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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영적 전이(spiritual transfer)2024-08-10 23:58
작성자 Level 10

영적 전이(spiritual transfer)

 

전이’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옮겨진다’, 즉 어떤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어떤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진다는 뜻이다. 일전에 TV에서 JMS교에 대해 보도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의 장면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축구경기를 하는 장면이었다. 교주 정명석이 공을 몰고 들어가면 주위 사람들이 다 피하고, 혼자 공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JMS의 회원 중 대다수가 대학생들과 소위 엘리트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사람의 이성과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영적인 것이 있다. 예를 들어 JMS에 빠지면 꿈, 감동 등을 통해 정명석이 메시야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성과 논리를 초월하는 영적인 체험을 하고 나면, 상식이하의 행동을 해도 그런 것까지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어둠의 영들이 역사하고 있는 영역에서 영적 전이에 사로잡히게 되면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 것조차도 그대로 믿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볼 때 통일교 여호와의증인 ,신천지등의 가르침이 상식으로 맞지 않는데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을 영적 전이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런 영적 전이가 일어나게 되는 데는 몇 가지 통로가 있다. 

 

영적전이가 이루어지는 첫 번째 통로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때 어떤 사람에 대해 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지 않고, 문제가 있으며, 도덕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이라는 분명한 판단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에 대해 감정적으로 열리게 되고, 호감을 느낀다든지, 우정을 갖게 되거나, 연인 사이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사람의 도덕성, 행동, 가치 등을 다 받아들이게 된다.

 

일단 감정이 개입되면 영적 전이가 쉽게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이 있다. 같은 종류, 같은 유형의 사람끼리 만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원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사람들은 ‘저 사람은 나와 마음이 통한다’라고 표현한다.

 

여기에 주의해야 할 영적인 원리가 한 가지 있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만나는 사람은 거의 같은 성향의 침체된, 부정적이고, 어두운 사람이기 쉽다. 그리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느끼게 되고, 둘 사이에는 우정이라는 감정이 자라게 된다. 다행히 본인이 침체로부터 벗어나더라도, 친구로부터 영적인 전이는 계속될 것이다. 그 사람과 친구로서의 우정이란 감정이 남아 있기에 친구의 어둡고, 부정적이고, 침체된 성향이 회복된 자신에게까지 계속 전이되어 다시 침체로 이끌어 갈 수 있다.

 

감정을 통해 영적 전이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정을 기초로 한 친구관계 뿐 아니라, 이성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처음에는 상대가 크리스챤이 아니고,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단지 상대의 외모 또는 이성적 매력에 끌려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면 이 감정이 통로가 되어, 그 사람의 가치관, 영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감정을 통해 영적전이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 그 위대한 왕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다(왕상11:1-3). 이방여인들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통로가 되어, 우상숭배의 영이 솔로몬에게 전이되는 영적전이가 이루어진 것이다. 결코 사랑의 감정과 신앙이 별개로 가는 법이 없다. 누군가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건한 사람과 교제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도 함께 자라갈 수 있다. 반면 영적으로 죽어있거나 불경건한 사람과 교제하면서, 성령충만하고, 영적으로 자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영적전이는 어떤 경우든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이런 이유로 크리스챤은 친구나 이성을 사귀는 문제에 있어 매우 신중해야 한다.

 

일단 감정에 빠지면, 비신앙적인 가치, 윤리 등이 전이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다거나,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실제적으로 어렵게 된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지도하는 것과 감정에 빠지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단순히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기 위한 만남이라면 영적인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일단 감정에 빠지면 영향을 주기보다는 감정이 통로가 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가 쉽다.
 

영적전이의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이다. 내가 주도권을 갖고 끌고 가는가, 상대에게 끌려가는가에 따라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요한2서 7절에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미혹하는 자는 한마디로 이단 또는 이단적인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요한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다.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9,10절).

 

요한은 그런 사람들을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왜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을까? 이 말씀이 이단에 속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니까 배척하라는 뜻이겠는가?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기회가 되는대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올바른 성경의 가르침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했겠는가?

 

이것이 바로 주도권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이단에 빠진 사람에게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바른 신앙과 복음을 전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에 가거나 자신의 집에 이단에 속한 사람이 찾아와서 이야기한다면, 이때는 그가 주도권을 가진 상태이기 쉽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 자기에게 이단에 속한 악한 영의 영적 전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주도권을 갖느냐가 중요한 이유는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상대에게 영적으로 전이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람들과의 대화, 교제에 있어서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신앙인인 내가 만났을 때, 내가 주도권을 가지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신앙이 없는 상대가 주도권을 쥐면 그 사람의 불신앙과 부정적인 것에 영향 받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남녀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은 남자가 쥐고 있기 때문에 여자는 불신앙인과 결혼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믿는 아내를 통해 남편이 신앙인이 되는 경우는 많은 고통과 핍박을 겪은 후에야 매우 드물게 믿는자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믿는 여자가 신앙을 잃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람을 위로 끌어 올리기는 힘들지만 내가 끌려 내려가기는 쉽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풍조가 적당히 즐기기 위해 하룻밤 자고 헤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풍조가 돼가고 있지만 여기에는 분명히 심각한 영적 일치와 결박, 그리고 전이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동성애의 문제는 여타 다른 문제보다 벗어나기가 어려운 문제들 중 하나이다. 물론 동성애를 죄로 인정하고 진정으로 치유받기 원한다면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벗어나기가 어렵다.

 

왜 그럴까? 동성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어린 시절 또는 청소년 시절에 주변의 동성으로부터 성적으로 희롱 또는 유린을 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 분명히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좋아했던 것도 아닌데, 일단 그렇게 성적 유린을 당하면 성인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동성애의 파트너를 찾게 된다. 그것은 영적 전이가 이루어져서 자신도 모르게 동성애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믿지 않는 사람, 불경건한 사람, 부정적인 사람으로부터 받는 영적 전이를 통해 나도 똑같이 그렇게 되어져 갈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혈통적으로 안 좋은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권세 아래 있고, 또 그 권세를 적절히 사용할 때, 우리는 조상으로부터 유전된 영적전이나 잘못된 관계로 인한 영적 전이로부터 자유할 수 있다(벧전1:18).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우리는 악한 이웃들과의 관계를 끊고,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의 인간관계를 잘 검토해보자. 친구, 이성, 직장상사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나의 신앙이, 영적인 것이, 나의 좋은 것이 상대에게로 흘러가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의 악한 것이 내게로 흘러들어오는가, 즉 누가 주도권을 갖는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일 내가 상대를 초대해가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면 그 관계를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이것은 상대를 외면하고,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주도권을 내가 가진 상태에서 도울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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