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안에 둥지를 튼 원수2024-08-25 0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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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둥지를 튼 원수
"내 안에 둥지를 튼 원수" 이런 얘기는 단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우리의 영적 문제를 정확히 분석한 것이다. ⠀ 소유하고 또 소유하고 언제나 소유하려는 타락한 생명의 질기고 질긴 뿌리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뻗어 있다. ⠀ 이것은 사물을 향한 깊고 맹렬한 소유욕으로 불탄다. ⠀ ‘나의’(my)와 ‘나의 것’(mine)이라는 대명사가 이런저런 글들에 등장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삶 속에서 지속적으로 폭넓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큰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 이런 대명사는 옛 아담에게서 유래된 인간의 본질을 천 권의 신학책보다 더 잘 드러낸다. ⠀ 우리가 가진 깊은 질병의 증상이 말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 우리 마음의 뿌리들이 점점 자라서 사물에 박혀 있지만, 우리는 잔뿌리 하나라도 뽑으면 죽을까봐 감히 손도 대지 못한다. ⠀ 이제 우리는 사물이 없으면 못 사는 신세가 되었다. 그분의 선물들이 그분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고, 자연의 모든 부분은 이런 괴물 같은 ‘자리바꿈’으로 인하여 엉망이 되었다. ⠀ 이것은 본래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 아니다. ⠀ 이런 폭군 같은 사물의 지배는 제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에서도 아주 잘 드러난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 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24,25). ⠀ 이 진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결국 각 사람 안에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적(敵)이 자신의 묵인 하에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다. ⠀ 예수님은 이 적을 ‘목숨’이나 ‘자기’라고 표현하셨다. ⠀ 나는 ‘자기중심적 삶’(self-life)이라고 부르고 싶다. ⠀ 이것의 주요 특징은 소유욕으로, ‘소득’이나 ‘이익’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 이 원수가 자꾸 커지도록 내버려두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하지만 이 적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면 아무것도 잃지 않고 오히려 모든 것을 얻어 영생에 이르게 된다. ⠀ 이 원수를 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암시되어 있다. ⠀ 그것은 이 원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다! ⠀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외로운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다. ⠀ 모든 외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마음에서 소유욕을 전부 뿌리 뽑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다. ⠀ 이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이들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들의 물질적 가난에 필적하는 심령의 가난에 도달한 자들이다. ⠀ 그리스도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라고 말씀하실 때 의미하신 가난이 바로 그런 것이다. ⠀ 이런 복된 가난은 폭군처럼 군림하려는 사물에게 더 이상 종노릇하지 않는다. ⠀ 오히려 압제자의 멍에를 부숴버린다. ⠀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싸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복종’을 통해서다. ⠀ 모든 소유욕에서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모든 것을 소유한다. ⠀ 그렇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 나는 당신이 이 깊은 진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길 바란다. ⠀ 이 진리가 살아 활동하지 못하는 수많은 교리들과 함께 마음 한 구석에 처박힌 성경의 교훈이 되지 않길 바란다. ⠀ 이것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이정표이고, 우리가 하나님의 산을 오를 수 있도록 가파른 절벽에 깎아 만든 등산로다. ⠀ 그분을 찾아가는 거룩한 여행을 끝까지 마치려는 자는 결코 이것을 피해갈 수 없다. ⠀ 한 번에 한 걸음씩 가면 된다. 한 걸음 내딛기를 거부한다면, 여정 전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 A.W. 토저, <하나님을 갈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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