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에서 실천하는 영성을 가지라! 창세기1:26절에 보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두 단어가 나오는데, 형상은 내적인 것을 말하고, 모양은 외적인 것을 말한다. 사람은 안에 속한 것 즉 생각, 의지, 감정을 갖고 있고, 밖으로는 모양인 몸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사랑해주신 그 사랑의 성품을 말하며, 하나님의 모양이라함은 성육신을 통한 공생애를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님의 영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의 영성이란 하나님의 인격이고 정신이며, 삶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사람은 그리스도의 영성을 따라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을 닮기에 힘쓰며, 그 분의 마음을 힘써 알도록 노력하는 것이 성도의 영성이라는 것이다. 성도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며 살때만이 상실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되어 세상과 구별된 성결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교회와 성도들은 불신자를 포함한 모든 이웃에게 전하는 영성을 갖기보다는 교인들끼리만 주고받는 영성을 가지기에 애를 쓴다. 이러다보니 반대하고, 미워하고, 대적하는 곳에서 더욱 파워풀하고 폭발적으로 드러내는 성령의 능력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을 일부 신학자들은 "추한(Ugly) 영성" 이라고 표현한다. 마틴 루터는 주일 저녁예배를 마친 후에 교회 문을 걸어잠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 주일까지는 교회에 오지말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도가 6일동안 하나님을 믿고, 섬기고 사랑해야하는 터(場)가 바로 이 세상이라고 말하면서 성도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할 곳이 예배당 건물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터, 가정, 직장, 불신자 등등... 세상 속에 자리한 모든 삶의 현장이 곧 교회가 되기 때문에 걸어두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였다. 매일 새벽기도하고 주일예배를 빠지지 않으면서, 삶속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증거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예언과 같은 말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을 나타내야 하는 장소가 가정과 직장, 산업, 시장과 저자거리가 되야함을 마음에 새기고, 오늘부터 더욱 행동으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