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영적점검 20가지에 관한 小考2024-07-23 0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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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점검 20가지에 관한 小考
1. 나는 내가 영생을 얻은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가? 의외로 많은 크리스챤이 이 질문에 대해 자신있게 답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영생 얻는 방법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많은 크리스챤이 이 영생을 어느 친구가 문득 던져준 선물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영생의 실제 가치를 잘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에 대해서 성경은 단순하고도 단호하게 한가지 사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엡2:8)" 또한 영생의 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십시오. 차변에 자신의 삶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물질, 환경등을 적어보고 그 모든 것과 비교하여 대변에 영생 한 단어를 적어보십시오.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이 실리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런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까?
2. 나는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있는가? 예수님이 구세주되심을 알게 해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당신이 물 한 가운데 빠져 허우적 거리는 것을 강가에 있던 내가 보고 보트를 저어서는 당신 가까이 가서 책을 한권 던지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책에는 수영을 잘 하는 법 10가지가 적혀 있으니 그것을 보고 빨리 배워 거기서 나오세요!" 그리고는 혼자 돌아와 버린다면 내가 당신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까? 그렇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도 그곳에서 허우적거리며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천년 전에 오셔서 우리에게 성경책을 던져주며 이 책에 구원을 얻는 10가지 방법(십계명)이 적혀 있으니 그대로 행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하고는 혼자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내가 다시 보트를 저어 당신한테 가까이 가서는 물속에 풍덩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보는 앞에서 자유형, 배형, 평형등 수영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는 당신도 이렇게 나처럼 해봐요 그러면 물에서 나올 수 있어요 하고는 나 혼자 돌아가 버린다면 내가 당신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사실 예수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오셔서 가장 흠없는 완전한 삶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는 죄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처럼 살 면 너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 라고 하면서 삶의 모범만을 보여주시고 홀로 하늘나라에 가셨다면 우리는 그분을 구세주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 스스로는 그런 완전한 삶을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죽기 직전인 당신에게 다가가서는 물속에서 건져 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강가로 돌아가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괘씸한 것입니다. 나는 이처럼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신을 구해주었는데 별로 고마워하는 기색도 없고 잃어버린 것 까지 찾아달라고 칭얼거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나중엔 또 무슨 억지를 부릴지 몰라 중간에 가다가 다시 물 속에 던져버리고는 나 혼자 돌아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내가 당신의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런 오해를 하곤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대가를 치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는데 살다가 보니까 어느새 제멋대로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를 보면 구원을 무효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불안해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진정한 구세주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구세주가 되기 위해서는 그분이 나를 죽어가는 죄 속에서 온전히 구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천국에 들어갈 때 까지 안전하고 편안하게 나를 인도하여 천국에 안착시켜주는 분일 때 비로서 진정한 구세주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음을 확신하십니까? [히 13:5]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나의 우선 순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가? 우선순위의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중요하면서 바쁜 것을 먼저 합니다 2)중요하지만 바쁘지는 않은 일을 먼저 합니다 3)중요하지는 않지만 바쁜 일을 합니다 4)중요하지도 않고 바쁘지도 않은 일을 합니다 나의 우선 순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나의 관점이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은 내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쁘다고 여기는 것은 내게도 바쁜 것입니다. 그러나 바쁜 것이 중요한 것에 우선해서는 안됩 니다. 하나님의 우선순위에 따라 사는 기쁨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마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4. 나는 성경적인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가? 성경이 쓰여진 목적은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얻게 할 뿐만 아니라 모르는 이들에게 알려주어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도 예외없이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 성경의 주제입니다. 따라서 성경 적인 목적에 합당한 삶이란 복음을 전파하며 사는 삶을 말합니다.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한 기쁨으로 가득찬 삶으로 전하며 달라진 성숙한 인격으로 전하는 삶을 말합니다.
5. 나는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 성장하고 있는가? 성장의 단계를 비추어 보다 성숙한 관계로 성장한다는 의미는 신뢰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친구의 사이가 깊어 질수록 다른 말이 없어도 마음이 통하고 상황논리에 구애받지 않고 당사자 자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만해도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상황이 불리해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은 인격적 교제의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가 하루 하루 깊어져가고 있습니까?
6. 하나님의 말씀은 내 마음의 기쁨이 되는가? [시 119:103]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 우리의 기쁨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갈망이 클수록 기쁨 또한 크다는 말로 답을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고갈 상태에서 맛보는 말씀의 생수야말로 짜릿한 기쁨이 아닐수 없습 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영혼의 고갈상태에 빠질 수는 없는 법입 니다.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해서 혹은 정기적인 성경공부에 참여하기 위해서 대하는 성경말씀 정도로는 안됩니다. 날마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주의 말씀이 나의 문제의 해결책임을 인정하며 매일의 경건 시간을 통해 잔잔히 다가오는 말씀의 가랑비에 마음을 적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7. 나의 삶은 열매를 맺고 있는가?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가지의 본분은 나무에 젖붙어 있어 나무가 주는 영양을 공급받아 나무의 특성에 맞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맺게되는 열매 는 주님의 영양분으로 자라난 제자들입니다. 주님의 나무에 제자 외에 다른 열매가 열릴 수는 없습니다. 승진, 결혼, 인격적 성숙, 사회봉사등 이런 것은 열매를 맺기전에 피어나는 새순 혹은 꽃과 같습니다. 열매의 본질은 제자입니다.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제자 를 배출하는 과정을 이어가십니까?
8. 나는 매일의 삶에서 성령 충만하여 그 뜻대로 살고 있는가? .[요1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엡 5:18]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그 뜻대로 간구하면 들어주신다는 약속에 근거하여 믿음으로 받게됩니다. 믿으려는 사람과 믿어지는 사람과의 차이는 천양지차입니다. 이런 믿음의 분량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차이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자가발전<自家發電>의 한계를 넘어 무한한 영역으로 들어서는 길을 걷지 않겠습니까?
9. 나는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가? [잠 18:1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국민학교에 함께 입학한 친구가 어느새 세월이 지나 사회 최상층에서 국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살고 또 한 친구는 실직해서 인력시장을 기웃거립니다. 그때만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지금은 비교가 안됩니다. 왜 이런 일이 흔히 일어 날까요? 그중 한 이유는 배울 자세가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치있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지식을 배우려는 열망이 세상 지식과 비교할 수 있을 까요? 그 가치를 아는 이라면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10. 나는 친구들이 나를 책망하도록 격려하고 있는가? [잠 9:8]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 15:32] 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책망없이 스스로 깨우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거만입니다. 이 일은 돈주고서라도 부탁해야 하는 일입니다. 지난 일개월동안 아무에게서도 책망을 들은 기억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자신 에게 경종을 울려야 합니다. 자신을 지적해 달라고 신뢰하는 이에게 간청해야 합니다. 책망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는 사람에게 책망하는 것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서로를 상처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직접 책망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알려주면 상대방은 기꺼이 당신을 도울 것입니다.
11.나는 섬기는 자의 자세를 갖고 있는가? [마 20:28]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의 본을 위해서 神이 인간의 형상으로 내려오시기까지 하셨습니다.(성육신) 섬기는 이는 섬기려는 자와 동화되어야 합니다. 노예의 자세가 아니라 사랑으로 주고자 하는 주인된 자세입니다. 받은바 은사로 받은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 다. [고후 4:5]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12. 나는 용서의 마음을 갖고 있는가?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의 첫 번째 대상은 자기 자신이며 두 번째는 나의 원수이며 세 번째는 이웃입니다. 용서없이 평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곱가지 단계◈ ① 용서란 의지의 한 행동이며,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② 원한을 품는 것은 나의 영과 혼과 몸, 그리고 마음을 파괴시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③ 나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사람을 용서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엡 4:32, 골 3:13) ④ 나에게 상처를 입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축복을 나에게 주셨는지를 생각한다. ⑤ 이제는 용서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롬 5:5, 히 11:6) ⑥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도록 하나님께 요청한다. (요일 3:17~18) ⑦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격려하시며, 평강을 주시고, 그들의 모든 쓸것을 채워주시 도록 기도한다.(마 5:14)
13. 나는 무슨 일에 대해 쓴 뿌리를 갖고 있지는 않은가? [히 12: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대부분의 쓴 뿌리는 자존심에 대한 상처에서 기인합니다. 인정 받지 못한 마음, 무시당한 기분,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일에 대한 평가 등에서 쓴 뿌리가 생겨납니다. 쓴뿌리를 제거하는 방법 으로는 우선 자신의 신분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때문에 다른 이들의 평가는 상당부분 잘못되어 있습 다. 하나님의 평가와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본래는 형편없는 죽을 죄인이었는데 은혜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신분 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나는 미완성의 존재입니다. 신분에 걸맞는 삶을 살기 위해 지금 달라지는 중입니다. 나의 존재에 대한 분명 한 확신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사랑으로 표현됩니다.
14. 나의 생각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빌 4:8-9]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시면 그분은 내 안에 거하십니다. 그래서 내 눈을 통해 세상을 보시고 내 생각을 통해 세상을 읽으십니다 내가 엉뚱한 것에 집착할 때 주님은 당황하실 것이고 내가 쓸데 없는 생각에 매여있을 때 주님은 조용히 나를 부르실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항상 남겨놓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항상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다 하여도 언제나 주님의 부르심에 반응을 보이며 돌아서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내 마음의 중심 그 태도를 중요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15. 나는 자신을 용납하는가? [시 139: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 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완전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 앞에서 까다로운 사람은 대부분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납하지 못하기 전에 자신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는 결코 실수가 없어야하나 잘못이 없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자신을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의 단단한 껍질처럼 두꺼운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자신은 용서하면서 타인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비겁한 사람인 반면 자신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타인은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반면 둘 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16. 나는 맑은 양심을 갖고 있는가? [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혼자있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 제목이 있듯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이전에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공간을 어떻게 채우는가 하는 것은 몹시 중요한 일입니다. 타인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만약 속인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속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맑은 양심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신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을 갖고 살아갈 능력을 아무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17. 나는 다른 사람들이 대하기에 유쾌한 사람인가? [엡 4: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 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 하심과 같이 하라 대부분의 유쾌함은 천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훈련되어져야 할 부분입니다. 자존심이나 고집이 강한 사람, 쓴뿌리와 미움이 있는 사람, 남을 용서할 마음의 여유를 잃어버린 사람은 유쾌할 수가 없습니다.
18. 나는 참으로 죄를 미워하는가? [시 119:104]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본래 죄는 유혹으로부터 오기 때문에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죄는 두 개가 얼굴을 갖고 있어서 다가오는 정면의 얼굴은 천사 처럼 보이나 뒤의 얼굴은 구역질날 만큼 협오스럽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가 다가설 때는 모르다가 지나가고 나서야 후회하곤 합니다. 이것을 깨우쳐주는 지혜가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주야로 묵상함은 죄의 실체를 알고 하나 님이 얼굴을 바라는 행위입니다.
19. 나는 성미가 까다롭지 않은 이타적인 사람인가? [고전 13: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성미가 까다로운 사람일수록 자기 감정에 충실하기 마련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타인은 상처받게 마련입니다 흔히들 정직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 하지만 정직은 모두에게 유익이 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먼저 위하는 것은 일견 손해처럼 보이지만 장차 누리는 복이 큰 법입니다.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자기 만족 실현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가장 높은 가치관에 해당된다고 하는 것처럼 타인을 섬길 때 비로서 자아실현에 대한 충족감을 맛볼 수가 있게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도 이타적인 분이셨으며 우리에게도 이를 기대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20. 나의 기도생활은 어떠한가?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오늘 기도한 내용을 돌이켜 봅시다. 그리고 그 기도를 들으셨을 하나님을 기억합시다. 이제 그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실 하나님을 기대합시다. 그렇지 않다면 기도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당신은 기도한 사실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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