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말씀(logos sophias)
지혜의 말씀(logos sophias)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먼저 개별적으로 살펴본 후 연관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본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란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과 같은 계시의 은사를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특정한 문제나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어떻게 내릴 것인가에 대한 슬기나 지혜를 말한다.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어렵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는 기지나 슬기를 제공한다. 몇 가지 정의를 보자.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이 주어진 계시(지식의 말씀, 예언)가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한 상황이나 필요에 어떻게 가장 잘 적용될 것인가, 또한 어떤 주어진 상황이나 필요가 어떻게 해결되거나 도움을 받거나 치유될 것인가에 대한 즉각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해 일부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이다(David Pytches).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능력인데, 그들은 이를 통해 성령의 마음을 잘 알아서 주어진 지식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필요들을 위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통찰력을 얻는다( C. Peter Wagner).
한편 일부에서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지혜의 말씀은 설교하는 은사, 지식의 말씀은 가르치는 은사로 이해한다. 고린도전서 문맥으로 볼 때, 복음은 세상 지식이나 지혜와 비교하여 훨씬 더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이기 때문에(고전 2:1-2, 4-5), 이 은사는 지식의 은사와 더불어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과 관계된 은사라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이 은사들은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나타남이라는 단어와 밀접하게 관련된 은사들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그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즉 기적행하는 9가지 은사들은 모두 즉흥성, 일시성, 상황성이 강한 은사들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노력이나 준비를 하여 행하는 설교나 가르침이라고 하기는 곤란하다.
바비 클린톤도 이런 견해를 지지한다.
“지식의 말씀과 지혜의 말씀으로 불리는 이 은사들은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는 다른 구절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이 은사들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이나 이런 은사들을 예증하는 직접적인 구절들도 없다. 몇몇 가능성이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은사는 ‘. . . 의 말씀’이라는 공통적인 구(句)로 인해 기능이 유사하므로 같이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지혜와 지식이란 단어 앞에(원문에는 앞에 있음) 로고스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이 은사들은 성령이 그 순간에 주시는 상황적인 교신을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성경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많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특정한 상황을 위해 지식이나 지혜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말씀’(rehma)을 말한다.”
따라서 클린턴은 지혜의 말씀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혜의 말씀은 주어진 상황에서 성령의 마음을 알고, 그 상황, 사실, 진리 및 상황의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한 사실과 진리의 적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어떤 능력을 말한다.
1.지혜의 원천과 종류
지혜란 지식과는 다른 것이다.
『웹스터 영어사전』은 지혜를 이렇게 설명한다.
a. 축적된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지식 :지식
b. 내적 특성과 관계를 분별하는 능력 : 통찰력
c. 훌륭한 분별력: 판단
d. 현명한 태도나 행동
e. 고대 현인들의 가르침.
이응백 『국어대사전』은 지혜가 곧 슬기라고 하는데 슬기를 이렇게 설명한다.
①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달아 밝히고 시비와 선악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능력. 지. 지혜
②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재능.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얻는 지혜가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만은 아니다.
지혜의 종류를 살펴보면,
1)사람의 지혜, 곧 세상 지혜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하는 지혜, 세상 만사를 잘 다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런 세상 지혜 역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지혜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나 세상 일 처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통제하거나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혜롭지 못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
2)마귀의 지혜가 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도록 하는 것처럼 비쳐진다(고전 11:14). 마귀의 지혜도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지만 그 긍국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에게만 영광을 돌리게 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을 자신이 잘나서 지혜롭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3)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지혜를 사모하고 구해야 한다(약 1:5).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마귀가 주는 지혜를 구분하는 방법은 야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다(약 3:13-18). 마귀가 주는 지혜는 독한 시기, 다툼을 일으키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성결하고,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고,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도 구분이 필요하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지혜와 지식의 보고이며(골 2:3),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지혜이자 지식이며(고전 2:7), 잠언이나 전도서를 지혜서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이미 밝혔듯이 다른 기적행하는 은사들과 마찬가지로 즉흥적, 일시적, 상황적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바리새인들의 여러 가지 올무를 지혜롭게 넘기신 예수님처럼,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지혜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것들을 사용하셔서 위기나 필요한 순간에 사용하게 하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한 성경의 예를 살펴보면,
a)요셉
요셉은 감옥에서 바로의 관리들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을 기화로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그 대비책을 제시함으로써 죄인인 노예의 신분에서 일약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영광을 입었다. 요셉이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신이 감동했기 때문이다. 신약적으로 표현하면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작동한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창 41:38-41).
b)솔로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허락하셨으며 솔로몬의 지혜는 아들의 친 엄마를 찾아주는 재판에서 절정을 이룬다(왕상 3:16-28).
c)예수님
바리새인과 제사장의 무리들은 걸핏하면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예수님은 지혜를 발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갔음을 알 수 있다. 대적자들이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 도전하셨을 때(마 21:23-27), 세금 문제로 궁지에 빠뜨리려고 했을 때(마 22:15-22),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답하심으로써 위기를 모면하셨다.
d)제자들에 대한 당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 같이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하셨지만 또한 임박한 핍박을 경고하시면서 그때 대답할 말을 줄 것이니 염려 말라고 하셨다(눅 21:15).
지혜의 말씀이 실제적으로 어떤 유익들을 주는지를 살펴보면, 첫째로,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말씀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다. 특히 부정적인 예언, 부정적인 지식의 말씀을 전하는 방법에 대한 지혜를 제공해 준다. 둘째로, 치유 사역에 임할 때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상황에 따른 올바른 대응 방법을 일깨워 주심으로써 치유 사역의 효과를 높게 한다. 즉 치유될 것인지 치유되지 못할 것인지를 알게 하며, 그 병으로 임종을 맞을 것인지 회개해야 할 것인지 등을 알게 한다. 셋째로,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예언의 말이나 지식의 말씀을 잘 전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에 따라서 상대방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해를 일으켜 물의를 빗기도 하는 예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혜로운 방법을 선택하도록 통찰력을 주신다. 넷째로,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줄 방법을 제공해 준다.
2.임하는 방법
1)말이나 생각으로 오는 경우.
지혜의 말씀은 지식의 말씀의 은사, 예언의 은사를 통해 받은 말씀을 제대로 잘 전하는 은사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생각이나 말(성경의 구절 포함)로 오는 경우가 많다. 은사자가 사전에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문득 마음 속에 구체적인 내용이 떠오른다(spontaneity 또는 river of flow라고 표현한다). 경험이 부족한 초보 은사자의 경우 이 생각이 어디서 온 것인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이라고 여겨 무시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성령께서 주신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경험이 쌓일수록 겸손한 마음 가짐을 유지하고 성령께 더욱 의지하여 분별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2)기분이나 느낌으로 오는 경우.
구체적인 말씀(성경의 장 절이 구체적으로 떠오른다)이나 지식(환자에게 안수할 자리를 정하여 주는 경우 또는 그 병에 관련된 여러 가지 정보)이 전해지지 않고 다만 느낌으로 이러면 되겠구나 하는 보다 막연한 생각이 드는 경우이다. 성령의 구체적인 지시가 없이 단순한 느낌이라 할지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 방법은 은사자의 믿음과 주께 대한 헌신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서 성령께서 자주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지식의 말씀이나 예언의 은사를 통해 받은 정보나 예언을 전하려고 할 때 (성령이) 금지하는 것 같은 기분이나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은 아직 내담자에게 전할 때가 되지 않았거나 직접 전하지 말고 중보기도해야 하는 경우이다.
출처: 성령치유집회 (부산)세계로 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야긴과 보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