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의 숙성기간
젓갈이나 된장이나 치즈와 같은 발효 식품은 적당한 숙성기간을 거쳐야만 맛이 나는 법입니다. 김치 역시 발효식품이지만 발효를 거치지 않고 바로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된 맛과 영양을 고려한다면 숙성할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는 영적인 일에도 적용되는 부분이 많은데, 묵상과 관상을 비롯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수단이나 능력을 사용하는 문제에 있어서 숙성기간이라고 할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흔히 은사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권능은 그것을 사모하고 바라볼 때 주어집니다. 물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해서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라고 보아야 할 정도로 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은사라는 관념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권능이라는 관점으로 보는 경우에 있어서 각각 미묘하지만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미 자세한 설명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피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소유하고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거의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이 숙성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 기간은 이미 주어져 있는 능력을 보다 더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기 위해서 세부적인 기능들을 익히는 기간을 포함해서 능력이 더욱 강화되게 하기 위해서 영적 준비를 갖추는 기간을 더하기 위함입니다. 이 기간을 광의로 해석하면 능력을 사모하고 바라보는 기간까지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시 107:9). 또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막 11:24). 이런 말씀에 의지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그것을 받은 줄로 믿고 기다리는 숙성기간을 지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능력을 주시면 그것이 내 안에서 내 것으로 자리를 잡을 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이 기간은 마치 여인이 아이를 임신해서 몸속에 열 달을 품어두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여러 가지 임신증상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직 태아가 너무도 작은 임신 초기에 주로 입덧을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조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기간에 자각 증상을 감기나 몸살로 오인해서 약물을 복용하거나 금기 식품을 먹음으로써 태아에게 불행한 영향을 주게 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임신하게 되면 나타나는 임신증상들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느끼지 못하는 둔한 사람도 있습니다. 심하게는 출산하는 날까지 자신이 임신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산모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출산 3일전에 배탈이 나서 병원에 갔다가 출산 직전임을 비로소 알았던 도무지 믿지 못할 기네스북에나 나올 세상에서 가장 둔한 산모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무지막지하게 둔한 산모도 있듯이 영적 증상에 관해서도 무지막지하게 둔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미 능력이 임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능력은 임신하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몸속에 품고 있으면 그에 따는 증상이 반드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예언의 능력이 임하면 타인에 대한 중보기도가 시작됩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기도보다도 타인을 위한 기도 시간이 더 많아지고, 타인을 위해서 기도할 때 더 집중이 잘 되고 깊은 기도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할 때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기도 내용이 입에서 술술 나오며, 때로는 배에 힘이 들어가면서 담대하게 선포하기도 합니다. 방언이 자주 바뀌고 방언으로 기도할 때 때로는 환상이 보이고 때로는 어떤 의미가 깨달아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간헐적으로 경험되기 때문에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못하는 실수에 빠지기 쉽습니다.
신유의 능력이 임하면 몸이 뜨거워지기도 하고 차가워지기도 하며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과 같은 전률감을 느낍니다. 여성들이 폐경기에 느끼는 것과 같은 열감을 느껴 한 겨울에도 몸이 후끈거립니다. 몸 안에서 힘이 밖으로 나가거나 들어오는 것과 같은 에너지의 흐름을 느낍니다. 환자에게 가까이 가면 통증이 심해지고 때로는 환자가 앓고 있는 환부가 눈에 스치듯이 보입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상대방의 몸에 있는 이상이 스치듯이 환상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넘기기가 일쑤입니다.
축사의 능력이 임하면 방언에 힘이 들어가고 거칠고 강력해집니다. 소름이 자주 끼치고 귀신들린 사람 곁에 가면 온몸에서 소름이 돋습니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벼운 현기증이 자주 일어나며, 눈에 순간적으로 스치듯이 검은 물체가 지나가는 것이 보입니다. 때로는 느낌으로 자기 뒤에 누군가 알 수 없는 존재가 서 있는 것 같고 인식하는 순간 소름이 끼쳐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이때 역시 이런 증상들이 자신의 몸이 약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고 맙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마주하면 고약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며, 가벼운 소름이 끼치기고 합니다. 상대방이 귀신들렸거나 귀신의 영향을 받는 정도에 따라서 그 현상의 강도가 차이가 나지만 초기에는 자신이 미약하기 때문에 가벼운 느낌을 스쳐지나가듯 합니다. 이런 증상들은 개인에 따라서 그리고 능력의 성향에 따라서 다양합니다. 이런 현상들을 통해서 자신에게 능력이 임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기 보다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기고 마음에 담지 않습니다.
이런 외적 증상들이 전혀 없는 시기에도 우리는 능력에 대해서 사모하여야 합니다. 이 기간도 숙성기간에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사모하고 열정적으로 구하는 기간이 필요한 까닭은 이론과 실제를 온전히 갖추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늘날까지 교회 지도자들의 무지로 인해서 능력에 관한 한 지식이 전무했고, 따라서 가르침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주먹구구식으로 자기가 알아서 해야만 했고, 그 비난을 고스란히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학문 없는 의사를 우리는 돌팔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교회는 깊은 반성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정기간의 숙성기간을 거치게 함은 그 능력에 따른 지식을 함께 얻게 하기 위함이며, 이 과정을 통해서 겸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지식이 없는 능력은 자칫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지도자를 통해서 배우지 않으면 자기 의가 나타나기 쉽습니다. 이런 부분은 고린도 교인들이 경험한 것인데, 혼자 능력을 받고 혼자 그것을 사용해야 하는 오늘날의 우리 교회의 현실에서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교만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영적 교만의 가장 두드러진 증상은 협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임한 능력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비슷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 합력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외톨이 사역은 목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독목회를 고집하는 현실에서 볼 때 영적 사역의 외톨이 현상은 교회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이 오늘날 사도와 선지자를 세우는 까닭은 이런 단독목회의 단점을 고치려는 뜻이 있습니다. 단독목회는 독단적인 가르침을 만들어내며, 조화와 균형을 심각하게 방해하기 때문이지요. 숙성기간은 이와 같은 독단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지도자를 만나야 하고 동역자를 구해야 합니다. 능력에 따른 외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사모하는 기간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역시 지도자를 구하고 동역자를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람직한 사역자 학교나 건전한 영성 훈련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단체에 등록해서 배울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지식은 능력을 실제로 받기 전에 갖추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능력이 임하게 되면 원하지 않지만 불행하게도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성령으로부터 배우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배우는 것과 영의 느낌을 따라 배우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느 한 쪽이라도 소홀히 하면 결코 건강한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동역자를 구하는 일을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반적인 성도들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은혜를 나누며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작은 공동체를 구성할 정도면 됩니다. 이렇게 구성한 공동체가 균형을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전문 사역자의 주기적인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조직을 갖춘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 오늘날 등장하는 사도와 선지자는 이런 공동체를 유기적으로 네트웍하는 일을 감당하는 기능을 부여받은 사람들입니다. 아직 사모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이미 능력을 받아 사역하는 선배들 아래로 들어가 가르침을 받아 성장해서 세포 분열을 하듯이 분열된 공동체의 리더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능력을 행하기 앞서서 반드시 거쳐야 할 숙성기간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속칭 ‘건달성도’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도가 영적 능력에 관해서는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고, 주변인이 되어서 방황하는 건달(浪人)이 되어버렸습니다. 건달이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그냥 폼만 잡으면서 건들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 교회가 바로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인정한다면 오늘부터 사모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이 마음을 품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마음을 품고 기다리면 주님이 능력을 채워주십니다. 여러분들은 그 증상만 정신 차려 챙기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