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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2024-07-22 23:43
작성자 Level 10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예수가 전혀 필요 없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그들에게는 한 평생을 살아가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자가 마음대로 살아가는데 종교는 방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는 사월초파일에나 찾아가면 되지만 기독교는 매주 교회에 출석해야 하고 피 같은 돈을 내야 하니 더욱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남자들은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를 가진다는 것은 무엇엔가 의지하는 나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더욱 싫어합니다.

믿는다는 말을 의지한다는 말로 이해하기 때문에 자존심을 가지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것이 남자답다는 생각을 가진 그런 남자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일종의 삶에 대한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내의 등살에 이끌려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상당수가 깊이 빠지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적극적인 참여를 가로막고 방관자처럼 지내게 하는 것입니다.

남선교회 또는 남전도회에 모이는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세상의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대충 끝내고 마음에 맞는 성도들끼리 이차로 갈 곳을 정합니다. 골프연습장으로, 음식점으로 몰려가서 세속적인 관심사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대다수인 교회에서 영의 지식이나 경험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입니다.

영의 지식이 없어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괜스레 긁어 부스럼이 될 수도 있는 영적 사역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속적인 일에 관심이 있는 그리스도인이 절대로 다수이기 때문에 이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해야지 괜히 알아듣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주제를 다룬다는 것은 별로 유익이 없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그 방면에 지식도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 전반이 처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매년 다람쥐 채 바퀴 돌듯이 같은 일을 답습해서 한 두 해가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이 또한 우리들을 시큰둥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활력을 잃어가며 세속적인 사교단체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영적 감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까닭은 그 방면에 절실한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거듭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장치가 부족한 교회 구조 때문에 10년이 넘어도 거듭나지 못한 채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저 역시 그런 과정을 겪은 사람입니다. 20대에 저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20대에 영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제가 20대를 보내던 70년대의 가치관과 오늘날은 다르지만 말입니다.

오직 먹고 사는 일이 가장 큰 문제였던 70년대는 가난을 벗어내는 일 이상 더 중요한 것이 없었지요. 영적 능력에 관한 지식도 전무하였던 시절이었습니다. 방언을 막 시작한 순복음 교회를 우리는 이단이라고 알고 경계했으니까요. 아무튼 오늘날에도 여전히 능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신앙생활을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입니다. 영의 일은 한가한 사람이나 특별히 예민한 사람들이나 관심을 가지는 특별한 분야라고 생각하며 누구나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필수사항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입니다.

알면 좋고 알지 못해도 해가 없는 그런 것쯤으로 여기는 이 어리석음 때문에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방관자 내지는 무기력한 낙오자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절대 다수가 예수를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며, 그 가운데 일부는 나이가 들어 여유가 된다면 사교수단으로 교회에 나갈 생각을 하고 있고 교회가 아니어도 여가 생활을 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많은데 굳이 부담을 느끼면서 신앙을 교제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기는 싫은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때 가서 과연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이를 갈며 슬피 운다”는 성경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리고 거만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영의 지식을 쌓아가야 하는 까닭은 여러분에게 주어진 직무를 성실하게 감당해서 더 많은 헌신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 헌신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대다수의 성도들은 생각하고 있는 것은 마치 불신자들이 교회 출석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은사를 주지 않았는데 우리가 무슨 책임을 지게 되겠는가? 라는 안일하고 무지한 생각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아무런 은사가 없다면 여러분은 예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어떤 부분이든지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없다면 그 몸은 죽은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여러분은 신령한 몸을 구성하는 지체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몸’이라는 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제도로서의 교회에 너무 익숙해있었기 때문에 이 ‘신령한 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고전 15:44). 그래서 제도 안에만 머물렀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았던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런 구조의 적용을 받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적용을 받는 판결과는 다른 판결을 주님으로부터 받습니다.

새로운 영적 지식이 공개되면 모든 사람들은 그 지식으로 판단을 받습니다.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는 자연법에 의해서 판단을 받았지만 복음이 전해지고 나면 복음으로 인해서 판단을 받습니다. 이는 비유하면 실행법이 선포되기 전에는 죄가 아니던 것이 새로운 법이 선포되면 죄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까지는 율법으로 판단을 받았지만 주님이 오신 다음에는 복음으로 판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방언의 공개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방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대다수가 방언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유익을 취합니다. 이는 마치 승용차가 보편화 도지 않았던 시절에는 대다수는 걸어 다녀야만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여전히 걸어만 다닌다면 그 사람은 여러 가지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고 사회로부터 낙오되는 결과를 안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이 공개되면 그에 따르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게 되고 그 책임을 다하느냐에 따라서 판단이 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상황 속에 놓여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깨어서 시대의 징조를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영적 헌신의 수준이 과거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많이 준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영적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할도 무척 다양해졌습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10여 년 전보다 얼마나 더 다양한 직업이 생겨났고 소멸되고 있습니까? 영의 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더 다양한 헌신의 방법들이 제공되고 있습니다. 다양해지고 많아지는 역할만큼 우리들에게 제공되는 새로운 영의 지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다면 이는 일하지 않겠다는 게으른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평가는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얼마나 많은 열매를 거두었는가 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얼마든지 많은 열매를 맺도록 주님은 거름을 제공하고 씨앗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게으름만 피우면서 잠만 자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계속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를 뽑아버리려 하자 주님은 한 번만 더 참아주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서 열매를 맺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눅 13:6~9).

두루 파고 거름을 주시는 행위가 우리들에는 영적 지식의 공급과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시련과 연단입니다. 이런 자극을 받으면서도 계속 주저 않아만 있는다면 그 결과는 비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관심 밖에 버려지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축복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듭났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간섭으로 인해서 잠잠할 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제도 속에서 주어진 역할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지내왔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날은 그것으로 책임을 다할 수 없는 시대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제사장이며, 각각의 고유한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교회의 제도가 여러분 개인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습니다. 교회라는 단위의 공동으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여러분 개인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이 해야 할 일을 교회 공동체에 떠맡기는 것은 마치 유대인들의 ‘고르반’과 같은 행위일 것입니다. 다행이 교회에서 준 직임이 성령의 직임일 경우에는 문제가 없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모든 일을 교회가 지시하는 일만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기능성 사회에서는 여러 모로 부족합니다. 각 성도가 책임을 가지고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발견하고 주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회가 공동으로 책임질 일보다 여러분 각자가 주님 앞에서 평가를 받는 개별사항이 더 많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고 지시하심에 따라서 이를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지요. 목회자는 성도들이 그것을 찾아내도록 돕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역할은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 역할 속에 한 부분이 소속된 교회를 섬기는 일이 포함되어 있으며, 몸은 개 교회에 소속되어 있을지라도 헌신의 대상은 모든 그리스도의 지체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충성된 자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된다면, 성령께서 지시하시는 그 대상을 섬겨야 합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은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성령이 여러분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우려 그것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각 사람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그러기 위한 방법들을 제가 여러분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의 글은 여러분들이 스스로 서서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행동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각 사람이 행한 행위대로 판단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부르셔서 시키시는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그 의무와 책임을 다하려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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