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훈련을 통해서 능력을 키웁시다
신앙생활의 두 가지 측면을 잘 균형지게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지성과 감성이라는 이 두 가지 영역은 서로 조화할 수 없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습니다. 성경공부나 설교를 들으면서 깨닫게 되는 지적인 지식과는 다르게 내면의 영의 소리를 듣고 이해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 구조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뇌는 지성 작용을 주관하는 영역인 신피질과 감성 작용을 주관하는 변연계가 있습니다. 신피질은 사고작용을 다루며, 거대한 지식망에 새로운 개념을 저장하여 확장시켜 나가는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신피질은 빠르고 쉽게 지식을 저장하는 반면에 변연계는 학습속도가 무척 느리며, 한 번 저장된 정보는 다른 것으로 대치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보를 저장하기도 간단하지 않고 저장한 정보를 제거하여 다른 것으로 대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신피질은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저장하기 때문에 쉽게 저장이 되지만 변연계는 몸이 익힌 것을 저장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변연계는 다른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어린 시절에는 쉽게 저장이 되지만 이미 저장된 정보가 있는 성인들에게는 이를 다른 것으로 대치하려면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쉽게 학습되던 것이 나이가 들면서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단순한 지식은 신피질에서 다루지만 여러 차례 몸으로 익혀서 습관이 되는 것은 변연계에 저장이 됩니다. 컴퓨터에서 예를 찾아보면 간단한 파일은 그냥 저장하면 되지만 복잡하고 용량이 큰 파일은 내려받기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려받기를 해서 저장한 파일을 삭제하려면 그냥 휴지통에 버린다고 삭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추가 제거에 들어가서 삭제를 시켜야 합니다. 이런 번거로운 과정이 필요하듯이 변연계에 저장되고 삭제되는 일은 속도가 느립니다.
이 변연계에 저장된 지식을 우리는 습관이라고 부릅니다. 이 습관은 한 번 생기면 쉽게 제거되지 않는 것입니다. 감성은 이 변연계가 주관하기 때문에 감성적인 영역의 지식은 몸으로 익혀야 하며, 시간도 많이 걸리는 것입니다. 제가 영성훈련은 몸의 훈련이라고 정의했는데, 이 변연계는 신피질에 비해서 무척 원시적인 형태를 취합니다. 이런 과학적 증거를 볼 때, 감성작용을 ‘원초적 본성’이라고 정의한 하비 콕스의 지적은 타당한 것입니다.
이 원초적 본성은 어린 시절에 이미 만들어지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어린 시절에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변연계에 아직 뚜렷한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 않은 어린 시절에 믿음을 저장시켜줌으로써 그 사람은 일생을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불우한 환경에서 부정적인 조건에 노출되어 온 사람은 그 부정적인 사고구조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억압과 통제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변연계에 부정적인 감성이 자리를 잡게 되고 따라서 성인이 되어도 부정적 태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부정적인 요소에만 집중하여 비판적이고 자극적인 성향을 보입니다.
우리 뇌는 밝은 감정을 다루는 부위와 어두운 감정을 다루는 기관이 다릅니다. 전자는 좌측 전전두엽에서 다루며, 후자는 우측 전전두엽에서 주관합니다. 이 뇌의 기관을 어떻게 자극해서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연구한 위스콘신 대학의 학자들은 8주 동안 밝은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의 훈련을 시킨 결과 좌측 전전두엽의 활동이 확연하게 증대되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연구로 인해서 감정을 통제하는 뇌의 중추기관들은 의도적인 훈련을 통해서 활성화될 수 있음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긍정적 사고를 하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자극을 가하게 되면 그 부위는 새로운 신경조직을 만들어내어 확장되고 활성화되어 긍정적인 사고 영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긍정적 사고에 대한 정보가 더 많이 저장되며, 이로써 긍정적인 감성이 작용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할 때 우리 뇌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을 사용한다는 점에 대해서 이미 언급했습니다. 예를 들면 꿈을 통해서 정보를 제공할 경우에 당사자의 부모님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합시다. 40대에 사망하였다면 그 사람의 기억 속에는 40대까지의 부모님에 대한 정보만 있을 뿐입니다. 50대 이후의 나이든 모습은 기억 속에 없기 때문에 꿈에 부모님이 등장할 때 50대 이후의 나이든 모습으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억 정보 속에 있는 것으로 이미지화하기 때문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정보에 대해서는 그 이미지가 제공하는 의미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정보를 우선 사용하며, 마땅한 정보가 없을 경우에는 제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없게 됩니다. 전혀 생소한 이미지를 사용하게 되면 꿈을 꾼 사람이 그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서울 시내를 운전하는 택시기사의 경우 처음에는 길을 잘 몰라서 지도로 길을 익히지만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 운전을 하다 보면 서서히 길이 익혀집니다. 이것은 공간 지각을 다루는 뇌가 계속 자극에 노출되어 활성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길에 대한 정보가 많이 저장되어 모든 길을 다 알게 되듯이 우리의 감성도 이처럼 일정한 자극을 계속 받으면 그 영역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자극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을 다루는 신피질이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지적 정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것을 자각하는 영역은 감성을 다루는 변연계가 주관하기 때문에 이 영역이 활성되지 않고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계시를 이해하는데 많은 지장을 받습니다. 영적 경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정보의 양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감성 작용이 풍성한 사람은 기름부음을 쉽게 그리고 빈번히 느끼지만 지성 작용이 강한 사람은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감성적인 사람은 기도할 때마다 강력한 기름부음에 휩싸이지만 지성적인 사람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현상이 자신에 비해서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사람에게서 빈번히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잘못된 일이라고 매도합니다.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은 신피질이 활성화 되었듯이 감성 수준이 높은 사람은 변연계가 활성화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뇌의 역할이 다르게 발전한 결과일 뿐이지 지성이 감성보다 월등이 우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 뇌의 변연계를 사용해서 그 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를 이끌어내어 그것을 사용해서 우리들에게 의미를 전달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 접촉과 계시를 얻기 위해서는 감성의 영역을 주관하는 우뇌를 활성화하는 자극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효과적인 훈련이 바로 ‘이미지 그리기’입니다. 기도를 하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좌뇌를 활성시키는 훈련을 합니다. 지적으로 기도하려고 하지요. 그래서 기도문을 만들고 정교하게 다듬어진 단어와 문장들을 사용하려고 노력합니다. 기도는 감성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성을 다루는 뇌를 활성화시킵니다.
이런 기도 형태로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일생동안 환상 한 번 제대로 본 기억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졸도한다거나 가사상태에 빠지는 경험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깊은 영혼의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경험은 듣도 보도 못했을 것입니다. 우뇌가 거의 고사상태에 이른 좌뇌형 사람들에게 있어서 영적 경험이 전무한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우뇌를 활성시키는 자극에 자신을 거의 노출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한다고 해도 피상적이며, 30분을 넘기지 못합니다. 오래 기도한다고 해도 구성기도로 일관합니다. 그래서 이미지를 그리거나 기도제목을 형상화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변연계 학습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미 지성적 작용으로 깊이 물들어 있는 기성세대들에게 있어서 이 작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무척 쉽고 간단합니다. 초등학생들이 부흥회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환상을 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경험을 쉽게 하고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까닭이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변연계는 아직 순수하며 신피질 못지않게 활성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지적 교육에 깊이 물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활성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 경험을 하고 난 후에 그 경험이 지속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일시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맛보기 판’이라고 부릅니다. 이 일시적 경험이 경험으로 끝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그 경험이 몸에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성 훈련은 몸의 훈련 즉 ‘습관화 작업’이 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그런 현상을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현상을 일으키는 자극에 지속적으로 자신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심리학자들이 일컫는 이른바 ‘허니문 효과’에 머물고 말 것입니다.
케이스 웨스턴리저브 대학의 웨더헤드 경영대학원에서 1990년부터 학생들의 감성지능능력(인지적 능력)을 평가하고 더욱 향상시키고 싶은 능력들을 선발해서 개별적 학습 계획을 세우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객관적 평가를 과정을 시작할 때와 마칠 때에 각각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직장 생활을 할 때 다시 한 번 평가를 했는데, 이로써 감성능력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지를 점검한 것입니다.
대학원에서 감성지능 개발 과정을 마친 후 2년이 지난 뒤에도 그들은 자기 확신이나 자기 인지능력과 같은 감성 능력을 여전히 47%정도 향상된 수치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볼링그리스데이트 대학의 제인 휠러(Jane Wheeler) 교수 역시 이와 같은 감성 개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졸업하고 난 후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자기 관리능력과 자기 인식능력이 45% 향상된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보고합니다.(Daniel Goleman: 『Primal Leadership』2002)
감성교육은 지식 교육과 달리 한 번 몸에 익히면 쉽게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볼 때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릇된 행위를 하고 심지어는 이단적인 태도를 취해도 그 능력이 여전히 나타나는 것이 이런 까닭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몸에 익숙하게 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인내하면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아 변연계를 활성화시킬 때 영적 능력들은 향상됩니다. 지적 훈련만 받아온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성령의 다양한 경험들을 일상에서 느끼고 그 속에서 주님과 영적 친밀함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몸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은 영적 경험이 ‘허니문 효과’에 머물고 마는 것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