씀을 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성경말씀 맨 아래에 있는 ‘각주’ 를 꼭 살피고 읽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히 10:38) 라는 말씀의 각주를 보면 “합 2:3이하” 에서 인용했다고 합니다. 하박국 2장을 찾아가 읽어보면, 많은 이들이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 라는 구절로 인용하는 위 말씀이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경고와 예언이 지체할지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그 믿음을 갖고 인내로 기다리라. 그렇게 꼭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의인들이니라” 라는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곧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깨우침을 간구하며 성경을 묵상하다 보면 어느 날 “?” 마크를 찍은 죽은 것 같았던 인쇄된 글자들이 하나씩 부활해 살아서 “이게 이런 뜻이야!” 하는 외침을 듣게 됩니다. 그때 진리를 깨닫게 되는 환희에 넘치는 기쁨이 오기도 하고, 어느 경우는 하나님을 오해한 것과 잘못 살아온 죄송함으로 눈물이 쏟아지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사랑과 긍휼을 가지신 분인지 알게 되어 주님께 굴복하고 회개하게 되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는 각오가 생깁니다. 그리 되면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더욱 더 진리로 거룩하게 이끌어주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이요 구원입니다.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셨나니”(살후 2:13)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면, 우리를 진리로 이끄시며 말씀으로 변화 시켜주시고 한 성령 아래서 누구나 동일한 진리를 공유하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진리의 말씀을 내 안에 계속 채워나가는 것이 성령충만 입니다.
신학을 하거나 주석 책 등을 읽어야 말씀을 더 잘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공부는 오히려 그 수준을 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으로써 “이런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저런 학자는 저렇게 말했다.” 하면서 진리를 희석 시키고 타협하며 우유부단하게 되어 결국 멸망 당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성경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강직하게 진리를 따르지 못하면 예수님을 믿고도 멸망 당하는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옛날 유대인들은 말씀을 오해해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초림 예수님을 모르고 영광으로 오시는 재림 그리스도만을 기다리다 멸망했습니다. 오늘날은 반대로 2000여년 전에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십자가! 십자가!” 만 외치면서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가 없이 허황된 구원의 확신으로 멸망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늘날 말씀의 기근이 온 것은 마지막 때라는 징조입니다. 우리 모두는 오직 성경말씀 속에서 성령을 통해 바른 진리를 깨달아 구원에 이르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