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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항상 분별에 힘 씁시다.2025-11-08 20:04
작성자 Level 10

항상 분별에 힘 씁시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윤리적인 것과 영적인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상황에 따라서 우선순위가 바뀌는 가변적인 것이며, 어느 한 쪽을 절대 우위에 둘 수도 없고 두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어느 한 쪽 만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다른 한 쪽을 심각하게 위축시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의 일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윤리적인 것만 고려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지만 영의 일을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도 실상 영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윤리적으로만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행동합니다. 이런 태도는 매우 고상하고 합리적인 것같이 보이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영적인 일에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며, 그런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학문체계 속에서 오랫동안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성인이라고 하는 학문적 성취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윤리성만 강조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이 ‘인격’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매우 고상하고 학문적이어서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영의 일을 모두 윤리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하고 적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영적인 일조차 매우 세련되게 조직됩니다. 쉽게 말하자면 영적인 것을 윤리적으로 각색하는 것입니다. 영의 일은 영으로서의 순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윤리적인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성에 근거하지만 영적인 것은 사람과 영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윤리적이란 안에서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을 다른 표현을 빌리면 이기적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즉 윤리적인 것은 이기적이며,자동적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외적이며 타동적입니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요소가 우리들의 삶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간적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듯이 영적인 끌림에 의해서 영적 관계를 바르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으로 이끌림을 받는 사람들”(롬 8:14)입니다. 우리는 인간관계인 수평적인 윤리성과 영적 관계인 수직적 신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질이 달라질 것입니다.

 

윤리적인 것만 강조하면 우리의 삶을 세속적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것만 강조하면 무속인과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절대로 균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적인 일에 무척 소홀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영적이라기보다는 윤리적입니다. 선후 관계에서 항상 우리는 윤리적인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선순위에서 그것이 앞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비록 영적인 것을 나중에 시작했다고 해도 그것이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우선순위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며 식별 능력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영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가 윤리적으로 접근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도 역시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적인 일을 우선해야 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손해를 입게 됩니다. 단순한 예로 질병의 경우에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선 윤리적인 방법을 고려하기 때문에 병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다음이 기도하면서 영적인 도움을 구합니다. 질병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의사 결정에서 우리는 항상 윤리적인 측면을 우선 고려하고 난 후에 영적인 것을 생각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것에 아주 익숙해있기 때문에 이에 관한 어떤 비판이나 검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드물기는 하지만 모는 일을 영적인 면만 보고 항상 우선순위를 영적인 것에 둠으로써 더욱 신령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거나 성경 말씀만 읽고 그 어떤 다른 요소들을 고려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 영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오직 성경책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어떤 것도 돌아보려고 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수룹바벨 선교회’라는 그릇된 단체처럼 오직 요한계시록과 에스겔서만 가지고 세상 모든 현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들은 세상의 모든 현상을 묵시적인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오로지 성경만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적용시키기 때문에 한 쪽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불균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건강한 삶이란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분별력은 두 가지 측면을 골고루 경험할 때 생기는 것이지요. 즉 상대적 비교에 의해서 생겨나는 능력입니다. 한 쪽만 경험하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건강한 분별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먼저는 윤리적인 것을 경험하게 되고 그 안에서 기본적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다음에 영적인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상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일 뿐이지요. 영적인 일을 우리가 뒤에 깨닫게 되는 까닭은 영의 일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관해서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상당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분석력과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 학문을 통해서 그 기법들을 배우게 됩니다.

 

영적 경험은 이와 같은 기본 학문의 도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지식으로 개발되는 것입니다. 이제 영적 경험에 들어가게 되면서 우리는 균형과 조화라는 측면을 고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이 두 가지 이질적인 요소를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균형 있게 할 것 인가를 고민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 순간마다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는 고민이 따라 다닙니다. 이것은 기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이 이 힘든 과정을 피하고 손쉽게 가려고 어느 한 방향만을 선택하게 되며, 그 방향이 대부분이 윤리적인 측면입니다. 세상은 다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다수가 선택한 윤리적인 방법이 항상 정답처럼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때로는 소수가 선택한 길이 정답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온전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분별하고 선택하는 일이 귀찮다고 해도 결코 생략할 수 없는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은 선택을 강요받는 고달픔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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