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밀함이 능력을 좌우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에게 기본적인 능력을 주십니다. 이 능력은 성도들이 서로 섬기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아무런 능력도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주 소수의 성도들만 능력을 드러내기 때문에 교회는 이제까지 곱지 않은 눈으로 보아왔던 것도 사실이지요. 특히 우리나라 정서에는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내면에는 시기하는 정서가 깃들어 있어서 이런 부분도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물론 화려한 능력이 아닌 생활의 은사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든지 받을 당시에는 매우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을 키워내는 일은 고달프고 어려운 일입니다. 능력을 받으면 그날부터 사실 고달픈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의무와 책임도 따르게 됩니다. 이런 섬기는 일에 주어지는 능력을 잘 개발하여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활기 있게 사역을 감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점 줄어들어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위축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발전되지 않고 아주 소규모로 사역하는 사람도 있지요.
원칙적으로 우리는 능력을 받아야 하며, 받은 능력은 증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확대되는 사람과 위축되는 사람과의 차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섬세함의 차이입니다. 능력에 있어서 그 기능을 좌우하는 부분이 섬세함입니다. 하나님은 매우 섬세하고 자세한 분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고 사역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가진 사역자에게 주시는 정보는 섬세하고 자세합니다. 실제로 문제를 가진 사람은 자세한 정보를 얻기를 원합니다. 막연하고 객관적인 조언으로는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문제가 심각할수록 자세한 지침과 조언을 필요로 합니다.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은 막연하고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조언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확실한 지침을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정보를 얻을 때 자세하고 세밀한 것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깊이 있고 실질적인 정보를 얻어내는 능력은 사역자의 세밀함에 기인합니다. 평상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세밀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보를 주실 때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전해주시는 것입니다. 성격이 꼼꼼하고 치밀하지 못하거나 성숙하지 못하면 많은 정보들을 흘려보내게 됩니다. 면밀하지 못한 관찰과 대충 넘어가려는 생각은 하나님에게는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꼼꼼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는 버릇이 들어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개성이 달라서 어떤 사람은 꼼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라고 해서 하나님은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많은 시련을 통해서 꼼꼼함을 익혀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역자에게 면밀하게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구약에서 보듯이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으나 모세에게는 그들과 달리 대화하였습니다. 모세 한 사람에게만 예외적으로 그렇게 하셨지요. 지금도 역시 모든 사역자들에게 하나님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흘려보낼 수 밖에 없는 모호하고 세미한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정신을 바로 집중하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정보를 제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별도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에게는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 공개되어있고 개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기본적이고 원리적인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일반적이고 원칙적인 것에서 벗어나 특수한 상황에 이르는 것을 자신도 모르게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깊은 영성으로 이끌기 위해서 그 사역자에게 담력과 믿음을 요구하는 시험을 베푸십니다. 이 시험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시험을 만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시험을 당했을 때 그는 갈등하게 되었지만 그가 의지하는 하나님은 설령 자신이 잘못 알고 이삭을 제물로 드렸다 해도 다시 살리실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삭은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에 결코 죽이시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대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약속을 믿는 믿음에 기인하였습니다.
우리가 순수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헌신에 일말의 거짓도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상식적이지 못한 요구에 응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상식을 초월하였을 때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깊은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더욱 세밀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능력의 차이가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식적인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식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도록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이 도전에 직면하게 되고 이 시험이 곧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밀함을 얻기 위해서 우리에게 닥아오는 불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능력이 강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서는 평범함을 거부하고 두려움 없이 나아가야 합니다. 수많은 영적 현상들을 만나게 되며, 그럴 때마다 두려워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계산한다면 그는 절대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대충 대충 넘어가려는 그런 자세는 사역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됩니다. 대충 조언해주려고 하는 태도는 버리십시오. 막연하고 원리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식 도움을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문제를 만나게 하시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지요. 이것을 몰라 헤매는 사람에게 막연한 말로 위로하려고만 한다면 더 혼란스럽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