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과 어노인팅에 대한 태도 성령의 어노인팅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구할 마음을 주시지 않는 것을 보니 나에게는 주시지 않는가 보다“라고 하면서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성경에 성령세례를 구하라는 말이 없다”고 하면서 구하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전 12장13절의 성령 세례와 사도행전의 성령 세례를 혼동하여, 이러한 태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은 결과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보다 훨씬 수준 이하의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오히려 신앙생활 잘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사도행전의 성령세례를 받는 것은 규범적인 것(normative)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족하고 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이들의 논리대로 하면 이렇다. “일류대학 나온다고 다 출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일류대학 갈 필요가 없다“면서 노력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일류대학 나온다고 다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지 않은 대학 출신보다 출세나 성공할 확률이 훨씬 높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교육 열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성경은 그것이 명령이든 직설법이든 우리의 반응과 순종을 요구한다. 성경에 예수님이 새벽 기도하셨다는 (서술적인) 기록은 있지만 “새벽 기도하라”는 명령은 없다. 따라서 새벽 기도는 성경의 규범이 아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는 할 필요가 없는가?' 새벽 기도하는 교회와 하지 않는 교회의 차이는 무엇인가? 물론 어노인팅이나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지만 우리가 할 일도 있다. 은사주의자들이 어노인팅을 받는 주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그것을 간절하게 사모하고 끈질기게 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꼭 신앙의 성숙도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역 비례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부에서 그것을 오용하거나 남용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해서 구하지 않는 태도를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구하라”는 명령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으로 성경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러 군데에서 성령을 구하라고 명령한다.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전 14:1).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 14:12).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찌니”(고전 14:13).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딤후 1:6).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살전 5:19-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