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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와 은사

영성이야기

제목느낌과 떠오르는 생각2024-07-23 11:48
작성자 Level 10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

 

하나님의 음성은 일반적으로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으로 전달됩니다.

 물론 귀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험은 매우 드믄 경우입니다.

  자주 귀에 음성이 들려온다면 이는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마귀의 음성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음성을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경우에도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도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느낌(feeling)과 떠오르는 생각(spontaneity)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음성에 익숙해야 합니다.

 어떤 성경의 말씀이나 장절이 떠오르기도 합니다(illumined scriptures).

  느낌은 불안정한 것이고 변덕스런 것이기 때문에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고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부패하여 그 속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연인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그 속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습니까? 아니지요.

 부패하고 거짓된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셔서 거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셔서 그분의 뜻을 이룹니다.  

전혀 쓸모없고 가치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지 않습니까?

느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변덕스럽고 수시로 변하는 감정을 주님은 사용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거듭나기 이전에는 전혀 하나님이 쓰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의 불로 정화시켜 사용하십니다.

  믿을 수 없어 보이는 우리의 느낌과 생각을 주님은 훈련시키고 단련시켜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느낌(감정)과 생각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느낌과 생각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힘이 없으면 그것들은 매우 산만하게 움직입니다.

  주님 안에서 이 기능들이 통제되도록 주님께 드리고 그분으로부터 한가지씩 배워나가야 합니다.

  자연인의 느낌과 생각은 고삐풀린 망아지 같아서 산만하게 움직입니다.

  이러한 산만한 생각들을 주님 안에 가두어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시작하면서 먼저 눈을 감고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적어도 10여분 이상 기다리는 훈련을 하십시오.

 이 기다림은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자신의 영 안에서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비워 주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드리는 훈련을 시작하면 처음에는 낯설고 어설퍼서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생각은 온통 요동치고 지구를 몇바퀴를 돌 정도를 분주히 옮겨다닐 것입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닙니다. 이때 이렇게 산만한 생각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어떤 주제를 하나 이끌어내십시오.

 그 주제는 성경 말씀의 한 장면이거나 장절이면 좋습니다.

또는 오늘 주님 앞에 내어놓고자 하는 기도의 주된 제목일 수도 있습니다.

 이 장면을 마음 속에 그려보십시오. 선명하게 그려지도록 생각을 이 한곳에 집중하십시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불교의 선수행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생각을 비우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비워진 생각 속에 마귀가 주인 노릇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주님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생각 속을 채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10여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채우면 그 말씀이 운동을 시작합니다.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속에서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떠오르는 생각(spontaneity) 또는 떠오르는 성경(illumined scriptures)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분석하십시오.

이 행위를 기름부음을 입은 식별(anointing reasoning)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분석하면서 다음 질문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정리된 질문을 주님께 합니다.

 물론 침묵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잠시 후에 또는 즉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 생각을 분석하고 다시 질문합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대화인 것입니다.

  이러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전제되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1)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잠잠히 기다림으로써 자신의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성령님은 무척 수줍은 분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조건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까지 활동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이 활동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려야 합니다.

  잠잠히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영은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겉사람이 침묵함으로써 속사람이 활동하게 되는 것이지요.

  속사람이 활동하면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면, 처리되지 않은 죄가 있을 경우 성령님은 활동하실 수 없습니다.

죄의 처리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사람은 죄의 처리를 겉사람에게 알려줍니다.

  지은 죄가 생각이 나면서 회개해야겠다는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때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또 용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역시 생각이 납니다.

우리 안에 쓴뿌리가 있으면 성령님은 활동하실 수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 청소가 먼저 되어야 할 것을 생각속에 불어넣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면 순종하여 쓴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성령님이 활동하실 수 있는 분위기기 마련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성령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몸 속에서 성령의 기운이 임하는 것을 느끼며 충만해지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2)주님의 임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과 흡사한 것이지만 구체적으로는 다릅니다.

성령 충만은 우리의 바탕을 정결하게 하여 주님이 역사하시도록 조건을 충족시키는 작용이라면 주님의 임재는 하나님과의 실질적인 교제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은 계시의 영입니다.

  계시의 영이 임함으로써 우리는 영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엡 1:17).

  회개하고 쓴뿌리를 제거하여 성령이 충만히 임하였다 하더라도 주님의 임재가 없으면 계시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성령의 충만함으로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령님과의 대화는 안위와 위로가 주된 내용입니다.

성령님은 위로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성령님은 상담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에 대한 상담을 해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로 베푸십니다.

지도자가 되어야 할 사람들에게 주님은 자주 오십니다.

일반적인 성도들에게는 주로 성령님이 상대해주십니다.

그렇다고 지도자들에게 예수의 영만이 임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주 희귀하기는 합니다만 소명을 받는 기름부음이 임하는 경우 성부 하나님이 임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는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는 분위기는 흰색이며, 밝고 따뜻한 느낌을 받습니다.

 예수의 영이 임하는 분위기는 청색이며, 상쾌하고 신선한 청량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는 칼로 자르듯이 선명하게 구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구분하자면 성령님이 주시는 말씀은 주로 안위와 위로에 있다면,

예수의 영이 주시는 말씀은 가르침과 계시에 집중하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평신도에게는 주로 성령님이, 지도자에게는 주로 예수의 영이 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에게 이 두 분이 자주 나타나셨습니다. 어떤 경우는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

어떤 경우는 예수의 영이 나타나셨습니다.

성경은 두 분의 나타나심에 대한 분명한 지적을 하였지만 그 내용에는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이런 점으로보아 굳이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느낌과 생각을 주님에게 드렸을 경우 주님이 이를 사용하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느낌과 생각이 주님의 피로 정결케 되고

 그 분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생각을 순수하게 유지하여야 합니다.

  이 말은 평상시 생각 속에 더럽고 잡스러운 것들이 스며들지 않도록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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