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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성이야기

제목현상 알아차림2024-07-25 16:17
작성자 Level 10

현상 알아차림

 

심리적인 문제는 곧 영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영성은 마음을 바탕으로 작용하는 것이며, 그래서 영성훈련은 마음훈련이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우리의 마음은 영과 육의 소리를 표현하는 도구가 됩니다. 따라서 마음은 육신이며 영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여러 가지 심적 질환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질병은 드러나는 현상과 통증으로 인해서 알아차리기가 쉽지만 마음의 병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내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오늘날 속사람의 치유 기술이 점차로 발달하면서 마음의 상처와 응어리를 다루어 질병과 그릇된 행동을 치유합니다.

심리학에서 마음의 변화를 인식하는 행위를 
‘알아차림’(awareness)이라고 부르는데, 거쉬탈트 심리학에서 이것은 ‘개인이 환경 속에서 일어나는 주요한 내적 외적 사건들을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이론을 주로 다룬 욘테프(Gary Yontef)는 현재 순간에 중요한 자신의 욕구나 감각, 감정, 생각, 행동, 환경, 상황 등을 지각하는 것을 뜻하며, 자기 행위의 주체가 자신이며, 상황에서 자신이 해야 할 행동 반응을 아는 것이 알아차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알아차림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현상 알아차림’과 ‘행위 알아차림’이 있습니다. 현상 알아차림에는 다시 ‘신체감각’ ‘요구’ ‘감정’ ‘환경’ ‘상황’ ‘내적 힘’ 등으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이 요소들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다룰 성질의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서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 있고 둔한 사람이 있듯이 알아차림에도 역시 그러합니다. 현상 알아차리기는 육신적인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1)신체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
신체 감각의 오감에 대한 설명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영적 감각에서도 역시 오감에 의해서 다양한 영적 특성을 나타낸다는 사실도 지적했습니다. 개인에 따라서 감각 부분에 대한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영성도 역시 다른 취향을 드러낸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양한 영성에 대한 이해는 지능에서도 마찬가지로 ‘다중지능’이라는 글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이미 이해하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사회는 단순히 IQ라고 부르는 ‘논리수학지능’에만 관심을 가졌었고, 교회 역시 이런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오로지 말씀주의라는 일방적인 영성만 추구했었습니다.


감각에 대한 관심은 ‘감성지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한 최근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영성에서 너무도 중요한 부분이 바로 신체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입니다. 이는 심리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룬 부분이며 특히 속사람의 치유(심리학에서는 ‘내면 치유’ 또는 ‘거쉬탈트 치유’라고 부릅니다.)에 있어서 신체감각을 알아차리는 문제는 그 중심이 됩니다. 의학에서 ‘질병은 마음으로부터 온다’고 정의합니다. 이 말을 쉽게 하면 질병은 마음의 표현이라고 할 것입니다. 마음이 표현인 감정활동은 모두 신체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정서를 신체가 다양한 신호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표현인 육신의 신호를 제대로 알아차린다면 감정을 바르게 다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행동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반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거나 현재의 심리상태에 대해서도 바르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새 어머니로부터 심하게 학대를 받고 자란 자매가 어머니에 대해서 말할 때 입술을 삐죽거리며 목소리가 떨립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해도 당사자는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신체로 전달되는 분노의 감정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 속에는 어머니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입니다.

이 분노의 감정을 표면으로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 속사람이 몸에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이 신체감각을 제대로 이해하자 그녀는 내면에 쌓여있던 억눌린 감정이 솟구쳐 나와 울음을 터트리게 되었습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에서 울음은 많은 효과가 있습니다. 내면에 억눌렸던 나쁜 감정의 응어리를 눈물로 씻어내는 것은 내면의 실체를 자신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욕구에 대한 알아차림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신이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는 채로 살아갑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보수성이 강하고 정형화된 틀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현실에서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청소년기에는 머리조차 제대로 기르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장발단속에 걸리고, 청바지를 찢어서 입고 다닌다고 해서 경범죄로 하루 밤 구류도 살았습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장한 세대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서 행동하는 법을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출세가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성령 안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도록 자극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주어지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우리 교회 제도 속에서 욕구 즉 소명을 알아차린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에 대한 표현도 무척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사랑 받기를 원한다’ ‘나는 주께 헌신하기 원한다’ ‘나는 좋은 아내 또는 남편이 되기 원한다’ 정도입니다. 이런 추상적이고 막연한 표현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표현을 예를 들자면 ‘나는 누구로부터 이런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 든가 ‘지금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싶다’라는 등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나는 전도자가 되고 싶다’라는 표현을 피하고 ‘나는 필리핀에 가서 도시 빈민을 위한 선교를 하고자 한다’라는 구체적인 소망을 표현해야 합니다. 과거나 미래에 관한 소망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욕구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그 행동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감정에 대한 알아차림
감정이란 주관적 체험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심리적 작용이므로 욕구가 충족되면 좋은 감정이 생기지만 그렇지 못하면 불쾌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연관이 깊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경험을 통해서 감정이 일어나며, 이는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경험의 기회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삶이 고립되고 지루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알아차리게 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더욱 선명하게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좋은 감정과 불쾌한 감정을 느끼고 파악하는 것은 자신의 소망이 성취되었느냐 아니냐와 관계가 있으며, 성취되지 않은 욕구는 미해결 과제로 남아서 내면으로 잠기고 맙니다. 이것은 쓴뿌리가 되고 그로 인해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결과들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변화를 제대로 알아차리는 것은 과제를 인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감정은 느낌인데 영적인 일에서 느낌이 너무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제가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일반적인 성도들은 느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아주 무시해버렸습니다. 전통적인 교회에서 느낌은 배척을 당했고 성도들은 느낌보다는 제도화된 말씀을 따를 것을 요구 받았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우리의 삶에서 생기는 다양한 욕구들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며, 이것은 고스란히 미해결 과제가 되어버립니다. 쓴뿌리는 신앙생활은 물론 현실적인 삶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제가 치유 사역을 행하면서 마주치는 성도들의 문제는 대부분이 이 처리되지 않은 과제로 인해서 생긴 쓴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망과 상처 등과 같은 것은 바로 해결되지 않은 과제로 인해서 생긴 것입니다. 즉 욕망이 성취되지 못해서 응어리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감정의 처리는 미룰 수 없는 것입니다. 요즘 스트레스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다룰 줄 모릅니다. 예를 들면 미워하거나 싫다거나 하는 등의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미운 감정이 생기면 그것을 죄로 여깁니다. 그래서 이런 감정을 억누르려고 하지요. 반항하거나 미워하는 등의 감정표현은 처벌을 받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외면 당하기 때문에 이런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어렴풋이 지워버리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로 풀거나 마음속에 담아둡니다.

속병을 앓고 있거나 만성 피곤을 호소하는 환자의 경우 그들 대부분은 나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속에 담아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쁜 감정을 표현하면 다툼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기 때문에 스스로 삭이고 맙니다. 이런 행위로 말미암아 우울증이 생기고 속병이 생깁니다. 이것을 한방에서는 화병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며느리들이 앓았던 병입니다. 오늘날의 며느리들은 솔직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때문에 시어머니들이 오히려 속병을 앓게 됩니다.


4)환경에 대한 알아차림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주변의 일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옹고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고문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내무반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항상 엉뚱한 짓을 합니다. 이렇게 환경에 대해서 둔감하거나 분위기를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내면에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많기 때문입니다.

폴스터(Erving Polster)는 『Gestalt Therapy Integrated』라는 책에서 ‘개인이 환경과의 접촉 과정에서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외부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환경에 대한 알아차림을 차단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현상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의 자극에 대해서도 관찰된다’고 말했습니다. 미해결 과제가 많으면 이런 감각이 제대로 인지되지 못합니다. 근심거리가 있거나 스트레스가 심하면 밥을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듯이 신체적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영적인 정보는 감각이라는 수단 즉 느낌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정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미해결 과제가 있기 때문이거나 감각을 통해서 알아차림을 얻을 수 있다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 개인이 감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미해결 과제가 축적되어 내부에서 많은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일에서도 우리가 영적 신호인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쓴뿌리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상황에 대한 알아차림
어떤 사람이 회식자리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는 미안한 마음도 있고 해서 머리를 숙이고 다소곳이 들어가는데 그 때 사람들이 갑자가 큰 소리로 웃는 것입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동료직원들이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를 벌컥 냈습니다. 그러자 느닷없이 화를 내는 그에게 동료직원들은 매우 황당했습니다. 그들은 마침 누군가가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모두 웃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그가 버럭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습니다.

그는 어릴 적에 학비를 제때에 내지 못해서 학급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 후로 그는 불신과 피해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성실한 직원이었고,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에서 자주 과거 상황과 혼동을 일으켜 실수를 하곤 합니다. 이것 역시 미해결 과제가 있거나 과거의 아픈 상처가 있을 경우 내부에서 일어나는 에너지에 의해서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혼동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쓴뿌리가 강력하게 작용해서 상황을 판단하게 하는 마음의 여유를 앗아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6)내적 힘에 대한 알아차림
내적 힘이란 심리학에서는 잠재력이라고 부르며 신학에서는 은사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 능력은 우리가 인식적으로 할 수 없다고 여기는 것들을 실제로 할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이 탁월한 능력에 대해서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개발하기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은사라고 말하는 수준의 영적 능력은 맛보기일 뿐이라고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들여서 개발하고 성장시켜야 한다는 점을 이미 자세히 지적했습니다.

개인이 자신이 지니고 있는 이런 능력을 인식하게 되면 현실을 직시하게 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게 되지만 자신의 능력을 외부 환경에 투사해버리면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타인에게 의존하게 되거나 심하면 그들을 두려워하게 되어 소극적이고 종속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막연하게 두려워하고 자신보다 능력이 더 많은 사람을 경계하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한 까닭입니다.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이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자신만의 독특한 역할이 주어져 있고,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잠재 능력 또는 은사를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적 성향이나 감정적 기질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획일적이고 지식 편향적이기 때문에 논리수학지능이 우수한 사람은 살아가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 밖의 다른 지능이 우수한 사람은 이들로 인해서 억압을 받았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다양한 지능들과 은사는 배격을 당하고 오로지 성경공부 하나만이 남았습니다. 이런 제도의 문제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치르고 있고, 자신의 내면적 능력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서 살아가며, 두려움과 갈등에 휘말려 스스로를 자학하면서 어두운 삶을 살아갑니다. 공부를 잘 하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조를 그렇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암기력이 탁월한 소수의 사람만이 세상에서 두각을 들어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양성이 부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 있는 능력을 개발하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도록 강요되고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구조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성령치유집회 (부산)세계로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야긴과 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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