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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사탄의 속임수2024-11-16 23:52
작성자 Level 10

사탄의 속임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은 장차 ‘‘저주를 받은 자들이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는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두려운 말씀을 생각하면 당연히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 양심이 찔리고 마음이 떨릴 것 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탄은 사람들에게 “너희는 이미 그리스도께 나왔다.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속삭이며 이 말씀의 예리한 힘을 무디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는 소중한 영혼의 운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축복받은 사람들과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느냐, 저주받은 사람들과 지옥에서 영원히 사느냐의 문제는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나오느냐 나오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거룩한 인성, 완전한 삶, 대속의 죽음과 부활, 하나님 오른편으로의 승천, 재림 등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 신앙은 단지 그분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긍정하는 것 이상의 차원을 지닙니다. 야고보는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 2:19)고 말했습니다. 구원을 받으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영혼을 온전히 그분께 드리며, 철저히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의심하지 않는 것을 그리스도를 믿는 구원 신앙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확신이 곧 분명한 구원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들여다볼까 말까 하는 금고 안의 돈이나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는 토지문서처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매일 먹고 씹고 소화함으로써 자양분을 얻어야 할 영혼의 양식입니다(요 6:35). 형식적인 신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대한 좋은 평판을 의지합니다.

흥분된 감정을, 감정을 일깨우는 성령의 역사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누군가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 섣부른 관찰자는 그것을 보고 크게 고무됩니다. 그들은 죄를 뉘우치며 통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 이뤄졌다는 증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은혜의 사역은 그보다 훨씬 깊은 차원을 지닙니다. 눈물은 단지 겉으로 보이는 현상에 불과합니다.

눈물을 잘 홀리는 성격을 타고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분명한 회심 없이도 자연스럽게 슬픔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의 통회입니다. 오직 경건한 슬픔만이 영혼을 지배하는 죄의 세력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죄의 세력이 깨어지는 것이야말로 거듭남의 참 증거입니다.

장차 다가올 진노에 대한 두려움을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옥에 가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지옥의 현실을 지적으로 인식하고 형언할수 없는 그 끔찍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믿는다면, 모두 불안과 공포와 마음의 큰 고뇌를 느낄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거짓 평안을 참 평안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지옥의 불못을 두려워하며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원을 갈망하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의 거짓 선지자들이 요한복음 3장 16절만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할 때 그들은 심령을 조금도 새롭게 하지 않은 채 그 달콤한 말만을 선뜻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죄의 짐이 모두 사라졌다고 확신하며 마음의 평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평화는 십중팔구 양심을 마비시켜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사탄의 아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 확신을 영적 확신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스스로를 좋게 생각하고 또 자기가 잘되기 바라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향입니다. 우리는 하만처럼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 6:6)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합니다. 물론 혹자는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을 높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무가치한 죄인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존재입니다. 사탄은 이처럼 자기를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이런 마음을 가졌으니 나는 안전할 거야"하는 생각을 부추 길수 있습니다. 믿음을 저버린 사울 왕도 처음에는 자신을 낮추어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삼상 9:21).

약속의 말씀을 신앙의 유일한 근거로 삼고 그 이상을 추구하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문자에 현혹되어 모세의 사역에 함축된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대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는 말씀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 10:13)와 같은 약속만을 의지합니다. 그들은 보석 상자만 볼 뿐 그안에 담긴 보석, 곧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며 그분에게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모시고 그분의 주권에 진정으로 복종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께서 이름뿐인 신자들 중 일부에게라도 거짓된 확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 듣고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존 번연의 『내게로 오라』 중 일부를 인용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는지를 어떻게 알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면 알 수 있다. 죄를 슬퍼하는가? 죄를 혐오하며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가? 독사를 본 것 처럼 죄에서 멀리 도망치려 하는가? 자신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라 인정받기가 불가능하다고 믿으며 울부짖는가? 주 예수님께 구원을 간절히 호소하는가? 세상의 온갖 죄와 쾌락보다 그리스도의 보혈 한 방울이 자신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데 더 큰 가치와 공로를 발휘한다고 믿는가?

예수 그리스도께 죄지은 것을 애통하게 여기는가?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그분을 흠모하는가?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을 향한 사랑 때문에 온갖 시련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가? 하나님의 성도를 보배롭게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그리스도께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더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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