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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소경 된 시대의 안타까운 자들을 위하여2024-07-23 00:04
작성자 Level 10

소경 된 시대의 안타까운 자들을 위하여~~~~~~~~~~~~~

 

깨닫지 못하는 형제들에게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들을 줄을 모릅니다.
모두가 만사형통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마치 이와 같습니다.
장애물 경기를 하면서 심판관님 저 장애물좀 치워 주세요.
지금 그는 자기가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는 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애물 경기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믿는 이들은 그것을 뛰어 넘을 줄 모릅니다.
다 심판관이 치워 주셔야 되는 줄 압니다.
그리고 심판관(하나님)에게 치워 달라고 부탁(잘못된 사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장애물 경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것을 뛰어 넘는 자가 이기는 자입니다.
천국은 바로 이기는 자의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왜 여자와 어린아이는 계수함을 받지 못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천국은 사단과 세상과 육신을 이긴 강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이 왜 할례에서 시작 되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할례는 육을 잘라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육체의 법을 행했으나 지금은 영의 법을 말합니다.
안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훨씬 더 강화 되었습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 돌려 대야 합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줘야 합니다.
이것은 악한 자를 대하는 법입니다.
남을 미워하면 살인죄입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습니다.
이것들은 형제 사랑에 관한 법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제에 관한 법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것들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방법으로 가능합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몸부림 칠 때
예수님께서 자아 파쇄를 통하여 이 법을 성취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우리의 자아란 우리 혼의 대표 기능입니다.
자아 파쇄란 우리 혼을 죽음에 넘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이면적 할례입니다.

 

믿는 자들의 사상이 마치 이와 같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겠습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할 때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법대로 경기하며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런데 상대방을 자기가 싸워서 이기지 않고 심판관에게 부탁해서 이겨 달라고 하면 됩니까?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름으로 마치 이와 같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상대 선수인 적은 사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 이기는 자를 골라내기 위하여 상대 선수인 사단을 두었습니다.
우리의 상대 선수인 적(사단)을 물리쳐야 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기도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기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듯이
우리는 기도로서 힘을 얻고 언약을 믿음으로써 이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싸워야 할 자는 우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치 장애물 경기하는 자가 심판관에게 장애물을 치워달라고 하면 됩니까?
믿는 자의 기도와 사상이 이렇습니다.
또 운동선수가 심판관에게 부탁하여 상대선수를 이겨달라고 하면 됩니까?
여러분이 싸우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라도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더라(마4:1)
 
오늘날의 믿는 이들의 영적 상태는 이렇습니다.
오늘날의 믿는 이들은 하나같이 욕심을 품고 있습니다.
또 교회 직분이 높을수록 자만심이 높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자신은 잘 믿는 자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말을 해도 그것은 딴 사람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그러니 마음을 찢고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상담을 해 보면 하나같이 자기는 휴거될 줄로 알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로 휴거는 무슨 휴겁니까?
천국도 못갑니다. 꿈에서 깨어나세요. 사모님~
환장~ 민장~ 된장~ 간장~~~

 

우리는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는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이란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는 변화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변화란 환골탈태하는 것이었습니다.
환골탈태란 뼈를 갈아 끼우고 태를 바꾼다는 뜻으로 완전히 딴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울이 변화 되어 바울같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변화 된 자도 대 환난 전에 휴거되기는 힘듭니다.
변화 된 자들 중에서 흠 없게 된 자들이 휴거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신부로서 어린양을 죽기까지 따라간 정절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 수는 아담부터 전 인류 중에 십사만 사천 명 뿐입니다(계14:1-5)
바울이 말한 삼층 천에 살 자로서 최고의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준비할 줄은 모르고 자기는 휴거 될 줄로 압니다.
욕심을 버리는 것이 준비입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낮아지는 것이 준비입니다.
악한 자를 대할 때 죽은 자가 되는 것이 준비입니다.
믿음을 지켜 보이지 않는 언약을 믿고 하늘의 소망을 따라 기뻐하며
하나님의 뜻을 지켜 자기 목숨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사랑을 따라 행함으로 법을 성취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날마다 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준비하십시오.
믿었어도 열매를 맺지 않으면 버림받습니다.
열매를 맺는 방법은 성장해야 맺을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이것은 한 순간도 잊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목숨을 다해 사랑하십시오.
이것은 죽을 만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선택의 문제가 있을 때 내 목숨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라는 말입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은 사단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언약을 주셨습니다.
신앙이란 보이지 않는 약속을 믿고 천국으로 달리기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달리기 하는 우리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자와 같습니다.
실력 있는 자와 강한 자는 그 장애물을 뛰어 넘습니다.
그런 자가 사내아이요 강한자요 이기는 자입니다.
천국은 그들의 것입니다.

 

운동선수가 실력이 없어서 실컷 두들겨 맞고는 매 값 달라고 하면 됩니까?
오늘날의 믿는 이들이 마치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난을 많이 받아도 고난 값이라고는 없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가 되었을 때 그 고난은 시련의 연단을 주었기 때문에 유익한 것이지만
상대 선수인 적을 이기지 못한다면 고난 값은 없는 것입니다.
패배자에게 천국의 영광은 없다는 말입니다.
사단에게 패배했으면서 고난 받았으니 천국 갈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곳에 오물을 두지 않습니다.
성전인 우리가 거룩하지 못하고 성전이 더러우면 멸하십니다(고전3:17)
성경은 이것들을 말합니다.

 

어떤 자들은 교리적으로 해석하여 교회만 다니면 천국 가는 줄 압니다.
자기들은 믿음의 구원이고 행위를 말하는 것은 행위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휴~~~~~~~~~~~~~~~~~~~~~~~~~~~~~~~~~~ 

성경을 자세히 보십시오.
성경에 구원을 말할 때는 믿음으로 받는 다고 말하고 있지만
신기하게 천국을 말할 때는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는 말은 한 구절도 없습니다.
성경은 천국을 말할 때는 반드시 행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을 이해시키려면 많은 변론이 필요합니다.
잘 못 해석된 성경 지식과 교리 때문에 생긴 고정관념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쓸데없는 변론을 피하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말하지 않고 싶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질문은 하겠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자는 찍어 불태운다고 했는데 그들은 믿지 않은 자입니까(마3:10)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마5:22)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천국 문이 닫혔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마25:10)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구원 받았으나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민14:30)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않은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했는데

구원이 그렇게 쉬우면 이 말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벧전4:18)
우리가 믿는 구원의 교리처럼 천국 가기가 그렇게 쉽다면 성경은 왜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말합니까?
세상 사람들은 넓은 길 가는 사람들이고 교회만 다니면 생명의 좁은 길 가는 것입니까?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행위로 잃을 수 있다면 그 구원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믿은 자라도 바깥 어두운 곳에 갔습니다(마25:30)
그 바깥 어두운 곳이라는 것이 지옥과 동일한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는 믿고 구원을 얻었는데 행위 때문에 구원을 잃었다는 말이 됩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행위 때문에 잃는다면 믿음의 구원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이 행위 때문에 잃을 수 있다면 그것은 결국 행위구원이라는 말입니다.
바깥 어두운 곳을 지옥으로 본다면 결국 형제님은 행위구원을 믿는 자란 말입니다.
믿음으로 한 번 얻은 구원은 행위로서 잃지 않습니다.
그 증거는 아래에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3장 15절은 믿는 자의 공력 시험을 말합니다.
자기 행위로 쌓은 공력이 다 불타도 상은 얻지 못하지만 구원은 잃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서 5장은 치리의 문제를 말하는데 교회에 음행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아비의 아내(서모)를 취한 자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를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육체는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간음하고 교회에서 쫓겨나 교회생활을 못해도 영은 구원을 잃지 않는 답니다.
그러나 그는 변화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죄로 인해 감옥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바깥 어두운 곳이란 믿는 자의 징계 장소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든 자들이 오히려 행위 구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얻은 구원은 행위로 잃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모로부터 한 번 태어났지만 영원히 그 부모의 자녀이듯이
원어 적으로도 구원은 일회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고 한 번 하늘로부터 태어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얻은 구원을 행위 때문에 잃지 않으나 하나님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아 감옥과 같은 바깥 어두운 곳에 떨어지고 천국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데 성전이 더러우면 멸하신다고 하였습니다(고전3:17)
그 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다 믿는 자의 심판으로서 구원 얻은 자의 행위 심판을 말합니다.
지옥 형벌에서 믿음으로 구원 받았으나 행위로 변화 받지 못하여 징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우리가 법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감옥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바깥 어두운 곳에 대해서 변론이 될까봐 안 쓸려고 했는데 결국 다 말해버렸네요.

 

그러나 이것 가지고 지금 변론할 때가 아닙니다.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지만 대 환난 때에는 법이 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의 과도기에 그랬듯이 은혜시대와 천년왕국시대의 과도기에도 똑 같습니다.

대 환난 때에 전해지는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합니다(계14:6)

영원한 복음이란 짐승에게 경배하지 말고 짐승의 표도 받지 말고 하나님만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짐승에게 경배했느냐 안 했느냐로 나누어집니다.

짐승의 표를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로 나누어집니다.

짐승에게 경배하고 표를 받은 자들은 지옥에 가게 됩니다.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임을 당합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못하게 하니 아무것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대 환난 시대에 천국가는 방법은 순교입니다.

산으로 피하는 방법도 있지만 삼년 반동안 숨어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대 환난 시대에는 다시 경배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냐로 나누어집니다.

그러니 이것 가지고 변론할 때가 아닙니다.
 
천국과 관련해서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하는 성경 구절들

 

1. 열매 맺으라
[마 3: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 우리라.

 

2. 생명의 좁은 길로 가라.
[마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3. 변화되라.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4. 믿는 자의 심판
[벧전 4:17-18]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롬 14:10-11]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5. 신부 준비하라.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6. 이기는 자가 되라.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눈이 있으면 똑똑히 보십시오.
이것들은 이미 믿어 구원 얻은 우리에게 합당한 행위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열매 맺으라. 이기는 자가 되라. 변화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지옥 형벌에서 건짐 받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구원 받은 이스라엘은 목적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원망과 불평과 시험과 간음과 우상숭배 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말은 변화 받지 못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이스라엘] 애굽--------------- 광야------------- 가나안
[은혜시대] 세상--------------- 교회(패배자)------- 천국(이기는 자)
[형벌장소] 불못(지옥)----------- 바깥 어두운 곳---- 천국

 

이와 같이 믿어서 지옥 형벌을 면한 우리라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어두운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단 있는 세상에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사단이 사람을 유혹할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이기는 자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단 있는 세상에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 말은 곧 사단이 우리 신앙의 가드라인 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단이라는 가드라인을 우리에게 주고 그것을 뛰어 넘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실력 있는 자를 가리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변화 받지 못한 자에게는 천국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불같은 시험이 오는 것은 성도의 연단을 위함입니다.
그로 인하여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연단을 받아도 이기지 못하면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늘에 대한 약속 하나 주시면서 믿으라합니다.
사단은 계속해서 보이는 세상 것들로 유혹해서 우리 신앙을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보이는 물질들을 복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은 사단에 속은 것입니다.
이 세상 물질을 복이라고 쫓아가는 자들도 다 사단에 미혹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믿는 이들의 수준을 말할까요?
그것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파리나 못 먹을 것들을 주워 먹는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진리 아닌 누룩이 가득하지만 이것들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사단이라고 하는 가드라인은 실력 있는 자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달리기를 방해하는 장애물과 같습니다.

사단의 방해를 뛰어 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육신의 욕심을 완전히 내어 버린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악한 자를 대할 때 죽은 자처럼 대항치 않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영을 따라 행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사랑을 따라 행하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계명을 이루는 자가 신앙의 이기는 자입니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지만 그 마음이 어떤지 시험해 보시려고

백세에 주신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이삭보다도 하나님 명령을 더 귀히 여겨 순종할 때

이제야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았다고 인정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처럼 믿는 자의 마음이 어떤지 시험해 보시려고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인도하시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며 감사치 못하더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가나안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후

그 약속을 믿는지 광야에서 시험하셨는데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만 하더라.

 

하나님께서 사단 있는 세상에 사람을 지으심은 사단의 유혹을 이기는 자를 고르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세상에 빠져 세상에서 성공하려 하더라.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하늘에 속한 약속을 주시고 믿음으로 천국을 향해 달리기 하라고 하시는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보이는 세상 것들에 빠져 믿음을 팔아먹더라.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세상 복을 두심은 우리 마음이 어떠함을 시험해 보시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썩어질 복을 복이라 여기고 돈을 쫓아 영원한 복을 팔아먹더라.

 

하나님께서 사람 앞에 사단이라는 장애물을 두신 이유는 사람들에게 사단이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는

실력 있는 자를 가리기 위함인데 사람들은 그 뜻을 모르고 자기가 뛰어 넘을 생각은 하지 않고

심판관(하나님)에게 부탁(기도)하여 장애물을 치워 달라고 하더라.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으니

이는 전도의 미련함 때문에 자기가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가 되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을 듣는가를 보려하심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더라.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깨달음을 주옵소서!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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