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색깔을 찾으십시오
이 무렵이면 수많은 예비 사역자들이 학교를 나와 사역의 터전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대부분은 교회의 전임 전도사로 일을 시작하지만 더러는 개척을 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서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은 부득불 개척하게 됩니다. 이 분들은 학교 교육을 마쳤으므로 사역할 수 있는 자격을 공식적으로 인정 받게 된 것이지요.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젊은 전도사는 아직 세상에 대해서 경험이 부족하고, 영적인 것에 대해서도 경험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배운 학문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역이 세월이 흘러 가면서 그 제도와 틀 속에서 생존하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선배 사역자들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 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사역에 들어선 분들 가운데 성공적으로 목회를 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겠지만 제게 상담을 해온 분들을 보면 대부분이 자신의 목회에 대한 분명한 색깔을 찾지 못하고 성공한 목회자들의 뒤를 따라 별다른 의식 없이 목회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존 윔버가 예비 사역자의 시절에 교회 성장 세미나에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그 세미나를 인도하는 강사들이 정말로 자신들의 교회가 성장했는지를 살펴보았는데 대부분은 전혀 성장하지 못한 무능한 사역자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실망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부흥회를 인도하는 부흥사들이 전부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는데 부흥사로 다닙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 사례비를 받아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모순이 아닙니까? 그 과정을 통해서 훈련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위로를 삼지만 한 편으로는 안타깝습니다. 사실 자신의 교회부터 부흥시키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부흥에 대해서 말씀을 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경험이 없이 오직 지식만으로 그 경험을 대신하려고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경험한다는 것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며, 고통도 따르기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지요. 경험 없는 지식은 실험실 없는 과학과 같지요. 이론적으로는 모르는 것이 없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을 이용하는 데는 실전적인 훈련이 가장 중요하지요. 우리의 삶은 영적 전쟁을 치르는 것이니까,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은 실전 경험을 많이 한 장군입니다.
사역자가 자신의 색깔을 찾는다는 일이 그리 단순하거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 일에 헌신하는 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이럴 것이다라는 막연한 가정(assumption)을 가지고 사역합니다. 이 점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역자들이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서 행동한 것을 많이 봅니다. 성령이 일일이 지시하시는데 그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지시하셨습니다.
저에게 상담을 의뢰하는 분들에게 성령님은 분명하게 가르쳐주시고 저는 그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해 드립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내용을 수용하지 못하는 분에게는 두 가지 증거를 드리기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촉구합니다.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내용인 분들도 있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확신하지 못해서 주저하고 있었던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과감하게 행동에 옮길 것을 촉구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를 들면서 적당히 타협하거나 거부하기도 합니다.
특히 죄와 연관된 부분에 대해서는 변명하면서 완곡하게 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그 죄를 인정하면서도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성향을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지요. 하나님이 사울을 책망할 때 그는 그 죄를 인정했지만 그러나 부분적으로 죄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돌렸습니다. 이런 태도는 지도자로서는 합당하지 못한 행동이지요. 지도자는 자신이 결백하다 할지라도 자신의 지도 아래 있는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지요. 모세는 이런 부분에서 탁월한 사람이지요. 아브라함 역시 그렇구요.
자신의 죄를 주님으로부터 사람의 입을 통해서 지적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역자의 자격과 연관된 시험입니다. 사울이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죄에 대해 책망을 받을 때 그가 이 질문이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시는 것이라는 의식이 있었더라면 그런 변명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땅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왕이지만 그 권력보다 더 큰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지요.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우리는 가볍게 여기는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영적 증거를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는 결과는 심각합니다. 이런 실수를 하는 배경에는 영적 무지함이 있는 것입니다. 이 무지함을 주님은 은혜를 받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합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너희는 늘 듣지만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늘 하지만 알지 못한다(사 6:9)라고 말씀하십니다. 근본적으로 죄에 대해서 돌이킬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은혜가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인식한 사람이지만 그 일로 쓰임을 받게 되기까지 14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때가 이르러 성령님이 바나바를 이용하여 안디옥 교회로 인도하고 그 곳에서 다시 1년을 보낸 뒤에 사역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절차가 있습니다. 이런 절차들은 당사자에게 많은 인내를 요구하십니다.
저와 함께 사역하는 JK 동역자에게 2003년 1월에 말씀이 임하여 그 동안 해오던 모든 일을 정리하고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면서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저는 이미 3년전부터 주의 명령에 대기상태였었지요.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는 동안 주님은 아주 서서히 전혀 급하지 않게 일을 추진시키고 계십니다. 급한 것은 언제나 우리들이고 주님은 하루가 천년 같지요. 바쁠 것이 없습니다. 사역자는 주의 일을 하는 것이지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을 잘 알면서 여전히 자신이 일을 하려고 서두르기만 합니다.
자신의 일을 곧 주님의 일로 여기고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일이 정말로 주님의 일인지 확증을 얻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주님이 인정하는 일인지를 정말로 확증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하나님은 인정하였습니다. 말하는 데로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라면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에 하나님은 책임을 지시고 그대로 행하시는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주님의 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증거 없는 막연한 기대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님이 모든 일에서 함께 하신다는 확증이 없다면 그 사역은 자신의 일일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런 사역자는 심각하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영적 무지로 인해서 자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조급한 나머지 가정을 진실로 착각하고 행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에게 불신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그 친구는 전혀 예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이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예수를 믿게 되었는데 믿자마자 성령의 은사를 받아 성령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기도하기만 하면 주님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친구를 본 그 목회자는 갈등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목사인 자신은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데 믿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친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전하라고 말씀을 주신 것을 전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것을 겪으면서 이 목사는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와 가까이 하기 싫어졌고 고의로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까지 주님이 그 친구의 입을 통해서 지적하면서 자신을 책망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이 목사는 영적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는 자신이 듣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주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자신에게 향하신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 목사는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역의 길로 나서는 수많은 예비 사역자들은 자신의 생계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자신도 따라 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조급하게 사역에 나서는 것이라면 다시 돌이켜 주님에게 신중하게 여쭈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제대로 듣는 능력이 없다면 신실한 사람들의 경건한 조언에 귀를 귀우려 선한 판단을 해야 할 것입니다. 조금 늦더라도 자신에게 향하신 분명한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합니다. 긴 인생의 삶에서 1~2년은 아주 짧은 것입니다. 주님에게 간절히 그 해답을 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