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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제 4장 신자들도 귀신 들릴 수 있는가?2025-01-17 19:48
작성자 Level 10
제 4장  신자들도 귀신 들릴 수 있는가?

기독교인들도 귀신 들릴 수 있는가? 우선 성경에는 어느 쪽으로도 분명하게 말씀해주고 있지 않다. 이 말은 성경에는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귀신 들릴 수 없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주는 구절도 없고, 반대로 기독교인들도 귀신 들릴 수 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해주는 구절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떤 구절들은 기독교인들은 귀신 들릴 수 없다라고 암시된 것 같은 구절들도 있고, 또 어떤 구절들은 기독교인들도 귀신 들릴 수 있다 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는 구절들은 있다. 그러나 정확하고 분명하게 어디 몇 장 몇 절을 보라 거기에 보면 분명하게 기독교인들도 귀신들릴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혹은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귀신들릴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라고 언급하는 구절은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을 가장 잘 다루고 있는 책이 프래드릭 리커슨이 쓴 “기독교인들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라는 책이다. 그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한 분이다. 그 책 전체가 찬반논쟁이 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분도 그 책을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암시될 수 있는 구절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서 전혀 다를 수 있다. 특별히 암시 된다고 하기 보다는 기독교인들은 귀신들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많은 분들이 인용하는 구절들이 있다.

1.예수 믿는 사람은 귀신들릴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구절들

야고보서 4장 7절, 로마서 8장 37절-39절, 요한일서 4장 4절, 이러한 구절들이 기독교인들은 절대로 귀신들릴 수 없다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나 지도자들이 인용하는 구절들이다.

첫째, 야고보서 4장 7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봐라, 마귀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피한다고 되어있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귀신들릴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

둘째, 로마서 8장 37절-39절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높음, 깊음도 영적인 세력을 가리킨다고 말하는데, 성경에 천사들이나 귀신들이나 그 어떠한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말한다.

셋째, 요한일서 4장 4절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여기에 ‘너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저희’는 어두움의 세력들이다. 너희 안에 계신 이(예수)가 세상에 있는 이(사단)보다 크심이라. 그러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능히 어두움의 세력들을 이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귀신들릴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 구절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귀신들릴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구절들은 아니다. 이 구절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능력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는 성령이 계시는데 어떻게 귀신이 그 속에 들어올 수 있겠느냐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한다면 이 세상에 성령님이 계신가? 안계신가? 성령님은 무소부재하시기 때문에 어디나 계신다. 그럼 귀신은 이 세상에 있는가? 없는가? 귀신은 무소부재하지는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귀신이 들어올 수 없다. 그 얘기는 아니다.

2. 예수 믿는 사람도 귀신 들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구절들

어떤 사람들은 위의 구절들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귀신 들릴 수 없다고 말하는데, 또 다른 구절들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귀신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라는 것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구절들이 있다.

첫째, 베드로전서 5장 8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이 말은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한 말이 아니고, 믿는 성도들에게 한 말이다.

T.V 프로그램 중에 ‘동물의 왕국’이 나오는데, 동물의 세계에서는 사자가 왕이다. 그런데 성경은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사냥하는 것을 비유로 들어 마귀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냥하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며 찾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먹이 사냥하듯이 마귀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냥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앞에서 읽은 구절들을 볼 때 그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사자가 다른 짐승들을 사냥하듯이 마귀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사냥할 수 있다는 그것이 만약에 귀신들림의 의미라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앞에 야고보서 4장 7절, 로마서 8장 37절-39절, 요한일서 4장 4절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기 때문에 그러한 의미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분들이 이러한 구절들을 대면서 분명히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분들은 예수 믿는 사람이 귀신들릴 수 있다 없다 그것에 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분들이 많을 수 있다.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그래, 사자가 짐승을 사냥하듯이 사단이 나를 사냥할 수 있어, 이렇게 두려워할 분이 있을지 모르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이 말의 의미는 성도가 넘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사단이 성도들을 하나님의 길에서 넘어뜨리려고 사냥하듯 힘쓴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깨어있는 것이 필요하고, 근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경고하는 말씀이다. 만약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예수 믿기 때문에 귀신에 의해서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면 이런 구절이 필요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그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놓고 있다. 그래서 주님도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실제 우리의 삶에서 절실하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둘째, 디모데전서 3장 7절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여기에 보면 역시 믿는 사람들을 경고한 내용이다. 특별히 감독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감독은 오늘날 목회자들이다. 목회자들에게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했다. 목회자들이 마귀의 올무에 빠질 염려가 없으면 이 말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목회자들이 마귀의 올무에 빠질 수 있다면,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마디로 모든 성도들이 마귀의 올무에 빠질 수 있다. 올무라는 말은 영어로는 trap인데 덫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짐승을 잡을 때 덫을 놓듯이 이 말의 참의미는 마귀 혹은 귀신의 세력들이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 많은 미혹과 유혹의 덫들을 놓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서 경성하지 않으면 그 덫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여러분이 어떠한 죄를 지속적으로 지을 때, 그것은 귀신들에게 문열어 놓고 ‘제발 저를 억압해 주세요.’ 라고 초청하는 것과 똑같다. 그러면 여러분이 그 부분에 철저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그 억압을 끊기 전에는 귀신들이 합법적으로 여러분에게 지속적인 억압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점하는 사람들 얘기하는 바에 의하면 요즘 권사, 집사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웃지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죄 중에서 특별히 사술, 사교, 우상숭배와 관련된 죄, 성적인 범죄, 상대방을 미워하는 죄, 이러한 것들은 금방 즉각적으로 덫에 걸린다.

셋째, 에베소서 4장 26절-27절,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분을 내면 마귀가 틈을 탄다. 모든 죄가 그렇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가장 우리를 억압하는 대표적인 죄 중에 하나가 미워하는 것, 상대방에 대해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분노의 마음을 가지는 것인데, 그러면 마귀가 틈을 탄다고 그랬다. 여기 틈이라는 말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예를 들겠다. 돌산에서 바위를 깰 때, 깊이 구멍을 뚫고 다이나마이트로 폭발시키면 커다란 바위들이 떨어져 나온다. 그런 다음에 커다란 바위들을 원하는 크기로 쪼개는데, 기술자들이 그 바위의 결을 살펴보고 난 다음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정과 망치로 작은 틈을 여러 개 만든다. 그리고 그 속에 조그마한 쐐기를 넣고 망치로 치는데, 처음에는 충격으로 쐐기가 튕겨 나가지 않게 면이나 짚을 넣고 쐐기를 끼워서 골고루 살살 치다가 금이 원하는 곳으로 간다고 생각되면 세게 두드린다. 그러면 그 커다란 바위가 신기하게 작은 틈 때문에 쪼개지는데, 이것에 비유하는 말이다.

그런데 분을 품게 되면 마귀에게 틈을 내주게 된다고 그랬는데, 영어 성경에 보면 “foothold”라고 했다. 이 말은 발판이라는 말인데, 분을 품게 되면 우리 속에 마귀의 억압하는 발판이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러한 구절들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도 귀신들에 의해서 혹은 마귀의 세력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3. 경험적으로 보면 너무나 명백하다.

신학적으로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귀신들릴 수 있다 혹은 없다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구절들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경험적으로 보면 너무나 명백하다. 귀신들린 자들을 자유케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얘기가 때로는 목회자 속에 때로는 장로들에게 때로는 집사들에게 때로는 일반 성도들에게, 그야말로 교회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때로는 귀신들이 나타나서 말하고,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을 통치하고 하는 부분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경우는 겉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 사람 내부에는 약점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들 중에서 음란 비디오나 비슷한 것들에 억압된 사람도 적지 않고, 성도들 중에는 더 말할 것 없이 많을 것이다. 약물 중독도 적지 않고, 성적인 범죄에 억압된 사람도 적지 않고, 그래서 경험적으로 보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게 볼 수 있다.

4. 언어의 문제

그러면 기독교인들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그렇다 라는 것이 정답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더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 언어의 문제다. 많은 신학적인 논쟁들이 과거에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에서 논쟁들이 시작되고 했는데, 요즈음은 미국에서 많이 시작된다. 특별히 실천적인 신학부분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귀신들림’ 이 부분에 대해서 논쟁이 시작된 것은 언어의 문제에서 한가지가 기인된다. 왜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는 성경이 개혁성경 이듯이 미국에서는 가장 많이 쓰는 성경이 킹제임스다. 그런데 킹제임스 성경에 보면 귀신들림을 뭐라고 번역했냐면, ‘demon possessed’라고 했다. 거기에서부터 다른 많은 영어성경들이 ‘귀신들리다’를 ‘possessed by a demon’이라고 했다. ‘possessed’ 라는 말의 의미는 ‘소유하다’는 말이다. 우리말에는 ‘귀신들리다’로 번역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귀신 소유, 또는 귀신의 소유’란 말이다.

그러니까 반박하는 사람들은 ‘성경에 보면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떠한 귀신의 세력들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너희를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는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빼앗아서 귀신의 소유를 삼을 수 있겠느냐 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라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문제 중의 하나는 언어의 문제이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 나오는 ‘귀신들리다’ 이 말은 영어성경 번역처럼 ‘귀신이 소유하다’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다. 원어에는 소유의 개념이 전혀 없다. 헬라어에서 귀신은 daimonivo이라는 단어인데 영어의 demon이라는 말은 원래 헬라어에서 나온 것이다. 헬라어에서 ‘귀신 들리다’라는 말은 daimonizovmen라는 단어이다. 이 말은 명사에 동사형이다. 그러니까 daimonivo하면 귀신인데,  daimonizovmen하면 명사에 동사형으로 ‘귀신 들리다’의 뜻이다. 우리말에 ‘귀신 들리다’를 다른 말로하면 ‘귀신 지피다’인데 ‘지피다’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귀신의 ‘소유’라는 의미가 전혀 아니고, 굳이 번역하자면 ‘귀신의 영향을 받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귀신 들리다’ 이 말은 ‘귀신의 영향을 받다’는 말이다. 우리 말 성경에도 ‘귀신들리다’로 번역되었는데, 그 근원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것 중에 귀신들이 속에 들어가서 그 속에 귀신이 거하는, 다시 말하면 무당들이 신들렸다 또는 신 내렸다, 귀신이 속에 들어갔다, 그런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귀신 들리다’라는 얘기는 우리 문화적인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헬라어의 단어는 귀신이 속에 들어갔다 그런 말은 아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를 치유해 주실 때, 많은 귀신들이 그 속에서 떠나갔다. 헬라어 단어가 ejk라는 단어인데 ejk 단어는 ‘-안에서 밖으로’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 속에서 귀신이 밖으로 쫓겨났다. 이러한 의미를 보면서 ‘신들리다’처럼 ‘귀신들리다’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다’ 이렇게 번역한 것 같은데, ‘귀신들리다’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귀신의 영향을 받다’ 그런 뜻이다. 그래서 귀신의 영향을 받되 심한 경우에는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서 지배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 성경에 있고, 오늘날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치는 것만 귀신 들린 것이 아니고, 어떠한 모양으로건 사람에게 귀신이 억압하고, 때로는 지배하고, 병을 가져다주고, 그래서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귀신들리다’라고 번역된 의미이다. 이렇게 본다면 귀신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빼앗아다가 자기 소유를 삼을 수는 없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절대로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5. 사단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낮다.

예수님은 사단에 대해서 낮게 평가해서 말씀하시고 있다. 반면에 우리는 사단을 너무 높이 평가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다가도 이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서 벌벌 떤다. 찬송가 408장 3절 가사에 보면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맘이 조려서 못 가네” 이런 내용이 있다. 바다에 수영하러 갔다가 파도가 치니까 그 파도보고 들어가지 못하고 무서워 벌벌 떠는 것이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데도 이거 잘못해서 귀신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기도 받을 때도 하나님이 만지셔서 성령이 강하게 임하는데도 귀신이 들어 올까봐 염려한다.

가끔 이런 분들도 있다. 어느 집회에 가면 능력 받고 은사를 받는다는 소문을 듣고 그 집회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집회에 갔다가 혹시 귀신들리면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것이 뭔가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리기를 되도록이면 그런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로 갈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것이 귀신의 수법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되, 어떻게  믿느냐면 나를 지키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50만큼 된다면, 나를 속이고 잘못된 길로 인도할 수 있는 사단의 능력은 100라고 믿는 것이다. 말은 그렇게 안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사단의 능력을 과장해서 신뢰하면 절대로 하나님 은혜를 못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못나간다. 사단이 여러분을 가지고 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보고 맨 날 맘이 졸이고 무서워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바다로 못나가는 것이다. 물이 조금만 깊고 파도가 조금만 밀려와도 도망쳐 나오는 여러분의 모습이 보이는가?

여러분이 반드시 기억하실 것은 우리를 미혹하는 사단의 능력보다 우리를 지키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훨씬 크시다. 비교하는 것조차 불신이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4)

6. 동기가 잘못되면 잘못될 수 있다.
여러분의 동기가 나쁘면 잘못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자기보다 늦게 예수 믿은 사람이 먼저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뭘 물어보는데 자기는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기를 내가 저 사람보다 신앙생활 한지가 얼마인데, 내가 저 사람보다 이 교회에 먼저 오고, 내가 저 사람보다 몇 년 앞서 집사가 되고, 내가 옛날에 저 사람을 지도했는데, 그러면서 저 사람이 은혜 받았다면 자기는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교회에서 자기의 위신이 서고, 사람들에게 할말이 있지, 그래서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나에게 더 큰 은혜를 부어주세요. 그래야 내가 사람들에게 할말이 있잖아요.’ 이렇게 나가면 잘못될 수 있다. 왜냐면 사단이 그것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는 시기와 질투가 너희 속에 가득하면, 다시 말해 개인적인 야망이 가득하면 그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고 마귀적이고 세상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동기가 시기와 질투로 가득하면 마치 시몬처럼 된다. 성경은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한 마음을 사악한 자라고 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20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18)

그러나 여러분들이 진실로 하나님을 더 알기 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고, 하나님께 쓰임받기 원하여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마귀가 여러분을 시험하도록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사단, 즉 가장 악한 세력의 우두머리가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 급에 불과한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어느 모임에서 기도를 받는데 귀신이 나왔다면 그것은 그 모임이나 장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속에 귀신이 성령이 임하시니까 드러난 것뿐이다. 성경에 보아도 분명하다.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 1:23-27)

그 사람 속에서 귀신이 말한 것이다. 어쩌면 그 주위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본인 자신도 자기 속에 귀신이 있는 것을 몰랐던 것 같다. 언제까지! 주님이 그곳에 오시기 전까지는 몰랐다. 그리고 당시에는 귀신들린 사람은 회당에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을 보아도 그렀다.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고 속이기의 명수다. 그런 사단을 여러분이 이기는 길은 죄를 자백하는 것이다. 죄는 감추면 넘어진다. 그런데 죄를 드러내면 승리하게 되어있다. 사단(귀신)은 숨어서 역사하기 때문에 어두움이라고 한다. 반면에 예수님은 빛이시다. 그래서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주님께로 나온다고 하셨다.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3:21) 어둠은 빛이 오면 순식간에 사라지듯이 빛이신 주님이 임하니까 어두움인 귀신이 드러나고 물러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기억하셔야 할 것은 우리를 지키시는 예수님의 능력이 우리를 미혹하는 사단의 능력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크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마24: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

말세가 되면 사단이 표적과 기사들을 행하여 선택된 자라도 미혹하려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는 말세에 귀신들이 한다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거기 가지마.’ 이렇게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말세는 거짓 사도들도 거짓 선지자들도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거짓 표적과 기사들을 행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우리에게 그들의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은 말세가 되면 사단이 표적과 기사를 행함으로써 선택받은 자들까지도 미혹하려고 하니까 깨어 있으라고 하시는 것이지 사단이 자동적으로 선택받은 자들을 표적과 기사로 미혹할거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진실로 예수님 안에 거하고 우리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지키신다.

얼마 전에 대형기업이 부도났다. 어떤 사람들은 수억 원씩 날려서 수많은 가정들이 깨지고 자살하기도 하고 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참 어리석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예를 들면 천만 원을 맡기면 6개월 후면 삼천만원 만들어 준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들은 빚을 내서 까지 맡겼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디 정상적인 생각인가 도둑놈 심보지. 그런 도둑놈 심보가 있기 때문에 사기당하는 것이다. 사단에게 미혹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 속에 옳지 못한 잘못된 시기와 질투와 탐심과 거짓이 있기 때문에 미혹되는 것이지,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하기 원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고,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원하면 하나님이 지키신다. 성령님이 인도한다. 성령님이 빛을 비추신다. 열매를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주신다. 왜냐면 너희는 열매를 보고 판단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 말씀을 주신 것이다. 우리 중심이 주님 앞에서 옳으면 올바르게 판단하게 되어 있다. 영적인 분별력은 주님과의 친밀함과 매우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도둑놈 심보가 있고, 중심에 탐심이 가득하니까 사기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와 같이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면 귀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도 우리가 주님 안에 있으면 절대로 우리를 시험하지 못한다.

사단은 우리를 소유할 수 없으며, 아무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그러나 문제는 이거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얼마나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4단원 3과에 보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하는 내용이 있다.

“...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분이 주시는 최선의 것들을 하나라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 망쳐지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당신이 지뢰밭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그 때 그 지뢰밭에 지뢰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당신을 인도해 주겠다고 자청했다. 당신은 그 사람에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이 당신의 길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겠습니까?

당신이 어떻게 하려는지는 모르지만, 저라면 할 수 있는 한 그 사람에게 바싹 붙어서 따라갈 것이다. 저는 당연히 이리저리 방황하고 헤매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를 인도하는 지침이 되어 나의 생명을 지켜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쪽으로 가면 안돼요. 그 길은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살 것이다.”

주님이 당신에게 계명을 주실 때 그것은 당신을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최선을 보전하시기 위함이다. 그 분은 당신이 그것을 놓치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시는 것은 당신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을 자유케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에 모든 것을 다 아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여러분의 삶을 간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왜냐면 첫째, 그분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둘째는 예수 믿는 사람은 그분의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따르지 않으면 수많은 지뢰(미혹과 유혹)들이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넘어지게 되어 있다. 주님의 보호 가운데 있지 않으면 여러분은 귀신의 영향을 당연히 받을 수밖에 없다.

7. 구약 성경에도 신자들이 있었다.

기독교인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 바꿔 말해서 신자들도 귀신들릴 수 있는가? 구약성경에도 신자들이 있었다. 참고로 아브라함은 천국에 갔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16:23) 모세와 엘리야도 천국에 갔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마17:3) 구약시대는 기독교인들은 없었는지 몰라도 신자들은 있었다. 기독교란 용어는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부터 처음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의 삶을 보고 그리스도를 닮았다고 해서 크리스천(기독교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러니까 기독교라는 용어는 나중에 나왔지만, 구약에도 신자들은 있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사울 왕이다. 사울이라는 사람은 신자였다. 만약에 신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왜냐면 그에게 성령께서 능력으로 임하셨다. 그래서 그가 예언하고,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기름부으시되 다른 나라도 아닌 이스라엘 백성의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시고, 왕으로 기름부어 세우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이 능력으로 함께 하셨다. 그 사람이 신자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이 사울의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의 당한 일이 무엇이뇨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삼상10:10-11)

성령이 얼마나 강하게 임하였든지 사람들이 사울도 선지자 중에 하나냐고 얘기할 만큼 예언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다. 그런 사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귀신이 들렸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떠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떠났다는 말이다. 참고로 ‘어제의 기름부음’ ‘오늘의 기름부음’ ‘내일의 기름부음’을 시리즈로 살펴본 적이 있는데, 다 녹취해서 전에 소식지로도 나왔고 지금은 새물결 홈페이지 자료실 문서란에 조정열 목사님이 잘 정리해서 시리즈로 올려놨고, 또 테이프도 있으니까 구입해서 반드시 듣기 바란다. 너무 중요한 내용이다. 어떤 분은 내용이 너무 좋아서 그것을 책으로 내면 어떻겠느냐고 하시는 분도 있는데, 책으로 못내는 이유는 그 설교가 나 개인의 idea라기 보다는 주된 idea가 두 분의 영향을 받아서 참조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 내용에 동의했기 때문에 설교했다. 물론 책을 내면서 그 앞에 그런 내용을 쓸 수 있다. 왜냐면 그 내용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인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내용들을 듣고 늘 참고하기 바란다. 왜냐면 자칫 잘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은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의 기름부음은 떠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제의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속은 비고 모양만 남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우리 주위에 많다. 그분들을 비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너무나 많다. 과거에 하나님이 역사하셨던 기억을 좇아서 사람들은 여전히 모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는 오래전에 걷혔다. 그런데 의외로 많다. 과거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지금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는데, 하나님은 전혀 과거처럼 역사하시지 않는 일이 너무나 많이 있다. 기름부음 시리즈를 꼭 한번은 듣고, 보고 숙지하기 바란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16:14)

하나님의 신이 사울도 모르는 사이에 떠났다. 그가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어쩌면 하나님께 애통하며 부르짖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을 것이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가장 잘 응답하시는 기도 중에 하나가 뭐냐면 “하나님 제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가장 빨리 응답해 주신다고 한다. 사울도 그가 하나님의 임재가 자기에게서 떠난 것을 알았더라면 그도 그렇게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고치고자 하는 배우고자하는 자세를 가지고 묻는 것이 중요하다.

‘여호와의 부리신’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귀신들을 조종해서 보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의 참 의미는 귀신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말이다. 사단의 세력도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고, 하나님만이 전능하시고, 하나님만이 무소부재하신 분이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져 간다. 사단은 자기가 가진 모든 범위 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역사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까지도 아시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예를 들면, 사단은 자기의 모든 노력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게 하려고 사람들을 충동질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그런 의미에서 사단의 역사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 그래서 사단을 묶인 사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사울이 귀신 들렸다. 그래서 머리가 혼란스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을 통해서 찬양과 경배를 드릴 때 악신이 떠나갔다. 즉, 귀신의 영향력이 끊어지는 역사가 있었다. “하나님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취하여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삼상16:23)

찬양과 경배가 그래서 참 중요하다. 여러분이 새물결선교회 정기집회에 올 때, 무엇보다 중요한 자세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온다는 마음으로 오기 바란다. 오늘은 어떤 은혜를 받을까 그러지 말고, 항상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온다는 자세로 오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늘 말하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목적과 수단이 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여러분의 모든 것 되는 그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나오기 바란다.

여러분이 때로는 바빠서 기도하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짧은 시간이라도 예를 들어 저녁에 잠자리에 눕기 전에,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짧은 시간을 통해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얼마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지 모른다. 우리가 기도의 양을 채워야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예배당 안에 들어올 때, 내가 오늘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오기 바란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분의 하신 일을 찬양하고 그분을 기뻐하면, 놀라운 은혜들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것이다. 여러분이 그렇게 악쓰지 않아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바 되셨다.

8. 신약의 신자들의 예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마16:13-23)

첫째,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십자가를 말씀하셨다. 그 비밀을 아시면 여러분은 축복이다. 그랬더니 다음 순간에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단호함을 배워야 한다. 목회자들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잘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하나님 앞에 서야 된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가 인간적인 것만 생각하지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셨다.

그럼 베드로가 사단이 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바로 전에 똑같은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나님의 감동이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사단의 생각이다. 그럼 베드로는 사단이 그 생각을 준 것을 알았을까? 만약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도 중에 사도요. 제자 중에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도 인간적인 면에 치우치면 사단에게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사단의 영향을 금방 받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베드로 속에 귀신이 들어가서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 탐심 때문에 사단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둘째,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나온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분명히 예수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일찍 데려가셨다. 왜냐면 그들의 마음에 사단이 가득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1-3)

이와 같이 사단이 얼마든지 믿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깨어있지 않으면 그 누구도 사단의 영향력에서 면역될 수 없다.

마치는 말
귀신이 성도를 소유할 수는 없다. 그래서 귀신들림이라고 표현된 헬라어 단어는 ‘귀신의 영향을 받다’라고 번역해야 옳은 단어인데, 그런 의미에서는 귀신이 믿는 신자들에게도 얼마든지 악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벗어날 때나 반복적으로 죄를 지을 때, 귀신은 성도들에게 얼마든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더 하나님 말씀 가운데 굳게 서서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며, 깨어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모두 깨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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