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고치는 하나님이 약속
병 고침은 예수님의 사역에서 처음 등장한 언약의 조항이 아니었습니다.
병고침은 아브라함 언약하에 이미 제공된 것이었습니다.
다음과 같이 아브라함 언약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창세기 17:1-5, 7).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본래 히브리어로 엘샤다이 (El Shaddai)인데 엘(El)은 "최고의"라는 뜻이고 샤다이(Shaddai)는 "하나님, 전능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나는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아버지, 어머니, 양육자, 공급자--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발생했던 그 언약 사건의 중요성을 확실히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계약관계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함께 영원하고 절대적인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라, 나의 언약이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맹세를 하심으로써 그 언약을 확증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 16절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자가 없기 때문에 그 분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을 축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세기 22:17-18).
히브리어로 언약(covenant)은 "자르다, 베다"라는 뜻이며 "피가 흐르는데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피로 맺는 언약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형태의 협약입니다. 두 당사자가 어떤 조약에 동의하고나서 피를 흘림으로써 그들의 협약을 확증합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사이에 맺은 언약은 양피를 베는 것(할례)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창세기 17:10-11).
피를 흘리는 것은 구약에서 없어서는 안될 것이었습니다. 할례는 바로 협약의 상징,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언약을 맺었다는 표징이었습니다. 엘샤다이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을 넘치도록 축복하시기로 협약을 맺으셨고 그 댓가로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계속해서 하나님께 대적하여 죄를 지었고 언약을 지키는데 실패했습니다. 다시 한번 피를 흘리는 것이 해결책이었습니다. 레위지파의 제사장 직분이 제도화되었고 죄를 가릴 수 있도록 피를 흘리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피흘림이 없은 즉 사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2).
제단에 양을 잡아 드림으로써, 제사장들은 일년동안의 죄사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이러한 제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유일하게 죄와 의로움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수세기가 지난 후에, 가장 결정적인 피를 흘리는 제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로다 (요한복음 1:29)"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제단위에 드려진 희생양이셨습니다. 그는 최후의 레위기식 제사의 희생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는 한 점의 죄까지도 영원히 씻어 버리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죄를 가릴 뿐이었지만 신약의 제사, 곧 흠 한 점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죄를 완전히 제거하였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습니다? (히브리서 9:12). 그의 희생를 받아들임으로써,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마치 그전에 죄를 지은 적이 없는 정결하고 흠 없는 자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위해 죽으셨고, 동시에 죄로 인한 결과를 제거하셨습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을 때, 파괴의 힘, 즉 죽음, 질병, 가난, 두려움이 같이 들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치룬 값은 인생의 모든 영역 즉, 영적, 정신적, 육체적, 재정적, 그리고 사회적인 영역을 총망라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속은 완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3:13-14).
"율법의 저주"는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한 사람들에게 따르는 형벌이었습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죄없는 삶을 사셨습니지만 마치 죄를 짓고 율법을 어긴 사람처럼 자신을 내어 드려 저주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인류의 죄에 대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라디아서 3:29).
신명기 28장에 축복과 저주에 대한 언약 조항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명기 28: 1-2).
그리고 나서 3-14절에, 율법의 모든 축복,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번영을 묘사하며 나열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저주"는 15절부터 시작합니다. 여기서 인류가 받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저주를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아픔, 질병, 가난, 결핍, 고통 등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61절은 "또 율법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율법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는 인간이 알고 있는 모든 질병과 재앙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는 아픔과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바로 우리가 그의 희생을 우리의 것 처럼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축복이 임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약속의 유업을 상속받을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3장 11-13절에 나오는 여인이 구원을 받았을 때 어떻게 병고침이 이러한 축복의 일부인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십 팔년 동안을 귀신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안수하시매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 여인을 고치셨기 때문에 회당의 지도자들은 분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그러면 십 팔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 (누가복음 13:15-16).
아브라함 언약은 수년동안 효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건강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들은 종교적 전통에 너무 빠져있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의 기준에 훨씬 못미치는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고, 이 때문에 그녀는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한 가지 이유로 그녀를 18년 동안 묶어둘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 여인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해 무지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브라함 언약 아래 있는 선지자로서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는 바로 그 언약에 의해 사람들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셨고 이 여인은 그 갇힌 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녀에게 필요로 했던 것은 오로지 누군가 그녀에게 아브라함의 딸로서 그녀에게 속한 권리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말해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고 놓임을 받았다면, 바로 같은 근거로 당신도 놓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의 희생을 당신의 것으로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당신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그 약속의 유업을 물려 받을 사람입니다. 그 약속에는 육체적 질병의 고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탄은 당신의 몸에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을 가할 권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 예수님과 공동 상속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으며 그 언약으로 인한 권리중의 하나는 건강한 육체를 향유 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나는 나의 백성이 건강하길 원한다 (I Want My People Well)
얼마 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병고침에 대한 주제와 믿는 자들이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그 때 그 말씀이 너무나 강력해서 내 영혼에 몇 주 동안이나 메아리쳤습니다. 하나님은 "나는 나의 백성이 건강하길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들이 병고침을 받고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 3서 2).
예수님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세상에 영원히 영향을 미칠 명령을 선포하셨습니다. 병고침은 그 중의 하나였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오늘날의 신자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에게 그의 이름으로 나갈 것을 명령하셨고 중대한 임무중의 하나는 믿는 자들이 병든 자들에게 손을 얻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손을 얻는 그 순간, 예수님께서 교회를 질병에 대적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병고침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존재하시고 모든 영적 수준에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려는 그 분의 뜻에 대한 물리적 증거입니다.
어떤 두 사람도 영적으로 같은 상태에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영적 성장의 수준이 다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영적인 삶을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1. 세상- 죄인들, 믿지 않는 자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크리스천들-영적으로 갓난 아이들, 마음속에 삶에서 능력 있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들,
3. 성숙한 크리스천들- 영적인 성인들, 하나님 말씀에 능숙한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개개인이 영적 성장의 어떤 수준에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의 필요에 대하여 사역하게 끔 고안되어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3절에, 바울은 교회안에 영적 성숙의 두 수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바울은 고린도에 있던 신자들에게 더 깊은 영적인 것들에 대해서 가르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들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의 갓난 아이들이었고 바울은 젖먹이에게 적을 먹이듯 그들에게 젖을 먹어야 했습니다. 히브리서 5장 13절은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절은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삶의 주로 삼았을 때, 당신은 거듭났습니다 (요한일서 5:1).
베드로 전서 1장 23절에 의하면 당신의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거듭나는 순간에 당신은 하나님 가족의 일원이 되었고 갓난 아기처럼 영적인 일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이후로 당신이 만약 말씀의 젖을 먹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전히 영적인 갓난 아이입니다. 말씀을 모르면서 믿음으로 능숙히 살 수 있다고 기대하지 마십시오.
갓난 아이인 것이 죄는 아니며 육적인 생각을 하는 크리스천인 것이 치욕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갓난 아이가 하루 밤 사이에 성인으로 자라지 못하듯이, 새신자가 몇 일 지났다고 성숙한 크리스천처럼 행동한다고 기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새신자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성숙으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지위를 깨닫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님과 함께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따라서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리와 특권을 부여 받았으며 이러한 권리 중의 하나가 건강과 병고침 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뜻은 나의 병을 고치는 것이다 라는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만 당신은 병고침에 대하여 완전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낫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 안에서 자라서 하나님의 완전한 뜻 안에서 걷기를 원하십니다. 이 진리를 받아 들여 진리의 현실 안에서 살 것인지 말 것인지는 바로 당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지금 이 진리를 받아들여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기를 권하는 바입니다. 병이 나아 건강한 모습의 당신을 그려보십시오. 병고침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에 두고 그 말씀을 묵상하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입술로 그분의 말씀을 담대하게 말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그 분이 명하여 보낸 일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이사야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