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이 없는 결혼식장 결혼을 해야 하는데 예를 들어 신부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정략결혼이거나 아니면 신부 측의 강압으로 결혼 날짜가 잡혀 결혼식이 거행됐을 때 이러한 마지못해 하는 결혼은 신랑이 도망가고 나타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신랑이 없는 신부만의 결혼식은 그 어느 축하객도 결혼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결혼식에 안 갔지만 신부와의 결혼을 마음으로 인정하겠다고 생각하는 신랑이나 가족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신부 혼자만으로 결혼식을 치렀다면 아무리 하객들이 축하하고 주례사의 말씀이 은혜스러웠다고 할지라도 모든 것은 무효가 됩니다. 우리의 예배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거룩한 주일날 신령과 진정으로 아무리 엄숙하게 예배를 드렸다고 할지라도 만약 그 예배에 신랑 되시는 주님이 오시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계속하여 주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우리만의 예배를 드린다고 가정을 한다면 우리가 평생을 이러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주님 앞에 인정되지 않으며 그 예배는 전부가 헛수고이며 물거품이 됩니다. 다시 말해 신랑이 없는 결혼식은 무효이듯이 주님이 함께하지 않는 예배는 전부 가짜이고 무효이며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주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흠향했을 것이라고 모두 생각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드려지는 어떤 예배도 모두 알고 계시지만 만약 예배 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빛과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어지지 않는다면 이것은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으며 함께 하시지 않았다는 우리만의 예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은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교회 지도자부터 중직자와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그들 속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일반적으로 아무리 부르짖고 기도해도 그 모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기름부음이 부어질 수가 없습니다. 즉 장작개비를 많이 쌓아놓았지만 불씨가 없다면 아무리 애를 써도 또 심지어 기름까지 붓는다 해도 그 쌓아놓은 장작더미에 불이 붙을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예배는 형식적이고 율법주의와 가식에 얽매여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던 바리새인들의 예배와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는 평생에 드렸던 그러한 예배는 전혀 인정되지 않으며 그에 따른 우리의 믿음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기뻐하시지도 좋아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있어서 사전에 이러한 분별을 잘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또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기에 믿는 자라면 누구든지 지금까지의 믿음생활을 돌이켜보고 우리가 그동안 정말 하나님이 함께하셨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배제된 채 우리만의 모임과 예배만을 드려왔는지를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기 전까지는 반드시 확인하고 다시금 믿음을 새롭게 하는 것만이 우리 영혼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봅니다. 모든 성도가 모여서 드리는 공중예배는 오직 예배 인도자의 자질에 따라 승패가 좌우됩니다. 설령 개인이 성령충만한 상태로 예배를 드렸다고 할지라도 인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없다면 그 예배는 무미건조하고 냉랭한 예배가 되며 마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지식만을 가르치는 학교수업과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배는 주님이 함께하시고 기쁘게 받으신다는 표식인 기름부음이나 임재는 필수이며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인도자 자신이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단순히 말씀을 준비하고 연구하여 지식만으로 전한다면 거기에는 말씀을 통하여 심령과 골수와 폐부를 찌르는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으며 성도들이 은혜를 받을 수도 없고 마음에 어떠한 변화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 때 목사님들은 말씀을 전하지만 다만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도구와 통로로 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마다 성령님이 주시는 레마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며 임재하시는 하나님은 너무나 안타까워하시지만 교회 스스로가 하나님의 임재를 차단하기 때문에 인격적이신 성령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곳으로 옮기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교회를 만난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크나큰 축복이며 은혜입니다. 현대교회에는 세상의 가치가 교회에 들어오고 물질 만능주의와 세상의 향락에 사로잡혀 세상의 축복이나 기준이 말씀에 희석되어 성도들의 마음과 눈을 흐림으로써 진정한 주님의 복음이 가려지고 적당 편의주의식의 타협된 말씀으로 복음이 변질하여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지체가 되어서 한 몸을 이루어 그 뜻을 따라서 맡은 바 책임에 순종함으로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주님을 배제한 채 우리들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교회라는 공동체를 이 땅에 세우고 오직 하나님보다는 공동체의 이름과 그 자체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더 급급해지게 됨으로써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은 가려지는 미혹과 혼돈의 시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영광이 하나님을 앞질러 가게 됨으로써 교회가 대내외적으로 수많은 부조리와 맘몬주의와 음란과 우상이 판을 치면서 세상의 지탄과 멸시를 받고 수모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지금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고 우리의 생각과 지식과 세상 지혜만으로 그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부분의 교회가 하나님의 뜻은 묻지 않고 인간이 중심이 되어 인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예배부터 각종 모임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종교적인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주님보다는 사람이 중심이 되어 오직 사람의 생각으로 교회를 이끌어간다면 거기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나 그 안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살아 있으나 주님이 보실 때는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주님이 머리가 되어 우리가 그 뜻에 순종하며 따라가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의 의를 드러내고 자아 성취와 교회라는 건물과 거대 조직을 세상에 알리고 높이는 것이 하나님보다 더 우선순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정말 인본주의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순수하고 진실하게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교회는 이 시대에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주님을 위해서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매일 걸어가는 그런 삶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몸소 실천할 때 한국교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교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과 길은 인위적으로 사람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며 성도들 각자가 영으로 하나님과 깊이 만나는 것에 마음을 두고 매일같이 악한 세상과 싸워 이기며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한 교회는 성경 말씀에 충실하며 거룩함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힘쓰는 모습이 있으며 또 물질과 세상의 온갖 축복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이렇게 오직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에 최우선을 둔다면 하나님께서도 그 교회가 필요한 것은 그때마다 채워주시며 성도들 각자에게도 큰 축복과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기적과 이적과 치유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이러한 진정한 교회는 이 시대 어느 교회보다도 더 예수님을 추구하고 따라가고 닮아가고 사랑하며 그 명령을 그대로 준행하는 모범을 보여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추구하기에 주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초대교회 때와 같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복락이 교회에 스며드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교회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으로 채워지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며 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교회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외형적인 성장을 추구하거나 교회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려고 하거나 교회의 위세를 주위에 자랑한다거나 가식적으로 겉모습을 포장하여 하나님이 함께하는 것처럼 술수를 쓰거나 교회를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세상의 방법을 도입하는 것 등등은 전혀 없으며 오직 겸손함으로 순수한 믿음을 추구하며 주님의 영광만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 중에 기름부음이 느껴지고 뜨거운 성령의 불을 체험하며 하나님이 가까이 우리를 감싸고 함께 하심을 느끼는 것과 그 은혜에 기쁨으로 감격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이것을 기뻐하시며 하나님이 받으실 때 이것이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진정한 예배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땅에서 내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영으로 내 마음속에 계시고 그분의 통치를 받으며 그 인도함 가운데 세상 모든 것을 이겨나가며 늘 나의 마음을 안위하여 주시며 순간순간마다 그분의 보호하심과 내 속에서 나를 붙잡고 계신 것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는 것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은혜이며 기쁨입니다. 이렇게 올바른 믿음생활은 반드시 몸과 마음과 영으로 그분의 통치를 따르며 예배뿐만 아니라 어디에 있든지 기도와 말씀 묵상과 주님을 생각할 때는 늘 기름부음이 상징적 관념적이 아닌 실질적으로 우리 가운데 부어지고 흘러서 항상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음을 느끼며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또 성령의 임하심이나 내주로 인하여 늘 우리 마음에 편안함과 기쁨과 소망이 넘치며 주님의 사랑이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더 넓게 퍼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이 역사하시는 증거로 나타나는 성령의 기름부음과 초자연적 신비한 것들을 무조건 거부할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보고 간절히 사모하며 온전히 주님만을 따른다면 반드시 우리에게 기쁨과 은혜와 더불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권능도 부어주셔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세상에 나아가 잘 감당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지식이나 이론만이 아닌 동시에 체험이 수반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너무 많아서 전부 기록할 수 없다고 요21:25에서 분명히 말했듯이 내가 체험이 없다고 또 성경에 없다고 전부를 신비주의나 이단이나 세상 신이 하는 것으로 단정하고 훼방을 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잘 모르는 매우 위험한 신앙입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안다고 해도 하나님은 무한한 우주를 주관하시는 분이기에 우리의 좁은 생각과 시야로는 하나님 세계의 지극히 일부분밖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광대무변 합니다. 넓은 시야를 가져 내가 모르는 많은 진리를 성경에서 깨달아가므로 주님의 세계를 더 넓게 더 깊이 받아들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