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들어오는 생각을 분별하라! 흔히들 우리가 하는 많은 생각들이 영적인 세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음을 안다면 우리는 생각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우리에게 오는 많은 생각들을 분별하고 어떤 생각은 소중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어떤 생각들은 강력하게 대적하여 그 생각이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인간의 생각은 많은 경우 영적인 세계에서 오는 영감들을 수신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간에게 연결되는 영적 세계는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영적세계인 천국이며, 그곳에서 오는 생각을 하나님의 영이라 부르며, 다른 하나는 마귀가 통치하는 영역으로 그것은 인간을 넘어뜨리고 죽이기 위하여 인간을 유혹하는 지옥의 영계이며, 그것을 세상의 영이라 부른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2:12] 그러므로 사람의 생각에는 서로 다른 두 영적세계에서 영감이 부어짐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세상의 영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며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물론 모든 생각이 영적세계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오감(五感)인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기본적인 육체적인 활동을 통한 생각은 우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기본적인 생각에 다른 생각이 와서 생각이 발전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이 때 중요한 것이 우리가 어디에 속한 영감을 받았느냐가? 우리에게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이고 기본적인 생각의 영역이다. 시끄러운 소리를 시끄럽다고 느끼는 것 또한 인간의 기본적인 생각의 영역이며, 뜨거운 것을 뜨겁게 느끼고 뜨겁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나. 맛있는 느낌을 받고 맛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향기롭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은 자연적인 인간의 생각의 영역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이 발전되는 것은 영적인 세계로부터 다른 생각, 다른 영감을 받을 때인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은 두 가지 영역에서 한 영역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며 그 생각을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영인,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 있는 생각을 받아들이던지 아니면 마귀가 주는 세상의 영을 받아들여 하나님과 멀어지고 변질되어 사망의 열매를 맺든지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은 일종의 영이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말씀하셨다. 생각이 자라고 정리되면 말로 나온다. 말이 영이듯, 생각 또한 일종의 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오는 생각을 분별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계로부터 오는 생명 있는 생각은 받아들이고 마귀로부터 오는 세상의 영은 대적해야 할 것이다. 생각은 일종의 씨앗이다. 마태복음 13장을 통하여 주님은 천국은 좋은 씨를 밭에 뿌린 것과 같다고 하셨다. 밭은 우리의 마음이며 좋은 씨는 주님의 말씀이다. 주님의 말씀이란 우리에게 들어온 생각이다. 그것이 우리 마음에 심기운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마음에 생각을 주신다. 마태복음 16장 16절은 그 유명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모두들 다른 대답을 내 놓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대답으로 주님께 “복이 있는 사람이란 주님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는, 너의 생각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즉, 베드로의 고백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이다. 이것이 영감이다. 이처럼 생명 있는 영감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주어진다. 그런데 이어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자마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말한다.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그러나 이번에는 칭찬이 아니라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다”[마태복음 16:23]라는 질책을 받게 된다. 베드로의 이 두 번째 생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온 생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의 영이며, 주님의 일을 대적하는 마귀의 영으로부터 온 영감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다. 베드로 한 사람에게 짧은 시간 대에 서로 다른 영계에서 각기 다른 영감, 서로 다른 생각이 주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실례라 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에는 영적인 세계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귀는 인간의 틈을 노리며 끓임 없이 인간의 마음에 다른 생각을 심는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라. 주님은 사람의 마음이란 밭에 좋은 씨를 심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원수마귀는 사람의 마음 밭에다 가라지를 심어 곡식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사람의 기본적인 감정에 그는 두려움과 염려를 심고 불신을 심고 게으름을 심어 결국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것이다. 왜! 알곡이 되지 못하는가? 그것은 원수가 가라지를 심고 있기 때문이다. 가라지는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그러한 영감을 받을 때 주님을 팔고 그러한 영감을 받을 때 다윗처럼 남의 아내를 빼앗으려는 생각과 살인하는 생각을 품고 실행함으로 넘어지고 범죄하게 되는 것이다. 마귀는 쉬지 않는다. 그는 휴식이 없다. 마귀는 그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고 택한자라도 넘어뜨리려고 우는 사자처럼 찾아다닌다.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베드로전서 5:8-9] 마귀는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지켜야 한다. 우리의 마음에 생각을 분별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요한복음 13장 2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마귀는 인간의 마음에 생각을 집어넣는다. 이것은 일종의 영감이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에 생각을 집어놓고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여 시험에 들게 하고 죄에 빠지게 하고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인간의 자연스럽고 건강한 기본적인 생각이 발전되는 것, 그것은 어떤 영계에서 생각을 받아들이는가에 달려있다. 마귀는 교묘하게 그의 생각을 인간의 마음에 심어놓고 그 생각을 인간이 자기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그가 원하는대로 끌고 간다.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 홍수의 원인이 사람의 악한 생각의 결과라 말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세기 6:5] “그 마음의 생각”이란 말에 유의하라. 왜 그 마음의 생각인가? 그것은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않고 마귀가 주는 변질된 생각을 받아들인 결과를 말한다. 마귀는 인간의 마음에 마귀의 생각을 집어넣어 변질되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고 타락하게 한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 그것은 노아가 “당세에 그 마음의 생각을 지킨자이며 하나님과 그의 생각이 연결된 자이다.”, 그러므로 그시대의 사람들과 달리 “노아는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선하고 의로웠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인간의 정상적인 생각, 건강한 생각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기억하라, 마귀는 인간의 생각을 공격하여 더러운 씨를 심고 변질시키며, 그 생각을 받아들인 인간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고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에덴동산의 하와가 받은 뱀의 유혹을 보라. 뱀은 그녀의 건강한 생각에 다른 생각을 주어서 받아들이게 하고 결국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선악과를 따 먹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귀가 주는 생각이며 심는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인 결과는 결국 하나님과 분리되고 마귀의 일을 도왔으며 마귀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다. 마귀는 유다만 힘쓰고 애써서 유혹하지 않았다. 마귀는 베드로도 많은 공격을 하였다. 누가복음 22장에 주님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누가복음 22:31-32] 여기서는 주님께서 베드로를 대표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단이 밀까부르듯 하여고 "너희를 청구하였다"고 하신다.너희는 모든 제자들을 지칭하는 말씀이다. 사단은 모든 제자들을 공격하였다. 그 중에서 영향력이 있는 베드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넘어지게 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유다를 위하여서도 베드로를 위하여서도 다른 제자들을 위하여서도 동일하게 중보기도를 하셨다. 요한복음 13:1절을 보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하셨다. 주님은 유다도 끝까지 사랑하셨다. 그러나 유다는 주님께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 자살함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유다는 마귀의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였고 그 생각은 그를 변질시켜 결국 주님을 배반하고 팔게 하였다. 그는 주님을 배반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아니라 “양심에 가책되어 스스로 목 매달아 죽었다” 그는 그런 그의 행동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야말로 마귀에게 치명적으로 속아 넘어 간 것이다. 유다가 주님을 판 것에 대하여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은 정상적인 인간이 가지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다른 영감, 다른 생각이 들어왔다. 그 생각은 “양심에 찔리니 책임을 지고 자살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유다의 생각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 온 다른 생각이다. 교묘하게 유다의 생각으로 동일시하게 한 마귀가 넣어 준 생각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자살하는 것도 이와 같다. 힘들다, 어렵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에 마귀는 틈을 노리고 다른 영감을 준다. 다른 생각을 준다. 그것이 곧 유다를 침몰시킨 “자살”이란 생각이다. 우리의 마음은 영적인 전쟁터다. 그 마음에 침투하는 적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마귀는 우리의 의식을 마귀화 시키기 위하여 끓임없이 세상의 영으로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서 악한 적으로부터 생각을 지켜야 한다. 주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신다. 그래서 베드로를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주님의 그 말씀 후에 베드로는 주님을 위해 죽겠다고 호언한다. 그러나 주님은 “네가 오늘 닭 울기 전에 나를 세 번부인하리라” 말씀하신다. 주님은 베드로의 배신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그가 돌이킬 것도 아신다. 그래서 “네가 돌이킨 후에는 네 형제를 굳게 하라” 하시는 것이다. 예레미야 6:19절에 보면 “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법을 버렸음이니라”라는 말씀이 있다. 백성들의 재앙의 원인을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말한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영감을 저버렸다, 그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생각을 듣지 않았고 그 말씀을 버렸다. 그것이 그들의 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생각은 외부의 영계로부터 온다. 주님이 통치하는 영계에서 오는 주님의 영을 받을 때 사람은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다. 반대로 마귀의 영역인 지옥의 영계, 세상의 영을 받을 때 사람은 변질되고 육의 열매를 맺게 된다. 한 때 나는 영안이 열려서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귀신의 영들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간혹 그럴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들 속에 숨어있는 악한 영의 존재를 본다. 그래서 귀신을 축사하면 어떤 때는 귀신이 나가지를 않는다.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가라 해도 나가지 않는 다. 왜? 안나가느냐? 물으면 “나는 여기 있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귀신들린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귀신은 사람이 귀신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또는 귀신을 무서운 존재로 생각하여 과대평가할 때 그것이 귀신에게는 힘이 되고 집이 된다. 그럴 때 귀신들린 사람이 회개하고 그 생각을 바꾸면 귀신은 “내 집 무너졌네”하고 통곡하고는 떠난다. 귀신에게 너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고 물으면 귀신들은 “미워하는 생각, 음란한 생각, 죽이려는 생각..을 주었다고 말한다.” 귀신의 역사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들은 사람의 생각을 공격하고 변질시킨다.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고, 악하고 음란한 생각을 가지게 하고 어두운 생각을 집어넣어서 받아들이게 하여 그 사람을 점점 점령해서 죽이는 것이다. 귀신이 사람의 몸에 질병을 주는 것도 먼저 사람의 생각을 공격하여 그 마음에 두려움을 심고 그 결과 질병이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다. 몸은 땅을 딛고 살기에 끓임 없이 땅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영은 하늘에 속해 있기에 끓임 없이 하늘의 영향을 받으며 산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인간을 지탱하는 것은 영계의 영향이다. 어떤 영계로부터 공급받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두 영적 세계에서 끓임 없이 영향을 받으며 산다. 그러므로 소속을 분명히 하여 받아들여야 하는 생각과 대적해야 하는 생각을 분별하라. 마귀가 주는 생각과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구별하라. 당신의 생각이 주님이 주시는 영으로 생각하고,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살아가도록 주님을 사모하고 범사에 주님을 의식하라. 당신이 어느 순간, 당신의 의식으로부터 주님을 놓치는 순간, 바로 그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임을 잊지 말라.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지성소가 되게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