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장 축사 사역의 5단계
이번 장에서는 축사사역을 보다 효과적으로 감당하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경에는 이런 단계들이 없다. 그렇지만 사역을 할 때 이러한 단계를 취해서 하면 보다 효과적이다. 물론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어떤 단순한 경험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에 하나하나 비춰보고 참조해서 성경이 가르치는 범위를 따라서 하는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1. 상황을 수습하는 단계 (take control)
예수님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의 경우에 귀신이 나타날 때 그 자리에서 쫓아내셨다. 그래서 마가복음 1장에 보면 귀신이 소리를 지르는데 그 사람 목소리가 아닌 다른 목소리로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귀신이 갑자기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꾸짖고 내어 쫓으니까 그 사람이 치유되었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막 1:23-26)
이렇게 예수님은 귀신이 드러날 때 그 자리에서 쫓아내셨다. 그러나 또 어떤 경우를 보면 그 자리에서 쫓아내시기 보다는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래서 누가복음 9장 38절-42절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산 밑에서는 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아홉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어쫓아 주기를 부탁했으나 제자들이 하지 못했다. 그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하셨다. 그리고 아이를 고쳐주시는데 그 아이를 따로 옆으로 데리고 가셔서 치유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히 귀신들린 자와 관련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한쪽으로 따로 불러내셔서 치유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들도 사역을 할 때, 많은 경우 귀신이 나타날 때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어떤 때는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귀신이 드러날 수 있고, 어떤 때는 설교를 듣는 중에 귀신이 드러날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사람들이 길에서 전도하는데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타나서 온갖 욕설을 다할 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리가 귀신들린 자에 대해서 사역을 하면서 좋은 것은 예수님께서 가끔 그렇게 하셨듯이 가능하면 자리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 좋다.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은 부끄러운 사역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귀신을 쫓아내는 거였다. 예수님이 그러한 사역을 하셨다면 당연히 우리도 그러한 사역을 해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사역을 못해서 문제고, 혹은 더 효과적으로 그러한 사역을 감당하지 못해서 문제이다. 나는 더 놀라운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함께하셔서 더 많은 귀신들이 사람들에게서 떠나고 자유케 되는 역사가 있기를 개인적으로 간절히 원한다. 그러므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그 귀신들린 사람을 위해서 따로 사역하는 것이 좋다.
사역은 인격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사역은 귀신들린 자의 사역이건, 치유사역이건, 혹은 예언사역이건, 우리의 사역은 철저하게 인격적이어야 한다. 말을 사용할 때도 친절해야 한다. 과거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말을 함부로 거칠게 했다. 반말을 쩍쩍하고, 명령하고, 마치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은사의 길에 대해서 말하면서 은사는 친절하게 행해야 되고, 은사는 무례하지 않아야 한다.(고전 13장)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사역에 있어서 철저하게 인격적이어야 한다. 우리는 말도 친절한 말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언어가 아직 안되면 더 다듬어져야 한다.
우리의 사역이 인격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위해서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누가 귀신들렸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본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만 해도 이상한 눈으로 본다. 저 사람 정신과 치료받았대, 그러면서 그 사람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격적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 좋다.
2. 진단
특별히 성령께 민감해서 귀를 기울이면서 진단해야 되는데, 이 부분은 앞장에서 살펴보았다. 우리가 사역을 할 때, 그 사람과 대화를 통해서, 특별히 하나님께 민감함으로써 진단하고,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을 보면서 진단해야 한다. 존 윔버 목사님은 이런 사역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귀신이 나타나서 말하지 않는 이상 자기는 상대방이 귀신들렸다고 전제하지 않고 사역을 한다고 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은 눈이 뒤집혀가지고 거품을 내품을 수도 있는데, 그 경우 귀신이 안들렸어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상처가 많은 사람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의 사역을 보면 참 지혜로운 것 같다. 왜냐하면 특별히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속에 마치 귀신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는데, 그러면 그건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의 경우는 기도사역만 하면 줄기차게 구역질을 하는 분이 있다. 때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나올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 속에 악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행동을 통해서 귀신이 나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기도사역만 해주면 자꾸 토하려고 하고 구역질하는데, 오히려 더 억매이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우리가 사단에게서 미혹될까봐 그것에 초점을 맞추면 지는 것이다. 사단은 이미 패배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승리자 되신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 보면 캐나다 왕립 경찰에 대한 예화가 있다. 요즘 과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그런데 동시에 범죄의 수법도 그에 못지않게 따라가고 있다. 그래서 어렵게 진짜 하나를 만들면 금방 다양한 방법으로 가짜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경찰이 그 가짜 하나를 잡으려고 하면 벌써 가짜는 열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캐나다 왕립 경찰은 오직 한 가지를 한다고 한다.
“캐나다의 왕립 기마경찰은 위조지폐를 방지하는 훈련을 합니다. 경찰국에서는 경관들에게 절대로 위조지폐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종류의 진짜 10불짜리 지폐가 존재함을 알 따름입니다. 그들은 너무나 철저하게 진짜 지폐에 대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구별해 냅니다. 당신은 사람들이 위조지폐를 만드는 방법을 다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마경찰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위조지폐를 만드는지를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진짜만을 공부합니다. 진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느 것이든지 가짜인 것입니다.”
“당신은 사탄과의 영적인 싸움에 어떻게 임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길들을 아주 철저하게 알아서, 하나님의 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서 돌이키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이 시험을 당하셨을 때 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요점만 얘기하면, 예수님은 이렇게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사탄아, 그것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최근에 들은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마 4 : 1-11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결코 사탄과 그것을 의논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절대로 그것을 분석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 다음에 무엇을 하라고 그에게 말씀하실 때까지, 하나님이 그에게 가장 최근에 하라고 하신 말씀을 계속해서 그대로 행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9단원 5과 참조-
진짜를 제대로 알면 가짜는 저절로 안다. 왜냐면 진짜에 못 미치는 것은 다 가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귀신이 드러나서 말하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상당히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단과정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이 접촉점이다. 즉, 귀신이 어떠한 통로로 들어왔느냐? 다시 말하면 귀신이 무엇을 먹고 사느냐? 무슨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가?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만약에 귀신의 역사인 것 같은데, 그게 귀신인지 아닌지 확신이 가지 않을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이 있으면 드러나라.’이렇게 명령한다고 한다. 그럼 귀신이 있을 경우는 대부분이 드러난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으면 귀신이 없는 것이다. 상처 때문에 그런 것이다.
3. 접촉점을 발견하는 것
기도 받는 사람에게 무슨 피해를 가져다 주는가를 발견하는 것, 이것이 접촉점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귀신이 그냥 지나가다가 바이러스처럼 옮기지 않는다. 뭔가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에 들어온 것이다. 대부분 두 가지다. 하나는 본인이 직접 지은 죄로 인한 것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에게 가해진 죄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그 통로가 있을 경우에 그렇게 들어온 귀신은 그 방면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사회가 음란해지면 음란물들이 많이 나오는데, 특별히 우리나라는 희한한 것이 영화도 음란성에 가까우면 성공한다. 아직은 유교적인 영향이 강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좀 야한 영화가 성공하면 너도나도 앞을 다퉈 경쟁을 하듯이 벗는 영화가 쏟아져 나오고, 유명 연예인 누드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음란물을 즐겨봤다. 그러면 귀신의 영향력을 받기 쉽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집중적으로 귀신이 그 방면에 역사한다. 강한 유혹을 집어넣고, 그런 생각으로 머리를 혼란시키고, 그 정도가 심해지면 자기 의지로는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유혹을 불어넣어 마치 중독 된 사람처럼 되기 쉽다. 그러면 그 귀신은 통로가 거기에 있고, 그 방면에 가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서 그 부분을 알면 좋지만, 상대방이 부끄러운 일 같으면 얘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기도해도 모른다. 그냥 별로 대수롭지 않은 얘기는 하지만 ‘내가 음란물에 중독 되어서 그런다’ 이런 얘기는 쉽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첫 번째는 의심이 갈 때, 귀신이 드러나라고 명령하면 되고, 두 번째는 그 피해를 주는 영역을 발견하기 위해서 그 귀신에게 이름을 묻는 것이다. 왜냐면 귀신은 대부분이 그 이름이 억압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귀신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만큼만 가면 된다.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가로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거기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하신대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된 것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촌에 고하니 35 사람들이 그 된 것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아래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눅 8:26-35)
여기에 보면 귀신들이 예수님이 명령하시는데도 금방 안나갔다. 이처럼 예수님이 명령하시는데도 한번에 안나갈 때도 있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네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이름이 군대라고 했다. 군대 귀신이란 말은 귀신이 한둘이 아니고 엄청나게 많이 들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제발 내보내지 말아달라고 빌다가 안되니까 나중에는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귀신에게 ‘나가라’고 명령한 헬라어 단어를 보면 한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신들이 예수님께서 한번 말씀하실 때 그냥 다 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이름을 물었다. 그 정체를 밝혀낸 것이다. 그런 다음에 반복적으로 나가도록 명령하시니까 결국은 다 떠나게 되었다. 여기를 보아도 예수님도 그 정체를 알기 위해서 이름을 물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그 권세를 깨닫고 믿음으로 그 위에 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게 될 때 귀신들은 복종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우리나라는 특히 귀신에게 속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냐면 귀신에게 네 이름이 뭐냐 물으면, 죽은 조상이나 가족이나 사람의 이름을 댄다. 그러니까 베뢰아에서는 귀신을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외국에서는 귀신에게 이름을 물으면 간음, 거짓말, 도둑, 마약, 등이라고 그런다. 그러니까 귀신들의 이름은 온갖 더러운 이름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에 속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적할 필요가 있다.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이 아니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고 더 다그쳐서 그 정체를 밝혀내야 된다.
예를 들면 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이 뭐냐? 라고 물었을 때, 귀신이 마약이라고 대답하면, 이제는 귀신은 들어가라고 명령한 다음에 그 사람과 얘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마약하느냐? 묻고 그렇다고 하면, 그러면 얼마나 오래됐느냐? 묻는다. 그러면 1년, 3년, 5년, 10년, 몇 년 됐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러면 대화를 통해 솔직하게 당신 안에 그것을 초래하는 악한 세력이 있다. 그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 얘기해 주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해야 한다. 만약 그냥두면 당신을 지배하는 악한 세력의 지배가 더 강해질 것이다. 이것은 더 길어질 경우에 더 억압을 가져올 수 있다. 당신은 그 귀신의 세력이 당신 안에 그대로 있기를 원하느냐? 대답은 당연히 아니라고 할 것이다. 왜 이런 과정이 필요하냐면, 그 사람이 그것을 돌이키고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함을 받는 과정이 있기 전까지는 귀신이 안나가기 때문이다. 돌이키지 않으면 귀신은 계속 자기는 거기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왜 그가 문을 열었으니까. 그래서 그 부분을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회개하도록 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고 그 악한 영향력을 끊어주게 될 때, 그것이 귀신이 거할 근거를 치우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가기를 명령하면 귀신이 쉽게 떠나게 된다.
내가 번역한 책 중에 ‘영적전쟁’이란 책이 있는데, 거기 1장에 보면 O.M.F 초대 회장으로 있던 분이 중국의 선교사로 가있을 때 얘기가 나온다. 하루는 중국 군인이 자기가 휴가 나왔는데 갑자기 아내가 귀신들려서 자살하려고 물에도 뛰어들고, 높은 담에도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한다고 그러면서 그동안 휴가라 자기가 그것을 막았는데, 이제 휴가가 끝나서 군에 돌아가야 되는데 큰일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바를 몰라 하는데 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제일 세다고 해서 데리고 왔다고, 그런데 자기는 한번도 그런 사역을 해본 경험이 없는데, 그 소리 들으니까 못한다고 할 수가 없어서 그러면 놓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아내하고 같이 그 여자를 향해서 ‘귀신아 물러나라’ 명했다. 그러니까 그 귀신이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는 말을 가지고 노래를 만들더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귀신이 그 선교사부부를 비웃고 가지고 노는 것이다. 그러니 참 황당하기도 하고, 못한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고, 그 남편은 일주일 후에 온다고 했는데, 그래서 또 그 여자를 앉혀놓고 이번에는 자기하고 아내하고 가정부하고 셋이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는데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속 기도하다보니까 어떤 생각이 떠오르기를 그 여자 집에 신주단지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남편이 왔길래 혹시 집에 신주단지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했다. 그럼 빨리 가서 그것을 깨뜨리고 오라고 했더니 그 남편이 그것을 깨뜨리러 집에 도착할 시간쯤 되었을 때, 그 귀신들린 여자가 막 울면서 내 집이 깨진다, 나보고 어디가 살라고 그러면서 통곡을 하는 거였다. 그 경우는 우상숭배의 영향으로 귀신들린 것이다. 그 원인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귀신이 그때는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이 돌아와 성경을 처음부터 쭉 읽어가다 에베소서 1장과 2장에 이르러서 그때 우리에게 주신 권세가 얼마나 큰가를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더니 그때 귀신이 떠나갔다고 했다.
여기서 두 가지가 중요한데, 하나는 근거를 없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님이 주신 권세를 깨닫고 그 믿음위에서서 대적했다는 것이다. 근거를 없앤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음란물을 잔뜩 갖다 싸놓고 계속해서 귀신에게 나가라고 아무리 해봐야 안나간다. 심지어 나가도 금방 들어온다. 에너하임 교회에서 초기에 어떤 여자가 주일마다 와서 기도를 받으면 귀신이 나가는데, 나중에는 교회 문밖에 나가는데 귀신이 도로 들어가는 것이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귀신이 눈에 보였다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지 그것을 알겠더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여자는 이 남자 저 남자를 번갈아 만나고 다니면서 문란한 삶을 사는 거였다. 그러니까 귀신이 마음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 와서 기도 하면 귀신이 쫓겨나는데, 교회만 나가면 귀신이 도로 들어가는데, 그 여자는 그런 삶을 청산하기를 원치 않고 나름대로 그 삶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니 귀신이 나간들 도로 들어가고 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을 발견해서 그것을 해결하면 되는데,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그 죄를 회개하고, 그 삶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리고 참 중요한 것이 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용서를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권세를 주셨다. 우리가 상대방을 용서할 권한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 회개할 때, 그들의 회개에 기초해서 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신 것을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것은 대단한 파워를 가진다.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마18:18) 어떻게 하느냐면, 회개하고 나면 ‘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형제, 혹은 자매의 어떠어떠한 죄가 용서받았음을 선포합니다.’ 이렇게 그 죄를 끊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그 접촉점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 들어가야 한다.
4. 억압을 끊는 것
귀신들림에 있어서 여러 단계가 있을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 속에 귀신이 들어가서 말을 하며 내주하게 되면 이것은 매우 심한 단계고, 그게 아니라 억압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억압하는 경우에 그 억압을 끊는 단계를 네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경우에는 영어로 a pressure spirit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억압, 압박하는 영이다. 그래서 만약 그 억압하는 영이 질병과 관련이 있으면 먼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억압하는 영의 능력을 끊고, 그 다음에 병든 자를 위해 치유기도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왜냐면 억압하는 세력이 있는 한, 그 악한 영이 방해하고 있기 때문에 병든 자를 위해 치유기도를 바로 들어가면 효과가 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끊을 때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너 억압하는 세력을 끊는다. 명하노니 떠나가라’ 이렇게 명령하면 된다.
성경에 보면 한 예가 누가복음 4장 38절-39절에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신 사건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억압하는 영이라고는 안나와 있지만 뭘 보면 알 수 있냐면,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는데, 이 말속에서 알 수 있다. ‘꾸짖으셨다’란 말이 영어로는 rebuked라고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실 때 쓰신 말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알 수 있냐면, 그 열병 뒤에 어두움의 세력의 방해가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또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군대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기 위해서 갈릴리 호수를 건너가실 때다. 주님은 피곤하셔서 잠이 드셨는데, 그때 갑자기 광풍(미친바람)이 불어 갈릴리 호수를 내리치매 배에 물이 넘치자 제자들이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깨웠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파도와 바람을 꾸짖으셨다. 이것을 보면 그 광풍은 단순한 광풍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악한 영의 방해와 공격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그 어둠의 방해와 공격을 물리치셨다.(눅8:22-25) 이처럼 성경을 보면 억압하는 영이 밖에서도 억압하는 경우가 있고, 거라사인의 경우처럼 사람 속에 들어가서 억압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귀신의 억압이 끊어질 때, 우리 눈에 어떤 싸인(sing)이 보일 수도 있지만 안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냥 억압을 끊으면 끊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만 보려고 하면 머리가 혼돈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때는 멀쩡하다가도 교회에 가서 예배시간에 앉아있기만 하면 토하려고 한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면 또 멀쩡하다. 이것은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우리가 그 억압을 끊게 될 때 특별한 현상이 안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속에서 귀신이 말을 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에 현상들이 나타난다. 어떤 사람은 기침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숨을 크게 내쉬고, 어떤 사람은 토하고, 어떤 때는 소리를 지르면서 귀신이 나가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심지어 귀신들이 나가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딱 중단해서 나간 것처럼 속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아주 교묘하다. 그래서 잘 보고 분별해야 한다. 귀신이 그 속에 더 있는지 보고, 성령님께 속으로 물어보고, 더 남아있으면 드러나도록 명령해야 한다.
오래전에 존 윔버 목사 부부가 이 방면에 아직 사역을 해본 적이 없고, 이론적으로 배우고 있을 때인데, 한번은 교회에서 피부병이 든 여자를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피부병이 얼마나 심했냐면 살이 갈라지고 피가 났다. 그런데 그 여자나이가 20대 중반이었는데, 그렇게 된지가 약 구년 정도 되었다고 하니까, 처음 시작될 때가 중. 고등학교 사춘기 때부터 그런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큰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요즘 아이들은 얼굴에 딱지 하나만 생겨도 외출도 안하려고 한다. 그래서 기도하는데, 그 여자가 사모님 옆에 있다가 갑자기 화를 내며 일어서더니 속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놔! 하는 거였다. 그러자 같이 앉아있던 사람들이 다들 뭔가 된 것을 알았다. 뭔지 확실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뭔가 됐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치유기도 받는 본인도 그랬다. 그냥 소리만 한번 지른 것이다. 그런데 몇 날이 지난 뒤부터 피부병이 낫기 시작해서 깨끗하게 치유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까 그때 귀신이 떠난 것이다. 그 경우에는 피부병이 귀신에 의해서 온 것이다. 그래서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귀신에게 놓으라고 소리친 것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사라는 말이 여러번 나온다. 예수님이 긍휼히 여기사 문둥병자를 치유하시고, 긍휼히 여기사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고, 긍휼히 여기사 가르치시고, 긍휼히 여기사 많은 병자를 치유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다’라는 말이 영어로는 compassion이란 단어로써, 사랑 혹은 긍휼이란 말인데, 이 단어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멜로드라마틱한 뜻이 아니다. 실제로 이 단어가 스페인어로는 anger(분노)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긍휼이라고 번역된 말은 하나님께서 억압된 자기 자녀를 보시면서 그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를 포함하고 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어떤 애들에게 왕따 당하고 맞고 억압받고 있다면, 그 자녀를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멜로드라마틱한 긍휼이 들겠는가? 속에서 그 아이들을 향한 분노가 끓어오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둠의 세력들에게 억압당할 때, 그것을 초래하는 세력에 대한 분노가 포함된 말이 긍휼이란 것이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며 놔! 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 그때 그 여자를 통해서 표출된 것이다. 성령님의 기름부음으로 꾸짖은 것이다. 그때는 뭔지 잘 몰랐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9년 동안이나 피부가 갈라져서 피가 흐르게 한 그 병을 억압한 세력들이 끊어져서 그냥 깨끗하게 병이 낫는 역사가 있었다. 이렇게 네 번째 단계는 억압하는 세력을 끊는 것이다.
5. 실제적으로 귀신들을 쫓아냄
다섯 번째 단계는 심하게 귀신들린 경우에 그 속에 들어있는 귀신들을 실제적으로 쫓아내는 단계다. 이 경우에는 떠나라고 명령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중보기도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사역은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하나님께만 구하는 것이지 귀신에게 명령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기도는 귀신에게 향하여 있지 않다고 한다. 물론 우리의 기도는 귀신에게 향하여 있지 않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또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정확하게 어둠의 세력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했듯이 귀신들린 자에게는 귀신이 드러났을 경우에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 사역을 직접해보면 알지만 어떤 때는 참 쉽다. 그냥 한두 번 명령하면 떠나가는데,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땀을 뺀다. 어떤 때는 귀신들린 사람을 놓고 사흘씩 번갈아가면서 기도해도 안나갈 때도 많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의지해서 믿음으로 떠나가도록 명령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어떤 때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강하게 임하면 더 놀라웁게 떠나갈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기름부음이 적더라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하여 결국은 승리하게 된다.
가끔씩 특별히 미국이나 영국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일들을 테이프로 듣다 보면 마음속에서부터 간절한 소망이 부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 우리 가운데서도 빨리 그렇게 좀 해주세요.’ 그러면서 찬양을 드린다.
주여 주의 소문 듣고 놀라고 감격합니다 오-주여 주행하심 듣고 놀라고 감격합니다 오-주여 주의 일을 새롭게 하소서 이 시대에, 이 시대에 나타내소서 주의 일을 새롭게 하소서 이 시대에, 이 시대에 나타내소서 긍휼 잊지 마소서 긍휼 잊지 마소서” (97장)
한번은 윔버 목사님 팀들이 1986년에 영국 버밍햄에서 Acts eighteen six(사도행전 팔십육)라는 집회를 했다고 한다. 그때 유럽 전체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약 칠천에서 팔천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강단에서 영어로 설교하면, 옆에서 독일어로만 통역하고, 나머지는 뒤에 사운드 부스에서 불어나, 각 나라별로 스텝들이 채널을 맞춰가지고 통역을 했는데, 한번은 설교를 마쳤는데, 마음속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지금 몇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한다.’고 감동하셨다. 그래서 목사님이 가만히 일어서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지금 여러분들을 괴롭히는 몇몇 귀신들을 쫓아내시려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 ‘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그랬다. 그런데 그 말 한마디에 5분도 안돼서 그 집회장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수십, 수백 명에게서 귀신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였다. 사역자들을 몇 십 명을 데리고 갔는데도 여기저기 너무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냥 사람을 밟고 넘어 다니기도 하면서 사역하는데, 어떤 귀신들은 단한마디에 나가기도 하고, 어떤 귀신들은 1분 만에 쫓겨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 가운데도 어떤 귀신들은 30분 동안 쫓아서 나가기도 하고, 그야말로 집회가 아수라장이 되었다고 한다.
꼭 뭐와 같냐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슈퍼맨과 같다. 슈퍼맨은 보통 때도 날아오는 총알도 잡는다. 주인공 클락켄트가 일반인처럼 신문기자로 다닐 때도 놀라운 일을 한다. 그런데 클락켄트가 슈퍼맨 옷으로 갈아입으면 하늘을 날고 지구를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는데, 이와 똑같다.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가지고 나가면 슈퍼맨의 보통 때처럼, 하나님의 권세가 함께 하기 때문에 놀라운 일도 나타난다. 그런데 어떤 때는 슈퍼맨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의 기름부음이 매우 강하게 임할 때가 있다. 이때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임하니까 사오 분 동안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이후로 몇 달 동안 전화가 오고, 편지가 오는데,(유럽 사람들은 미국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존심도 있고, 문화나 역사도 짧고...) 미국 놈들이 유럽에 와가지고 도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을 했단 말이냐. 이것 마술 아냐, 그러면서 온갖 비판과 온갖 소리가 다 해댔다고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가면 그럴 수 있다. 사실 이러한 대적은 하나님의 부흥이 있을 때마다 있었다.
그런데 고침 받은 본인들은 의심할 나위가 없이 하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치유에 감사하고, 새사람이 되고, 새로운 자유함을 경험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 이게 하나님의 역사인지 어떻게 아냐’고 말하자,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인지, 사단의 역사인지, 고침 받은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면 될 것 아니냐고 그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그것은 賈コ?감사한 하나님의 역사다. 한 사람, 한 사람 얘기가 간증이다. 수년 동안 고통당하고 억압당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유되고 자유케 되었으니 그것보다 더 감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요한 웨슬레 시대도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도 사람들은 그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대적했다. 지금 요한 웨슬레를 이단이라고 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요한 웨슬레를 이단이라고 했다. 그래서 요한 웨슬레는 그 열매를 보라고 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가? 그 결과로 더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는가? 그 결과로 주님을 더 사랑하기 원하는가? 그 결과로 가족을 더 사랑하는가? 그 결과로 하나님을 위한 삶을 더 사는가? 이런 일들은 사단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날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현상만 보고 판단하는데 잘 모르면 열매를 기다려보면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런 얘기도 한다고 한다. 여주봉 목사 책을 봤더니 내용은 좋던데 혹시 거기 빈야드 아니냐고, 이단 연구소에다 연구 좀 해서 알려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우리는 빈야드는 아니다. 그런데 빈야드는 전혀 이단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빈야드 빈자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왜 유독 우리나라만 빈야드를 이단이라고 하냐면, 다른 것은 안보고 나타나는 현상만 보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빈야드 교회에 한번도 가본적도 없으면서 몇몇 사람들의 잘못된 헛소문만 듣고 비판한다. 요한 웨슬레 시대건, 조나단 에드워드 시대건,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하실 때마다 현상들이 나타났다. 심지어 예수님 때도 똑 같았다. 그러니까 주님도 답답하니까 그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하셨다.(마7:20; 눅6:44)
하나님께서 요즘 아내를 통해서 주신 말씀 중에 하나가 뭐냐면, 너희 가운데 요바딘다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 큰 일들이 일어나리라. 또 아주사에서 일어난 일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고 하셨는데, 참고로 아내는 요바딘다란 장소나 이름을 전혀 모른다. 여러분들이 다 아는 대로 아주사는 1906년에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곳이고, 20세기에 들어서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그리고 요바딘다는 제3의 물결이 시작된 곳이다.
사실 우리 가운데 이러한 사역들이 더 강하게 나타나기 전에 이 부분은 필수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훈련과정에서 되어지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살펴보는 이유 중에 하나가 뭐냐면,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역을 할 때, 그냥 소리를 지르고, 배를 치고, 눈을 찌르고, 상스럽게 욕을 하고, 함부로 막 대하고, 침을 뱉고, 그래야만 되는 것처럼 매우 잘못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러한 역사가 시작되기 전에,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매우 강하게 역사하시지만, 지금은 슈퍼맨이 보통 때 총알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것도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슈퍼맨이 하늘을 날고 지구를 도는 그런 차원의 역사는 아직 우리 가운데 오지 않았다. 앞으로 요바딘다의 일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역사가 오기 전에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봄으로써 최소한 그 가치관이나 사역에 대한 이해라도 올바로 해야 될 필요성이 절실하기에 사실 이 부분도 살펴보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그러한 기름부음이 임하기를 구하고 있고, 기다리고 있지만, 그 전에라도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대로, 인도하시는 대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가지고 나가서 순종해야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이것은 귀신들린 자의 사역뿐만 아니고 일반적인 것인데,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이렇게 되기 쉽다. 그게 뭐냐면, 하나님의 부흥이 임하시면 다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안하고 뭐만 하느냐면, ‘하나님, 부흥을 보내주세요.’ 그러면서 부흥을 보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은 절대 옳은 자세가 아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흥이 오면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전에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들을 꾸준히 신실하게 순종해야 한다. 전도하는 것도 그렇고, 치유하는 것도 그렇고, 이웃 사람을 돌보는 것도 그렇고, 구제하는 것도 그렇고, 하나님을 찾고 경배하는 것도 그렇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충실히 해가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더 강하게 부어질 때, 그것이 더 강하게 확산되어지는 것이지,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흥만 임하시면 될 것처럼 생각하면 그것은 오히려 아무것도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가지고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고, 병든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잃은 영혼을 전도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는다.
그리고 사역이 쉽게 될 수 있는 반면에 어떤 때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서 집중적으로 기도해야 되고, 또 중간에 지치지 않은 사람으로 팀을 교체하는 것들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러한 치유에 임할 때,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의지하여 나가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가야 한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사역하실 때, 사용하신 명령어가 네게 있다.
첫째, 멈추라 (중단하라). (막1:34)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눅4: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질러 가로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저희의 말함을 허락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둘째, 잠잠하라. (막1:25)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4:39)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눅4:35)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셋째, 네 이름이 뭐냐? (신분을 밝히라) (막5: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넷째, 나오라 (막1:25)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5:8)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눅8:29)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이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이 사람을 붙잡으므로 저가 쇠사슬과 고랑에 매이어 지키웠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행16:18)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우리도 이 네 가지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영해’가 어떻고, ‘굳어라’ 같은 말 할 것 없이, 소리 지르고 방해하면, 멈추라고 말하고, 분위기를 흐트러트리려고 하면 잠잠하라고 말하고, 사역함에 있어서 그 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름(신분)을 묻고,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가라고 쫓아내는 것이다. 예수님이 네 가지 명령을 사용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것을 잘 사용하면 매우 효과적일 줄 믿는다.
그리고 ‘멈추라’는 말은 헬라어에서는 매우 강한 의미를 담고 있는 명령어다. 그러니까 ‘멈추라’는 말은 한마디로 ‘입 닥쳐’ 이런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어둠의 세력들을 명령하셔서 쫓아내셨다. 어둠의 세력들을 구슬려서 나가라고 한 것이 아니고, 사정해서 나가라고도 않고, 아니면 그 앞에서 무슨 의식을 치러 가지고 나가도록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쫓아내셨다. 마치 성전에서 채찍을 들고 쫓아내신 것처럼 하셨다. 우리에게 그러한 주님의 권세가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역을 우리도 잘 배워서 실제 사역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고, 더 많은 치유의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