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나타나시어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요한복음 20 : 22 )
예수님이 숨을 내쉴 정도로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이 그 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 : 5 )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 : 9 ) 여기서 영은 성령을 의미 합니다.
위 말씀들의 뜻은 사람 안에 성령이 거하시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또한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 안에 과연 성령이 거하시는가?"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하나님의 영)이 동등하신 삼위일체 한 하나님이십니다.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며, 성령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세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또한 성부는 주님이시고, 성자도 주님이시며, 성령 역시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세 주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오직 한 주님만 계십니다.
사람들이 흔히 잘못 이해하기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에게 종속된 관계라고 오해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되었기에 그렇게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자라는 표현은 그 분이 성부와 대등하시다는 의미입니다.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거나 성부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바로 그 "본체의 형상"이십니다. (히브리서 1 : 3 )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아버지이신 성부와 동일하시며 대등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0 : 30 )
바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십니다.
성부께서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성자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우주 만물이 그 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 분에 의해 존재하고 있습니다.(요한복음 1 : 3)
예수님은 자신에게 심판할 권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 : 27 )
그 분은 심판주이시고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달리 쉽게 표현하면 성부 하나님은 사람이 볼 수 없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이 볼 수 있게
육신을 입고 이 땅위에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셨고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렇지만 비록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동등하시고 영원히 공존하시지만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삼위 간에 구분이 존재합니다.
성부께서는 인간이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성자를 보내 주셨고,
성자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며 은혜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도록 도와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호칭되고 있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그는(성령)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4 : 17 )
만일 당신이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를 가든 성령께서 당신 안에 계십니다.
즉, 당신의 몸이 바로 성전(성령의 전)인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6 : 19 )
이것이 바로 참 그리스도인이라면 죄를 생각하거나 범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뜻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이 자신의 영이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찾아오시어서 내주 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요한복음 16 : 3 )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고 (요한복음 15 : 26 )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고 (요한복음 16 : 14 )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 (요한복음 16 : 8 )
다시 말해서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고 지도하기 위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사역은 무엇인가.
1. 성령의 사역
"우리를 구원하시되.........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으니" (디도서 3 : 5 )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남이고, 새로운 탄생, 새로운 피조물, 중생, 회심과 같은 다른 말로도 불립니다.
즉, 성령은 새롭게 태어난 거듭난 자 안에 내주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거듭난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이 거듭났고 새롭게 창조됩니다.
성령으로 인해 우리의 영이 거듭나고 새롭게 시작되었듯이 거듭난 영이 날마다 새롭게 되도록 하는 힘도 성령께서 주십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합니다.
성령충만은 한 번 받았다고 해서 충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강해지려면 우리의 영이 날마다 지속적으로 성령충만하여야 됩니다.
이것은 날마다 끊임없는 기도와 말씀으로 이루어 집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거룩해져 가고 거룩한 삶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합당한 본성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거룩함은 절대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거룩함이 없으면 어느 누구도 주를 보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성경은 분명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 : 14 )
우리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해져야 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변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인격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성향이 180도 변한다는 뜻입니다.
예를들어 전에는 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죄와의 동침을 허락했지만,
이제는 죄라면 진절머리를 내고는 죄를 혐오하고 증오합니다.
전에는 세상을 따라 돈을 사랑하며 부와 명예를 중요시 여겼지만 이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모합니다.
전에는 예수님을 쓰레기 더미 옆에 놓았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숨겨진 보화로 간주하고 그 무엇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전에는 나의 유익을 따라 삶이 나의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예수님 중심으로 확 바뀝니다.
항상 주님을 위해 해드린것이 없다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이처럼 거듭남을 통한 위대한 믿음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고난과 시련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고난은 우리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는데 촉매제가 됩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여러분들,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하시는 첫 번째 사역은
바로 우리들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시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예수님을 멀리하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이 온통 죄로 얼룩진 삶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시고,
죄로 인해 지옥으로 떨어져야 할 마땅한 죄인인 나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란 것을 심령 깊숙히 깨닫게 해주시며
예수님만이 영원히 "나의 구세주, 나의 주님"되심을 진정으로 믿고 받아들여지면서 예수님을 떠나서는 모든 것이 다 죄로 여겨지게 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은 죄와는 절대로 함께 하시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고 회개토록 도와 주십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죄를 끊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는 우리의 책임 또한 중요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죄성을 진실로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빛이 우리의 어두운 면을 비출때 비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회개는 사람의 능력과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회개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주님께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찾고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시겠다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당신이 은혜받을만한 적당한 때에 은혜를 베푸심을 잊지마십시요.
사람이 성령의 빛을 받게되면
자신의 죄성이 그대로 드러나면서 찰스 웨슬리처럼 "비열하고 죄로 가득한 나여"라고 통회합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내 육신에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노라"(로마서 7 :18) "나는 죄인중에 괴수이니라"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성을 깨닫게 될때 자신의 본성이 더럽고 추잡하고 비열함을 심히 애통해 합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그는 점도 없고 흠도 없이 깨끗해 지기를 갈망하며,
온전히 주님만을 사모하고 바라보면서 더럽고 추잡한 자신의 본성이 고침받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주님 앞에서 죄인됨을 심령 깊숙히 느끼고
"주여 이 죄인 용서하소서, 나의 더러운 허물과 죄를 씻겨 주시고,
나를 깨끗케 해 주옵시며 온전히 나를 변화시켜 주옵소서"라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회개의 눈물을 뚝뚝 흘립니다.
실제로 이러한 회개를 통해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로 자신의 더러운 죄들이 다 씻겨졌다는 위로감과 함께 마음속 깊은곳으로부터 솟구치는 기쁨과 평온을 느낍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더 강력히 사역할수록 우리는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지고,
전에는 죄로 여기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죄로 여겨지게 됩니다.
또한 죄를 심히 증오하고 죄로부터 자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칩니다.
한마디로 이야기 해서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애통하는 자 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해 하는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마태복음 5 : 6 )
그는 예수님 닮기를 원하고 온유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 원하고 순결하고 화평하고 거룩해지고 싶어 합니다.
또한 그는 의를 위해 박해받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특징이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산상수훈의 8복 입니다. (마태복음 5 : 3ㅡ12 )
사도 바울은 성령의 이중 사역으로 아홉 가지 열매와 아홉 가지 은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자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은 그 사람에게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나타내십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입니다. (갈라디아서 5 : 22ㅡ23 )
여기서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첫 번째는 "사랑" 입니다.
사람이 사랑으로 행하지 않으면,
이것은 거듭났다는 증거가 아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증거도 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가 거듭났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첫 열매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이상과 같은 성령의 9가지 열매와는 별도로 사람에 따라 9가지의 은사를 주십니다.
즉, 그 사람에게 능력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고 남을 섬기고 유익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지혜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지식의 말씀을 또 사람에 따라 믿음을, 치유 은사를, 능력 행함을,
예언함을, 영들 분별함을, 방언 말함을, 방언 통역함을 나눠 주십니다.(고린도 전서 7 ㅡ 11 )
여러분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시도록 우리를 내어 드립시다.
2. 내가 성령을 받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근거
성령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받았는지 아니면 못 받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는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로 알 수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이 누구든 회개하지 않아 죄 사함을 못 받은 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지 못한 자이고, 구원과도 전혀 관계가 없는 자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목회자 분들이 들려주는 성령을 받은 근거를 몇가지 요약해 보겠습니다.
(1)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요한 일서 5 : 1 )
성령을 받은 성도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 주님으로 진실로 믿고 받아들여지며,
예수님을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그 분이 그들의 전부가 됩니다.
(2) 형제를 사랑 합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한 일서 3 : 14 )
그리스도인을 만나면 금방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지체들로써 서로 사랑합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행함으로 사랑합니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분의 계명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가볍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그 분의 계명을 지키고 실행 합니다.
(4) 죄를 깨닫고 증오 합니다.
죄라면 진절머리를 내고 혐오 합니다.
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며 날마다 죄와 싸웁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이겨나갑니다.
죄에 대해서 만큼은 그 끝을 보고야 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죄를 절대로 용납하시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행위입니다.
(5) 육신과 새로운 성품 사이에서 끝없는 싸움을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면서,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며 탄식합니다.(로마서 7 : 24 )
(6) 세상 일보다 영적인 일을 생각 합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로마서 8 : 5 )
모든 면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고 싶어하고 그 분의 이끄심에 복종하고 싶어 합니다.
성령에 의해 영이 살아나며 영적인 생활을 하고 거룩해지고 언제나 겸손 합니다.
(7) 항상 성경적인 생각을 하고 기도 합니다.
(8) 이외에도 성령의 열매를 맺고 양자의 영을 받습니다.
여러분들 이상과 같이 우리는 성령을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 거룩해 져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벼운 입술로 믿음을 고백한다고 다 구원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상당수 교회들이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되고,만사 형통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부자된다는 싸구려 복음으로 제단을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은혜하면서 책임을 지지않는 값싼은혜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믿음과 구원을 함부로 쉽게 재단할 일이 못되고,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베푸시지만 우리에게는 그에 따른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에 명심합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 : 14 )
이것은 구원받는 자가 소수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성경적인 복음으로 되돌아 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는 "믿음의 설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회개의 중요성" "죄의 심각성" "성령" "거듭남" "중생""십자가 고난" "거룩함"과 같은 복음 말씀이 양들을 향해 강하게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