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의 차이 1. 종교생활은 성령을 받지 않더라도 가능하지만 신앙생활은 성령 받지 아니하면 불가능합니다. 2. 종교생활은 개인적인 재산이나 가족의 건강이나 행복을 신께서 책임져주신다는 점을 희망으로 삼는 생활입니다. 반면에 신앙생활은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기에 그리스도가 가신 길에 합류 된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3. 종교생활은 성령을 받지 않는 생활이기에 기존의 신(神)을 신(神)으로 확정짓고 모든 논리를 그 신(神)에서부터 전개하게 됩니다. 즉 신이 있고, 신이 세상을 만들었고, 인간을 만들었고, 그 만든 인간을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인간을 위하여 구세주 되시는 예수를 보내어 인간을 구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신앙생활은 성령, 곧 그리스도 영을 받았기에,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즉 예수님을 위하여 만물이 만들어졌고 그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십자가에서 저주 받았기에 모든 인간은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하고 (고후 5:14), 따라서 인간은 구원 받을 권리나 사랑받을 권리나 용서 받을 권리가 없으며, 오직 예수님에 의해서 선택당해(요 5:21) 그리스도 영을 받은 사람만 아버지를 압니다. 그 외에는 아버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당연히 성령 받아 신앙생활 하는 이들에게 있어 개인적으로 모은 재산이나 건강이나 가족의 행복이나 자기 교회 부흥 같은 것은 전혀 예수님의 뜻과 상관없음을 압니다. 4. 종교생활하는 이들은 현재나 장래의 개인적 행복이 우선이기 때문에 성경을 봐도 세상 복 받은 이들이나 천국의 멋진 생활을 기대하고 삶의 동력으로 활용하게 됩니다. 반면에 성령 받아 신앙생활하게 된 사람은 창기와 세리와 강도와 죄인들이나 막달아 마리아나 스데반 집사나 고난 받는 사도나 욥이나 선지자나 간통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이나 사마리아 여인 같은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탕자나 거지 나사로에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 십자가 흔적을 발견하고 동질감을 갖기 때문입니다. 5. 종교생활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오락이나 취미나 친목 위주로 교회를 다니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에게나 자랑할 만한 것들을 만들고 나와서 남들에게 은근히 보여주고 싶은데서 세상과 더불어 사는 재미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성령 받아 신앙생활에 접어든 사람은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매사에 있어 “내가 왜 죄인인가”를 늘 생각나는 생활로 조정 받게 됩니다. 즉 자신이 말씀과 십자가 앞에서 죄인 됨을 타인에게 증거하게 됩니다. 6. 종교생활하는 목사들은 자랑 질이 주특기입니다. 설교자랑, 교인자랑, 성공자랑, 가정이 화목한 자랑, 건강 자랑, 공부 자랑, 은사자랑, 남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고 싶은 충동을 주체하지를 못합니다.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목사가 되는 것이 그들의 존재의 목적입니다. 반면에 성령 받아 신앙생활 하는 목사들은 “왜 나는 이 모든 대단해 보이는 목회일 마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일 수밖에 없는가”를 감사함 가운데 생각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죄가 뭔지를 아는 자입니다. 전도, 헌금, 기도, 목회, 선교, 찬양, 금식, 구제 등등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다 죄 덩어리인 채로 살아있음을 아는 자가 성령 받은 목회자입니다. 7. 종교생활하는 자들은 ‘난공불락의 자기 것’을 사수하려는 집착 속에서 세상을 살아갑니다. “신이시여. 나의 것을 지켜 주소서. 내가 구축한 이 인생이 다치지 않게 하소서!”라고 가상의 신 앞에서 들고 나옵니다. 이 ‘나의 것’ 항목에서 ‘나의 신앙, 나의 소망, 나의 사랑’이 원천으로 깔려 있습니다. 이게 원판불변의 법칙이지요. 반면에 성령 받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날마다 십자가만 크게 보여서 같이 구원받게 될 우리(=교회)들이 자신이 죄인의 괴수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함을 통해 예수님의 공로만 높여지게 하옵소서!”라는 모습으로 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니 ‘나의 것’이란 늘 해체되고 분해되고 와해되기 직전의 일시적 착오의 순간이라고 보는 겁니다. 8. 종교생활하는 자들은 대외적인 권력욕을 주체하지 못합니다. 보다 커져야 하고, 보다 확대되고, 넓어지고, 보다 영향력이 강렬해지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고 간주합니다. 반면에 성령 받은 신앙생활 자들은, 강해지고 커지고 넓어지는 것을 악마가 깔아놓은 붉은 카펫이라고 봅니다. 벌어진 지옥의 입구이지요. 왜냐하면 많은 사람이 찾는 것은 멸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극도로 약한 존재가 된 상황입니다.(고후 13:4) 9. 종교생활을 하는 이들은 어디까지나 취미생활로 신을 찾기에 신은 항상 타인에 머뭅니다. 아쉬울 때만 잠시 잠간 불러낼만한 존재로 봅니다. 반면에 성령 받아 신앙생활을 하게 된 성도는 매일같이 예수님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면서 평생을 지내게 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따라서 ‘자기 것’이라고 따로 남겨둘 것을 예수님으로부터 도무지 용납 받지 못합니다. 10. 종교생활하는 이들은, 자기를 위한 일생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여깁니다. 따라서 자신이 평생 가꾸어온 자존심과 체면과 영광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겁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버린 자들은, 날마다 재정렬 당하고 과거와의 연속적인 단절 작용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날마다 죽기 위한 시간이 주어졌고 그 속에서 시간을 극복한 예수님의 생명만 위력을 발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