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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꿈과 환상이 교회에서 배척된 이유2024-07-22 20:47
작성자 Level 10

꿈과 환상이 교회에서 배척된 이유

 

  꿈과 환상은 성경의 부수적인 사항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도외시하거나 신비주의로 여겨서 접근을 꺼리게 된 배경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성경을 면밀히 살피지 않더라고 중요한 성경 사건의 배경에는 반드시 꿈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야곱의 사닥다리 이야기를 비롯해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꿈, 신약에서 예수의 탄생과 연관된 요셉의 꿈, 동방박사의 꿈 등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꿈 이야기로 성경은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150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꿈에 관한한 철저하게 외면하게 된 이유는 제롬이라는 사람 때문입니다.

  제롬(Jerome: 340~419)은 어거스틴과 같은 시대를 산 성경학자인데, 그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아드리아 해의 항구도시인 아퀼레이아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로마 학교에 다녔고, 이교도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고전 수집에 열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고전을 많이 읽었고 여러 문학저술들을 접하면서 성경의 기자들의 문체가 당시 유행하는 시세로나 플라우투스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서 무척 거칠고 조잡하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롬이 수사가 되기 위해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안디옥에 체류하고 있었는데 그는 여기서 심한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병상에서 아주 독특한 꿈을 꾸게 됩니다. 여기에 그가 기록한 꿈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갑자기 나는 성령에게 붙들려 최후의 심판대 앞으로 끌려갔다. 심판석과 거기에 앉아있는 재판장이 강렬한 빛에 둘러싸여 있고 주위에 서 있는 사람들도 눈부실 정도로 빛났기 때문에 나는 감히 눈을 들고 쳐다볼 수 없어서 빵에 엎드려 있었다. “너는 누구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음성이 들렸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너는 그리스도보다는 시세로를 따르고 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는 것이다.”라고 재판장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심한 충격을 받고 할 말을 잃었다.

   재판장이 나에게 채찍형을 언도했고, 나는 곧 채찍을 맞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찍의 아픔보다는 양심의 고통이 더 참기 어려웠다. 나는 울면서 “주여, 용서하시옵소서! 주여, 용서하시옵서소!”라고 부르짖었다. 마침내 곁에 서 있던 사람들이 재판장 앞에 무릎을 꿇고 이 젊은이를 불쌍히 여겨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기를 간청했다. 이 사람이 이교도 책을 또 읽는다면 그 때는 재판장이 어떤 벌을 내려도 좋다고 그들은 간청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여, 내가 다시 세상 책들을 모으거나 읽는다면 나는 당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라고 맹세했다. 이 맹세를 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풀려날 수 있었다.

  마침내 나는 세상으로 돌아왔다. 꿈에서 깨어난 나의 두 눈은 퉁퉁 부어있었고, 이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나의 양 어깨는 실제로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고, 한 동안 그 상처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들은 내 꿈 이야기에 깊이 감동을 받았다. 이 꿈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심오한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세상의 책들을 읽던 열심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성경을 읽게 되었다.
(초대 교부들의 꿈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책으로 Morton Kelsey의 ‘God, Dream and Revelation’ 1974이 있습니다.)

 이 꿈을 꾸고 난 후 그는 사막으로 들어가 홀로 수도생활을 하면서 성경을 깊이 연구했습니다. 그는 수년 후 콘스탄티노플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그레고리로부터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웁니다. 그리하여 그는 유명한 성경학자가 되었고, 교황 다마스커스 1세의 부름을 받고 382년에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게 됩니다. 당시 로마는 라틴어를 공영어로 사용하고 있었지만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함께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는 학자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게이트 역이라고 부르는 이 라틴어판 성경은 가장 권위 있는 번역본으로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제롬이 번역한 것입니다.

  제롬은 성경의 전통에 따라서 꿈과 환상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잉태했을 때 요셉의 꿈을 이야기할 때 천사가 나타났는지 아니면 깨어서 환상을 보고 있었는지 확실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고 몰톤 켈시(Morton Kelsey)는 주장합니다. 제롬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잠을 잘 때이든지 깨어 있을 때이든지 늘 영상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제롬은 “예레미야서 주석”(Commentary on Jeremiah)에서 하나님은 예언뿐만 아니라 꿈을 통해서도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믿는 예레미야의 신앙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꿈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귀중한 선물이 될 것이지만,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꿈은 자기 숭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켈시는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강력한 꿈을 통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던 이교적인 행위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주님께 진정한 헌신을 할 수 있는 자리로 회개할 기회를 얻게 만든 이 강력한 꿈을 얻게 되었던 제롬이 어찌하여 꿈을 교회의 전통에서 멀어지게 하는 장본인이 되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히브리사본을 라틴어로 번역할 때 한 개의 히브리 단어를 고의적으로 거듭 오역함으로써 교회에서 꿈을 완전히 금지시키려고 했는데, 이런 사실을 처음 밝혀낸 사람이 몰톤 켈시입니다. 문제의 히브리어는 ‘아난’(anan)이라는 단어인데, 주술과 점술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주로 점장이나 술사에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이 ‘아난’이라는 단어와 그 파생어는 구약성경에서 열 번 나타나고 있는데, 그런데 제롬이 이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 두 가지 다른 뜻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 중 일곱 번은 ‘마술’로 올바르게 번역하였지만 히브리 성경이 ‘아난’을 정죄의 의미로 사용하는 세 군데에서는 ‘꿈 해석’으로 오역함으로써 꿈 해석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점술과 술사들과 같은 의미로 보게 만들었습니다. 켈시는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19:26과 신명기 18:10을 번역하면서 제롬은 “너희는 마술과 점술을 행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너희는 마술과 꿈 해몽을 하지 말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오역에도 불구하고 불게이트판 성경이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게 되어 꿈 해석은 점성술과 같은 것으로 취급을 받게 되었고, 다른 미신들처럼 같은 정죄를 당하게 되었다.

  6세기 이후에 등장하기 시작한 교회 지도자들이나 신학자들은 제롬의 불게이트 라틴어판 성경 이외에는 다른 성경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그 때문에 그들은 제롬이 의도적으로 오역한 레위기 19장과 신명기 18장을 꿈 해석에 대한 금지령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로와 인도를 받으려는 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억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부터 꿈과 환상을 통해서 보다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은 교회 안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성경은 라틴어판 불게이트를 사용해서 번역했기 때문에 이런 오류는 전혀 시정되지 않은 채로 유지되어 온 것입니다. 젊은 시절 놀라운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던 그가 이처럼 극단적으로 돌아선 까닭을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이 해석의 오류는 그가 무지해서 일으킨 것이 아니라 당시 교회를 이끌고 있는 다수의 지도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결정한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합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은 개인의 역량보다는 전문 위원들과 교단의 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노년에 이른 제롬이 그의 명성과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 세 군데 번역을 의도적으로 바꾼 것으로 루이스 세버리는 주장하고 있습니다(Louis Savary, “Dream and Spritual Growth” a judeo-christian way of dreamwork)

  제롬이 살았던 4세기는 기독교가 유대를 완전히 벗어나 로마가 그 중심이 되던 시기입니다. 초대 공교회가 확고하게 로마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에 교회는 가장 우선되는 것이 교리의 확보였고, 많은 이단적인 교리들과 거친 투쟁을 했던 시기입니다. 따라서 영적인 일보다는 제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런 사실이 교황 그레고리가 취한 행동에서도 여실히 나타납니다. 540년에 태어난 그레고리는 공교회의 초기의 가장 뛰어난 성경학자였으며, ‘중세교회의 스승’으로 일컬어질 만큼 탁월했습니다. 그의 저작인 ‘대화’(Dialogues) 제 1권에서 그는 초기 기독교 전통에 따라서 꿈과 환상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적절한 계시 즉 꿈과 환상을 보내주셔서 핍박 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견딜 수 있게 힘을 주신다.’라고 했던 그가 제 6권에서는 ‘망상이나 환각에서 진정한 계시를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은 성인(聖人)들에게만 있으며, 꿈에만 의존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라고 경고합니다.

그  는 꿈과 환상 보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는 제롬과 같이 꿈과 환상 등과 같은 직접적인 경험보다는 이성적인 방법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초기 공교회가 제도적인 틀을 공고하게 만들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었던 당시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교부들과 지도자들이 꿈과 환상과 같은 직접적인 경험들이 교회를 얼마나 어수선하게 할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오늘날에도 영성 목회를 하는 분들이 경험하는 어려움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점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만의 개인적 경험을 교회의 제도와 권위를 넘어서서 독단으로 사용하는 근거로 삼아 교회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당시 그런 어려움이 실제로 극심했을 것이라는 상상은 어려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제롬은 그 자신이 꿈을 통해서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체제를 유지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성숙하지 못한 일반적인 성도들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따라 바람직한 신앙생활을 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 후 그는 의도적으로 이 부분을 교회에서 배제시키는 일에 동조하게 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제롬 이후 등장한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신학자입니다. 그는 인간은 오로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서만 무엇을 알거나 경험할 수 있다는 이 철학자의 주장을 따라서 신학을 논리적인 틀 위에 세우려고 노력한 사람입니다. 기독교를 미신으로부터 구하고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신에 비추어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저술 “신학대전”(Summa Theologia)가 바로 이런 노력의 결정체입니다. 이 책은 가톨릭 신학연구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저술로 1960년 “바티칸 제2교서”가 나오기까지 그 명성을 유지했습니다. 그가 가장 고민한 부분이 바로 꿈과 환상이라는 주제였습니다.

  그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꿈과 환상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주요한 계시의 수단으로 가르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현상일 뿐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이 두 주장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를 놓고 깊은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예민한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고 피해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을 취해 ‘꿈은 단순한 자연현상으로 신앙생활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라는 스승을 주장만을 제공합니다. 이 “신학대전”은 교회 생활의 가장 올바른 지침을 제공하는 역저로 인정하여왔기 때문에 꿈과 환상은 교회 안에서 배척을 당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이 “신학대전”을 쓰는 동안 그의 사상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놀라운 꿈을 두 번 꾸게 됩니다.

 그가 신학대전을 써 내려가다가 어느 한 문장에서 걸려 수 일 동안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몇 번이고 필경사에게 다시 쓰도록 했으나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필경사에게 불러주는 글이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필경사는 놀라운 마음으로 어떻게 이렇게 쉽고 부드러운 문장을 찾아낼 수 있었느냐고 물었고, 그는 ‘어제 밤 꿈에 베드로와 바울이 나타나서 이렇게 쓰라고 일러주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꿈은 그가 신학대전을 마치기 바로 직전 어느 날에 그는 필경사들이 있는 방에 들어가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무리를 눈 앞에 두고 이러면 안 된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책을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지금까지 써온 이 글이 모두 지푸라기처럼 쓸모가 없는 것임을 하나님께서 내게 직접 알려준 이상 나는 죽는 날만 기다릴 뿐이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결단을 하게 된 배경에는 반드시 꿈이나 환상으로 온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는 공식적으로는 꿈 해석을 거부한 사람이지만 그 개인은 꿈과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를 소중하게 여겼음에 분명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리와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것을 가르칩니다. 그렇지만 그가 내린 많은 결정들을 보면 그 자신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서 얻은 통찰과 계시를 따랐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후 교회는 그의 삶을 통해서 교훈을 얻기 보다는 그의 저술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을 진리로 여기면서 오늘날까지 따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마치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자신은 궁궐 안에 내원당을 만들어놓고 신앙생활을 했지만 백성들에게는 숭유억불을 강조한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많은 영적 지식들을 소유하게 되었고, 성숙한 지도자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도자는 물론 일반 성도들도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수준입니다. 일부 성숙하지 못한 이기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인해서 문제는 생기지만 우리는 초기 공교회가 우려하던 그런 유형의 실수들은 많이 제거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그릇된 전통들은 과감히 벗어버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숙하고 풍요로운 영적 삶을 사는데 필요한 영적 지식들을 개발하고 공유함으로써 더욱 건강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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