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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영적 게으름2024-07-22 22:29
작성자 Level 10

 영적 게으름

 

  사람들 가운데 육체적으로 게으른 사람이 있듯이 영적으로도 게으름 사람이 있습니다. 게으른 자체를 두고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게으르다는 것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일에서는 이런 단순한 흑백 논리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지요. 세속적으로는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지만 영적인 일에서는 게으르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게으른 것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게으름(spiritual slothfulness)은 경계해야 할 요소입니다. 특히 사역자에게 있어서 게으름은 용서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태만히 하는 사람은 저주의 대상입니다(렘 48: 10). 영적 게으름은 어느 정도 육신적 게으름과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소 게으른 사람은 영적인 일에도 게으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적인 일은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육신적인 일도 해야 하고 영적인 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영적 수준에 이르면 몸에 익숙해져서 쉬워지지만 그러기까지는 힘이 들고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생소한 일일수록 몸에 익숙해지기까지는 힘이 드는 법입니다. 하지 않던 일을 하면 새로 근육을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익숙한 사람보다 갑절 힘이 들기 마련입니다. 이렇듯이 영적으로 익숙하지 못한 사람은 어설프고 힘이 들어 조금 해 보고는 곧 싫증을 느끼고 포기하게 됩니다.

영적인 일을 소명으로 확신한 사람들도 역시 어려움을 겪습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성경공부가 힘이 들지 않고 재미있지만 기도하는 일은 몸에 익숙한 것이 아니어서 힘이 들어 포기하기 쉽습니다. 청계산에서 기도를 시작했을 때 우리 동역자들은 매섭게 훈련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일을 전폐하고 오로지 기도에 전념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이렇게 한 까닭은 기도가 몸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해야 이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주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무렵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역을 준비하려는 여러 명의 전도사들이 그 산에 올라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도 받고 비전도 얻고자 일정 기간 기도하려고 작정하고 산에 올랐습니다. 마침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보고 함께 기도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의욕은 있어도 실제로 강도 높은 기도를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3시간 기도”, “철야 기도”로 이어지는 기도의 강행군을 그들은 따라 잡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평소 그런 기도를 해보지 못한 그들은 기도하는 것이 중노동이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과 싸우는 인내의 훈련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 신실함을 배우는 훈련인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무엇을 얻거나 보거나 듣는 것은 이후의 일입니다. 오로지 자기와의 싸움, 인내의 싸움인 것입니다. 이것을 목적으로 우리는 기도의 훈련을 계속했지만 전도사 팀은 응답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 출발이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단계들이 있습니다. 신학교 과정을 통해서 올바른 교리를 세웠으면 그 다음은 능력을 소유하기 위한 영성 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능력없는 사역은 한 마디로 속 빈 강정과 같습니다. 지도자는 모든 부분에서 기본적인 능력을 최소한도로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최고의 기술과 능력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더 부지런히 기술과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예비 사역자들은 신학교를 마치고 나면 그것으로 다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지를 찾고 목회를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기술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합니다. 그런 목회는 기술을 바탕으로 한 목회이지 성령의 인도에 따른 목회와는 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리 교육에는 만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치유와 회복이라는 부분에서는 거의 낙제 수준입니다. 성경 지식에는 박식하지만 고통 속에서 해메는 성도들의 문제에는 자연적으로 외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저 피상적인 위로만 할 뿐이지요. 여기서 목회의 한계를 실감하고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돌아가려 해도 너무나 멀리 왔기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지요.

이렇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가운데 우리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들 가운데 영적인 일을 학문적 기술로 대치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학위가 능력을 대신하며 학벌과 학연으로 교회를 시무합니다. 교회가 오래 되면서 자리를 잡게 되고 교회 성장에 대한 기술이 발달해서 인위적인 운영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인맥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학위가 목회지를 보장합니다. 그래서 더욱 학위에만 매달립니다. 박사 학위 하나로는 위험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여러 가지 학위를 얻으려고 노력하고 세월을 거기에 다 쏟아 붓습니다. 성공한 목회자는 자기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줍니다. 일종의 가업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형태의 목회자들이 기존의 교회를 차지하고 그 세력을 과시하기 때문에 새로 사역을 하려는 예비 사역자들은 더욱 공부에 매달리고 학위에만 집착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사역자들은 소수이기 때문에 다수의 세력으로 그들을 교회 밖으로 몰아냅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서 말입니다. 예비 사역자들은 이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목회지를 얻기 위해서는 기성 세대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들을 갖추어야 출세할 수 있고 직업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새로 개척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요. 어려움과 고통이 따르고 또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미 성장한 교회에 부목으로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기성세대의 요구를 따라야 하는 것이고 수구적으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 교회의 현실입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영적 지도자로 세워질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무지하고 현실적인 성공만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일을 신비주의로 몰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합니다. 한 자리에 앉아 3시간의 기도를 해 보지 못한 사역자는 기도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감기 환자 한 사람 치유해 보지 못한 사역자는 성도의 고통에 접근할 생각조차 가지지 마십시오.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그런 감기 정도의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얽히고 설키고 그 뿌리가 칡뿌리 만큼이나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룹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 주님은 “이 백성의 문제를 심상히 다룬다”라고 지적하지 않았습니까?(렘 6:14, 8:11) 대다수의 세속적인 목회자들은 평소 끈질긴 기도와 훈련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성도의 문제를 그저 대충 다룹니다. 자기 일이라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대충 하지 않게 하려고 그 사역자를 혹독하게 다룹니다. 울부짖는 기도는 자신의 문제로 인해서 울부짖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맡아야 할 주의 백성들의 문제를 그처럼 임하게 하시려고 그렇게 가혹하게 다루는 것입니다. 이 가혹한 훈련을 통해서 인내를 배우고 그 과정을 소화함으로써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근면하고 부지런한 과정을 거쳐야만 성도들의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피합니다. 고난의 광야 학교는 가고 싶어하지 않고 간다 하더라도 오로지 벗어나려고만 몸부림쳤지 그 과정에서 오는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가 병들면 훌륭한 의사에게 자녀를 맡기지 않습니까? 사람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 영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의사는 병 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도 치료합니다. 단순히 환부만 살피고 약만 주는 의사가 아니라 환자의 아픈 마음도 어루만져 줍니다. 그 가족들의 힘든 상황도 위로해주고 격려해 줍니다. 이런 의사가 진정 인술을 행하는 의사가 아닙니까? 그러나 돈만 생각하는 의사는 더 나은 직장을 얻으려고 자나 깨나 자기 유익만 생각합니다. 환자는 단순히 돈벌이 대상일 뿐입니다. 환자를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더 벌고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요즘 의사도 3D업이 있다고 하지요. 힘들고 보수가 적은 마취의나 응급실 의사는 부족하고 돈을 잘 버는 성형외과의는 늘어난다고 합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사역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역자들에게 왜 고통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주의 백성을 그런 마음으로 다루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된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이 없으면 그의 사역은 교리적이고 피상적이며 인본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잘 짜여진 제도 속에서 프로그램과 조직으로 얼마든지 성장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이방 종교가 행하는 것들입니다.

불교는 탄탄한 조직과 교리로 성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포교술을 개발하고 이벤트를 열고 잘 조직된 교단들을 사용하여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불교에 생명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생명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장합니다. 그것은 오로지 인간적인 기술과 마귀의 능력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렇게 그리스도의 생명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적인 기술에 의해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성장을 주의 생명으로 성장하는 것과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의 음성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환상 한 번 본적이 없고 감기 환자 한 사람 치유해본 경험이 없고 마귀를 본 적도 없고 끈질긴 기도를 해본 경험이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이 오로지 성경 공부 한 가지만 한 그런 편향된 경험으로 다양하고 복잡하고 심각한 영적 세계를 다루겠다고 영적 지도자로 나서는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출세하고 좋은 사역지를 얻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영적인 훈련 보다는 확실하게 성공이 보장되는 박사 학위를 얻는데 더 많은 시간과 정렬을 쏟습니다. 그것이 확실한 성공의 길이니까요. 그리고 대다수의 성공한 목회자들이 다 그렇게 했으니까 그들의 요구에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적인 일로 성공한 목회자는 아직은 소수이고 다수는 학위를 바탕으로 한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자연히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힘들고 가능성이 적은 능력 사역보다는 확실한 출세와 성공이 보장 되는 길로 안전하게 가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해결해 줄 치유자를 원하지만 목회자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고통이 자신의 출세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선은 내가 살아야 하고 내 교회가 부흥해야 하고 내가 성공한 목회자가 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다음에 성도의 문제가 있고 하나님의 일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역자를 성경은 삯군이라고 부르고 있고 그런 사역자가 받게 될 대우가 어떤 것인지는 너무나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사역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관심이 순수하지 못합니다. 사역을 준비하는 예비 사역자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한 구분이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배 사역자들이 능력 사역에서 배제된 까닭 중 하나가 영적 게으름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훈련을 게을리 하고 회피했기 때문입니다. 당사자들은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있지만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습니까? 관심이 곧 그 일을 성취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훈련을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훈련을 거쳐야 불순물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주님이 원하시는 과정을 순종으로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시간이 길다고 능력있는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왜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7번이나 기도했겠습니까? 사역자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부르신 분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로 게을러서는 안됩니다. 게으름은 하나님을 만홀이 여기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철저히 이기 주의에서 오는 행동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출세가 보장되지 않고 더욱이 소수라고 해서 능력사역을 업신여기고 그 길로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느니라”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능력을 받고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좁은 길로 가라 그 길은 좁고 어려워 찾는 사람이 적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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