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에 대한 이해(3)
능력은 은사라고 생각하며 은사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어서 능력에 대해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은 한편, 실제로 얻고 싶어서 갖은 노력을 다해도 얻지 못해서 낙망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목회를 하는 사역자들은 능력을 받고자 때로는 40일의 극한적인 금식도 하고 많은 양의 기도도 하지만 쉽사리 능력이 임하지 않아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진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구하지도 않았는데 능력이 임하는 것을 볼 때 능력을 얻는 것은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을 굳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선 크게 두 가지 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은사로 주어지는 것과 권능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우리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무작정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구속의 문제만 보아도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지만 그 속에는 전도와 중보기도라는 사람의 노력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구속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이런 요소들이 덧붙여질 때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먼저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우리의 노력이 있어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방법으로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사용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와는 상관없이 항상 전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능력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사람에게 주어지지만 이를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입니다. 은사와 권세로서의 능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은사는 교회를 위해서 일정수의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령께서 받을 만한 사람에게 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권세로서 주어지는 능력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또는 제자가 되었을 때 그 신분에 맞는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먼저 은사로서의 능력에 대해서 살펴보면, 하나님은 단순히 일시적으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성도에게 나누어주시는 경우와 직임자(officer)로 세우기 위해서 주시는 경우가 보편적입니다. 전자의 경우 당사자의 믿음이나 영적 성숙과는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에 주로 거듭난 직후이거나 신앙의 열심을 내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 경우 한시적으로 능력이 임하지만 그 일을 잘 감당했을 때는 직임자로 세워지게 되지요. 이는 달란트 비유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사람에게 이제 본격적인 사역자로 세위기 위한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권세로서 주어지는 것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주시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당이 굿을 하는 곳에 가면 하던 굿을 그만두게 되는 것이 이런 권세 때문입니다. 이 권세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필요가 있을 때 역사하시는 것이므로 이 경우 우리는 그 모든 영광을 주님에게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그런 일을 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무엘을 보내어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할 자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사람을 취할 때 그 중심을 보고 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비결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 그 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며 두려움 없이 목동의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믿음은 이후에 골리앗과 싸울 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물맷돌 하나만 의지하고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의와 성결“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쓰임을 받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하나님이 쓰실 사람에게는 그런 삶의 태도를 갖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런 의식 없이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에 따라 의롭고 성결한 삶을 갈망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의와 성결”이란 말에서 “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며, “성결”이란 죄에서 떠난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힘쓰는 과정이 있어야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는 역사하심을 일으키는 것이지요. 말씀이 삶 속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야말로 정말로 능력인 것입니다. 선포한 말씀이 삶 속에서 들어나지 않는다면 그 말은 헛소리일 뿐이며, 아무런 효과도 없는 바람일 뿐이지요. 선포된 말씀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기 위해서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윗이 물맷돌을 가지고 나가면서 한 말은 “나는 만군의 여호와 이름으로 나간다”라는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의와 성결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스게와의 두 아들은 바울을 흉내 내려고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에게 나아갔지만 도리어 귀신에게 봉변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늘 마음속에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려는 갈망으로 가득한 것이 우선입니다. 이것이 의로운 삶을 위한 준비인데 이런 갈망을 통해서 그 갈망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런 갈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합당한 때에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꼭 능력을 받아야겠다고 자정하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그와 같은 의에 대한 목마름이 가득해지며, 늘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서 갈등하기도 합니다. 의에 목마른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말씀에 목말라하고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그런 갈망이 능력 있는 삶으로 자신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살다보면 어느날 서서히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타나기 시작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지요.
성결한 삶은 죄에서 떠난 삶을 의미합니다. 능력은 거룩한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성결해진 그리스도인은 죄에서 떠난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의무를 성실하게 지키려고 애쓰고 죄로 인해서 가슴 아파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죄를 이기지 못해서 항상 안타까워하고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 즉 상한 심령에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는 삶을 살아가며 늘 죄를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결한 삶이란 거룩을 향해서 나아가기를 힘쓰는 삶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손해라고 해도 말씀을 따르려는 노력이 있는 삶을 말합니다.
의와 성결한 삶이 없이 단순히 능력만 기대하고 구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은 폭넓고 다양해서 어느 한 가지로 한정할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신령한 능력만이 능력이 아니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영광을 드러내는 모든 것이 능력이며, 그런 능력들이 풍성하고 다양하게 자신에게서 나타나도록 우리는 애쓰고 힘써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 포괄적인 능력이 점점 구체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고 뚜렷한 특성을 보이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능력이 임하였음을 알게 되지요. 능력은 권위와 흡사해서 이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나아갈 때 사람들이 그 권능에 의해서 쓰러졌습니다. 모세는 권능에 의해서 얼굴빛이 해처럼 빛났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권능의 삶이 되기 위해서 의와 성결한 삶을 사는 것이 우선 조건입니다. 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갈급해 하는 목마름이 있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간절함이 끊이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언젠가는 능력을 받게 되고 그 능력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직장에서든지 사역지에서든지 하나님의 영광은 나타나야만 되고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권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하고 묻어두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점에 대해서 다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