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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영적 각성(영적 낯가림)2024-07-22 22:37
작성자 Level 10

 영적 각성(영적 낯가림)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낯선 사람을 인식하게 되면서 낯을 가리게 되듯이,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주변 환경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현상을 영적 각성(spritual sensitiveness)이라고 하며, 속된 표현으로는 '영적 낯가림' 또는 '영의 깨어남'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의식이 성장하면서 주변 환경에 대해서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제일 먼저 몸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는 원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주어진 본능적인 적응의 결과라고 봅니다. 환경에 대해 몸이 민감하게 반응을 보임으로써 몸에 해로운 환경에서 보호 받게 되는 것이지요. 성장하여 의식이 발달하면 의식적 판단을 하여, 옳고 그름을 깨닫게 됩니다. 위험한 것을 깨닫고 그 곳에서 피하거나 접근하지 않게 되지요. 이 의식을 성장하면서 고도로 발달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의 영은 불로 거듭나면 주변 환경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이 작용이 사람에게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영적 감응(spiritual sensibilities)이라고 불리는 민감성의 발달을 들 수 있습니다.

영적 각성을 경험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영적 현상 가운데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 영적 감응 현상입니다. 어떤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거나 낯선 장소에 가게 되면 경험하게 되는 것인데, 매우 정신이 맑아지거나 혼미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처음 사람을 대할 때 정신이 매우 맑아지거나 반대로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함께 잠을 자게 되는 경우 정신이 맑아져서 잠을 들 수 없게 됩니다. 이와 같이 어떤 낯선 장소에서 잠을 자려고 하면 정신이 또렷해지면서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며 잠이 들어도 깊은 잠을 잘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 처음 대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이와 같은 영적 감응 중 매우 정신이 맑아지는 경우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신앙심이 좋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을 만나면 이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간혹 불신자를 만나는 경우에도 이 같은 현상을 경험한다면 그 상대방은 타 종교에 깊이 관여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불교의 신실한 신자이거나 그 종교의 지도자일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나의 영이 긴장하게 되기 때문에 이런 영적 감응을 느끼게 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을 만나는 경우에도 이와 같은 현상을 느끼게 됩니다. 이는 영적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우리 영이 자신의 의식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정신이 매우 흐려지는 경우에는 그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일 경우 그 직분에 상관없이 영적으로 매우 혼탁한 사람입니다. 육적인 사람으로 아직 거듭나지 못했거나, 거듭난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도 육신적 삶에 치우쳐 있는 경우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의 경우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거나, 삶이 질서가 없고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특별히 경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는 경고입니다. 정신이 흐려지는 사람과 경계없이 가까이 하는 것은 자신의 영적 삶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장소에 대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낯선 장소에 가면 어린 아이는 즉각 반응을 보이고 매우 낯을 가리고 때로는 울기도 합니다. 이는 그 장소가 자신에게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을 갈아 마시면 배탈이 나는 등 신체적으로 예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낯선 장소에서 잠을 자려고 하면 좀처럼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입니다. 몸은 매우 피곤한데 정신은 맑아져서 도무지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이 장소가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곳일 수 있습니다. 체질적으로 낯선 장소에 가면 쉽게 잠을 들지 못하는 영적 과만증 환자의 경우는 예외이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장소는 지금 자신에게 영적 손상을 입힐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예외적으로 낮에 영적 전쟁을 치렀다면, 예를 들어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사역을 하였다거나 치유를 위한 기도회를 인도했을 경우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낮에 치른 영적 전쟁으로 인해서 입은 영의 손상으로 인해서 느끼는 감응입니다. 이 경우에 영의 손상을 회복하기 위한 충분한 기도를 한 뒤에 잠들면 쉽게 잠을 들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이 낯선 장소가 자신의 영에 어떤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신호로 주어지는 영적 민감을 처리해야 합니다. 그 장소에 대한 주님의 지식의 말씀을 구하고 그에 따라서 적당한 조치를 취하고 잠에 드는 것이 안전합니다. 지식의 말씀을 받는데 다소 서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 장소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악한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시기를 간구하는 보호기도를 드리고 잠에 들도록하십시오. 한결 쉽게 잠들 수 있습니다. 간혹 그런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성현상이 사라지지 않아 잠들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그 장소가 자신의 힘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힘든 곳일 것입니다. 이런 경우 곁에 일행이 있으면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거나, 혼자일 경우 주께서 자신을 보호해 주시기를 계속 간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에 들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나 그 장소를 나오기 전에 이 장소로부터 받은 모든 영적 손상이 완전히 치유될 것을 명하는 명령기도를 하십시오. 이 기도는 이렇게 하면 됩니다. 이 장소(구체적으로 장소의 이름을 거명합니다.)에서 받은 모든 영적 손상은 예수의 이름으로 온전히 치유되었음을 명하노라. 따라서 이 장소의 모든 악한 영은 이후에 내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음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라고 기도합니다.

영적 각성 현상은 우리가 수시로 경험하게 되는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전혀 경험하지 못하는 무감각한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은 경험하는데 자신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자신의 영적 감각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장소에 대한 어떤 영적 손상도 입지 않을 정도의 영적 능력이 강한 경우에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지금 민감한 증상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서 보호기도를 해주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의 증상이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게서 증상이 사라지지 않는다면은 이 경우 자신이 영적으로 매우 둔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영적 둔감은 자신이 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치유될 수 있는 일종의 영적 질병입니다. 영적 성장에 따라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그만한 수준의 영적 성장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영적으로 무딘 경우입니다. 신체적으로도 사람에 따라 매우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둔한 사람이 있듯이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영적 둔감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영적으로 다소 무디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감함을 느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과 함께 하도록 하십시오. 민감한 사람과 가까이 하게 되면 영적 감응도가 높아집니다(무리의 법칙).

영적으로 민감해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불편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신경이 예민한 사람을 보면 그 예민함으로 인해서 고통을 당하지요. 이런 경우 신경과민이라고 합니다. 영적 민감 역시 이와 같습니다. 너무 심각할 정도로 예민하면 영적 과민증일 수 있습니다. 이 과민증에 걸리면 삶이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됩니다. 이 과민증으로 인해서 고통을 겪고 자유함이 없어진다면 이는 치유되어야 합니다. 영적 성장을 이루는 초기 단계에서 이 민감함에 너무 치우치고 이런 증상을 일종의 우월감으로 인식하여 자랑하거나, 감응에만 매달려 만나는 사람마다 영적 감응을 살피고 낯선 장소에 가면 그 장소에 대한 감응을 지나치게 살피는 행동은 위험합니다. 이런 행동에 집착하면 과민증 증상에 빠지게 됩니다. 모든 것에 절제가 필요합니다. 또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일체의 영적 현상은 성장에 따라서 생기는 자연적인 증상이며, 개중에는 성장하면 사라지는 것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는 낯을 가리지만 그 아이가 성장하면 더 이상 낯을 가리지 않지요. 계속 낯을 가린다면 그 아이는 성장한 아이가 아니라 병든 아이지요. 이처럼 성장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가운데 그 시기가 지나면 자연적으로 성숙되는 증상들이 있듣이 영적 현상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이 민감한 증상들이 보다 성숙하게 됩니다. 필요에 따라서 주님이 자신에게 증상들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런 증상을 경험할 때 성숙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낯선 장소에 들어갈 때 간단하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제가 이 생소한 장소(구체적으로 장소의 이를을 거명합니다.)에 오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 이 장소에서 저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시고 이 장소가 주님으로 인해 복된 곳이 되기를 바라며, 이곳을 출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의 보호하심이 임하는 복된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렇게 간단히 기도하고 그 장소를 주님에게 맡기도 편안히 머무르십시오.

이와 같은 기도는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장소에 들어가면 그 장소에 대해 복을 빌라고 하셨지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우리는 항상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하는 주의 군대입니다. 영적 전쟁을 위해서 부리심을 받은 주의 병사들에게 주님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우리에게 끊임없이 정보를 제공합니다. 이 정보를 제공하는 한 방법이 영적 민감성입니다. 영적으로 민감하지 않으면 이 귀한 정보를 잃게 됩니다. 과만은 병입니다. 둔감도 병입니다. 우리는 적절한 수준의 민감함을 지닐 때 센스있는 사람이 되지요. 영적 센스를 지닌 매력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민하지도 않고 둔감하지도 않은 매력적인 주의 군대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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