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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성이야기

제목성령(Holy Spirit)2024-07-20 23:38
작성자 Level 10

성령(Holy Spirit)

성령은 헬라어로 ‘프뉴마’(pneuma)이다. ‘프뉴마’는 신약성경에서 성령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서 구약성경의 ‘루아흐’(ruach)와 대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루아흐’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뜻으로 자주 사용되는 것처럼 신약에서도 중성명사 ‘프뉴마’는 성령을 의미하는 데 많이 쓰였다(총 275회). ‘거룩한 영’(ruach qadosh) 즉 ‘성령’이란 낱말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포로기 이후 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루아흐’는 149회나 다른 단어와 연결 없이 독립적으로 영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에는 ‘프뉴마’란 낱말이 총 379회 등장하는데 275회는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 중 149회는 다른 단어와의 연결 없이 독립적으로 ‘프뉴마’만 사용되고 있고, ‘거룩한 영’이란 표현은 92회,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18회이다. 이외에도 ‘성결의 영’, ‘아버지의 영’, ‘그의 아들의 영’, ‘예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 신약성경은 ‘프뉴마’라는 중성 명사를 가지고 성령이 아닌 다른 것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47회는 인간의 영을, 38회는 악한 영을, 9회는 죽은 자의 영이나 천사를, 그리고 3회는 바람 혹은 숨결을 의미하고 있다.


구약에 나타난 성령

구약성경에 ‘성령’(성신: Holy Spirit)이란 단어가 구체적으로 표현된 곳은 시편 51:11과 이사야 63:10-11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란 표현은 아주 많이 등장하는데 주로 나타나는 모양은 ‘강한 바람’의 형태로 나타난다. 히브리어로 ‘영’은 ‘루아흐’(ruach)로 ‘바람’, ‘숨’을 뜻한다. 하나님은 바람을 사용하셔서 자신의 속성과 능력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드러내셨고(출 14:21; 호 13:15; 왕상 18:45), 창조 때에 혼돈된 물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시기도 했다(창 1:2; 8:1; 비교, 시 33:6; 욥 26:13). 구약성경에서 ‘영’은 87회나 바람으로 표현되었는데 그 중 37회는 강렬한 바람으로 표현되었다. 또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은 ‘바람 날개로 다니신다’(시 104:3)고 표현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은 타의적인(비인격적인) 힘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간접적으로 성령의 영감을 불어넣은 예들이 많이 있다. 구약에서 성령이 가장 뚜렷하게 계시된 것은 예언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였는데, 요셉의 꿈은 성령으로 영감된 것이었고(창 41:38) 하나님의 대변자인 다윗은 “주의 영이 말씀하신다”(삼하 23:2)라고 외쳤다. 스가랴도 스룹바벨에게 성전 재건의 역사는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슥 4:6) 된다고 외쳤다. 바람의 힘처럼 성령은 이스라엘의 영웅들에게 특별한 힘을 주었다(삿 14:6). 사사들은 옷니엘처럼(삿 3:10) 성령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묘사되었고 때때로 성령은 개인에게 강력히 임해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기도 했다(삼상 10:16; 19:23-24). 성령은 또한 인간의 지혜에 영감을 불어넣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모든 은사의 출처가 된다(출 31:1-6; 사 11:2; 욥 4:15; 32:8). 선지자들만 성령의 도움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사 44:3)과 모든 사람에게도 성령은 부어질 것이 예언되었다(욜 2:28). 구약에서 성령을 가장 잘 표현한 사람은 에스겔과 이사야였다. 에스겔이 암시한 성령은 미래에 있을 이스라엘의 회복과 관계되어 있다. 에스겔서와 예레미야서에서 새 영을 받아들인다는 예언의 내용은 회개(겔 18:31)와 새 마음의 창조와 관계되어 있다(렘 31:31-34). 구약에서 이따금 순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예언적 암시는 하나님의 영이 그가 선택한 백성들에게 활력을 주며, 메시아에게는 능력을 주고, 모든 인류에게 넘치도록 부어질 그 때를 예시한 것들이다.


초대교회와 성령 사역

예수님의 공생애가 성령충만으로 시작하여 성령과 권능과 능력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처럼 초대교회의 역사도 성령 충만으로 시작하여(행 2:4; 4:31) 성령의 강한 능력과 권능 아래 전개되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된 역사이다(행 1:8). 성경의 저자, 성령: 성령은 성경의 저자이다. 성령은 택하신 자들을 감동, 감화시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다(엡 6:17; 딤후 3:16; 벧후 1:20- 21). 특별히 신약성경은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탄생되어 성령의 강한 임재와 역사를 통해서 예배하고, 가르치고, 선교하던 AD 1세기의 초대교회에서 형성되었다. 영원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에 사로잡힌 예수의 무리들에 의해 전파되었고 기록되었다.


성령의 은사

신약성경에서는 성령의 은사를 주로 ‘카리스마’( karisma, 단수 중성 명사),‘카리스마타’(karismata, 복수)로 표현하고 있는데 본래의 의미는 ‘선물’, ‘은혜의 선물’, ‘성령의 선물’ 등이다. 신약성경에 총 17회 등장하는 이 용어는 복음서나 사도행전에는 나타나지 않고 바울서신(롬 6회, 고전 7회, 고후 1회 등 총 14회)과 목회서신(딤전 1회, 딤후 1회) 그리고 베드로전서(1회)에만 나타난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카리스마’, ’카리스마타’의 낱말만 가지고 성령의 은사를 다 표현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프뉴마티카’(pneumatika; 성령의 선물, 성령의 은사- 고전 12:1, 14:1)란 중성 복수 명사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고, 여성 명사 ‘카리스’(은혜, 은사- 롬 12:6; 고전 1:4; 엡 4:7; 벧전 4:10)나 중성명사 ‘프뉴마’(영, 성령- 롬 8:23; 고후 1:22; 5:5)도 간혹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 은사의 의미로 나타난다. 신약성경이 말하는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과 그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구체적 계시요, 그 나타나심이다(고전 12:7). 은사는 선물이요(고전 12:11), 그 선물 주심의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벧전 4:11).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카리스마)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각양 은혜(카리스)를 맡은 청지기 됨을 의미한다(벧전 4:10). 따라서 은사 받은 자의 사명은 봉사하는 것이고(벧전 4:10),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다(고전 14:12). 이것은 모든 은사를 하나님의 부르심, 즉 소명과 직결시키고 있는 본문들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롬 11:29; 고전 7:17). 은사를 주시는 분은 성령이시지만 여기에서도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과의 의지의 일치 속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서는 은사의 공급자가 하나님(롬 6:23; 11:29; 고전 7:7; 딤후 1:6)과 예수 그리스도로도 나타난다(고전 7:17). 성령의 은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되는데, 첫째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받은 성도에게 주어진 보편적인 은사요, 둘째는 개개 성도들에게 성령이 그 뜻대로 나눠주시는 개별적인 은사이다. 세례와 말씀선포를 통해서 모든 성도에게 주어지는 일반적인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요, 칭의요, 영생이다(롬 6:23;15:27; 고전 1:4). 신약성경에서는 또한 예수님을 주(主)로 고백하고 믿는 성도들에게 세례를 통해서 주어지는 성령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보고 있다. 이 선물은 은혜 입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처음 익은 열매요(롬 8:23), 부활과 영생의 보증으로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주신 것이다(고후 1:22, 5:5). 이때 은사는 현재 눈에 띄게 역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성도들의 몸 안에서 부활과 생명의 원동력으로 역사하게 된다.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타난 은사의 대부분은 성령이 믿는 성도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주시는 은혜의 선물로서의 은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은사와 은사 사이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신약성경에는 대체로 다음 27가지의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다. (1) 예언의 은사 (2) 가르치는 은사 (3) 지혜의 은사 (4) 지식의 은사 (5) 믿음의 은사 (6) 사랑의 은사 (7) 찬양의 은사 (8) 방언찬양의 은사 (9) 영분별의 은사 (10) 구제(나눔)의 은사 (11) 능력 행함의 은사 (12) 신유의 은사 (13) 방언의 은사 (14) 방언 통역의 은사 (15) 계시의 은사 (16) 귀신 추방(축귀)의 은사 (17) 환상을 보는 은사 (18) 꿈·꿈 해석의 은사 (19) 섬김의 은사 (20) 목자직의 은사 (21) 권면의 은사 (22) 긍휼의 은사 (23) 돕는 은사 (24) 전도의 은사 (25) 지도력의 은사 (26) 사도직의 은사 (27) 독신생활의 은사.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선교의 은사, 손님 대접하는 은사, 행정력의 은사, 중보기도의 은사, 순교의 은사, 자원하여 궁핍하게 사는 은사 등을 추가시키기도 하고 또 혹자는 여기에서 언급된 은사들 중 사랑의 은사, 찬양의 은사, 방언찬양의 은사, 환상을 보는 은사, 꿈 해석의 은사, 귀신 추방의 은사, 계시의 은사 등을 은사 속에 포함시키지 않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가급적 성경 본문에 충실하게 종합적인 고찰을 해보고자 시도했다. 사랑의 은사, 찬양의 은사, 방언찬양(영으로 하는 찬양)의 은사, 계시의 은사 등은 본문들을 통해서 충분히 뒷받침되는 성령의 은사들이고 환상을 보는 은사, 꿈 해석의 은사, 귀신추방의 은사는 내용적으로는 은사에 속하나 본문의 뒷받침이 불충분하거나 덜 명료하기 때문에 논란이 될 수 있는 은사들이다. 성령은 자유의 영이시다. 따라서 성령의 사역은 과거나 지금이나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신약성경이 성령의 은사에 대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어떤 확정된 틀을 제시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신약성경은 어디에서도 완벽한 성령의 은사 목록을 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표적인 은사의 장인 로마서 12장은 예언, 섬김, 가르침, 권면, 구제, 다스림, 긍휼 베풂 등 7가지 은사를 언급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2장은 지혜, 지식, 믿음,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통역, 사도, 교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등 13가지를, 그리고 에베소서 4장은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 등 5가지 은사를 언급하고 있다. 모든 은사는 한 성령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벧전 4:11), 그리고 교회의 덕과 개인의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고전 14:1-4) 주어진 것이다. 모든 은사자들은 받은 은사를 선한 청지기의 자세로 관리하여 사용하여야 한다(벧전 4:10). 성령은 자신의 뜻에 따라 언제, 어디서든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은사를 주시지만 대체로 (1)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2) 말씀(복음)을 들을 때 (3) 은사를 사모하며 간구(기도)할 때 (4)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5) 하나님께서 교회의 부흥과 개인의 신앙 성장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에 각자에게 가장 적절하고 요긴한 은사를 주신다. 성령이 주시는 은사와 인간의 일반적인 재능은 구분된다. 은사를 주신 성령께서는 그 은사를 다시 거두어 가실 수도 있고, 또 성령의 활동은 제도화된 집단이나 조직으로부터 억눌림을 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치 말며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권면한다(살전 5:19-21). 요한일서 기자는 모든 영들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고 분별할 것을 경고한다(요일 4:1).


성령의 열매(Fruit of the Spirit)

성령의 열매는 성령이 성도 안에 내재하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성령 충만한 삶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갈 5:22-23).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9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이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로 제시된 속성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모두가 성령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성도에게서 발견되어야 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열매란 그리스도인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삶을 말하며 신자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기 형상을 이루시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이다(고후 3:18; 빌 1:21). 다시 말하면 열매란 성도 자신의 소산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이다(요 15:1-8). 그런데 성령의 열매는 은사처럼 하나님이 자신의 뜻대로 나누어주시는 불가피한 은총이기보다는 성도 개개인이 그리스도와 생명의 연합 관계 가운데 성령을 따라 자신의 육체적인 정욕과 싸워 이기는 전투적이고 순종적인 삶을 통해 맺는 것이다. 열매로 사용된 헬라어 ‘카르포스’(karpos)는 어떤 행동의 결과나 산물로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좋은 열매가 좋은 나무를 말해주고 나쁜 열매가 나쁜 나무를 말해주는 것처럼 어떤 사람이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느냐 육체의 열매(갈 5:19-21)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그리고 성도 개개인에게서 보여지는 성령의 열매의 풍성함의 정도에 따라 그가 어느 정도까지 성령의 다스림을 받으며 성령 충만한 가운데 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영성의 표지는 그가 성령의 열매를 맺음으로써 나타나는 예수 닮음에 있는 것이다.


성령 세례와 성령의 내주


신약성경에는 (1) 세례 요한의 세례(물 세례) (2) 예수 제자들의 세례(요 4:1-2) (3) 불 세례(마 3:11; 눅 3:16) 그리고 (4) 성령의 세례(막 1:8; 행 1:5)가 언급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물 세례는 회개와 정결, 불 세례는 심판과 능력, 그리고 성령 세례는 메시아의 구원과 영적 무장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물 세례)와 성령 세례(막 1:9-11)를 받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례 요한의 세례(물 세례)와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았다(행 2:1-4). 예루살렘 교회가 탄생되고 십자가의 복음이 전파된 이후부터 모든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행 2:38) 혹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마 28:19)으로 (물)세례를 받는다. 그런데 여기에서 신학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은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성도에게 주는 (물)세례와 성령 세례의 관계성 문제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물 세례)를 받는 성도는 그와 동시에 성령 세례도 함께 받는가, 즉 (물)세례와 성령의 오심이 불가분의 관계인가 아니면 별개의 분리적 관계인가 하는 점이다. 신약성경은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죄용서를 얻고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선포하였다(행 2:38). 여기에서는 (물)세례와 성령받음이 불가분의 결합적 관계로 나타난다. 그러나 사도행전 8장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고도 성령을 받지 못한 사마리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안수를 받음으로써 비로소 성령을 받게 되었다(행 8:14-17). 여기에서 (물)세례와 성령받음(성령 세례)은 별개의 분리적 관계로 나타난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세례를 받기도 전에 성령 세례를 먼저 받은 이방인 고넬료 집안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나오는데 이것은 성령이 (물)세례를 받기 이전에도 임할 수 있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 주고 있다(행 10:44-48). 이러한 본문들은 우리의 물음에 대한 양자택일식의 답 찾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듯하다. 그러나 바울서신에서는 이러한 갈등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크게 사도행전 2:38에서 선포되고 있는 베드로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바울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는 자는 예수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자라고 말하고(롬 6:3), 그의 모든 과거의 죄를 용서받아 이제 은혜 아래 있는 자요(롬 6:14), 하나님의 양자의 영을 받은 자라고 선언하였다(롬 8:15).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롬 8:9). 고린도전서 3:16과 6:19에서 바울은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은 성도들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전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입장은 신약성경의 전체적인 흐름을 대변해 주고 있다. 따라서 신약성경의 주된 입장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그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는 성령이 임하셔서 그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이다. 이 성령의 내주는 반드시 성령 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령의 내주 현상은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성령 충만의 현상은 성령이 임하시는 성령 세례 시에 혹은 성령이 내주하신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성령 충만의 현상은 여러 성령의 은사를 수반해서 나타나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이다(그 밖에도 행 4:23-27; 10:34-48 참고). 성령 충만(Full of the Holy Spirit): 성령 세례는 성도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 받는 것으로 단회적인 것이라면(고전 12:13) 성령의 충만은 성도가 계속해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다. 충만이란 표현은 ‘무엇이 마음을 사로잡을 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이란 성령으로 완전히 다스림 받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그 사람의 생각과 느낌과 말과 행동을 완전히 지배하는 것, 즉 성령의 감화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령 충만한 삶이 성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아지경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인격체이신 분으로 성도 안에 인격적으로 내주하신다. 그러므로 성령은 성도가 인격적으로 순종하고 따를 때만이 역사하시는 분이신 것이다. 그래서 성령 충만은 스데반이나 바나바 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성품을 묘사할 때도 쓰였다(행 6:10; 7:55; 11:24). 오히려 성령 충만하면 자신을 바로 알고 성령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사물에 대한 바른 이해와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말하였다(엡 5:18).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성도가 순종해야 할 명령인 것이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죄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골 3:5). 성령 충만을 받으라(be filled by Spirit-NIV)고 표현된 헬라어(플레루스테- plerouste)는 현재 수동 명령형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계속적인 지배와 인도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령 충만을 받으라는 명령형은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할 것이 아니라 성도의 능동적인 책임이 있음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현재형으로 계속되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이 단어는 복수형으로 일부 소수 정예 성도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향해 말하고 있다. 수동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은 ‘성령이 성도를 충만케 하는 것’(NEB)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에게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어느 것도 성령이 충만하게 하시는 것을 방해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성령 충만한 삶이란 감정적인 황홀경을 말하기보다는 성령을 좇아 거룩하게 사는 것을 말한다(갈 5:16, 25).

다시 말해 성령 충만하면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말하고 찬양하게 된다(엡 5:19). 이것을 바울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라고 표현하였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교제 관계를 이루게 되며 주님을 진심으로 찬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된다(엡 5:20).

셋째는 믿는 자간에 서로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된다(엡 5:21). 성령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께 복종할 뿐 아니라 성도들 간에도 서로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넷째, 성령 충만하면 담대함이 생기고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게 된다(행 4:31). 마지막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갈 5:22-23).



성령 안에서 사는 비결

1.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성결해야 한다(살전 4:3). 성결이란 단순히 행위의 죄 없음이 아니라 마음속의 분노, 시기, 질투, 혈기까지도 내버리는 것을 말한다.
2.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갈 5:16). 순종하지 못하면 성령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깨진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는 믿음 안에 거해야 한다(골 3:16).
4. 계속적인 기도 생활이 있어야 한다(골 4:2).
5.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살전 5:19). 성령을 소멸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의지와 판단으로 무시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6. 하나님의 사랑을 품어야 한다(요일 4:11-12). 

 
신약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명칭과 상징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성령의 명칭들은 하나님의 성령(마 3:16, 12:28; 고전 3:16; 6:11; 고후 3:3; 빌 3:3), 주의 성령(눅 4:18), 너희 아버지의 성령(마 10:20),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고후 3:3), 그리스도의 영(롬 8:9), 예수의 영(행 16:7),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 1:19), 주의 영(행 5:9; 8:39), 그 아들의 영(갈 4:6), 진리의 성령(요 15:26; 16:13), 보혜사(요 14:16), 같은 믿음의 마음(고후 4:13), 은혜의 성령(히 10:29), 성결의 영(롬 1:4), 생명의 성령(롬 8:2), 영광의 영(벧전 4:14) 등이다. 신약성경에서는 성령과 그의 임재하심이 여러 상징적인 표현이나 은유를 통해서 묘사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상징들은 불(행 2:3), 비둘기(마 3:16), 바람(요 3:8; 행 2:2), 생수(요 7:38), 기름(눅 4:18; 행 4:27; 고후 1:21; 요일 2:20, 27), 인(印 - 엡 1:31; 고후 1:2). 비(호 6:3; 10:12; 욜 2:23-32, 슥 10:1; 약 5:7), 땅을 적시는 소낙비(시 72:6)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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