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훈련 - 담대함을 배우기(2) 담대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로 흘러가는 이 세상을 극복하고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크든지 작든지 항상 결단의 상황에 마주 서게 됩니다. 순간마다 다가오는 결단을 위해서 우리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담대함이 오만과 교만이라는 위장된 모습을 가지고 우리를 괴롭힙니다.
자기 의지가 강하고 고집이 센 사람들은 그것을 담대함으로 착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이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고는 절대로 진정한 담대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세는 사실 담대한 사람입니다. 그가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았을 때 자신의 위치를 생각하지 않고 하찮은 노예 신분인 동족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40년의 광야의 생활은 담대함이 없이는 사실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모세에게 하나님은 담대 할 것을 주문합니다.
이렇듯 자기의 의지에 의한 용기마저도 담대함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교만과 오만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는 스스로 교만하거나 오만한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베짱이 있고 의지가 강하면 담대할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담대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로 순종하는 그런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는 담대함은 무지에서 오는 경솔함일 뿐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골리앗을 마주칠 때 그 용기가 바로 담대함 입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그는 양떼를 돌보는 목자였는데 그는 홀로 광야에서 양들을 다룰 때 항상 하나님이 자신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후에 왕이 되었을 때 그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을 경우 그는 하나님에게 그의 어린 시절 함께 하신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실을 하나님에게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과의 광야의 관계를 기억하시고 다윗을 용서할 마음을 먹습니다.
어린 시절 다윗이 곰과 사자와 마주쳐서 겁먹지 않고 양떼를 지킬 수 있었던 담대함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담대함을 요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경험함으로써 담대함을 얻게 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워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반드시 경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어린 시절에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소중합니다. 어린 시절일수록 우리는 순수합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여러 가지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가정이 말씀에 스며듭니다. 순수함이 사라지고 말씀에 우리의 경륜이 섞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풀무 속에서 단련되지 않은 우리의 이성(reasoning)은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루기 위해서 반드시 말씀이 경험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우리의 상상이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것이 특색입니다. 때로는 말씀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본성과 다른 것 같아서 혼돈을 겪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요구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요구와 깊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야 하는 요구 등입니다. 이런 요구들은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실제로 순종하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성과 관습으로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임을 알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려움을 만나는 많은 목회자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그 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들이 그분들이 지니고 있는 고정 관념이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선 듯 따르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것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제자가 되고 싶었지만 그 소유 전부를 내어 놓고 따르라는 요구를 감당할 수 없어서 근심하면서 돌아가는 광경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담대함을 얻게 하기 위한 요구는 이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선 듯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욕구를 내려놓는 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을 얻는 과정이므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반되는 요구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을 거칠 때 우리 입에서 끊임없이 “왜”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황해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각을 얻어 담대해지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세월이 많이 지난 다음에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고민과 갈등은 그것을 통해서 지각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사역자에게 있어서 어떤 부분이 사역에 직접 연관이 있는 경우 이 부분에 담대함을 얻기까지 계속 이런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일로 인해서 계속 갈등만 하고 그 뜻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특히 능력 사역에서 담대함은 더욱 요구됩니다. 어려운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직접 대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역에 있어서 우리를 위협하는 두려운 요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하나님의 얼굴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문제를 대하는 사역자는 그 문제로 인해서 이미 깊은 두려움에 쌓여 있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이 그의 어께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골리앗으로 인해서 깊은 두려움에 휩싸여 수모를 겪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홀로 전쟁에 나서야 했던 다윗의 담대함과 같은 것입니다.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승리할 수 있는데 오만이나 무모함으로 인한 용기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의 사건으로부터 배웁니다(행 19:14). 하나님이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을 때 그 담대함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용기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서 마귀는 힘을 잃고 사라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을 따르는 것은 담대함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현실에서 적용해서 살아본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에 앞서서 심각한 현실을 먼저 봅니다. 물 위에 서 계신 주님을 보기 보다는 검푸른 파도를 먼저 보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닥쳐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은 그 문제를 문제로만 보고 피하거나 빨리 벗어나려고만 합니다. 그 문제가 자신을 담대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수단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담대함을 얻기 위해서는 문제에 대해 말씀을 가지고 정면으로 돌파하는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을 제일 선두에서 해야 하는 사역자에게 있어서 담대함을 얻게 하려고 주어지는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자신의 시각을 바로 잡으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담대함은 비전을 올바르게 깨달을 때 얻게 되는 열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