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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제13장 후속 조치2024-12-12 17:47
작성자 Level 10
제13장
후속 조치


귀신들리는 모든 책임은 일차로 자기에게 있다. 물론 귀신이 억지로 죄를 짓게 할 수는 없지만, 귀신은 사람들을 죄로 유혹하고 미혹한다. 그래서 그 유혹을 받아들이고 협조하게 되면 죄를 짓게 된다. 실제로 귀신들린 사람들의 대부분은 귀신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런다. 그러다 보니까 그들의 삶 속에 어두운 면들이 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빛의 자녀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빛의 자녀들이 어둠의 세력에 굴복하여서 어둠에 거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일이지만 실제로 많은 경우에 지배를 받는다. 그래서 숨겨진 죄를 가지고 있고, 계속해서 그 죄를 짓다가 거기에 억압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기 스스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옛날에 목회할 때, 어느 한 청년이 찾아왔다. 그 청년은 미국 유학도 갖다온 청년이었다. 공부도 많이 했고, 집안도 아주 좋고, 생긴 것도 아주 잘생겼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고 성격도 온순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창녀 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는데, 그게 죄인 줄 알면서도 나중에는 이길 힘이 없었다. 그래서 자꾸 더 억압되니까 스스로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고민하면서 찾아온 것이다. 외부적으로 볼 때, 매우 귀한 조건을 가지고 있고, 신앙적으로도 아주 잘 자란 청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어두운 면이 있었고, 숨겨진 죄가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상황까지 온 것이다.

이렇게 속박이 심해지게 되면 앞에서 살펴봤듯이 성경을 읽어도 안되고 기도해도 안되고 교회가도 되지 않는다. 그 청년처럼 겉은 멀쩡한데 속은 억압을 당하기 때문에 이길 힘이 없다. 이럴 때는 전문적인 치유사역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경우는 귀신을 쫓아내고 억압을 끊어주는 것이 귀신들린 자의 사역인데, 그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그래서 귀신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면 그것은 마치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거듭된 죄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억압받던 그가 자유함을 받게 되고, 다시 하나님 나라의 온전한 통치가운데로 들어오게 되는 축복이다. 이렇게 치유가 일어나게 되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그때부터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것이 후속조치다. 왜냐면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귀신들렸던 자가 사역을 통해서 귀신이 떠날지는 모르지만 과거의 지었던 죄로 돌아가거나 혹은 그 죄 가운데 계속적으로 살게 될 때, 더 큰 억압이 그에게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를 참다운 자유함의 길로 잘 인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라면 참다운 자유함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 뭐냐? 크게 나누면 네 가지다.

1.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떠나간 후에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가 귀신의 두목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로 인해서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 기간이 오랠수록, 정도가 심할수록 삶의 모든 면이 거짓말로 가득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왜곡된 가치관으로 가득했던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롭게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는 삶을 가르치고, 그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느헤미야서를 보면 성벽을 쌓는 일이 나온다. 그런데 그 일은 역사적인 사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적전쟁에 관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매우 영적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책이다. 실제로 교회회복과 관련해서 일어나는 영적전쟁의 유형들이 거기에 다 나와 있다.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승리할 것인가도 거기에 많이 나와 있다. 우리가 교회 가운데 십자가의 복음이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고, 사역이 회복되기 위해서 나가다보면 많은 영적전쟁들이 있다. 특별히 율법주의적인 가치관에서 나오는 반대에 부딪친다. 그런데 그러한 전쟁들이 느헤미야서에 그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느헤미야서에 보면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도 잘나와 있는 것 같다. 그 외에도 느헤미야서는 영적전쟁과 관련해서 매우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교과서라고 칭한다.

보호 벽이 세워져야 한다.
거기에 보면 성벽이 허물어져 있었다. 그래서 여우가 성벽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했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귀신들린 자의 삶에는 보호막이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의 세력들이 마음대로 들락날락하고, 마음대로 그 삶을 짓밟고, 가치관을 왜곡시키고, 거짓으로 인도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면 성벽을 세우는 일을 가르쳐야 된다. 귀신은 쫓겨나갔는데 성벽이 무너진 채로 그냥 놔두면 짐승들이 언제라도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것처럼, 그냥 놔두면 귀신은 언제라도 다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에 성벽을 세우는 일을 가르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보호막을 그 삶에 세워줘야 한다. 새로운 신앙적인 이해와 새로운 가치관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보호막이 되어서 어둠의 세력들이 이전처럼 거짓으로 그 사람을 속이고 아무 때나 들어와서 억압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을 반드시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새롭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여기에 중요한 것이 가장 기본적인 얘기인데,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이 그 사람 속에 단순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그의 삶에 심겨지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의 모든 신앙은 그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주시라!’ 그러면 예수님이 나의 주님인데요. 이런 차원이 아니라 예수님이 실제로 나의 주인이 되는 삶을 날마다의 삶에서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은 나의 주님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만, 어떤 조그만 일을 하나 결정하는 것도 주님 뜻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은 실제인 것이다. 예수님이 실제 그의 삶의 주님으로써 그래서 주님 되시는 그분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것은 대단한 결단과 믿음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그분의 뜻에 내 삶을 조정해서 결단하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삶의 열매가 맺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당연히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해를 심어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산지식으로써 그의 삶에서 예수님이 주인이시면 자신이 종으로써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를 하나하나의 삶의 영역에서 그에게 가르치고 그를 인도해 주고 지도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하나님의 보호막 가운데서 살 수 있다. 그렇게 하게 될 때, 그 왜곡된 가치관에서 벗어나서 참다운 가치관 가운데 세워지게 될 것이다.

찬양과 경배가 중요하다.
여기에 또한 중요한 것이 찬양과 경배다. 그를 하나님 앞에서 행하도록 가르치라고 했는데, 여기에 찬양과 경배가 참 중요하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일부에서는 찬양과 경배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종류의 사역을 하려면 이런 종류의 노래를 하는거야. 그래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은 옛날 것이고 요즘 신식은 이런 종류의 찬양을 하는거야. 이렇게 하나의 유행처럼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의미에서 찬양과 경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찬양과 경배의 핵심은 어떤 종류의 노래에 있지 않다. 어떠한 마음의 자세로, 어떠한 이해를 가지고 드리느냐에 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 진실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가기를 힘쓰고,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예배드리며 그분의 행하시는 일을 인하여 그분께 감사를 드리고, 그분께 찬사를 드리고, 또한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그러한 삶을 가르칠 때, 놀라운 자유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어제 저녁 몇 명이 모여서 중보기도 하는데 하나님이 참 함께 하셨다. 우리가 중보기도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함께 하신다. 그리고 집에 가는데 아내가 하는 말이 같이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니까 너무 좋다고 하면서 다른 때는 혼자 기도하려고 하면 졸리고 그랬는데 너무 좋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삶을 살게 될 때, 우리 삶이 찬양으로 드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후속조치로 그 사람에게 늘 찬양과 경배하는 삶을 가르치고, 또 그 가운데 서도록 할 때, 그가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임재 가운데 사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잭키 플린져(폴링거)라는 영국의 한 여자가 홍콩에서 참 귀한 사역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삼십년 사십년 된 마약 중독자들이 치유되어서 새 삶을 살기도 한다. 물론 그 치유과정에서 전문적인 치유사역도 필요하다. 그리고 회복되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회복된 다음에도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 뭐냐면 찬양과 경배다. 그들은 모여서 어떠한 형식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진실로 경배하고 찬양하기를 기뻐한다. 그들의 삶에 찬양과 경배가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 한사람 한사람이 찬양과 경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것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때, 그들은 과거 세상에 있을 때, 술과 마약을 통해 경험했던 쾌락이나 다른 죄로 인한 쾌락과는 비교도 안되는 것들을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얻게 되고 경험하게 되므로 그들이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 백성의 모임 가운데로 인도해야 한다.

그래서 이와 같이 첫 번째 해야 할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도록 지도해야 한다.

2.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포함해서 우리 모두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이처럼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님은 그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예수님이 돌아가심으로써 새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귀신의 세력들은 어떤 때는 이삼십년 전에 지었던 죄도 생각나게 한다. 어떤 때는 돌아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그야말로 끔찍한 일들, 그 생각만 하면 자기 자신이 미워지고, 때로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그런 죄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자꾸 생각나게 함으로써 주님께 나아가는 삶을 위축시키고, 좌절시키고, 낙심시키고, 특별히 그 마음속에 너는 할 수 없는 놈이야, 너는 버림 받았어, 너는 새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해, 이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어서 좌절시키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반드시 확인시켜 주어야할 것은 뭐냐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용서받았으며, 하나님은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자신의 과거의 죄가 생각날 때, 나의 옛사람은 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곧 승리의 비결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으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죄 용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그를 새롭게 하셨고, 하시고 계시고,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원수의 세력들을 멸하셨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면 그들은 그동안 억압을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어떤 때 그들에게는 하나님보다 귀신이 더 큰 것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이 더 큰 것을 아는데, 귀신들은 그들 가까이 있고, 그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반면에 하나님의 영향력은 매우 먼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분명히 확신시켜 주어서 예수님 안에서 저들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예수님은 바로 이 세상에서 마귀의 임재와 일을 멸하러 오셨다. 그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죄의 세력을 멸하시고 사단의 권세를 파하셨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승리할 수 있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우리 속에 와 계시는 예수님은 세상에서 방해하고, 유혹하고, 미혹하고, 거짓으로 속이는 어둠의 세력들보다 훨씬 더 강하고 큰 분임을 확신시켜 주어야 되고, 예수님 안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을 확신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둠의 세력들에게 방해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귀신의 세력들에 대해서 자꾸 말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승리를 확신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의 눈이 예수님을 향하여 있는 한 그들은 이긴다. 이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때로 어떤 유혹이 여러분을 향해 다가올 때, 여러분이 그 유혹을 이기려고 유혹을 바라보면서 ‘물러가라’ 명령하고, 또한 유혹을 바라보면서 이기려고 노력한다고 이겨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어둠의 세력들이 유혹해 올 때에 명령해서 물리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가지고 이기지 못한다. 여러분의 눈이 유혹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께 고정되어 있으면 이기게 되어있다. 그분이 여러분의 중심까지 만지신다. 그러므로 승리의 주님께 눈을 고정하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 2:13-14)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우리의 모든 죄들을 기록한 증서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우리의 원죄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기초해서 율법을 어긴 우리의 모든 죄들도 함께 못 박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서 우리를 대적하고 고소하는 모든 우리의 죄악들이 다 십자가에서 같이 못 박혔다. 그러면서 15절에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다고 했다. 정사와 권세는 어둠의 세력들을 말한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단(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여기에 여자의 후손은 단수로 예수님을 가리킨다. 그래서 사단이 예수님의 발꿈치를 물은 것처럼, 그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과 사람들을 선동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십자가의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뱀의 머리를 깨뜨리신 것처럼 어둠의 세력인 사단의 권세를 파괴하셨다. 그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후 그들이 승리했다고 승리의 환성을 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3일 만에 머리가 깨뜨려지는 일을 당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주님의 부활이다. 그래서 사단의 운명은 결정되었고, 주님이 다시 오시면 그때, 불 못 가운데 던져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사단의 머리가 깨어졌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은 사단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크실 뿐만 아니라 사단의 세력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 확신을 당연히 가져야할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치유 받은 사람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성령의 조명으로 저들이 깨달아 그 진리위에 서도록 예수님이 승리하신 것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 있는 승리를 저들에게 가르쳐 줌으로써 다시는 저들이 사단의 억압아래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들의 눈이 사단의 능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비교도 안될 만큼 크신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게 될 때,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저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렇게 그들의 삶을 인도해야 할 것이다.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을 가르쳐야 되는데,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안에서 갖는 승리를 저들로 확신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 토대위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3. 마음을 새롭게 하도록 헌신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

이 모든 내용들은 당연히 우리 모두가 힘써야할 내용들이다. 특별히 치유 받은 사람들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서 살도록 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삶은 자기부인과 자기희생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다. 옆집 사람과 세상적인 것을 비교하는 삶으로 성경은 우리를 부르고 있지 않다. 치유 받은 그 사람도 그러한 삶 가운데는 온전한 자유함이 절대로 없다. 일시적인 자유함이 그들에게 찾아왔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주님의 길에 서서 온전히 행할 때에 저들에게 온전한 자유함이 있게 되고 또한 그 자유함이 더 커질 줄을 우리는 분명히 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삶 가운데로 그들을 인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마음이 새로워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가치관이 새로워져야 한다.

세상에 있는 것들을 얻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많이 쌓고 모으는 것이 우리의 가장 주된 궁극적인 삶이 아니고, 주님을 얻는 것이 가장 귀한 삶인 것을 저들에게 가르쳐야 된다. 그런데 우리는 성도들에게도 세상적인 것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잘 모으는 것이 최선의 삶인 것처럼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세상에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삶으로 인도해야 된다. 가장 먼저 신앙생활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하나님 말씀을 대함이 없이 마음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나님 말씀을 보아야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연약함을 볼 수 있다. 마치 거울을 볼 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보아야 우리의 죄 된 속성을 볼 수 있다.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위로를 받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접함이 없이 사람들과의 관계만 갖는다면 그 사람은 절대로 서지 못할 것이다. 치유 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들에게 권면을 받고, 도움을 받는 것 중요하다. 그러나 절대로 사람의 도움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면 목회자가 신뢰할만한 사람을 지정해줄 필요가 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어려운 지체를 집중적으로 상담할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른 성도들은 옆에서 도우면 된다. 그리고 어떤 얘기를 하려면 그 성도를 옆에서 보살피는 그분과 상의하고 얘기를 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도움보다는 오히려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 말씀 앞에 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가치관을 깨닫게 될 때, 그가 그 말씀 위에 굳게 설 것이고, 그의 가치관이 새롭게 될 것이고, 그 마음이 새롭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이기 때문에 혼자 말씀 위에 서지 못한다. 그러니까 도와주되 특별히 말씀으로 설 수 있도록 성경공부를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러므로 치유의 목적은 전인적인 치유이어야 한다. 그 사람에게서 증상이 없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그의 영혼이 치유될 뿐 아니라 주님 앞에서 자라나서 주님께 그의 삶이 드려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치유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그 한사람을 대하여 영적인 치유기도뿐만 아니라 아울러 말씀으로 그를 양육하여 결국은 본인 스스로 그 말씀의 토대위에 세워질 수 있도록 양육하는 것이 매우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4. 다른 성도들과 교제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거라사인의 귀신들린 자의 특징 중에 하나는 사람들과 단절된 것이었다. 귀신은 항상 단절된 삶으로 혼자 있게 만든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 일을 저지르게 만든다. 왜냐면 단절된 삶을 살게 될 때, 원수의 거짓말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체들과 같이 있으면, 유혹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훨씬 더 쉽게 이길 수 있고, 거짓이 더 밝혀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1-4)

성도들의 아름다운 교제다.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건 그들뿐만 아니다. 결국 교제를 통해서 우리가 빚어진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롬 12:5) 성도들 중에서는 교회는 가는데 교제를 안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의 삶이 만져지고 빚어지는 것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교제하면서 다뤄진다. 교제하면서 자기의 모난 것도 드러나게 되고, 교제하면서 자기의 어떤 옳지 못한 생각들도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과 편견도 드러나게 되고,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이 좁은 것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도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빚어지게 된다. 마치 날카로운 돌들이 서로 모아져서 구르다보면 매끈하게 되는 것처럼,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가신다. 그러므로 교제를 통하지 않고 혼자 잘하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의 사역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 왜냐면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도는 교제를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치유 받은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5. 교회의 목적과 계획에 동참하도록 하고, 헌신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교회의 목적과 계획에 동참하도록 하고, 그리고 헌신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교회에 참여하는 것과 교회가 되는 것은 다르다. 다시 말하면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 참석하는 것과 자신이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교회에 참석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교회의 지체가 되도록 부르셨다.

피터 왜그너 박사의 말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 가지 헌신으로 부르셨다고 말한다. 첫째는 무엇보다 예수님께 대한 헌신으로 부르셨고, 두 번째는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에 대한 헌신으로 부르셨고, 세 번째는 세상에서의 주의 목적을 위해 부르셨다. 그리고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하다. 첫째로 우리 모두는 주님께 헌신되어야 한다. 주님이 우리의 주가 되시는 삶, 그리고 주님이 주가 되셨으면, 둘째는 주님이 세우신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헌신되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동네에 살았더라면 나는 이 교회를 나왔을 거라고, 이 교회야말로 내가 오고 싶어 하는 제일 좋아하는 교회라고, 금방 침례교회에서 그래놓고 나서 그 옆에 다른 장로교회에 가서도 또 똑같이 말하기를 내가 이 동네에 살았더라면 나는 이 교회를 나왔을 거라고, 이 교회야말로 내가 오고 싶어 하는 제일 좋아하는 형태의 교회라고 한다. 왜냐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주님께 헌신되면 주의 교회에 헌신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성도들과의 교제뿐만 아니라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목적과 계획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교회에 헌신하지 않으면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실제로 그런 것 같다. 목사님들은 다 잘 아시지만, 성도들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헌신되지 않고는 절대로 신앙이 못자란다. 안된다. 아무리 전국을 쫓아다니면서 집회를 참석하고, 기도를 하루에 세 시간씩하고, 성경을 일년에 몇 독을 해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써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한 일원으로 교회가 되어져서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통해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의 목적에 헌신되어져서 자기가 할 부분을 충실하게 감당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동참하는 일이 없이는 신앙이 성숙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절대로 한계가 있다.

새물결선교회 화요모임에 오시는 성도님들 같은 경우도 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여러분들이 자라는 것은 주님의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자라게 되는 것이지 화요모임 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을 보아도 내부에 있는 사람과 외부에 있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본다. 어떤 분은 교회 가까운데 사니까 자주 방문하는데, 그분하고 우리 교회의 한 일원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여 같이 가는 성도하고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신앙이 성장하는 것은 어디서 특별한 설교를 듣는 것도 아니고, 혹은 기름부음 있는 장소에 가서 기름부음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고, 중요한 부분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 두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써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하나님 나라에 헌신되어지게 될 때 신앙이 자란다.

그래서 선교회에 나오는 목사님들이 섬기는 교회에 나가는 여러분들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왜냐면 교회에서 마음 놓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동참할 수 있고, 또 예배를 드리면서 갈등이 아니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포도나무교회를 섬기면서 한가지 참 좋은 것이 뭐냐면, 예배드리면서 갈등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배드리면서 갈등하고 앉아있을 필요 없이 온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드릴 수 있다는 그것이 나는 제일 좋다.

중요한 것은 교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그리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그들을 이 삶으로 인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귀신들린 자의 사역의 후속조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지금은 전쟁 중에 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 알아도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는 사단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영을 놓고 충돌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어제 중보기도를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사단이 지금 역사하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예를 들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어두움이 온 하늘을 덮는 것처럼 세상에 악이 가득하다. 특별히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해서 문명이 좀 발달한 나라는 얼마나 많이 타락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능력만 가지고도 안되는 것 같다. 하나님의 빛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사단의 세력에 미혹되어져서 온갖 타락으로 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하나님이심을 알려주시면 많은 자들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가치관과 철학으로 오염된 자들에게는 능력도 필요하겠지만 하나님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빛으로 저들이 깨우쳐져야 되고, 하나님의 임재로 저들의 심령이 다루어져야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이 알려져야 되고, 그야말로 칠중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이러한 사회 속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 예수님의 약속이 있고, 예수님의 능력이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나가야 될 것이고, 온갖 어두움이 급속도로 짙어가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능력을 힘입어 억압된 자들을 자유케하고, 잃은 영혼들에게 주님을 소개하고, 또한 그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을 우리가 감당해야 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군사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기초적인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런 기회를 주실 때, 순종함으로, 한 영혼 한 영혼이 하나님 나라로 더해지고, 하나님의 통치가운데로 들어옴으로써 사단의 나라는 그만큼 축소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지는 축복이 있을 줄로 믿는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순종하면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 행한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예배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성경공부하고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동시에 또한 나가서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전도하고,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구제하고, 그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도 하나님이 다 계산하시고 여러분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권세와 능력을 부어주시면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악속하시면서 세상을 향하여 우리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나아가야할 세상은 어느 때보다 더 타락하고, 어느 때보다 가치관이 세속화되어 있으며, 어느 때보다 거짓 사고 관으로 가득하고,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위한 자리가 없으며, 어느 때보다 어두움으로 가득차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천지를 창조하신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그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하신 줄 믿사오니 주님 우리로 깨이게 하옵소서. 깨어 하나님이 주신 그 능력과 그 권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나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우리 앞서 행하신다고 말씀하시며, 너희는 나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신 주님, 그렀습니다. 주님이 우리 앞서가시는데,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되, 주님이 주신 그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따라가게 하여주셔서. 주님 이 시대에 어두움이 하늘을 덮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 백성들 위에 임하여 열방이 그리로 나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온 열방이 예수님께로 드려지게 되고, 모든 무릎이 주 앞에 끓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아버지 이러한 일들을 위해 이곳에 머리 숙인 성도들이 믿음으로 일어나 주님의 군사로써 주님을 따라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열린 눈을 허락해 주셔서 언제까지나 우리의 삶 속에 있는 작은 문제들에 집착하여 거기에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게 하시고, 또 우리가 무장하여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찬양 191장  주님나라 임하시네

주님나라 임하시네  
주의 날은 멀지 않았네
너는 일어나 주를 따르라  
하나님 날 부르시네
세상은 아직 어둠 속에 빛 되신 주 보기 원하네
너는 일어나 그 빛을 발하라 주님의 영광 네게 임했네
일어나 주 위해 서라 강한 용사여
주님이 너와 너와 함께 하시네
주께서 다시 오실 길 그길 예비하라
영광의 주님 오! 만왕의 왕 곧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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