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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

제목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경계는 해야 합니다2025-01-18 23:42
작성자 Level 10

두려워하지는 않지만 경계는 해야 합니다

 

  우리는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평소에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적당한 수면을 취하며, 몸을 청결하게 하고,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타당성은 있지만 완전한 진리는 아닙니다. 평소에 모범적으로 건강 관리를 하던 사람들도 불치의 병에 걸려서 사망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의사도 자신이 전공하는 질병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에 관해서는 실제로 보편적인 지식은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들에게 통하는 정답은 없습니다.

평소에 엄청나게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병에 걸립니다. 그런데 평생 건강에 대해서 거의 관심이 없어서 대충 살아가는 사람들 가운데는 백수를 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의 경우만 해도 평소 건강을 챙기고 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2차대전과 동란이라는 격동의 근대사를 거치면서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올해 94세로 건강하며 아픈 곳이 한 군데도 없습니다.

질병은 때로는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무서운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건강에 해롭고 반대로 너무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언제 어떤 불행한 일을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육신의 질병처럼 영적으로 이와 비슷한 존재가 아마도 악한 영일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사단을 이겼기 때문에 사단을 무서워할 필요도 없고,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사단과 그 졸개들인 마귀와 귀신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는 태도입니다.

악한 영은 마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처럼 결코 무시할 수도 없고, 두려워할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질병에 걸리고, 건강에 소홀한 사람도 질병에 걸리지 않는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있듯이 악령 역시 그렇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도 마귀와 귀신에게 시달립니다. 신실한 목사도 귀신이 들려 그 삶이 황폐해지는 것을 직접 다룬 경험이 있습니다. 믿음이 엉망인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귀신 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다 뭐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악하고 못된 일만 저지르면서도 건강하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볼 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다고 해서 귀신이 들리고 믿음이 좋다고 해서 귀신이 들리지 않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귀신들림에 대해서 결코 방심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걸리고 허약한 사람도 걸립니다. 그러므로 질병에 대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고 장담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악한 영에 대해서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다 처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고 악령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만 진실입니다. 교회는 반석 위에 서있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흔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망할 수도 있고, 탄압을 받아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교회가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많은 교회들이 지금은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던 평양에 지금 공식적으로는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뿐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들을 두려워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경계마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서 경계마저 풀어버리면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경계하는 일은 두려움이 배제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적군과 대치되어 경계를 서는 초병에게 두려움마저 없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것입니다. 게임에 나서는 운동선수는 승패에 대한 부담을 가집니다. 아무리 실력이 있는 선수라고 해도 언제나 이길 수는 없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유승민 선수는 세계 랭킹 1위인 중국의 왕하오 선수에게 연패를 당했습니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처럼 여겨졌던 왕하오를 올림픽에서 무너뜨렸습니다. 연승한 왕선수는 유선수를 얕잡아 보았을 것입니다. 무시하면 언젠가는 크게 당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 역시 우리가 결코 앝잡아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벧전 5:8).

경계한다는 것은 그 존재를 항상 눈여겨 살핀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악한 영의 존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두려워할 것은 아니지만 경계를 풀 대상도 아닙니다. 결코 무시할 수도 없고 만만히 얕잡아볼 수도 없는 그런 존재가 악한 영입니다. 틈을 보이면 언제라도 우리를 공격하여 난처한 일을 당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이들을 “우는 사자”로 비유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자가 우는 소리(咆哮)를 내는 것은 배가 고프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사자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이를 찾아다니듯이 악령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경계를 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사단과 마귀와 귀신의 속성을 잘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무서운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에 걸립니다. 이렇듯이 누군가는 악한 영에 걸립니다. 그 대상이 자신은 아닐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는 아직은 우리들에게 실질적으로 완전한 효과를 내는 단계가 아닙니다. ‘이미 성취된 것이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성취된 효과를 맛보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그 진정한 즐거움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도 응답을 받는 사람이 있고,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예민한 것과 과민한 것의 차이는 백지장 한 장 차이보다 더 미세할 수 있습니다. 그 판단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절대적 기준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민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칫 과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정신을 차리고 과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모든 면에서 자유롭게 해 주셨지만 그 자유는 철저한 경계를 통해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군대가 국경을 지킬 때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같습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면서 주님이 주신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깨어 기도하지도 않으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방종이며,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우리는 악한 영의 존재를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두려움에 사로잡혀 위축되어서도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사를 가려면 손이 없는 날을 택하고 날을 받습니다. 이렇게 매여서 행동이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자유는 경계마저 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둘기처럼 순결하지만 또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해야 하며,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이 부족한 경우에는 주님에게 항상 구해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후회 없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사단의 궤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악한 영의 존재를 늘 인식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적과 대치하고 살아가는 우리가 항상 안보에 관해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대적인 사단의 진영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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