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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하나님의 임재 경험하기2-기도를 통해서2024-07-20 23:24
작성자 Level 10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두 번째 수단은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신앙생활의 두 중심축이지요. 이 둘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며, 겉과 속입니다. 말씀은 외면으로 들어나는 것이라면 기도는 안으로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남성적이라고 생각하면, 기도는 여성적이며, 말씀이 낮이면 기도는 밤입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보완적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통적으로 말씀은 강조되고 중요한 위치에 놓았지만 기도는 다소 소홀히 취급해온 것입니다.

기도는 모성적이고 수동적이며 내면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연구는 말씀의 연구만 하지 못했습니다. 남성 위주의 가치관으로 살아온 환경 속에서 말씀은 이성적이고 분석적이며 객관적이지만 기도는 감성적이고 신비적이며 주관적이기 때문에 무시되었던 것이지요. 이것은 여성의 존재가 무시되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모두 중요하며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결코 우월할 수 없는 비교의 대상이 절대로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등급의 개념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말씀과 기도 역시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낮은 차원으로 취급하고 그에 대한 연구도 상대적으로 형편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객관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주관적이며,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성적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도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임재는 말씀으로 얻게 되는 임재의 내면을 보충한다는 의미에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의 승인(acceptance for us)'이며, 말씀에 대한 보증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것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일체의 행위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인 예배라고 해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일종의 행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약속이라는 사실을 앞의 글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은 약속을 받고 그것을 기다리는 연속적 행위입니다. 주신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기다리면서 간구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다려야 하는 집단적 약속과 개인이 기다려야 하는 개별적인 약속이 있습니다. 이것을 얻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결재수단이며 사인(sign)행위인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확실하게 하는 영적 행위입니다. 말씀으로 임재하시는 증거는 기쁨과 평안과 뜨거움 정도이지만 기도를 통해서 임재하시는 증거는 이것을 포함해서 ‘황홀경’ ‘쓰러짐’ ‘향기’ ‘음성’ ‘천상의 음악소리’ ‘들리어 올라감’(rapture) '환상‘ ’천사의 방문‘ ’진동‘ ’청량감‘ ’전률‘ ’감싸는 느낌‘ ’위엄에 압도됨‘ ’반짝이는 수많은 별빛‘ ’잠듦‘ ’몸을 흔듦‘ ’웃거나 욺‘ 등의 증상을 동반합니다. 이 가운데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향기‘ ’전률‘ ’포근한 느낌‘ ’청량감‘ ’잠듦‘ 등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서 잠이 드는 경우 우리는 육신이 피곤해서 잠든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 소를 잡아 각을 떠놓고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납니다. 이때 그는 깊은 잠에 빠져 하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깊이 잠이 드는 반대현상이 ‘청량감’입니다. 갑자기 정신이 투명하게 맑아지면서 온 몸이 가벼워집니다. 새털처럼 가벼운 느낌을 받으면서 날라 갈 듯합니다. 너무 가벼워진 나머지 실제로 들리어 올라가는 것 같은 부양감을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 같아서 정말로 떠올랐는지 느낌만이었는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 이런 현상들의 의미 역시 하나님의 약속의 보증으로 나타나는 임재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 대한 승인 및 거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우리가 일상의 기도에서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현상들이며 일부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증거는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가 소망함으로써 더 확실하고 빈번하게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영적 삶에 대한 점검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뜻에 따르는 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불순종과 죄의 삶을 살고 있는지를 판단 받게 됩니다. 자의적인 판단은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유대의 바리세인들이 자신들을 항상 옳다고 생각한 것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지식으로 자신들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자신에게는 판단하는 이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말함으로써 인간적인 자의적 판단 이외에 하나님의 판단은 깨달을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판단이 올바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판단 받아야 합니다. 그 수단 가운데 한 가지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한 증거를 얻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 기도를 가볍게 여기는 오류에 빠집니다. 기도는 인간적 기준으로 정형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림줄로 판단 받는 수단입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의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그 수단 가운데 하나가 기도이며, 그 증거가 하나님의 임재의 수단입니다. 그리고 그 수단을 우리가 깨닫는 방법이 영적 현상인 것입니다. 이 현상들을 각자가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기도는 엄격한 의미로 말하면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중언부언의 기도입니다. 누구를 위한 기도이며, 누구에게 드리는 기도인지도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드려지는 기도는 막연한 기도이며, 메아리 없는 독백일 뿐이지요. 우리의 기도는 대상이 있고 그 대상은 나무나 돌처럼 반응하지 않는 무생물이 아니라 철저하게 응답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는 기도를 계속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어리다는 증거입니다. 성숙된 기도는 대화이며 상대방의 반응을 얻는 수단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우리는 그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느껴지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우리는 다윗처럼 울부짖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네게서 주의 성신을 거두지 마십시오”라고 간절히 울부짖었던 다윗은 기도를 아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발견하던 사람이 어느 날 자신에게서 살아진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고 느낀 그 처절한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 기분은 주인에게서 버려진 종의 기분이며, 사랑하는 이에게서 버림 받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기도는 죽은 기도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날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서 자신의 삶을 경건하고 책임 있게 유지하려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가 경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살아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통한 임재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 그 말씀을 약속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집단적이며 외형적이지만,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의 목적은 개인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이 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다림줄입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의 자신의 삶을 점검 받게 되고, 하나님이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고 자신감 있는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고난과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한다면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행위를 할 것인지를 고백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에게 고백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고 계시며 어떤 행동을 하기 원하는지를 깨닫는 수단이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고 비난하였다고 해도 하나님이 그 일을 정당하게 여기시고 인정해 주시는 증거로 임재를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한없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으로 인해서 그 어떤 수고와 고통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며, 그 일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돌에 맞으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천국을 볼 수 있었던 스데반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약해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기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임재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는 경우와 기도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깊이 잠드는 경우에 육신이 피곤해서 영적으로 눌려서 잠이 드는 것과는 다소 다릅니다. 영과 육이 약해서 잠드는 것은 후회를 낫습니다. 그러나 임재로 인해서 잠드는 것은 큰 위로를 얻습니다. 처음 이런 현상을 경험하면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잠든 사실 때문에 한심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에서 알 수 없는 확신과 기쁨이 솟아나는 것을 느낍니다. 의식적으로는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한심하게 느끼지만 속사람은 이상한 기쁨으로 들뜨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며, 비록 말로는 하지 못했지만 기도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기분이 들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잠드는 것은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가물가물해지면서 정신이 흐려져 횡설수설하다가 잠이 드는 것이 아니라 맑은 정신으로 기도도 힘차게 하는 중에 갑자기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잠에 빠지는 것입니다. 잠에 드는 것을 전혀 모르고 갑자기 깨어나면 자신이 깊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잠 속에서 무언가를 들은 것도 같고 본 것도 같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몸이 피곤하지도 않고 잠들 분위기도 아닌데 잠이 들게 되어 이상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깊은 늪에 빠져드는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가물가물 정신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몸이 한없이 나른해지면서 도무지 어쩔 수 없이 깊은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 감기약에 취하거나 약물이 온 몸에 퍼지는 것과 흡사한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식적 판단은 우리의 사고(thinking)에서 나오는 경우에 그 판단은 올바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서 얻어진 판단을 항상 올바릅니다. 예수님은 이 부분에 있어서 완벽했기 때문에 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셨기 때문에 언제나 하나님이 그 말에 책임을 져 주셨습니다. 예수님 입으로 나오는 말은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졌지요. 이것이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부분이지만 우리는 절대로 완벽하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의 말에 100% 책임져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임재를 통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살펴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수준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며,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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