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름 부음을 받을 때 얻는 유익2024-07-22 2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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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부음을 받을 때 얻는 유익 성경에서 기름을 머리에 붓는 행위는 어떤 사람을 어떤 직임에 세위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따르도록 하기 위한 의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인으로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기름 부음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출생하면서부터 제사장의 직무를 이어갈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그런 사실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기름 부음의 의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출생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그 직무를 물려받게 되어있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왕을 비롯해서 그 밖의 다른 직무들은 공적인 인증절차로 기름을 머리에 부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확증하는 의식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름을 머리에 부어진 사람은 그날로부터 그 직무에 따른 권위를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관례에 의한 기름 부음은 그 근본 목적이 직무와 그에 따르는 권위를 부여받는 행위입니다. 이런 전통적인 기름 부음에 대해서 예수는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였습니다. 그것은 구원자로서의 기를 부음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인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이는 세상을 구원하는 구원자라는 뜻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기름 부음은 정제된 아마유로 머리에 부어 머리카락이 젖어 흘러내릴 정도로 붓는 행위입니다. 이 기름을 붓는 행위가 예수에게서는 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머리에 기름 대신 물을 붓는 행위는 기름 부음과 씻는 의미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기름 부음의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게 치러진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하는 주체가 성령이며,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람을 세울 때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기름을 머리에 붓는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기름이 부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기름 부음은 외형적으로는 세례와 같은 형태를 취합니다. 그래서 세례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례는 단 한 번 거듭남을 상징하여 베풀어집니다. 이 일도 눈에 보이는 교리적인 물세례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불세례가 있습니다. 이 단회적인 세례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우리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과 권세를 부여하는 기름 부음이 있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기름 부음이 계속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은 아닙니다. 기름 부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지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요한 사도가 분명하게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으로 말하자면, 그가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 속에 머물러 있으니, 여러분은 아무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기름 부어 주신 것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참이요, 거짓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요일 2:27)
그는 또한 “여러분은 거룩하신 분에게서 기름 부으심을 받아,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요일 2:20)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으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고무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외적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게 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은 스승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스승을 통해서 배워야 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배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요한의 가르침은 지식 습득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기름 부음이 임하면 우리는 분별력이 생기고 옳고 그른 것을 성령의 기준 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기름 부음의 가르침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에 대해서 나름대로 기준을 가지고 분별하게 됩니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잣대를 가지고 분별하면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서로의 분별의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인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다림줄을 가지고 분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지고 적용한다고 하지만 역시 견해는 갈리게 됩니다. 각자의 인식수단을 가지고 분별하려고 할 때 생각은 갈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름 부음은 우리 안에 성령의 다림줄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혜로 사물을 인식하고 관계를 이루어냅니다. 기름 부음이란 말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물질적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기름 부음이란 단순히 기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이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담은 지혜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영”이며, “지혜의 영”입니다. 이 영이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지혜가 생기고 사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성령의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은 포괄적으로 다양한 영적 주체가 거함을 의미합니다. 이 영들의 작용에 의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주관적이며, 독창적입니다. 각 사람의 얼굴이 다른 만큼 하는 일의 특성도 다릅니다.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지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게 했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판단이나 지식에 의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깨워주시는 지식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행할 때 누구의 가르침이나 간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독창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독창적이고 주관적인 것 같은 일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을 주도하시는 분이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은 각 사람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일을 행함에도 불구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합력하는 모습을 취하게 되는 것이며, 이 일은 어떤 사람의 의도나 기획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각 사람에게 기름 부음을 주신 그것에 따라서 행동할 때 우리는 가장 효율적인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 통제하려고 하고 간섭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기름 부음을 제한하는 행위가 되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따라서 행동한다면 참으로 이상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 부음을 인식하고 그 작용을 따르지만 어떤 사람은 기름 부음이 없거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합니다.
기름 부음을 따르는 삶과 인간적 판단을 따르는 삶이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신 안에 있는 기름 부음에 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기름 부음이 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워치만 니는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육신에 속한 사람이 더 강하기 때문에 영에 속한 사람을 핍박하게 되는 것을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예로 설명했습니다.
기름 부음이 임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신체적 느낌을 동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이미 설명했습니다. 기름 부음이 개인에 따라서는 아주 강력하게 나타나기도 하고 미약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 자신 안에 머물러 있지만 그것을 제약하고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히 통화기능만 사용하고 그밖에 다른 기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한다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됩니다.
핸드폰을 샀다면 매뉴얼을 살펴보고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더욱 편리하고 유익한 삶을 사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기름 부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기름 부음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