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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능력에 대한 이해(2)2024-07-22 20:51
작성자 Level 10

능력에 대한 이해(2)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부르심을 받았고 그 일을 위해서 자신의 삶 전체를 기꺼이 헌신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가 그 일을 감당하는 과정은 참으로 가혹한 시련과 갈등과 고통의 연속이었음을 봅니다. 그는 이 일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으로 여기고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행하였지만 이것은 그의 의지였을 뿐 현실은 그 일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벽과 맞서야만 하는 것이었기에 그 일을 내려놓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음을 그의 서신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밝히는 대표적인 표현이 고린도전서 9:16절에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자신이 자랑할 것이 없으며 이 일은 ‘부득불’ 해야 할 일이며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언급합니다. ‘부득불’이란 말을 표준 새번역은 ‘어쩔 수 없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영어성경 NIV는 ‘under compulsion'이라고 적었습니다. 이 말은 ’강제적으로‘ ’압박을 받아서‘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성경은 ’anagke(αναϓκη)'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압박’ ‘고통’ ‘강제’ 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말이 빌레몬서 14절에 사용되는데 ‘자원하는 마음으로(κατα αναϓκην)’라는 말입니다.

스스로 기꺼이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태가 있었으며 그런 배경에는 화가 미칠 것이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하는 바울의 이 말은 매우 의외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복음의 열정으로 가득한 바울에게서 자신이 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그것도 화가 미칠 것을 생각해서 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쉽게 납득이 갈 수 없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실제로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을 거치면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특히 1세기 복음전도자의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절박하고 위험하며 생명의 위협을 날마다 겪으면서 살아야만 했고 더욱이 성경조차 없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겪게 되는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음은 말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길을 열어가는 전도자의 삶은 모험의 연속이었고 위험과 비난이 늘 그들을 괴롭혔습니다. 밖으로는 우겨 싸임과 안으로는 곤고함이라고 표현한 바울의 심정은 고립되고 이해받지 못하는 개척자의 삶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누구나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꺼려하고 본능적으로 잘 닦여진 길을 가고 싶어 하게 되는 것이지요. 능력에 대해서 거부하는 배경에는 이런 모험을 두려워하고 공동체에서 비난 받고 배척되는 것을 소화해 낼 수 없는 비겁함이 있습니다. 문명사회로 갈수록 우리 앞에는 위험한 것이 더 많아집니다. 문명의 이기(利器)에는 반드시 위험이 함께 붙어있습니다. 그 위험을 알고 잘 대처하고 피해감으로써 우리는 더욱 편하고 유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것은 모두 극도로 위험한 것 투성이입니다. 자동차를 비롯해서 어느 하나 위험하지 않은 것이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삶은 원시적이고 어리석은 태도일 것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삶은 불가불 위험을 감당하면서 살아야만 하는 강요된 편의 속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길에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의 생명은 담보될 수 없는 극한의 위험 속에 놓여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서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기피하고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이런 태도는 현대사회는 위험하므로 거부하고 원시사회로 돌아가거나 안전한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가르치는 어리석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모두는 그를 낙후된 사람이거나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그런 가르침은 절대로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어리석은 가르침과 동일한 내용을 아무런 비판도 없이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능력을 사모하고 은사를 구하는 일은 마치 금단의 문을 여는 것처럼 두려워하고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면 전부라고 가르치는 사람들로 인해서 우리는 높은 담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성경말씀은 안전하고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우물 안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애써서 부인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의 눈에는 성경을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리석고 나약하고 편집적인 사람들로 보여집니다. 그들의 눈에는 허구를 좇는 사람으로 보일 뿐이며 이성적이지 못하고 용기가 없어서 허상에 의지해서 살아가려는 위험한 사람들로 비쳐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하고 용기 있게 도전해 나갈 힘이 없어서 종교에 기대어 살아가려는 나약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허구와 같은 성경을 믿는 어리석은 사람으로만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 길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거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는 태도는 불신자가 성경을 대하는 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안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불신자들의 태도가 과연 정답입니까? 우리 대부분은 그런 상태에서 믿음의 세계로 부르심을 받아 오늘날 이와 같이 변화된 자리에 서 있게 되었는데 이제 이 자리에서 능력을 바라보는 태도 역시 불신자가 성경을 바라보는 태도와 전혀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성경은 온통 능력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송두리째 거부하는 배경은 두려움과 무지 때문입니다. 불신자들이 성경을 거부하는 까닭 역시 그것입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잃지 않으려는 생각 때문에 복음을 선 듯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무지로 인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능력을 거부하는 사람 역시 이런 무지와 두려움이 한 데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살아본 사람은 복음을 쓸모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능력을 받아서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절대로 능력을 쓸모없거나 위험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해 본 사람은 절대로 자동차를 위험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비록 위험은 있지만 그 위험 보다는 유익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동차 없는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본 사람은 능력 없는 삶은 결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자신의 복음 전함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고백한 배경입니다. 복음전하는 일이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이지만 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일을 기꺼이 자원하는 마음으로”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화를 당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런 갈등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일은 위험한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며 그 일로 인해서 얻어지는 유익은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방언 말하는 것을 금하지 말고 예언을 사모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는 방언 말하는 것을 철저히 금하며 예언은 마치 점쟁이들이나 하는 것인 양 심하게 거부합니다. 예언을 말하고 받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행위로 여깁니다. 이는 마치 불신자들이 믿음을 가지는 일은 의지가 나약한 사람이나 하는 어리석은 행위로 여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지와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좇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을 뿐입니다”(요1 4:18)라고 적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요한에 대해 “그가 평생 동안 의와 성결로 두려움 없이 섬기게 하리라”(눅 1:75)고 예언합니다. 새로운 길을 여는 사명을 받은 요한이 살아가야 할 길은 두려움 없이 살아야 하는 것이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성결과 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평생을 광야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요소는 바로 이것입니다. 속된 것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성결하고 의로운 삶이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보장입니다. 이런 삶은 그에게서 어떤 영적 현상이 나타난다 해도 두려울 것이 없게 만듭니다. 그런 태도가 새로운 길을 여는 비결이며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며 새로운 일을 우리 가운데 열어 보이시는 것입니다.

낡고 고루한 삶에서 안주하여 날마다 같은 매너리즘에 빠져 아무런 변화와 신비함도 없이 상투적인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얼마나 갑갑할 것입니까? 세상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진보하는데 우리의 영적 삶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화가 없다면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날마다 듣는 그 이야기를 몇십년이고 들어야 한다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새롭고 신비한 일들을 행하시는 것이며 이 일을 행할 수 있는 담력 있고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 있는 사람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랑과 의와 성결이 그 조건입니다. 이것이 갖추어졌다면 누구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새로운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비단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는 그런 일만이 능력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그 일을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것이며 그 일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입니까? 자신을 통해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성취한다면 그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 능력을 받을 수 있는 요소인 사랑과 의와 성결에 대해서 언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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