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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성이야기

제목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변하는 것이다.2025-03-06 22:42
작성자 Level 10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심은, 상황이 달라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내가 변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가 산이 되기를 바라지만,
그래서 안달하고 궁리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 바다를 통해 내가 변하기를 원하고 계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들은 나를 변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변화되는 일에 별로 애닲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변화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응답이나 해결에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집중하는 것은 '우리가 언제쯤 변화되는가'하는데 있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변화되지도.. 달라지지도 않을, 상황과 조건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며, 출혈을 쏟아내고 있는가?
나는, 그대로 놔둔채로 말이다.

우리가 열심히 믿으면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하면 응답이 오고 기적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이 성경의 양면성이며, 복음의 광대함이다.


우리는 해결을 원하고, 하나님은 해석을 원하신다.

초대교회에는, 불같은 시련이 불어 닥쳤다.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고, 참수되고 돌에 맞아 처참하게 죽었다.
그런 상황들은 변하지 않았고, 좋아지지도 않았다.
교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사도들과 교회들을 보호하실 것으로 믿었었다.
그러나 교회와 사도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혼란스러웠고 갈등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하나님은 그때의 어려웠던 상황들에 대하여 해석해 주셨다.
그때의 그런 상황들이 오히려 '예루살렘에 뭉쳐있던 초대교회 교인들을 흩어 디아스포라 되게 하셨고,
교회를 거룩하고 순결하게 만드셨다'고 말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최악에서 최선을 이끌어 내시는 분이시다.
없었으면 했던 일들이 오히려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 되었는가?
하나님의 섭리와 하시는 일은,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이 정상이다.
하나님의 뜻이나 경륜을 다 알면, 그 사람은 이단일 것이다.

 

깊은 바다를 사람들은 두려워 한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깊은 바다일수록 더 좋아한다.
왜냐하면 깊은 곳에는, 플랑크톤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은 깊은 시련이나 연단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성숙이 있고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혹독한 고난이나 시련이 자랑도 아니며,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시련과 훈련을 통하여 우리들을 변화시키시고 성숙시켜 가신다. 다시 말하면 고난이 목적이 아니라, 성숙과 변화가 목적이라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두려워 아니 하듯이 믿음의 사람이라면 최악의 상황들까지도 두려워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시간들을 통하여, 성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씩 변화되기 때문에 그렇다.

기도할수록 상황은, 더 어려워질 수도 있고 형통할 수도 있다.
열심히 믿을수록, 상황은 순탄할 수도 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갈 수도 있다.
그러나, 순탄함이나 어려운 상황들이 믿음의 척도가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도 무관하다는 사실 앞에 속거나 흔들리면 안된다. 상황들은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내게 좋으냐'로 판단하지 말고 '무엇이 하나님 앞에 옳으냐'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하나님의 만지심으로 병 고침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을, 바울처럼 질병을 끼고 살 수도 있다.
우리는,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을, 단칸 방에서 살 수도 있다.
하나님은 낮도 만드셨지만, 밤도 만드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좋게도 하실 수 있지만 더 나쁘게 하실 수도 있으시다.
다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가 변하기를 원하실 뿐이다.

우리가 변하면 바다나 산이나 상관없이 감당하고 헤쳐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변했을 때, 바다가 변했다.
베드로가 은혜 받으니, 안 잡히던 고기도 잡혔다.
베드로의 빈 배에 주님을 모시고 말씀을 채우니 베드로의 빈 배가 물고기로 가득 찼다.

문제는 나다. 상황이 아니다.
어떤 상황, 어떤 형벌 같은 최악의 고난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론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그리고 그 해석 앞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겸손이 주님이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려 주시고 참아 주시는 이유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해결의 능력 보다, 해석의 은혜가 더 값진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사람은 고난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의미를 모름으로 인하여, 더 절망하기 때문이다.

주여! 나 좀 변화 시켜 주시고,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여 주십시요.
해석의 은혜로 충만하게 하소서. 나는 그대로 놔둔 채로 상황이 달라지기만을 힘써왔던 세월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우리는 우리 눈에 좋은 것을 옳은 것이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옳은 것을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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