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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성이야기

제목영적 히스테리2024-07-22 22:43
작성자 Level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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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히스테리

 

  히스테리( Hysterie)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정신 신경증의 한 유형. 정신적 원인으로 운동 마비, 실성(失性), 경련 따위의 신체 증상이나 건망 따위의 정신 증상이 나타난다.

②정신적 원인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흥분 상태를 통틀어 이르는 말. 히스테리를 부리다. 라고 정의합니다.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원인 중에 열등감과 좌절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다른 사람들보다 잘 하지 못할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히스테리가 생깁니다. 또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되어 심한 좌절에 빠질 때 겪게 되는 것입니다. 히스테리를 생기게 한 원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힘이나 능력이 없을 경우 이 때문에 생긴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몸이 자율적으로 행하는 반작용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소극적인 사람들은 이나마 행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게 되는데 이것이 속알이로 나타나 병이 됩니다. 이런 병에 걸리면 그 증상으로 우울증, 무기력, 신경쇠약, 노이로제, 협심증, 대인공포증 등이 나타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거나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하는 경우 히스테리로 이를 해소하려고 하며 사춘기에는 반항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이 해소되지 않으면 행동발달에 나쁜 영향을 주어 냉소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되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되는 것을 별 이유없이 싫어하고 비난하거나 빈정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이런 증상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영적으로도 이와 같은 현상이 있습니다. 영적 히스테리는 영적 성장을 해야 할 시기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경우 발생하는 것이지요.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 때부터 우리의 영은 성장을 시작합니다. 성장하는 영에 맞는 영적 양식이 공급되어 바람직하게 성장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성장이 방해를 받게 되면 영적 스트레스를 겪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은사가 주어지고 그 은사가 힘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한 영의 양식이 공급되어야 하며, 이것이 경험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몸에 익히도록 하여야만 제대로 성장하게 됩니다. 밥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해야만 건강하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영적 지식과 그리고 경험을 얻기 위한 실습이라는 두 가지 요소는 영적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자양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 중에 어느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영적 성장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영적 지식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영적 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하며, 그에 따라 바른 대응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영적 환경은 그 지식을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영적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적 지식을 경험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요소들이 제대로 적용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면 영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것이 영적 히스테리로 나타나거나 영적 침체로 빠지게 되어 병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면 영은 갑갑함을 느끼게 되며 이것은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영이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 답답함을 느끼게 되면 우선 나타나는 증상이 영적 갈급함입니다.
지식을 얻지 못하면 지식에 대한 갈급함으로 나타나고, 경험을 하지 못하면 경험에 대한 갈급함으로 나타납니다. 속이 갑갑하고 무엇을 해도 그 갑갑함이 풀리지 않습니다. 영적 지식이 많은 사람과 대화하면 속이 탁 트이고 기운이 나며 살 것 같습니다. 은혜로운 집회에 가고 싶고 그 곳에 가서 큰 소리로 찬양하고 기도하면 속이 뻥 뚤려 신이 나고 힘이 생깁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속이 답답하고 힘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부흥회란 부흥회는 다 찾아다니지만 갈 때 뿐이고 갔다 오면 몇 일이 못되어 다시 힘이 빠집니다.
이런 경우는 영적 지식과 경험이 서로 균형을 이루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영적 지식과 경험은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영적 지식을 얻기 위해서 책을 사서 읽지만 읽을 때는 기분이 좋아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시큰둥해집니다. 이는 경험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영적 스트레스는 영적 성장이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만 사라집니다. 이런 영적 히스테리를 치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면 병증으로 발전하게 되고, 적극적 성향이 있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을 비난하는 냉소적인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촌이 땅 산 것을 배아파 하듯이 말입니다. 영적 성장이 제대로 되어 능력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시기하고 미워합니다. 영적인 것에 대해 시기하고 거부감을 표현하며, 은사를 가진 사람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목회자인 경우 교리주의에 빠져 신령한 것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거부감을 표현하며 사람들을 그 길로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남을 비난하거나 시기하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자신을 학대하게 됩니다. 자신을 비하하게 되고 패배감에 빠져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며, 매사에 의욕을 잃고 의미를 찾지 못합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없어 하루 하루를 아무런 의미없이 보내게 됩니다. 새로운 것을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런 증상에 계속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소극적인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기 때문에 속사람이 심한 상처를 입습니다. 안으로 파괴하기 때문에 초기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아 병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고 치유의 시기를 놓쳐서 심각한 상태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 성장이 제 때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후유증을 일으킵니다. 바리세인들과 같은 머리만으로 믿는 이념적 신앙인이 됩니다. 이는 기회주의적인 신앙자세를 가지게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대로 믿는 것입니다. 주관이 없기 때문에 다수가 가는대로 딸려 갑니다. 신앙생활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구원에 대한 지식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에서 떨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떠나는 정도의 극단적인 행동은 하지 않지만 교회의 일에 매우 소극적이고 피동적이 됩니다. 신앙생활도 적당한 수준에서 유지하려고 합니다. 보편적인 사람들이 하는 정도로 유지합니다.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습니다.

이런 사람이 목회자이면 그는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보다 세속적인 일에 더 관심이 많아지고 영적인 것에는 흥미가 없어집니다. 교회 사역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수단일 뿐입니다. 청빙 목회의 경우 보다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교회로 옮기려고 기회만 엿보기 때문에 담임하는 교회에 애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학위도 따고 경력도 넓히기 위해서 각종 단체에 가입하고, 목회 보다는 기회를 얻는 일로 분주하며, 목사 이외의 여러 가지 직함을 가지기를 원하며, 그런 교역자들과만 교제합니다. 지금의 목회지는 보다 더 많은 사례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옮기기 위한 발판일 뿐이며, 성도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희생물일 뿐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 속에 가면 목사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직함을 소개할 때 목사 이외의 것을 먼저 소개합니다. 

이런 모든 모습들이 영적 성장의 시기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서 생긴 병증입니다. 영적 성장을 하지 못한 장로, 권사, 집사 등도 역시 이와 같은 증상을 나타냅니다. 입으로는 항상 세상이야기만 하고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는 병이기 때문에 그런 병에 걸린 사람을 병자로 보아야 하고,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방송사에서 백화점에 오는 사람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우울증 검사를 한 결과 56%가 우울증 환자였고 약 10%정도는 심각한 중증이었습니다. 이 조사에 의하여 우리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자신에게 병이 있으면서도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아 질병을 앓는 사람들의 치유는 증상의 정도에 따라서 다릅니다. 병증은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초기는 영적으로 거듭난 이후 적어도 5년 이하인 사람입니다. 이런 시기에 있는 사람은 영적인 것에 매우 흥미를 느끼고 영적인 것에 갈급해 합니다. 거듭나기 전에는 목사님의 설교가 은혜로웠는데 지금은 도무지 와 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속적인 설교가 듣기 싫어지고 영적인 말씀을 들어야 기운이 솟고 힘이 생기며 즐거움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가 답답해지고 듣기가 싫어지기 때문에 고민하게 됩니다. 속은 답답하고 교회는 가지만 은혜가 되지 않아 갈등을 겪게 되고, 이런 이야기를 누구에게 속 시원하게 떨어놓을 수도 없고, 자신이 너무 예민한 것인가, 자신이 너무 유별난 것인가, 영적으로 교만한 것인가, 등의 생각으로 인해서 갈등하게 됩니다.

초기의 이러한 갈등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영적 지식을 공급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영적 지식이나 경험을 공급하지 못하는 교회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서 아무런 영적 도움을 받지 못하면, 결국은 영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못해서 위에서 언급한 질병에 걸리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영적으로 풍성한 지식과 경험을 제공하는 집회가 많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영적 지식을 얼마든지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자신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공급 받을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이를 충당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영적으로 성장한 그 힘으로 교회에서 봉사하고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에게 영적 지식을 공급해 줄 수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건강해지고 교회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목사의 눈치를 보다가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되면, 자신은 병든 성도가 되어 교회를 침체에 빠뜨리고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 손실은 고스란히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누구도 이 문제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초기에는 부족한 영적 지식을 공급 받는 것으로 충분히 치유되지만 중기에 속한 사람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5년 이상 10년에 이르도록 충분한 영적 성장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교리에 굳어져 있기 때문에 영이 자신의 몸에서 효과적인 반응을 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초기에 속한 사람은 영적 지식이 공급되면 즉각적으로 반응을 느끼지만, 중기에 속한 사람은 그 반응이 느리다는 점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합니다. 영적 지식을 공급 받고 경험의 기회를 얻었다 할지라도 자신의 영이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치유에 대해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고 포기하기 쉽다는 말입니다.

영적 지식에 대한 공부를 하고, 영적 집회에 참석해도 별로 진한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그런 활동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곧 포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지도가 필요합니다. 곁에서 계속 영적인 지식을 공급하고 영성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일시적인 것은 피하고 1주일 이상의 장기적인 집회에 등록하고 꾸준하게 참석하여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는 단 한번의 참석으로도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이미 그 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다른 집회에 참석하였지만 그곳에서 별로 변화를 경험하지 못했던 경우입니다. 여러 차례의 치유가 이어졌지만 그 효과가 표면에 나타나지 않다가 이 집회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치유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당사자가 이를 잘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이지요.

말기에 속한 사람은 거의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해줄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수년에 걸쳐 끈질기게 이끌어줄 희생적인 치유자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가족이 아니고는 이런 일을 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족 가운데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가족은 서로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영적 성장을 이끄는데 때로는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증은 치유가 매우 힘들 뿐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내를 가지고 계속 시도해야 합니다. 먼저 영적 성장을 이룬 사람이 반대 배우자를 위해서 희생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영적 성장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 그 문제는 심각합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자신은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영적 성장과 지적 성장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학문으로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심지어 불교의 승려도 잘 압니다. 승려들 가운데 비교종교학을 전공한 사람은 웬만한 신학자 이상으로 성경지식에 박식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입니까? 그들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전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감동합니다. 유명한 목사 이상입니다. 요즈음 인기를 모으고 있는 도올이라는 사람이 그런 예가 아닙니까?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배웁니다. 학문적 과정은 시간이 지나면 학위를 취득하고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목사가 됩니다. 그가 하나님을 알든 모르든 구체적으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오직 성령님에게서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배울 뿐입니다. 그 내용은 오직 성령님만이 가르치고 그 분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혼동하는 바가 바로 이점입니다.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그 길에 머물러 있는 경우와 같습니다. 길을 통해서 하나님에게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영적 성장의 비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물을 줄 뿐입니다. 자라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령님 한분 뿐입니다. 많은 사역자들이 이 간단한 상식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영적 성장을 멈춘 채로 살아가고 있고, 이 때문에 영적 질병으로 고생합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자신이 병든지 모릅니다. 이것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여러 가지 병증이 나타나고 있는데도 자신은 건강하다고 고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등잔불 밑이 어둡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병든 줄 아는 데 자신만이 모릅니다. 이 환자가 목회자이거나 장로, 권사라면 이런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설령 알려준다 해도 받아들이겠습니까? 안타까운 일이지요.

영적 히스테리는 치유해야 할 질병입니다. 몸으로 나타난다고 해서 몸의 병이거나 정신적인 병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물론 정신적 질환들 가운데 이와 흡사한 병들이 있습니다. 모든 히스테리가 영적 성장이 멈추어져서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 성장이 멎게 되면 영적 히스테리에 걸리게 됩니다. 영적인 병은 영적인 치유 방법으로 치료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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