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훈련-담대함을 배우기(1)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서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마음을 지극히 담대하게 가지라고 주문하시지요. 이 말씀은 먼저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신 31:8). 또 다른 기록은 히스기야 왕이 부서진 성곽들을 보수하면서 앗수르왕 산헤립의 침공에 대비하여 백성들을 독려하면서 “저와 함께 하는 자들은 육신의 팔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이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격려하면서 담대하라고 말합니다(대하 32:7). 이상에서 사용된 히브리어는 ‘아메츠’(amets)로서 ‘억세다’ ‘튼튼하다’ ‘방심하지 않다’ ‘기민하다’ 라는 등의 뜻을 지닌 말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울이 풍랑을 만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밤중에 환상 가운데 주님이 나타나셔서 담대하라고 권면합니다(행 23:11). 이 환상으로 힘을 얻은 바울이 선원들 앞에서 담대하게 증거합니다. 요한 복음 16:33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담대하라고 권합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긴 것처럼 우리도 담대하게 세상을 기기라는 말씀입니다. 헬라어는 ‘따르세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용기를 가지라’라는 내용입니다. 주로 명령어로 사용되는 말로서 군대에서 장교가 병사들에게 사용한 말입니다.
담대한 것과 혼동하기 쉬운 말이 허세를 부리는 교만이나 무모함이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를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거짓으로 가진 것처럼 위장하는 행위입니다. 담대함은 그 배경에 능력을 지니고 있거나 약속을 받았거나 상대방을 잘 알고 있는 상태로서 그것을 의지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고 상대방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으로 인해서 생기는 태도입니다.
담대함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약속과 경험입니다. 모세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역시 그렇습니다. 히스기야가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백성을 독려한 말은 바로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하고자 나아갈 때 한 그 말입니다. 바울 역시 주님의 약속을 믿음으로써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과 경험은 우리를 담대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영적 전쟁과 치유에 있어서 담대함은 필수입니다. 영적인 일은 새로운 것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만 사역을 힘 있게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은 약속 즉 비전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분명한 비전이 없으면 우리는 혼란을 겪게 되고 시험이 오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어지고 막연한 미래에 대해서 두려움이 생깁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에 끊임없는 의심에 시달리게 됩니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길을 가는 절대 다수의 사역자들은 자신에게 향하신 구체적이고 특별한 비전을 얻지 못한 채로 사역에 임하기 때문에 더욱 두려워합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 까닭이 이런 두려움 때문입니다. 비전을 얻지 못했거나 비전이 있다고 해도 분명하고 구체적이지 못하므로 항상 불안합니다.
담대함을 얻지 못하는 것은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험은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경험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들 마다 그것을 치러야 할 시기가 있습니다. 그 시기에 경험하지 못하면 이후에 경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경험한다고 해도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0대에 경험할 것은 20대에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시기가 있고 적당한 시기에 경험함으로써 온전한 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역에 따라서 경험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장차 자신이 감당하게 될 사역에서 담력과 자신감을 얻게 하기 위해서 준비된 경험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의 경험들은 대부분이 달갑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대담해지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훈련이 있어야 하는데 이 훈련은 대부분이 자신의 이성과 감성에 어긋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겁이 나고 두려워서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직접적 경험은 이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이 자원하지 않고 강제적으로 이끌려서 배우게 됩니다. 이것이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직접적인 경험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 현명한 지도자가 있다면 다소 쉽게 그리고 확실하게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스런 경험을 하게 하심은 고통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담대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므로 지도자를 통해서 그 담대함을 배워나가면 한결 쉽습니다. 그러나 말이 쉬운 것이지 당하면 두렵고 떨립니다.
우리에게 전개되는 일들은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특히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일이라든가 인생 전체가 걸린 문제일 경우 우리는 두려워하게 됩니다. 오만이 아닌 진정 담대함으로 문제와 마주 서기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자신의 일인 경우 그 피해는 자신이 직접 입기 때문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고 두려움을 떨쳐내기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자칫 오만으로 행동한다면 어떤 보장도 없는 것입니다.
사역자는 자신을 담보로 담대함을 얻어야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하나님과 담판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타인의 문제에 관여할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담도로 하나님을 경험함으로써 열국의 아비가 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는 과정에서 그는 절대적 담력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담력을 시험 받아야 그 일에서 능력 있는 사역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문제는 당사자가 책임지는 것이지 사역자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기 쉽습니다. 당사자의 믿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일꾼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중보자를 세워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계신 경우 이는 절대로 사역자를 통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는 아비멜렉이 자신에게 당한 문제를 아브라함을 통해서 해결 받아야만 했던 경우입니다. 나아만이 자신의 병을 엘리사를 통해서 해결되어야 했던 경우입니다. 자신의 문제이니까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하는 경우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 사도는 서로 서로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중보자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 사역자를 만나야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원칙이므로 이것을 무시하면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당사자입니다.
담대함을 얻는 간접적인 경험이 있습니다. 이것은 지식을 통해서 얻을 수 있고 자신보다 앞선 사역자를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은 직접적인 것에 비교될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한 가지 직접적인 것을 경험하면 아홉 가지는 간접적으로 얻게 됩니다. 많은 부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경험과 맞물려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간접적인 경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담대함이라는 말의 ‘아메츠'는 방심하지 않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긴장하여야 영적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기민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행동이 민첩하여 기회를 잘 포착하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잘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회를 놓치면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 다음의 기회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몇 번 기회를 놓치면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역자가 교회를 개척하면 3년 이내가 중요합니다. 이 시기에 개척의 수준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다양한 형태로 찾아오는 기회를 알아차리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준비된 담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담대함과 무모함을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담대함은 하나님의 약속 즉 비전 위에 세워진 행동입니다. 그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용기와 기민함입니다. 방심하지 않고 기회를 발견하고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깨어 기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신실한 조언자들의 권면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모사가 많으면 일에 실수가 적은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