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치유함을 맛보라
신앙생활이란 이론이 아니라 삶의 실재입니다. 단순히 성경 말씀 몇 구절을 암송하거나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만남이며 친밀한 교제입니다. 또한 유일한 방법이요 길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매 순간마다, 매 사건마다 하나님을 알기를 소원하는 열망이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 가운데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계시해 주시면 자신의 인생을 조정하여 전 존재를 다 해 동참하는 삶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를 통해서 성취되어짐으로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으로 알게 되는 삶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정의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은 신앙의 본질에 서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을 인생의 유일한 목적과 목표로 삼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나 친밀함이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신앙의 본질로 회복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로의 회복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우리 속에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들입니다. 이 상처들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을 발목 잡습니다. 이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으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듯 하나님의 은혜는 자칫 헛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감사한 것은 십자가의 복음에는 생명을 살리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으로 우리들을 능히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린시절이나 지난 상처들로 인해 십자가의 능력을 온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충격,어린시절 부모와의 사별,어릴적학대,부당한 대우, 근친상간,
성추행,성폭력, 친한사람의 배신,등으로 어쩔수 없이 스며 나오는 내면 깊숙히 감추인것들로 인해 이따금씩 정신공황에 시달리기도 하고 영혼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쓴 물로 인한 고통이 싫어 나름대로 해결책을 모색해 보곤 합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선택해 봅니다. 그러나 기도를 할 때뿐 그 쓴 물은 그치지 않고 스며 나와 영혼을 어지럽힙니다,때로는 금식을 해보곤 합니다. 그러나 그 때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은 잘 되지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런 감격도 없는 채 신앙생활은 율법적인 종교생활로 이어집니다. 정말 아무런 감동이나 감격도 없는 채 말입니다. 점점 주를 향한 열망이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애통함이 사라져갑니다. 남는 것은 교회를 다닌 세월뿐이지 성령의 감동을 체험하지 못한 미지근한 교인에 머무르고 맙니다,
성령의 감동을 체험치 못했다는 것은 교회의 의식인 물 세례는 받았으되 주님께서 친히 주신다는 불세례 즉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뜻이니,영적으로 보면 사실 아주 위험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쓴 물을 맑은 물 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 엘림으로 치유하시는 놀라운 은혜의 길을 우리에게 예비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사역입니다.
심령치유는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는 과정 중에 나타나는 회복의 한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하여 세워질 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의 교회가 공동체적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기준으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임재로 교회 가운데 임하십니다. 그 결과 예배가 회복되고 감격과 기쁨이 예배 중에 넘치게 됩니다. 감격과 기쁨은 내면세계 깊숙이 하나님의 생명을 흐르게 만들고 영혼 깊숙이 뿌리를 내렸던 쓴 뿌리들과 상처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닿을 때 깨끗이 치유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치유입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이 치유는 세상이 주는 평안과 치유와는 다릅니다. 성령님이 친히 우리의 치유자가 되어주셔서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속 깊은 내면을 드러내시고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 그 결과 내면 깊은 곳에 갇힌 상한 감정들이 하나님의 치유의 빛을 받아 새 힘을 얻고 기뻐뛰는 감격의 시간들이 있을 것입니다.영원한 감동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감동을 누리기위해 성령님께 집중하셔야만 합니다.
성령님께 집중하는 방법이 바로 예배에 집중하고 말씀을 읽고 듣는데 온 마음을 집중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인것에 대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어 익숙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의 심령을 들여다
보실 수 있는 분은 성령님뿐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그분께 민감해야 합니다. 그 방법이 바로 성경을 읽는것이요,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에 집중을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반드시 방해요소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시선을 외적인 곳으로 끄는 사건이 자주 생깁니다. 물론, 반드시 필요한 사건은 바로 해결해야 하지만 모든 외적인 문제나 사건을 접어두고 우리의 내면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또다른 방해요소는 예배와 말씀에 집중하지못하고 자꾸만 다른 사람이 떠오릅니다. 예를 들면 “이 얘기는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이것은 누구누구에게 써먹어야지” 생각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보면
십자가의 복음이 개인에게 진정한 실재가 되지 못합니다.
둘째, 진리를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경험을 하려고 하십시오.
진리란 적용하는데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데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이 계심을 안다고
성경을 통달하고 있어도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그 성령을 체험해야 은사가 나타나고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래야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성경을 차분히 읽는다는것이
쉬운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진리 앞에 동의하는 과정이 없이는 성령을 받아도 몇년가지 못하고
성령을 근심되게 하며 결국에는 소멸해 버립니다, 성령을 받은자 가운데 이런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에 동의하는 훈련 즉 바로 성경말씀을 주기적으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령님만이 우리의 의사이십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분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심령은 아직도 성령의 놀라운 체험을 경험하지 못한 채 병이 들어 있는자들이 있다는 것은 성령의 사역을 무시하고 축소하고 방해하는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자, 이제 세상의 옷을 벗고 그 분 앞에 겸손히 무릎꿇고 여러분 심령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또는 말씀으로 우리의 쓴물과 상처들을 드러낸다면 성령께서 상하고 추하고 약한 부분을 고쳐주실 것입니다,이 고침의 확증이 바로 성령을 받는 일입니다~오늘부터 예배에 집중하고 성경을 읽길 바라며,마음에 부딪히는 성경구절을 잡고 기도하시는 성도들이 되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