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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예수이름의 권세보다 더 강한 권세는 없다!2024-07-22 13:39
작성자 Level 10

예수의 이름으로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이 할 수있는 질문중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당신은 영광의 왕께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기도에 관한 예수님의 약속울 읽을 때 주님이 약속을 행하실 만한 능력이 없는 분이라고
섣불리 단정을 짓지 않는 한 우리는 그분께서 엄청난 권세를 우리손에 쥐어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무엇을 구하든지""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무엇이든지""원하는대로 구하라"라고 명백하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단서를 붙이셨다.
그것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유일한 조건이다.
(때로는 이조건이 성경에서 다른말로 표현되어 있다는것을 알수 있을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여도 받지 못한다면
그 까닭은 오로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면 '예수의 이름으로'구하는것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을것이며 그조건을 온전히 충족 시키기 전까지는 도무지
만족하지도 쉬지도 못할것이다.

이 약속을 다시 한번 읽으며 정확히 확인해보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사실 이것은 매우 새로운 방식이다.
주께서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라는 단서를 다섯차례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이 단서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것은 단순한 조건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약속이자 격려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령을 하실 때마다 언제나 그 명령을 수행할 능력까지 주시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무슨방법을 써서라도 이것을 알아내야 한다,
이것이 기도의 능력의 비밀이거니와 자칫 잘못하면 이 말을 오해하여 사용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은 다른말로 "많은 사람이 자신과 남을 기만하면서도 자기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기도하고 있다고 착각한다"라고 풀어 볼수도 있겠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라는 말의 뜻이 단지 기도끝에
"이모든 말씀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문장을 첨가하는 것인가?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자아 의지와 이기적인 동기로 가득한 내용을 구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로 말끔히 마무리를 하면 참된기도가 되는 것인가?
당신은 이러한 기도를 들어본 적이 없는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한다'라는것의 의미


야고보 사도는 자신의 서신에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시는 기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구절로 기도의 끝을 장식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야고보서에 언급된 그리스도인들은 잘못 구하고 있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야고보서4:3)

기도끝에 어떤 신비로운 구절을 덧붙안다고 해서 잘못된 기도가 올바른 기도가 되는것은 결코 아니다.
반면에 그런 신비로운 구절이 누락되었다고 해서 올바른 기도가 능력을 잃는것도 결코 아니다.

그렇다.이것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니다.
주님은 어떤 공식보다는 믿음과 사실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 하신다.

기도의 주된 목적은 주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는것이다.
우리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요14:1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해야 한다.

잘 들어라. 우리는 부나 건강이나 번영이나 성공이나 안락함이나 위로나 
영적성장이나 사역의 열매를 구한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를 위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이모든 것을 구해야지
단지 우리자신의 즐거움이나 물질적 향유나 발전이나 인기를 위해 구하면
절대 안된다.

이제부터 "내 이름으로"라는 중요한 구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세단계를
밟아 보도록 하자.
 

첫째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어라



"내 이름으로"라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인하여
어떤일이 이루어진디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으로 인하여 어떤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스도의 속죄와 죽음을 믿지않는 사람은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못할 뿐아니라
설령 그가 그 구절을 사용해서 기도를 한다해도 아무결과가 나타나지 않을것이다.

그이유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자만이 "그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고"(롬5:9)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능력의 전도자 드와이트 무디가 사역초기에 체험한 어떤 사건을 들어 이점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지적으로 매우 뛰어난 불신자 판사 한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가 무디를 찾아와 남편에게 복음을 전해달라고 청하였다.
무디는 그런 사람과 논쟁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지만 그를만나 솔직하게 심정을 토로한뒤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이후에 만일 선생께서 회개하신다면 제게 알려주겠다고 약속하시겠습니까?"
판사는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물론 그렇게 하죠. 만약 제가 회개하게 된다면 속히 선생께 알려드리겠습니다."

무디는 기도의 힘만 의지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그 판사는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왔다.
그는 약속을 지켜 그간에 일어났던 일을 무디에게 이야기했다.

"어느날 밤 이내가 기도회에 가고 없을 때 갑자기 불안해지더니
제자신이 비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도록 한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직 일어나 아내에게 식사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뒤에
곧바로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휴무를 명한 뒤에 방에 혼자 틀어박혔습니다.
그러나 비참하다는 생각이 점점 더 압도해 왔습니다.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저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라고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유니테리언 교도(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며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는다)였던지라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고뇌하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 제죄를 용서해 주소서~!'그러나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절망 속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그러자 즉시 제마음에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판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구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즉시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죄를 사하여 주셨다.
그렇다.주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직접 피를 흘리시며
다이루시고 획보하신 것 즉 우리를 위해 값을 지불하신 것을 구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히10:19)

다른 어떤길로도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구절이 뜻하는 바를 모두 설명한 것은 아니다.

둘째 주님의 뜻대로 구하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것의 가장 익숙한 예는
은행에서 현금을 찾는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거래은행에서 계좌에 예치되어있는 금액만큼만 인출할 수 있다.
내이름으로는 그이상의 금액을 인출할 수 없다.

영국은행에는 내 돈이 한픈도 예치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나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꺼내 쓸수 없다.

그러나 영국 은행에 거액의 돈을 예치하고 있는 어느 부자가 손수 서명한
백지수표를 내게 건네면서 원하는 금액을 마음대로 공란에 기입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나의 절친한 친구이다.
어떻게 할까? 당장 필요한 금액만 기입할까?
아니면 뱃심좋게 최대한의 금액을 인출할까?

나는 지나치게 적은 액수를 기입하여 친구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액수를 기입하여 내 체면을 구기는 짓은 결단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친구의 의중을 파악해 그것에 호응하려 애쓸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이 자신의 은행이라고 종종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부유한 은행가이시다.

왜냐하면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기"(약1:17)때문이다.
이 무한한 금고를 이용하려면 수표가 필요하다.

그런데 주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건네시며
"원하는 금액은 얼마든지 기입하거라.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줄 것이다.
단 내 이름으로 수표를 제시하거라.
그러면 너희의 요구를 존중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을 어느 유명한 전도자의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내가 하늘의 은행에 갈 때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 갈때에
나와같은 일이 일어난다.
나는 그은행에 아무것도 예금한 돈이 없다.

그리고 나는 그은행에 아무 신용도 없다.
그러므로 내이름으로 가면 아무것도 받을수 없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께서는 천국 은행에 제한없는 신용계좌를 갖고 계신다.
그리고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이 기록된 수표를 들고
천국 은행에 갈 수 있도록 특권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이수표를 들고 천국 은행에 가면 나의 기도는 얼마든지
지불받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나의 신용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신용에 근거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는 실로 기쁜일이요 어떤 점에서는 매우 타당하다.

만일 이수표가 정부기관이나 어떤 기업체 앞으로 발행된 것이라면
찾을수 있을 만큼의 돈을 한꺼번에 싹 찾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모든 것을 빚지고 있는 온맘을 다하여 사랑하고 있는
앞으로도 거듭거듭 찾아야 하는 사랑이 풍성하신 아버지께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은행에서 수표를 현금으로 교환 하려는 것
곧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는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실추 시키고
우리에게 의심과 고통을 안겨줄 수있다.

진실로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하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하심에 흠집을 낼 수가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

경험은 토론을 불필요하게 만드는 법이다.
친애하는독자여~당신은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가?

천국 은행에 다녀올 때마다 '예수의 이름으로'구한것을 확살하게 얻었다고
자신있게 말할수있는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어디에서 질못된 것일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그롷게 된것은 아닐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려고 애쓰면 안된다.

지금까지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는 개인적인 체험 한가지를 말하려고 한다.
30여년전에 일어났던 이일은 나에게 매우 독특한 체험이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기도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바에 대한 비할데 없이 좋은 예가 될것이다.

하루는 무척 바쁘게 지내는 유복한 친구 하나가 나에게 1파운드의 돈을 주려고 했다.
그는 나를 사무실로 불러 1파운드짜리 수표를 급히 써주었다.

그리고 수표를 접어 내손에 건네주면서 "은행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 쓰게"라고 말했다.
나는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수표의 금액을 확인하지도 않고 배서한뒤에
창구에 있는 직원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직원이 곁눈질로 나를 주의깊게 살피면서 "손님 죄송하지만 너무 큰 금액이라
창구에서 바꾸어 드릴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는게 아닌가?

"그런가요?"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1파운드인걸요?"

"아닙니다."직원이 대답했다.
"이건 1천파운드짜리 수표입니다."

정말 그랬다.
내 친구가 거액의 수표를 쓰는것이 습관이되어 1파운드짜리 수표대신에
1천파운드짜리 수표를 써준 것이다.

이럴때 나의 법률적 위치는 어떠한가?
그 수표는 분명히 내친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서명도 이상이 없었고 배서도 문제가 되지않는다.
친구의 계좌에 충분한 금액이 예치되어 있는 한 내가 1천파운드를 인출하는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수표는 내 친구가 자발적으로 물론 급히 발행하기는 했지만 
자유의사로 내게 써준것이었다.

내가 그친구의 선물을 받아서는 안될 이유가 있는가?
1천파운드를 찾으면 안될 까닭이 무엇인가?

그친구는 내게 사랑과 호의를 베푼 너그러운 친구였으며 속마음까지 다 보여준
절친한 친구였다.
나는 그친구가 무엇을 소망하고 어떤 것을 갈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친구는 내게 1천 파운드를 주고자 했지 그이상을 주고자 하지않았다.
나는 그친구의 의도와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너무도 관대한 금액이 기입된 수표를 즉시 회수하여 적절한 때가 되었을 때에
그친구의 계획에 따라 정확히 1파운드만 받았다.

만약 그 친구가 내게 금액이 적혀 있지않은 백지수표를 주었더라도 결과는 동일했을것이다.
그친구는 내가 1파운드의 금액만 기입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위한 계획과 뜻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뜻을 알고자 노력하지 않으면 1파운드가 우리를 위한 최선의 금액이라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때에 1천파운드를 구하기 쉽다.

우리는 기도할때에 친구가 되시는 사랑의 예수님께 나아간다.
우리는 그분께 모든것을 빚지고 있다.

아버지 께서는 원할때에 언제든지 와서 필요한것을 찾아가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자원은 무한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에 합당한것 곧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것만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사도요한은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5:14)라고 말했다.
우리의 친구이신 하나님께서는 백지수표를 건네시면서 무엇이든지 바라는것을
기입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지않는것을 결코 기입하지(구하지)않으리라는것
(그런것은 우리에게 심히 해롭기 때문에)을 잘알고 계신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의 측면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는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백지수표를 주시며 "1천파운드를 구하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1백파운드만 구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혹시 우리가 이런식으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충분히 구하고 있는가?

우리는 "영광가운데 그풍성한대로"구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심사숙고해야 할점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지못하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세째 올바른 동기를 가져라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구절과 의미를 완전히 소화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다른사람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는게 어떤것인지 잘알고 있다.

당신은 신뢰성이 결여된 사람이 당신의 이름을 사용하지못하게 하려고
매우 조심할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그가 당신의 이름을 남용하여 당신에 대한 평판을
훼손시킬것이기 때문이다.

주인의 신임을 받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 장군을 좇아갔을때에 엘리사의 이름을 남용하였다.
그는 엘리사의 이름으로 부를 얻었지만 이러한 악한행위로 저주를 받았다.

고용주의 신임을 받는 직원은 종종 고용주의 이름을 사용하여
거액의 돈을 자기의 것인양 취급한다.
그러나 그는 고용주가 자신에게 그런일을 맡길만큼 자신을 신암하고 있을때만
그런행동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인을 위해서 그돈을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재산은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의 것이다.
우리가 기도로 얻을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것을 공급받기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을것이다.

당신이 은행에 가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고자 할 때 수표를 발행한 사람의 서명이 진짜이고
당신이 그돈을 수령할 만한 법적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은행측은 기꺼이 돈을 내어줄 것이다.

은행은 당신의 성품에 관해 조회하지 않는다.
은행은 당신이 그돈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사람인지 그돈을 제대로 사용할 만큼 신임할 수 있는사람인지 조사할 권한이 없다.

그러나 천국은행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점이 매우 중요하니 신중하게 읽기 바란다.

지금 내가 하는말을 건성으로 읽고 넘어가지말라.
당신이 그리스도의 축량할수없는 부앞으로 발행된 수표를 들고 예수의 이름으로 천국은행에 갈 때 하나님은 당신이 그것을 수행할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보신다.

어떤 자격을 갖추거나 공로를 새워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선물을 나자신의 이익을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구해도 얻지 못할 것이다.(약4:5)
우리의 동기가 올바르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은행가께서는 우리의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지 않으신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기도에 실패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닐까?

예수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 보냄을 받은 대리인으로서의 예수의 영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성품을 따라살면서 예수의 뜻을 따라 기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승인을 받아 구하는것이며 그리스도께서 구하는것과 똑같은 것을 구하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게 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그런일을 하기를 소망하는것이다.

에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의 관심과 목적이 무엇인지 다시한번 분명하게 점검해 봐야 한다.

당신의 자아와 자아의 욕구를 성령으로 온전히 다스려 당신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뜻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한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구하였다.
"오 주님! 주님의 뜻이 마치 제뜻인것처럼 행할 수 있게 허락하소서~
그리하여 제뜻이 마치 주님의 뜻인것처럼 행하게 하소서~!"
우리모두가 이러한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여~
이런말을 들을 때 불가능 하다는 느낌을 받는가?

그것은 주님이 의도하신 바가 결코 아니다.
주님은 우리를 우롱하지 않으신다.

아버지께서 그자녀에게 성령을 보내주실것이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성령은 누구신가?
우리의 기도를 돕는 가장 큰 조력자가 아니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아 예수의 이름으로 행동하기를 바라신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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