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통찰력을 기르려면
영적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것들은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들라면 저는 ‘통찰력’을 꼽을 것입니다. 영어에서 통찰력에 해당하는 단어로 ‘insight’ 이외에 ‘penetration’이나 ‘vision’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단어들은 모두 보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내면의 어떤 형상을 읽어내는 기술이나 능력을 통찰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닌 장점이나 단점 등은 물론이거니와 문제의 핵심을 바로 읽어내는 능력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갖추고 있는 재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강력한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평균수준을 넘어서 강력한 통찰력이란 어떻게 해서 생기는 것일까요? 사람에 따라서는 개발하거나 학습하지 않아도 그 능력이 나타나는 형태의 천부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어떤 능력을 알아차리고 개발해야 하는 부담이 주어져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잠재능력을 개발해서 평균치 이상으로 끌어올릴 때 그 능력은 탁월한 것이 되어 지도자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 통찰력은 지식의 말씀이나 지혜의 말씀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보면 그것은 일종의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어떤 노력에 의하여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이라고 보아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찾아내어 개발함으로써 은사 못지않게 활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통찰력을 끌어내는 과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첫째, 성경말씀을 묵상함으로써 개발됩니다.
통찰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는 과정에서 개발됩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통찰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의 영이 임하면 우리가 알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수시로 읽고 깊이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도 모르게 통찰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경의 뜻이 깨달아지고 이면에 있는 내용을 알아가게 됩니다. 성경 66권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 그 내용이 머릿속에 충분히 저장되면 자연적으로 말씀이 서로 연결이 되면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깨달아지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으로 말미암아서 통찰력이 생기게 되며, 지식과 지혜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이면의 내용을 깨달아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통찰력을 얻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기록된 말씀을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매 순간마다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주 평범하고 의미 없어 보이는 삶은 물론이고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나 돌발적인 상황을 맞게 되는 사건적인 경우에나 모두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평범한 삶에 대해서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찾아내려고 하지 않지만 중대한 일을 경험하게 되면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며 그 생각을 통해서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의미를 알아가게 되면서 통찰력이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눈치가 빠릅니다.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눈치가 빠르다는 것 역시 통찰력이 있는 것입니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즉시 대처하는 능력이 없으면 사회생활에서 뒤지게 됩니다.
셋째, 학습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경험을 많이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전문적인 지식을 얻음으로써 통찰력이 생기게 됩니다. 학문적 지식은 그 방면에 대한 간접 경험을 얻는 과정이기 때문에 많은 지식을 얻는 것은 통찰력을 깊게 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얻음으로써 그 방면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며,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경험을 다할 수는 없지만 지식을 갖추게 되면 나타나는 영적 증거에 대해서 당황하지 않게 되며,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아는 것이 힘이듯이 많은 지식은 여러 상황에서 힘이 되어줍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 공부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지식은 상황에 부닥칠 때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신감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게 합니다. 통찰력은 자신감이 생길 때 강화되는 것입니다.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상황에 대응할 수 있으려면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통찰력은 믿음과 연관이 깊습니다. 믿음이란 지식이나 경험을 바탕에 깔고 있을 때 더욱 강해진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통찰력이란 직관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직관이란 이성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능력으로 주로 여성에게 더 강합니다. 말로는 표현할 수는 없지만 확신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내면적 공명’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인데, 일종의 텔레파시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영적 충돌’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의 세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것입니다. 강한 영이 약한 영을 압도하며 약한 영은 강한 영에게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이 강하고 약하다는 차이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고정된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무척 주관적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확정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많은 제한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속박한다는 표현을 사용하여 이 사실을 우리들에게 일깨워주었는데(마 12:29, 막 3:27), 영적 힘의 차이에 따라서 공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약한 자의 영이 강한 자의 영에 파장으로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 충돌로 인해서 내면의 흐름을 읽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막연하게 느끼는 것이 일반인들이 감각하는 직관입니다. 영의 작용이 강해지고 영적 지식이 갖추어지면 직관의 흐름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자신으로부터 능력이 흘러나가는 것을 직관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같이 있었던 제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밀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영적 흐름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자연적인 어떤 작용이거나 물리적이고 환경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무시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절대로 그런 막연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영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이 직관을 바로 이해하는 지름길이며, 이는 통찰력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에서 작용하는 영의 흐름이나 움직임을 몸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관을 예민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일 일상적으로 살아가면서 부닥치는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영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말씀으로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해야 합니다. 일상으로 경험하는 평범한 삶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삶은 말씀을 떠난 삶이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그 의미를 찾아내려는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삶을 말씀에 적용하는 방법도 익혀야 합니다. 통찰력은 말씀을 제대로 적용하는 과정과 삶을 말씀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증대됩니다. 수많은 경험들을 하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다면 통찰력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지혜의 영’ ‘계시의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 등이 임하면 우리는 깊은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영들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우리 안에서 제한되지 않고 풍성하게 작용하는 영입니다.
출처: 성령치유집회 (부산)세계로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야긴과 보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