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이지가 사용하는 수단 : "하나의 종교"
뉴에이지가 사용하는
"인기있는" 수단 : "하나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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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운동의 정치적 활동을 통하여 인류와 지구의 위기를 부각 시키는 가운데 나타나는 한 가지 기묘한 현상은 이러한 시대적 위기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운동을 세계종교의 통합운동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마릴린 퍼거슨의 <물병자리 시대를 위한 결탁> 가운데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이 발견된다.
이 시대의 위기들은 "세계종교"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세계종교야말로 종교적, 문화적, 국가적 경계선들을 허물어뜨리고 하나의 인류 공동체 건설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불어넣고 영적인 힘을 발산하여 정신적 활기를 되찾음으로써 국제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지구촌 의식을 향해 달려가는 새로운 영적 운동을 우리는 적극 지지한다(퍼거슨의 369면).
뉴에이저들이 구상하고 있는 하나의 "세계종교"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된 바는 없지만, 그들의 기본 이념이 철저한 뉴에이지적 인본주의 사상에 바탕을 둔 "모두가 하나"라는 일원론적, 범신론적 우주관이라는 점에서 볼 때, 그 개요는 이미 뻔하다.
그들이 이 "세계종교"의 구현을 위하여 어떤 특별한 종교운동을 눈에 띄게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유의해 둘 사항은 그들이 현재 견지하고 있는 종교관이 "모든 종교는 다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다"는 사상이며 전형적인 뉴에이지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전세계 종교들을 범신론적인 색깔로 동일하게 칠해버린다.
종교들 간의 동질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종교들의 근저(根底)를 보면 결국 동일한 메시지를 인류에게 전하고 있다고 믿는 사상을 "통합론"(syncretism)이라고 부른다.
밀교(密敎)주의자(esotericist)이면서 뉴에이지 운동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벤자민 크렘(Benjamin Crem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체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일단의 깨인 사람들 즉, 대지혜자들(Masters of Wisdom)이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왔다. 이들은 대부분 속세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지대나 산간 지역에 살면서 주로 이 세상에 나와 살고 있는 제자들을 앞세워 역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메시지도 원래는 이십 년 이상 훈련받은 한 제자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이들 "영적 수뇌부"의 중심에는 세계의 스승(World Teacher)인 마이트레야 주님(Lord Maitreya)이 자리잡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사람이 그리스도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듯이 유대인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고, 힌두교도들은 크리쉬나(Krishna)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 모두가 이름만 달랐지 사실은 한 사람을 지칭한다.
이 세상에 그가 출현해야만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이 보장된다(벤자민 크렘의 <그리스도와 대지혜자들의 재림, The Reappearance of Christ and the Masters of Wisdom>이라는 글에서. Kerry McRoberts의 <뉴에이지냐, 케케묵은 거짓말이냐?> 11면에 인용된 부분에서).
뉴에이지 운동의 종교적·영적인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변자 역할을 한다는 벤자민 크렘의 "신관"(神觀)이 고작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신을 기다리는 그의 마음은 "수퍼맨"을 동경(憧憬)하는 미국 어린이들의 유치한 마음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뉴에이저들의 종교관이 이런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면, 저들의 눈에는 그리스도나 크리쉬나나 알라 신이나 불타(佛陀)나 도(道)가 다 똑같이 보인다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 신이나 아틀란티스의 람타 신이나 한국의 단군(檀君) 신 등이 도무지 다를 수가 없다. 저들에게 신은 기껏해야 "깨인 사람들"이요 "대지혜자들"일 뿐이다.
그러니까, 석가(釋迦)나 공자(孔子)·맹자(孟子)는 말할 것도 없고, 노자(老子)·장자(莊子) 같은 사람들은 사실상 너무나 위대하고 너무나 깨인 사람들이어서 뉴에이저들의 신이 되기에는 "과도한" 인물들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종교는 동일하다"라든가, "하나의 세계종교가 필요하다"는 논제를 놓고 뉴에이저들의 종교관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언급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무가치하다.
뉴에이저들의 종교관에 반격을 가하면서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유일성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려고 시도한 뉴에이지 비평가 케리 맥라버츠의 노력 역시 지나치도록 피상적이고도 형식적인 논리전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종교가 종교일 수 있는 근거를 일신론(一神論)에 토대하고 있는가 여부를 기준으로 하여 몇몇 세계적인 종교들을 귀납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종교의 정통성을 귀납적으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케리 맥라버츠처럼 일신론이라는 형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유대교는 물론, 힌두교, 불교, 도교, 이슬람교 역시 종교의 범주에 넣는 것이 온당하다. 케리 맥라버츠가 범한 과오는 기독교 역시 "종교"의 범주에 넣고 생각한 데서 비롯되었다. 기독교를 종교라는 틀 속에 가두어 놓으면, 불교나 도교, 힌두교 같은 동양종교들이 "너나 우리나 무엇이 다르냐?"고 반론을 제기해 올 때, 옳은 대답을 찾기가 불가능해 진다.
바로 여기서 기독교의 일부 세력이나 카톨릭이 에큐메니칼(ecumenical) 운동의 단계를 넘어 다른 종교들과도 자리를 같이하는 경향이 많아졌고 그들과 세계문제를 함께 논하며 "우의"를 다지는 이상한 현상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을 본 뉴에이저들이 비록 유치하기 짝없는 종교관에 토대하고 있을지언정, 감히 하나의 세계종교로의 통합운동을 전개하더라도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비쳐지게 된 연유다.
"그리스도인의 신앙"(Christianity)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위 "기독교" (christianity)라는 종교만 보고 다른 종교들과 동일하다는 그릇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들이 몇 가지 중대한 사실들을 간과하거나, 모르거나,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이 놓치고 있거나 부정하고 있는 그 중대한 사실들이란 무엇인가? 이 기회에 우리는 이것을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사실, 이 문제는 본서의 주제에서 벗어나므로 단지 세계종교의 통합을 꿈꾸는 뉴에이저들의 무모한 계획에 맞서기 위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서처럼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내려고 통찰하고 탐구하며 해석하는 신앙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스스로 인간에게 오신 분이시다. 오셔서 스스로를 나타내 주신 분이시다. 그분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물론 그리스도 이전에도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에게 먼저 오셨다. 그리고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고 찾으셨다.
이 세상 어떤 종교의 신도 스스로 인간에게 다가온 적은 없다. 그들은 다가올 수가 없는 존재들이다. 바로 "비인격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과 함께 먹고 마시고 주무시고 고난받으시고 죽기까지 하셨고 또 부활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인간의 노력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가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이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신화적인 이야기도 아니요, 계시로 알려준 이야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으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도 그들의 신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성을 드러낸 신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인격성을 보여주는 말씀들은 성경을 뒤덮고 있다. 분노하시고(신 32:22), 미워하시고(시 5:5- 6), 사랑하시고(요일 4:8,16), 근심하시고(창 6:6), 한탄하시고(창 6:7), 질투하시고(출 34:14), 웃으시고(시 2:4), 주무시고(시 78:65, 눅 8:23), 맹세도 하시고(렘 44:26), 약속하시고(수 23:5-15), 기억하시고(시 106:4), 슬퍼하시고(마 26:37), 굶주리기도 하시고(눅 4:2), 피로도 느끼시고(요 4:6), 먹고 마시기도 하시고(마 11:19)...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신이 이렇게 완벽한 인격성을 갖지는 못한다. 유대인들마저도 유대교적 입장에서 인간으로 오신 그분 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둘째, 저들이 간과하는 중대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전에 그분이 인간 속에 들어와 살고 계신다는 점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산 속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고 수도원 속에 파묻힐 필요도 없으며, 절간(교회)에 가야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삶 가운데 동행하시고(요 14:17, 롬 8:9,11, 고전 3:16), 인간과 부단하게 교제하시며(고전 1:9, 빌 2:1, 요일 1:3), 위로하시고(요 14:16-26), 기쁨을 주신다(롬 14:17). 동행하시고 교제하신다 함은 우리의 삶을 책임지신다는 뜻이다(신 32:10, 시 27:1; 121:3-8, 사 12:2, 요 3:16, 롬 8:32; 5:9, 고전 10:13, 히 2:14,15; 9:28, 엡 1:13, 계 3:7).
그분은 책임지시겠다고 인까지 치시는 분이시다(고후 1:22, 엡 1:13).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책임지시기 위해 죽기까지 하셨다. 그분이 인간에게 책임지시는 결과는 영원한 생명이다(롬 5:21, 요 3:36; 5:24, 딤전 6:12, 마 19:29, 눅 18:30).
이 세상 어떤 종교의 신도 인간 가운데 인격적으로 내주하는 신은 없으며, 더더구나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며 책임을 지는 신은 없다. 그들은 저 멀리 강건너 피안(彼岸)의 세계에 있으면서 인간에게 자신들에게 오라고 손짓할 뿐, 자신의 존재를 "깨달으라"고만 다그친다.
그리고 깨달은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음"일 뿐이다. "깨달음"을 통하여 부처가 되고 도에 다다른들 그것은 이미 부처도 아니요, 도도 아니다. 그들에게 남는 것은 단지 허무한 "인식" 세계의 허상뿐이다(요 14:2, 계 22:20, 살후 1:7-8).
셋째,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는 우주의 근원이신 그분, 진리 자체이신 그분이 인간에게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고 계신다(요 14:2, 계 22:20, 살후 1:7-8). 그리고 모든 것을 끝장내고(마 10:15; 11:22,24) 새로 시작하실 것을 구체적으로 계시하시는 분이시다(계 21:1-8). 성경에서는 이 점을 분명하게 계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이 계시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한 소망 가운데서 하나님께 찬양으로 응답한다. 이 세상 종교의 어떤 신도 인간에게 온 적도 없으려니와 언제 오겠다고 계시하는 신은 하나도 없다. 그들은 역시 올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비인격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에 오고 가는 의지를 소유하지는 못한다.
넷째, 그리스도 신앙에서는 "죄"의 문제를 분명히 하고 있고(롬 5:12,16; 14:23, 요일 3:4; 5:17) "사탄"이라는 죄의 근원에 대해서 분명하게 정의하고(요 8:44, 엡 6:12, 마 13:19) 그 실체를 낱낱이 밝혀주면서(고후 11:3, 창 3:1, 딤전 3:6, 눅 8:29, 약 4:7, 요일 2:13)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가로 놓인 걸림돌의 정체를 밝힐 뿐만 아니라(계 12:10; 20:7-8, 마 25:41, 딤전 3:7) 그것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방법(롬 3:25; 5:10, 요일 2:2; 4:10, 롬 10:9- 10, 엡 2:8,16, 요 14:6, 행 4:12, 고후 5:18-20, 골 1:20,22, 히 2:17)까지 인간에게 제시한다.
이에 반하여 이 세상 어떤 종교도 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 설사 죄에 대한 언급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일상적 도덕률에 그칠 뿐, 근원적인 인간의 문제로는 부각시키지 않으며 영원세계로의 구원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종교는 없다.
사실상, 그 어떤 종교에서도 인간의 죄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아니, 인간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선하다고 주장하며 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들 말고도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종교"일 수가 없다는 사실, 따라서 이 세상 종교들과 횡적인 비교가 처음부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요소들은 수없이 많다. 우주 근원으로서의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인간 세상을 위한 경륜과 섭리에 있어서나, 인간의 구원계획과 자연의 구속계획 등,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담겨 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요소들이 모두 도저히 이 세상 "종교"의 수준에 놓고 볼 수 없는 내용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불교나 힌두교나 그 밖의 다른 종교들과 같은 자리에 놓고 보는 것은 실로 금덩어리와 사과를 비교하는 것과 같고, 인간과 공기를 비교하는 것과 진배가 없다.
뉴에이저들이 이 세상 종교들이 다 똑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처음부터 틀린 생각이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 세상 종교들은 비록 다른 교리와 다른 의식절차를 갖고 있으며 각기 다른 이름으로 그들의 신을 부른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는 매우 유사하거나 동일한 속성을 안고 있다. 사과 아니면, 배, 배 아니면 감이나 귤일 뿐, 똑같은 과일들이다. 그러나 금덩이는 아니다.
뉴에이저들이 이 세상 종교들이 다 똑같다고 말할 때는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기독교"라는 종교 때문에 내놓은 억지 논리전개다. 그들에게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다. 옳고 그른 것의 차이도 없다. 죄의 문제와 악의 존재를 분명히 밝히는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저들의 이념과 여기서 정면으로 부딪친다. 그들은 이것이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의 이면에 사탄이 도사리고 있는 증거를 찾아낸다. 인류와 지구 위기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어떻게 인간의 죄의 문제를 도외시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지상에 평화건설을 부르짖고 파라다이스의 시대를 부르짖으면서 어떻게 세계원리인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을 추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뉴에이저들은 부르짖는다. 인간은 죄가 없다고. 아니, 죄 자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친다. 그리고 인간 자신이 곧 신이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모든 종교들이 동일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세계는 하나의 종교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불교신자나, 힌두교 신자, 카톨릭 신자나 일부 "기독교 종교" 신자들은 여기에 호응한다. 그리고 기회만 있으면 자리를 같이한다. 이것이 뉴에이지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또 하나의 수단이다.
사탄이 테이블에 펼쳐 놓은 "로열·스트레이트·플러쉬" 가운데에는 그래서 세계종교 통합이라는 카드가 또 한 장 포함돼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