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 그 멀고 먼 길!! 성경에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신이 보지 못하면 다른 소경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가 없다는 비유이다. 사역자 자신이 온전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수많은 의학약품과, 발견들,
그리고 상담학의 수많은 학파와 상담이론들이 개발되고 있는 현대에 살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살 것 같지만 실제로 현장을 들여다보면 도리어 더 많은 정신적, 감정적, 영적인 문제들이 거친 숨을 내쉬며 우리들을 질식시킬 것처럼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치유사역에 뛰어들어 몇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기에는 기쁨이 있었다.
치유하면서 치유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사와 보람을 느꼈고, 성령께서 새로운 것을 가르치실 때마다 흥분과 신비함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진정한 치유사역자가 된 듯한 뿌듯함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좀 더 시간이 가면서 스스로 배움의 한계를 보았고, 사람들마다 필요의 다양함을 볼 수 있었다. 이때에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려는 주님의 말씀과 같은 맥락의 상황들이다. 이미 수많은 정신적 문제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고,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은 거대할 정도로 숨겨져 있다.
경험적인 상담학파로 이미 세계적으로 크게 자리를 잡은 ‘사티어 상담’의 창시자 ‘버지니어 사티어’의 말대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우리는 가끔 어떠한 하나의 은사를 가지면 모든 것을 다 치료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은사가 가장 귀한 것인 양 생각될 때가 있다. 그러나 모든 은사는 귀한 것이다. 그리고 은사마다 쓰이는 용도가 다르고, 사소한 은사라도 쓰임에 따라서 더 크게 쓰일 때도 있는 것이다. 은사는 기본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모든 은사가 귀하고, 모든 은사가 필요하다. 치유사역을 몇년 동안 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치유’에 대한 사역자의 개인적인 ‘치유철학’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베소서 4:11~12의 말씀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도자, 목사와 교사의 오중사역을 소개하려는 것보다 오중사역이 왜 필요한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겠다. 그 목표는 3가지인데 성도를 온전케 하려는 것과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 세 가지는 오중사역을 통한 단계적인 성장과정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되는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 것’인데, 이 목표를 위한 수많은 과정 중에 ‘치유사역’이 포함된다고 확신한다. 치유사역은 성도를 온전케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은사와 부르심에 따라 봉사의 일을 준비케 하려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데 꼭 필요한 하나의 세포(cell)로서, 지체의 역할을 감당케 하려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치유의 은사와 치유를 위한 수많은 영적인 지식과 상담적인 상식과 기술과 아울러
‘치유를 위한 방향성’과 ‘목표’, ‘온전한 성도의 상태’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지가 있어야 한다. 중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마음으로 성도의 온전케 된 모습을 상상하며, 그것을 향하여 한 걸음씩
주님을 의지하고 전진해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수많은 질병과 장애들이 존재하지만 주님은 모든 질병을 다 고치셨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가 한 것을 하겠고, 더 큰일도 하리라’ 하셨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진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