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를 물리칩시다 귀신은 한 영혼을 고통의 수렁으로 빠뜨리고 파멸시키는 일을 하지만 마귀는 개인을 사로잡거나 이용하여 교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을 합니다. 개인을 이용하거나 사로 잡아 집단을 자기 손아귀에 넣기 위해서 그 역할을 수행할 도구로 이용할 개인을 공격합니다. 마귀는 귀신과 달리 사람의 몸을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과 정신을 점유하거나 자신의 영향권 속에 넣으려고 합니다. 마귀는 약점을 보이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끈덕지게 유혹하여 그 사람을 자기 편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어떤 사람에게 접근하여 끈질기게 유혹하여 자기 도구로 삼게 되는 데 이 유혹을 이기지 못하면 서서히 마귀의 영향권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는 마귀의 종 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위해서 우리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됩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면 서서히 마귀의 수중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 역시 약점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상당기간 동안 교묘한 방법을 동원해서 집요하게 유혹하게 됩니다. 이런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이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첫 번째 요령입니다. 자신의 취약점은 자신이 가장 잘 알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취약점을 극복하려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경계하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령입니다. 자신의 약점이 위협 받을 수 있는 자리를 될수록 피하는 것입니다. 이길 힘이 없으면 달아나는 것이 상책입니다. 조금은 소극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이것이 안전한 방법입니다.
성령 충만은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요령입니다. 항상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기란 희망 사항일 뿐이지 실천하기란 역시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쉬운 방법입니다. 주기적으로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 영성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힘껏 기도하고 찬양하고 성령 충만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이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요즈음 우리 교회가 사람들이 잘 모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금요철야예배(Friday Vigils)를 거의 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참석한다면 그 영혼을 위해서 철야예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경건한 무리가 모여 밤이 세도록 은혜를 나눔으로써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고 이에 따라서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수단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철야예배를 해야만 성령 충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일상적인 예배의 틀을 벗어나 하루 정도는 힘껏 부르짖어 기도하고 박수 치면서 찬양하고 방언으로 기도하고 신령한 노래로 영광을 돌리며, 예언과 계시가 임하는 예배를 경험하는 것이 삶에 큰 활력이 되는 것이지요.
성령 충만은 혼자 있을 때보다 경건한 무리가 함께 모일 때 더 강하게 임합니다. 그런 충만은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지요. 성령 충만은 마귀의 유혹을 이기는 무기입니다. 이 무기로 무장하여야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는 것이지요.
마귀는 우리 곁에서 항상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은밀하게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곁에 마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면 마귀는 자신 곁을 결코 떠나지 않고 여러 가지로 영향을 주기 시작합니다. 마귀는 사람들 사이로 두루 다니면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그렇게 찾아진 사람 곁에 머물면서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이것을 눈치채지 못하면 그때부터 마귀의 영향권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마귀는 각각 가지고 있는 직무가 다릅니다. 이 구분에 대해서는 “영적 전쟁”에서 다루었습니다. 예를 들어 “분리의 영”(spirit of division)이 자신 곁에 와 있다면 그는 무슨 일이든지 편을 가르고 싶어하게 됩니다. 공동체를 갈라 놓기 위해서 갖가지 수단을 다 동원합니다. 항상 판을 깨고 사람들을 이간해서 갈라 놓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이 목회자면 교단을 갈라놓는 일에 앞장 섭니다. 정치인이면 당을 쪼개려고만 합니다. 분당과 파당의 앞잡이 노릇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기질적으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마귀의 영향권 속에 빠져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현대 사회는 마귀의 존재를 점점 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일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마귀를 말하면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주님은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신 일 가운데 하나가 마귀의 일을 멸하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마귀가 있다는 사실과 그 마귀에게 속지 말 것과 마귀에게 대항해서 싸울 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주님으로 인해서 마귀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우리의 삶은 바로 마귀와 싸우는 영적 전쟁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마귀의 실체를 이야기하는 것을 마치 미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여기고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분명히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의 대적은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마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이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마귀는 물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 곁에서 마치 없는 것처럼 아주 은밀하고 교묘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깁니다.
마귀는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떤 일정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들어온다면 이는 자신 곁에서 마귀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파악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로 위장하여 접근하여 십자가를 거부하도록 부추기는 마귀를 알아차리고 즉시 물리쳤습니다.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나온 마귀의 유혹은 예수께서 반드시 행하여야 할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대치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린 주님은 마귀를 물리쳤습니다.
나쁜 생각이나 감정이 처리되지 않고 계속 일어난다면 이는 분명 마귀가 곁에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쉽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떠났다가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옵니다. 이는 우리에게 약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있는 약점은 일생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약점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이 약점을 의지로 극복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런 사람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극복하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약점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그 약점을 언제라도 다시 건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곁을 떠난 마귀는 잠시 떠났을 뿐 언젠가는 다시 올 것입니다.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건드리지 않으면 우리의 약점은 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 약점 자체도 우리의 일부이니까요. 그런데 마귀가 이 약점을 건드리고 자극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약점으로 인해서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약점이 마귀로 인해서 시험 받고 충동될 때 우리는 즉시 마귀를 쫓아야 합니다. “마귀야 내 곁에서 떠나라” “사단아 물러가라” 이 단순한 명령으로 우리는 마귀로부터 이길 수 있고 우리의 약점은 보호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