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과 하나님의 임재 찬양과 하나님의 임재Ⅰ - 우리가 하나님을 초청함 찬양은 하나님과의 교류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찬양할 때, 여러 신령한 체험들이 나타납니다. 회개, 병고침, 예언, 환상, 위로, 평안, 기쁨.... 그러나, 가장 놀라운 일은 그분의 축복이나 능력이 나타날 뿐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이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 사람들을 찾아오시는 하나님 - 하나님은 하늘 위에서 가만히 머무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천군 천사들을 이끌고 하나님이 필요한 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죄지은 아담에게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셨으나, 아담은 그 임재를 피하려 하였습니다.(창 3:8) 죄지은 자들에게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느낀다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낍니다. 불신자들이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느끼는 불안감도 이러한 것일 것입니다.
- 그러나 비록 죄인이지만 긍휼을 바라고 주를 기다리는 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주를 높이며 그가 자기에게 임하시기를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시 131: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 하나님과 관계 맺어진 자들의 찬송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시 22: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 하나님은 우리가 환난 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우리를 위해 나타나십니다.
(민 16: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문에 모아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 우리에게 예수 이름이 임하여 죄사함을 얻었고, 성령이 임하여 각종 은사와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신앙생활 가운데서 우리는 계속 주의 임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그분의 임재를 요청할 수 있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시 27:8)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을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2) 찬양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 - 하나님의 환경은 하나님을 높이는 일이 계속되는 곳이며, 죄악이 없고 거룩한 곳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의 임하실 공간과 시간을 준비한다 해도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환경이라면 주의 임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 된 것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과 거룩함이 회복되어서 성령께서 임하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 때 성전에 거룩함과 찬양이 없었기에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텅빈 건물만이 되고 말았습니다.
(겔 8:6) "그가 또 네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행하는 일을 보느냐? 그들이 여기서 크게 가증한 일을 행하여 나로 내 성소를 멀리 떠나게 하느니라 너는 다시 다른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 그러나 찬양이 불리워지며 거룩함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대하 5:13) "나팔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가 일제히 소리를 발하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불고 제금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 하나님의 임재가 감정이나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그분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찬양 받기를 기뻐하시고, 또 원하시지만, 세상에는 찬양하는 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찬양 결핍증'에 걸리지는 않습니다. 찬양이 있는 곳을 하나님이 쫓아다니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찬양하면 꼭 하나님이 임해야 한다는 의무가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호출하는 음악적 주문이 아닙니다. 물론,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께서는 찬양하는 자들의 찬양을 원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다음 말씀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 65:1)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 하나님이 찬양을 기다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찬양이 그 대상이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찬양하기를 기다리시고, 더 많이 찬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더 요구되어지는 것은 우리가 찬양하며 주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찬양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찬양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하도록 부탁하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찬양을 들어 달라고 겸손히 구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의 찬양입니다.
(시 143:6)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결론> 우리가 거룩하게 찬양하며 찬양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기다릴 때 그 분의 임재가 우리 가운데 나타날 것이고, 그로 인해 우리는 다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찬양과 하나님의 임재 Ⅱ -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하심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첫째로는 하나님이 우리의 환경에 임하시는 것이며, 둘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환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전자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고, 이제 후자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이 계신 곳
-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길을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그 길을 발견하고 계속 하나님 앞에 이르고자 합니다. 교회 안에도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자들과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이르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출 20: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흑암으로 가까이 가니라" (욥 23:3)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 하나님은 자신이 시내산에, 지성소에, 시온에,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소들은 주께서 보좌를 베풀고 앉아 계신 셋째 하늘에 대한 모형과 비유입니다.
(히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우리 영혼은 모두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를 사모하고 있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죄로 인해 막혔고, 인간의 힘으로는 그 길을 다시 트이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 쪽에서만 다시 트이게 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께 이르는 길
- 우리가 하나님께 이를 수 있게 친히 길이 되시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Ⅴ募?것은 마치 홍해를 앞에 두고 건너 편에 있는 약속의 땅으로 가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홍해가 갈라지며 전혀 예상 못했던 길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난 것처럼(사 51:10) 새롭고 산 길이신 예수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 그 거룩한 곳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 우리는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길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기뻐 찬양하며 우리의 구속받음을 감사해야 합니다.(사 35:8∼10)
3) 하나님의 초청
- 우리가 찬양할 때 종종 반쯤은 천국에 가 있는 것 같은 영적인 감각을 충만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양하며 나아갈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에 이르는 길을 따라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고, 많은 자들이 하나님이 계신 곳, 우리 영혼의 종착역에 다다랐음을 느낄 것입니다.
(히 12: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 하나님께 이르는 길이 열렸다 해도 우리 스스로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초청을 받고 주가 계신 곳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없이는 하나님의 환경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혼자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우리를 데리고 함께 그 길을 가시는 것입니다.
(겔 43:5)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계 4:1∼2)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그분께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요? 우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탄원할 수도, 생활고에 시달려 수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의 거룩하심과 위대하심을 바라보면서도 우리 문제와 마음의 상처에 매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그를 바라보는 즉시, 우리의 모든 고통과 슬픔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하소연하기 위해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서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 앞에 찬양하면서 나오라고 기록되었지, 울거나 한탄하면서 나오라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상한 심령이고, 마음이 가난한 자이지만 그분의 보좌 앞에서도 근심하는 것은 영원한 기쁨의 근원되신 그분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심각하게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찬양하며 주를 기뻐하는 것이 우리 왕이신 하나님께 합당한 대우입니다. (시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
<결론>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이르는 길이 되셨고, 성령은 우리를 데리고 그 길을 가시며 우리는 찬양하며 하나님 앞에 이르고 우리 자신을 잊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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