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우리의 적(사단)
우리의 적들, 그 중에 적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사단에 대해서 살펴보기 바란다. 여기서는 귀신들과 사단을 번갈아 쓸 수도 있는데, 엄격하게 따지면 사단 혹은 마귀는 우두머리이고 귀신들은 그 졸개들이다.
사단은 피조물이다.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것은 사단은 피조물이라는 사실이다. 사단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지도 않고 또한 사단은 전지전능(全知全能)하지도 않다. 하나님만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시고, 하나님만이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하나님만이 창조주(創造主)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한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단은 절대로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단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악한자로 비춰지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악한자로 비춰질지언정,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선하신 신이라면 자신은 악한 신으로 비춰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지음 받은 피조물(被造物)에 불과하다.
사단의 기원에 대해서 알만한 구절들이 구약성경에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구약성경에는 신약성경만큼 사단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그러나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드러나듯이 사단은 신약에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가장 밝히 드러났다.
1. 구약성경에 다타난 사단의 기원들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 28:12-17)
14절의 ‘그룹’은 하나님의 주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 혹은 스랍들이다. 또 12절에 ‘두로 왕’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두로 왕은 이러한 자가 아니다. 이것은 그 당시 두로 왕을 뒤에서 조종하며 역사했던 사단을 묘사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신학자들은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사단의 기원은 천사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천사들이 지금은 우리 인간보다 그 능력이나 영적인 여러 면에서 훨씬 한 단계 위다. 성경은 그가 ‘모든 길’에 ‘완전’하였다고 말한다. ‘완전하더니’라는 말을 영어성경에는 ‘완전함의 모델 이었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와 같이 사단은 피조물이되 타락하기 전까지는 매우 아름다운 피조물로써 특별히 그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완전한 자로 창조된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완전하다’라는 말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를 말한다. 왜냐면 하나님만 완전하시니까.)
교만이 타락의 근본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피조물이 그러면 어떻게 해서 사단이 되었는가?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겔28:16-17)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완전한 피조물, 완전한 아름다움의 모델이었던 자가 사단이 된 이유는 그 근본이 교만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볼 수 있다.
교만은 타락의 선봉이다.(잠16:18) 교만으로 인해서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자기의 지혜를 보기 시작하고,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 교만으로 인하여 음부에 떨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서 쫓겨나게 되었다.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겔 28:15)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사 14:12-15)
죄의 가장 기초적인 것은 교만이다. 모든 죄는 교만으로부터 시작한다. 교만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날도 사람들에게 가장 근본적인 죄는 교만이요 가장 궁극적인 죄도 교만이다. 교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은혜가운데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열심히 노력을 다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해 보면 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한 핵심이 겸손이다. 우리가 성령의 비추심으로 내 속에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기에 그래서 내 스스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고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필요해서 애통하는 심령으로 주님을 찾는 그 겸손한 심령이 거룩한 삶의 시초이다.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에는 교만이 있다.
교만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율법주의 신앙 뒤에는 사단이 있다.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요8:44)고 하셨다. 이들은 당시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하는 자들이고, 누구보다 철저히 종교생활 한 자들이다. 누구보다 철저히 헌금을 드리고, 누구보다 철저히 구제한 자들이고, 누구보다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한 자들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자타가 인정하는 성경박사들로. 누구보다 더 성경을 많이 읽고 연구한 자들이다. 그들은 행위로 완벽한 자라고 할 만큼 종교생활한 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말씀하셨고, 또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요5:37-38)고 하셨다.
왜 그런지 무엇이 문제인지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가? 그들은 자기들의 노력을 신뢰했다. 자기를 신뢰하는 것이 교만이다. 그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자기들의 기준에 비춰서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은 더 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무시하고 멸시했다. 그들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행실들만 중요시 여겼지 그 중심은 하나님 앞에서 통회함으로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그 겸손한 마음이 없었다. 왜 비춰지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만한 마음이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이처럼 율법주의 신앙의 핵심은 교만이고, 교만은 자기의 의를 신뢰하는 것이다.
겸손한 삶은 주님을 보는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의 방법은 겸손이다. 교만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 없이도 나 혼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교만의 가장 기초의 핵심이고, 오늘날도 사단은 바로 그 교만을 통해서 역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것이 아니라 주님을 보아야 한다. 때로는 나의 약함을 보는 것도 또 다른 포장된 교만의 모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님 저는 못해요. 주님 저는 할 수 없어요. 물론 우리가 그렇게 자기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무는 것은 교만이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한 모습에서 눈을 들어서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것이 겸손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보면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은 그 중심을 보면 매우 교만할 수 있다.
겸손은 90도로 고개를 숙여 절하는 것이 아니다. 겸손의 정의는 나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어떠한 선한 것도 없기 때문에 내 자신에게서 눈을 떼어 주님을 보는 것이다. 모든 것에 주님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겸손이다. 은사가 여러분에게 좀 나타난다고 여러분 자신을 보면 그것은 루시퍼(사단)같이 된다. 하나님께서 아름다움의 모델로 지으셨음에도 자기의 아름다움을 보니까 루시퍼는 타락했다. 여러분에게 은사를 주신 분이 누구시며, 은사가 누구 것인가? 하나님이 주셔서 나타나게 하셨는데, 은사의 나타남을 보고 자기를 보면 넘어진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개인적인 야망)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개인적인 야망)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3:14-17)
우리가 흔히 ‘지혜롭게 해내지’ 이렇게 말하는 지혜가 많은 경우에 사단의 지혜일 수 있다. 그래서 이와 같이 교만으로 인하여 타락하게 되었다. 사단은 지혜로운 자였다. 그 지혜를 가지고 타락해서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래서 오늘날도 사단은 수없이 많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 대적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세상의 철학이나, 세상 지혜를 가지고 대적하기도 하고, 또한 우리가 소위 지혜롭다고 하는 것들을 통해서도 역사한다. 왜냐면 지혜는 다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고보서에 보면 두 가지 지혜가 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약3:14) 여기 ‘다툼’이라는 말은 N.I.V 성경은 ‘개인적인 야망이 있으면’이라고 번역한다. 한마디로 자기를 보는 것이다. 왜 시기 하는가? 교만하기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그 뒤에 모든 죄의 근본은 교만이다. 반대로 거룩함의 근본은 겸손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런 글을 썼다. ‘겸손이 거룩함을 앞선다.’ 이 말을 해석하면, 겸손 전에 반드시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미혹한다.
사단이 교만으로 인해 타락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하늘에서 쫓겨나서 이 땅에 내려오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사단은 믿는 자들을 대적한다. 그 전쟁에 대해서 요한계시록에서 잘 말해주고 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12:7-9)
우선 사단은 하나님의 상대가 아니라 천사장 미가엘의 상대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사단을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했다. 사단이 이 땅에 쫓겨 내려와 하와를 시험하고 그래서 아담과 하와로 죄를 짓게 하고, 그래서 죄가 인류 가운데 들어오게 됨으로써 사단이 그 죄를 통해서 인류를 다스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이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는데, 아담이 사단의 말을 듣고 죄를 범함으로 그 권세가 합법적으로 사단에게 넘어갔다. 그래서 사단은 세상의 부와 명예를 가지고 믿는 사람들을 시험한다. 예수님을 시험할 때, 사단이 온 천하만국의 영화를 보여주면서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9)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눅4:6)고 유혹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사단이 그것을 줄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을 반박하지 않았다. 왜냐면 실제로 줄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사단은 줄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온 천하를 꾀는 자, 온 천하를 잘못된 길로 인도해가는 자, 실제로 모든 안믿는 자들이 사단의 지배아래 있다.
미국에는 심지어 사탄주의자들이 있다. 그래서 록그룹, 록가수,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사단과 계약을 맺는다고 한다. 사탄이 말하기를 ‘나는 너에게 명성과 부를 주겠다. 그대신 너는 나를 노래하는 자가 되라’ 그래서 그렇게 계약을 맺는 자들도 있고, 또한 더 나아가서 사탄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예배하는 사탄교회도 있다. 또 공공연하게 사탄교회를 후원하는 기업들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러한 자들만 사단의 지배 가운데, 사단의 미혹 가운데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혀 사단을 인정하지도 않고 귀신의 세력들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할지라도 세상의 부와 명예를 쫓아서 그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사탄의 지배 가운데 있는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사단이 대적하는 방법과 이기는 방법
요한계시록 12장에 보면 사단이 우리를 대적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고, 또한 사단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있다. 사단은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다. 욥을 참소했던 것처럼 지금도 성도들을 끊임없이 참소한다. 처음에는 여러분이 죄를 짓도록 유혹하고, 죄를 짓고 나면 그 순간부터 여러분을 참소한다. ‘네가 무슨 목사냐! 어떻게 뻔뻔스럽게 성도들 앞에서 그렇게 설교할 수 있어! 네가 무슨 집사냐! 너는 얘들한테 착하게 살라고 말하면서 너는 그런 죄를 짓고 그렇게 할 수가 있어!’ 이렇게 참소한다.
물론 우리는 다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린양의 피로 이길 수 있다. 그리고 넘어진 자신을 바라보면 진다. 이기는 방법은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의 선함을 바라보면 진다. ‘내가 목사로써 이것밖에 안돼!’ 물론 그것밖에 안되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 아직 몰랐다면 여러분은 아직도 멀었다. 집사님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분이 목사님이 아니라 그 보다 더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은 그것밖에 안된다는 것을 성령님께 비춰달라고 기도하고 빨리 인정해야 한다. 아니면 여러분은 계속 넘어지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게 될 것이다. 우리 속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어떤 선한 것도 없다.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매우 놀라운 승리의 비결을 공짜로 가르쳐드리는 것이다. 자신이 그것밖에 안되는 것을 빨리 보아야 코너를 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은 시작도 안된 것이다. “주님 저는 그것밖에 안됩니다. 그게 제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제 제 자신의 약함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저는 심지어 제가 이기려고 하는 노력까지도 포기하고, 저를 지키시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눈이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승리하는 비결이다. 주님 앞에서 자신의 의가 깨지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줄 아는가? 내게서 눈을 떼서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자기 의가 깨지는 것이다.
그럼 꾀는 자는 어떻게 이기는가?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새물결선교회가 이단이라고 말했다고 하자. 그래서 여러분이 그 말을 듣고 생각하기를 다음부터 안와야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면, 오지 않아도 된다. 사단은 별소리를 다가지고 꾈 것이다. 참고로 여러분이 어린아이 신앙일수록 이리저리 요동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빨리 자라야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3-14)
진리에 서야 승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냥 배워가지고 이론적으로 그대로 전하면 별로 파워가 없다. 왜 문자는 우리를 죽이는 것이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배운 진리를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서 여러분이 그 삶을 경험하면 그때는 전혀 다르다. 그러기 때문에 여러분이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어떤 분은 말하기를 ‘그거야 당연한 거지, 기초적인 것을 가지고 얘기하고 있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똑같은 얘기를 성령님이 비춰주셔서 자기 속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어떤 선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스스로 서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그 삶을 실제로 살면서 전하면 그것은 대단한 파워를 가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 살아져서 그 열매를 나누게 될 때, 사단의 거짓말을 파괴하는 능력이 있다. 여러분이 진리 가운데 서야 누가 뭐라고 해도 여러분은 진리로 대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론적으로 듣고 전하는 것은 힘이 없다. 이 삶이 여러분에게 살아져야 된다. 그것이 배운다는 말이다.
성경에서 배운다는 말은 이론적으로 배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30절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예수님의 통치를 실제적으로 경험하면서 그 삶을 살 때, 즉 하나라도 주님의 길을 경험하면서 주님을 따라가고 배우게 될 때 능력이 있다. 이것이 매우 강력한 능력을 나타내서 미혹하는 사단의 궤계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진리 가운데 교회와 개인이 선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강력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고 성도가 될 것이다.
사단은 거짓말쟁이다.
사단은 당장이라도 우리를 삼킬 것처럼 보여질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기억할 것은 사단은 거짓말이 많다는 것이다. 뻥이 세다. 사단을 이기는 길은 생명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기독도가 천성을 향해 가는데 사자 두 마리가 길옆에 웅크리고 있으면서, 금방이라도 기독도를 삼킬 것 같다. 그래서 기독도가 두려워서 그 길을 지나가지 못한다. 그때 음성이 들리기를 그 사자는 묶여 있으니까 염려하지 말고 똑바로 앞만 바라보고 나가라고 한다. 사자는 바로 사단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만 똑바로 쳐다보고 가면 승리한다.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라도 가는 것, 그것이 이기는 길이다. 만약에 나도 사람들의 말을 무서워했으면 지금의 새물결선교회는 없을 것이다.
아담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산 사람들은 그 당시 사람들한테 이단이니, 삼단이니, 귀신들렸다느니, 온갖 핍박과 욕을 안먹은 사람이 없다. 노아를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은 뭐라고 얘기했을까? 아브라함과 모세,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신약이건 구약이건 그 당시 ‘제도화된 종교’ 즉,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보다는 이론적인 종교적인 모양만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교회사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마틴 루터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진리를 외쳤다고 해서 그 당시 제도화된 종교(천주교)에서 이단이라고 했고, 그를 사단의 자식이라고 했다. 여러분이 이해할 것은 하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말씀에 기초해서 따라가는 것인데, 사단은 그런 성도들을 금방 삼킬 것처럼 위협한다. 한방에 끝내버릴 것처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위협한다. 그때 우리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사자가 묶여져 있기 때문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할 수 없다. 사단은 처음에 천사로 시작했으나 교만으로 타락했고, 그 후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을 대적하고 있다.
2. 사단이 하는 일들
첫째, 인간의 타락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하면 사단은 성도들의 영원한 적이요 모든 인류의 적이다. 처음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눈을 가려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대적한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대적하는 그 일을 한다.
둘째, 구약성경에는 감춰져 있다.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몇몇 구절들을 통해 그 기원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셋째, 예수님이 오심으로 사단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사단이 어떠한 방법으로 역사하는지 예수님을 통해서 다 드러나게 되어있다. 그래서 사단이 종교의 영으로 역사하는 율법주의 신앙의 정체가 드러나고, 어떻게 사람들을 부와 명예와 세상사랑으로 유혹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참소하고 대적하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미혹하는지, 이런 것들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방법들도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넷째, 사단은 전 세계에 그의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것들이 귀신들이다.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고, 물질문명화 되면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한다. 사단의 고도의 전략이다. 그러나 분명히 귀신은 존재한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마귀(사단)와 귀신이 있다고 말씀한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믿는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사역을 해보면 귀신들이 쫓겨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또 귀신이 쫓겨남으로 귀신에게 억압된 사람들이 그 억압된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자유케 되어지고 치유되는 것을 많이 본다. 못 보았으면 앞으로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다섯째, 사단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패배했고, 그의 마지막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다.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사단은 불 못 가운데 떨어져서 거기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사실 지옥은 사단과 그의 부하들을 위해서 예비 된 곳이다. 사람들이 그 사단에 미혹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살 때 그곳으로 떨어지는 것이지 하나님이 절대로 어떤 사람을 미워해서 지옥에 보내지 않으신다. 몇 번을 말해도 분이 풀리지 않는 말은 지옥은 사단을 위해서 예비 된 곳이라는 것이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또한 병든 자를 고치고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단이 완전히 패망할 때까지 그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중. 고등부 학생들을 생각하면 1장에서 얘기했던 꿈 얘기가 부담이 된다. 청소년들이 온갖 죄로 팔려 가는데, 이 시대에 아무도 주님을 위해서 저들에게 자신을 거는 사람이 없는, 그것이 사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러분들이 새물결선교회에 오시는 이유는 은혜를 받으러 왔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은혜 받기 위한 목적이 다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많은 분들은 은혜 받고 돌아가서 주님의 일하려고 하는 마음일 것이다. 다 알다시피 새물결선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회복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져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모두는 마약, 음란, 알콜, 폭력, 강도, 도둑질, 등 온갖 죄로 팔려가면서 신음하는 영혼들을 예수님을 대신해서 그들에게 걸라고 부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능력전도’ 책에 보면 ‘제임스 칼라스’가 나오는데, 그분이 쓴 ‘진짜 사탄이란?’ 책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예수님은 신적 침입자다. 바로 그 관점에서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펼쳐진다. 예수님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사탄을 멸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원수의 능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신다.’ 우리는 영적전쟁을 하되 거꾸로 생각하기 쉽다. 많은 사람들이 사단은 공격을 하고 우리는 방어하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래서 사단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사단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사단이 지배하고 있던 그곳에 예수님이 신적 공수부대 요원으로 침투하셔서 그곳을 거점삼고 빛으로 어두움의 세력들을 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시켜가는 것이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부름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실은 사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능력을 가지고 바로 그 사단의 영토를 침입하여 공격함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누가복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는 장면이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9:1-2)
사단이 우리들을 시험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미혹하고 대적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사단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셨듯이 이제는 우리들로 하여금 그 일을 하도록 부르신다. 오늘날 우리가 이 영적전쟁을 싸우되 우리가 공격을 피해서 도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단의 세력을 공격하는 편에 있다.
그럼 어떻게 공격하는 것인가? 땅을 이리 저리 상하좌우로 다니면서 사단을 묶는 것인가? 그것이 사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단의 미혹과 유혹으로 인하여 온갖 죄의 노예로 팔려 사망으로 이끌려갈 때, 그곳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그들을 죄의 노예에서 예수께로 인도하고,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을 주님 앞에서 새롭게 하고, 주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섬김을 통해서 사단의 나라는 점점 축소되고 주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된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침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하셨는데, 이 번역은 덜 실감나게 번역한 것이다. 그래서 N.I.V 성경을 보면 “forcefully(힘이 있는 강제적인) advancing(나아가게 하다. 진척시키다.)”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은 “매우 강력하게 확장되어 가고 있다” 는 말이다. 그러므로 침노하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운데 들어가서 주님의 놀라운 사역을 위해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예수 믿고 천국만 가도록 부르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나라의 군대로 부르셨다. 사단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들을 죄로 억압하고 지옥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단의 일을 멸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들을 되찾으시는 일을 시작하셨는데, 바로 우리가 그 일의 결과로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이 이 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될 것이다. 여러분들이 새물결선교회에 온 목적도 그 일 때문이다. 여러분은 단순히 은혜 받기 위해서 왔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바로 이 일을 감당하도록 여러분을 회복시키기 원하신다. 왜 은사들을 사모하는가?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은사가 필요한 것이다. 왜 예언이 필요한가? 궁극적으로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예언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권세를 주시고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가 그 권세와 능력을 힘입어서 이 일을 감당해야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로 인하여 사단의 미혹과 유혹, 억압에서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역을 하셨듯이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사역을 주님의 능력으로 감당해야 할 때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