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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왜 성령을 받아야 할까?2024-08-10 23:16
작성자 Level 10

왜 성령을 받아야 할까?

 

라디오에 어떤 특정한 방송을 들을려면 채널을 그 방송국 주파수에 정확히 맞추지 않으면 절대 들을 수 없습니다. 또 예를 들어 라디오 주파수로 텔레비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주파수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그 차원이 틀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혼적인 기질을 가진 존재이며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혼과 영은 그 차원을 달리하며 그 소통을 주파수에 비교한다면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같이 전혀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영에 속하는 주파수로 말씀하시는 것을 혼이라는 다른 차원의 주파수로 받아들여 이해할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전2:11에는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영이 알 듯이 하나님의 사정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렇듯 결국은 육으로 태어난 세상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으며 따라서 육적인 사람은 모두가 마지막에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 인간은 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고 영으로 대화를 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며 또 알아야 신뢰와 믿음이 생기고 믿음이 진실해야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가진 자만이 천국에서 주님과 연합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되어 혼적인 존재로 전락되어 천국의 모형이랄 수 있는 에덴동산에서 쫓겨 났으며 그 후손인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영이 죽은 상태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단절된 채 혼과 육적인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동안 반드시 하나님과의 막혔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영으로 하나님과 소통해야 하며 또 죽었던 영이 소생해야 합니다.

 

혼과 육적으로 살아왔던 우리에게 성령님이 내주하시면 제일 먼저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 죽었던 우리의 영을 깨우쳐 다시 살리는 일을 시작하십니다.

 

이것이 거듭남이며 옛 성품과 자아가 죽고 새롭게 영적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 진실한 회개가 선행되어야 깨끗해진 우리 속에 성령님이 비로소 오시며 이때부터 계속 우리를 변화시켜 성화의 과정으로 이끄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내 영에 계시하셔서 예수님이 진정 나의 주와 구주이심을 내 영으로 깨닫게 되며 내 마음이 직관으로 이를 알게 될 때에 이제야 비로소 참믿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안 받아도, 또 이 땅에 있을 때 하나님과 영으로 소통되지 않아도, 구원 받는데 문제가 없다면 구태여 이 땅에 성령님이 오실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를 가져야 할 중요성도 없을 것이며 또 힘들여 우리들의 영이 열려야 할 필요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함께 하심은 우리의 구원에 필수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믿음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더라도 이 땅에서 주님과 연합하여 성령님의 인도와 통치를 받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천국에서 주님 앞에 섰을 때 갑자기 주님의 은혜와 보호 아래 천국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영광과 찬미를 올려 드리는데 그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 못지않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자신이 한알의 밀알이 되어 하나님이 쓰시는 귀중한 도구와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군사가 되려면 내 자아와 의와 세상적인 모든 목적과 욕망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아야 하며 하나님의 의의 병기로 나를 통하여 그 권능이 나타나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크리스쳔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할려면 우리 자신이 그 동안의 육적인 사람에서 당연히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함과 그 때마다 주시는 계시의 음성을 내 영이 들어야 합니다.

 

내 속에서 이러한 영적 감수성이 길러지면, 우리는 말씀과 설교를 듣기 위해 직접으로 예배 드리든, 인터넷이나 TV나 또는 여러 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듣든, 관계없이 그 말씀들이 진리에 속하는 것인지 혹은 거짓된 비진리에 속하는 것인지를 잘 판단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든 혹은 상대방과 성경말씀을 나누든 관계없이 영적인 사람이 그때마다 감동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와 빛과 기름부음과 은혜가 듣는 우리들의 머리가 아닌 영에 전달됩니다. 즉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영적인 양식이 됩니다.

 

그러나 육적인 신자는 그 영이 죽어 있기에 말씀을 머리로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으며 또 머리로 이해하고 깨닫는 수준으로 그칩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는 받지 못합니다. 성령이 없는 육적이고 지식적인 사람이 강단이나 혹은 개인간에 말씀을 선포하면 육적인 신자가 들을 때는 역시 머리에서 머리로 전달 받아 이해하고 깨달아 단지 성경지식을 더하는 수준에 그치며, 그 속에 있는 영은 잠자고 있는지라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과 영적 양식은 결코 받아 먹을 수가 없습니다.

 

또 영적인 사람이 이러한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적인 설교를 들으면 그 말씀이 내면 깊숙이 마음과 그 영을 터치하지 못하고 머리에만 와 닿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심령에 갈급함으로 견디지를 못합니다. 그러다 결국은 그러한 교회를 떠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진정한 예배와 설교는 말씀이 선포되어질 때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그 증거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각 사람마다 기름부음이 들어갑니다. 이 때 영적인 사람은 오감으로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은혜와 기름부음을 실질적으로 느끼고 이로써 성령충만해져 감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실질적인 믿음이 자라갑니다.

 

그리고 이때마다 자기 속의 영에 감동이 일어남을 직관으로 알게 됩니다. 이러할 때 자기도 모르게 내면 깊숙이 올라오는 감동으로 말미암아 고백과 눈물과 기쁨과 감사가 본인의 이성적인 생각과는 상관없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는 실질적인 초대교회와 같은 예배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시대는 교회가 이러한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오직 성경의 지식만 난무할 뿐 영적인 감동을 느껴볼 수 있는 교회는 정말 찾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모두가 종교적이고 형식에 치우친 메말라버린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이 대부분이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적으로 온갖 격식을 갖추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찾지도 받으시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건물이나 외형적 물질적 성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중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이끄시지 않고 도우심이 없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자세가 바로 서기란 우리에겐 정말 어렵습니다. 거룩함도 세상을 이길 힘도 내 모든 욕심과 자아를 십자가에 앞에 내려 놓을 힘도 성령님이 주시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가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엄도 성령이 조명해 주셔야 실제로 알게 됩니다.

 

하늘의 밝은 빛도 천국의 찬란함도 알게 하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 재물이 되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구원사역을 이루신 것을 내 머리가 아닌 영으로 알고 깨닫게 하시는 것도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가 되시고 또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도 전달하고 행하십니다. 만약 내 속에 성령님이 없이 내 힘과 지식과 지혜만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이것은 영분별력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같아서 미혹의 영에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며 더불어 올바른 목자를 만나지 못해 잘못된 신앙의 길로 빠질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사역중에 문둥병 걸린 사람 열명이 즉석에서 전부 병고침을 받은 일이 있는데 그 중 아홉명은 떠나가고 오직 한사람만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온 것도,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도, 가까이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끝내는 비겁함을 보였던 열두 제자들도 모두가 주님을 영으로 만나지 못했기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그러나 마가의 다락방에서 열두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모두가 담대하게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며 오직 영혼구원에 전심 전력하므로써 순교의 길을 가는 사명을 기꺼이 감당하도록 한 것도 성령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킨 후 우리를 통하여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최우선을 두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 성령의 열매 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혼구원에 관심을 집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속에 계신 성령님이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우리 영에 계속 독려하는 계시를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으로 제자의 길을 걷는 자들은 그 마음 속에 늘 거룩한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요 21:15∼17에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이 같은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은 우리에겐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는 것은 곧 예수님에게 속한 양들을 먹이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에 속한 양을 먹이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가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베드로에게 하신 양들을 먹이라는 말씀이 지금시대는 지도자인 목사님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지금시대 모든 제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내에서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하는 것도 내 양을 먹이라는 뜻에 해당될 것이며, 거룩하게 된 우리 성도들이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영혼을 구원하라는 뜻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평신도들인 우리들은 내 양을 먹이라는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여기서 내 양에 해당하는 사람은 꼭 필요한 말씀으로 매일같이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믿음이 자라가는 성도들은 결코 해당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시대의 교회에서 열심은 있지만 지식적인 말씀으로 가득차, 영적인 말씀은 공급 받지 못해 영적인 굶주림에 허덕이는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결국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빛을 받지 못함으로 갈급함으로 지쳐버린 성도들 모두가 포함된다고 봐야 합니다.

 

영혼구원이 불신자들에게만 적용됩니까. 아닙니다. 교회는 다녀도 그 영이 깨어나지 못한 모든 종교적 형식적 외식적이며 명목상의 신자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 양이라는 뜻은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교회내에서 변화되지 못한 명목상의 신자들을 더욱 강조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보다 교회내의 신자들에게 더욱 관심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 열심히 믿지만 주님의 거룩한 신부의 길을 걷고 있지 못하는 변화되지 못한 자들을 가장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바른 길을 제시할 사람들을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 마지막 때 이들을 들어서 쓰실 것입니다. 변화를 받아 주님의 거룩한 길을 가고 있는 우리들이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중대한 책임입니다.

 

내 주위에 이러한 변화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을 내가 깨우치지 못한다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를 책망할 것이며 그 영혼들을 잃어버린다면 그 책임을 우리들은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준 지상 최대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내 한사람이 주님 앞에 올바르게 쓰임을 받는다면 하나님을 영으로 만나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을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하여 주님 앞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 마지막 때 깨어 있어서 이 거룩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 시대 무너져 가는 교회, 올바른 목자를 찾지 못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 그들을 구원할 자 누구이겠습니까. 깨어 있는 우리 모두가 이러한 거룩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가 주님 오실 날이 너무나 가까운 이 때에 충성스런 이러한 사명을 잘 감당하므로써 언젠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 나의 충성스런 종아 라고 칭찬 들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길 이 시간도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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