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관계를 통한 영들의 전이.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끼리끼리 논다는 뜻입니다. 자연계에 무리의 법칙이 있듯이 인간사회에도 무리의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은 같이 어울리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마귀의 영향력 아래 삽니다. 그런 사람들과 사귀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안에 걸어 둔 옷이 담배 냄새를 흡수하듯이 그들의 영이 전이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장성한 사람이라면 몰라도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기 보다 그들로부터 좋지 않은 영향을 받기가 더 쉽습니다. 인간의 영은 스펀지처럼 어느 것이든 자기가 접촉하고 사귀는 영을 흡수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상 사람들과 깊이 교제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경고한 것입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후 6:14-18)
모든 어머니들은 이와 같은 영들의 전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또래와의 사귐을 통해 서로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되고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옆집의 반항적이고 말 안 듣는 아이와 놀면 반항적이며 말 안 듣는 아이가 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에게서 그런 태도나 영을 몰아내기 위해 얼마나 땀을 흘려야 하는지 모릅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이 못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이지 않아 말렸습니다. 아들은 자기가 친구들을 변화시킬 테니 두고 보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못된 친구들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점점 나쁘게 변해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사과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성한 사과 일곱 개와 썩은 사과 한 개를 한 접시에 담고 아들에게 방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이렇게 같이 두면 다른 사과도 금방 썩어 버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아, 아니란다. 이 성한 사과가 썩은 사과를 성하게 만들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렇단다. 아들아, 썩은 사람과 사귀면 성한 사람도 썩게 된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못된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은 그 말에 수긍을 하고 못된 친구들을 끊어버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앵무새를 각각 다른 새장에 길렀습니다. 한 마리에게는 노래를 가르치고 한 마리에게는 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 후에 주인은 욕하는 앵무새에게 노래를 배우라고 같은 새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결국에는 두 마리 다 욕쟁이 앵무새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십대 시절 그 아이는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 전심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교회에 착실히 다니고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의 세상 친구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 친구들을 예수께로 돌이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의 동기는 선하고 순수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을 통해 활동하는 세상 영의 끈질긴 유혹을 견딜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믿음이 견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아이는 곧 술을 마시고 난잡한 파티를 즐기는 생활로 되돌아갔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자신에 대한 감정은 매우 진실해 보였지만 예수님에게는 무관심한 한 청년과 사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그녀는 그 청년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청년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대신 그 청년이 그녀에게 세속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고 숨기고 있었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청년은 그녀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마침내 그녀의 삶이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자주 고장이 나고 교통사고를 여러 번 당했으며 자주 병이 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집에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고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건강이 나빠져 큰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큰 사고를 내고 음주운전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쓴 경험을 통해 마침내 그녀는 "세상의 것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거룩한 삶을 함께 섞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고전 15:33)라고 경고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 따라 강남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친구 따라 주일날 놀러 갑니다. 친구 따라 노래방에 갑니다. 친구 따라 술집에 갑니다. 친구 따라 나이트 클럽에 갑니다. 친구 따라 놀음하는 곳에 갑니다. 그리고 친구 따라 창녀촌에도 갑니다. 마지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 따라 지옥으로 갑니다. 사람은 어쨌든 친구를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친구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한편,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 13:20)라는 말씀이 있듯이 좋은 친구를 사귀면 바람직한 영적 전이가 이루어집니다. 저의 경우 어떤 목사님은 만나서 함께 교제를 나누자고 전화를 해도 제가 만나지 않는 목사님이 있고, 가급적 안 만나기로 결심한 목사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특별히 만나고 싶은 목사님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펜사콜라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 갔다가 신학교 동기 목사님들을 몇 분 만났는데, 그 중에 고화석 목사님이 있습니다. 저는 그분의 겸손한 태도와 기도 생활, 그리고 성공적인 목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감명을 받고 강한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분과 이야기를 끝내고 오산리 기도원 정문 쪽으로 걸어갈 때 저에게 이런 성구가 떠올랐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 27:17) 실제로 저는 그 친구와 이야기하는 가운데 제 자신이 날카로워지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그 친구처럼 집에서 잠을 자지 않고 강대상에서 잠을 자면서 조금이라도 더 기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친구를 사귈 때 세상 사람들처럼 잘 노는 친구, 재미있는 친구, 돈이 많은 친구를 선호하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친구, 전도하는 친구, 사랑 충만하고 겸손한 친구, 성령 충만하고 신앙생활에 열심 있는 친구들을 사귀도록 하십시오.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십시오. 그러면 머잖아 여러분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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