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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이야기

제목영적 두려움2024-07-25 16:42
작성자 Level 10

 영적 두려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부분이 영적 두려움일 것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 세계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기만 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영적 변화를 얻기를 꺼립니다. 변화란 성장을 의미하며 성장이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려움을 이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영적인 일은 많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다수가 영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적이란 말을 자주 종교적이라는 말과 혼동합니다. 세속적인 일이 아닌 종교적인 일을 하는 것을 영적인 일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그 말은 틀립니다. 종교적인 일과 영적인 일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전혀 영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종교적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나지 않고 영적 감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은 성령을 받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며, 성령의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하고는 전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영적인 일은 영적이지 못한 다수의 신앙인들로 인해서 오해를 받게 됩니다. 영적 감각이 둔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서 영적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합니다. 이런 일로 인해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집니다. 영적 세계에는 하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악령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악령에 대해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령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속적인 지식으로 인해서 마귀에 대해 거부감과 두려움을 지니게 됩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성장과 변화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상한 변화가 나타나면 두려워합니다. 혹시 잘못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들과 다른 행동을 하게 되면 색안경을 쓰고 봅니다. 영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신에게나 주변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이 어두운 바다를 걸어서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로 다가왔을 때 제자들은 두려워하면서 떨었습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현상을 목격한 제자들이 겪는 당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상식을 넘어서는 변화가 자신과 주변에서 일어나면 두려워하게 됩니다. 영적 변화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우리는 즉시 두려워하게 되고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게 됩니다.

영적 변화는 예고하고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이상한 변화는 언제라도 우리 가운데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식들을 풍성하게 갖추는 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많은 영적 지식들은 자신의 삶 속에서 다가오는 영적 변화를 자신 있게 맞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두려움은 우리가 겪는 영적 변화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경우에 생깁니다. 주님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러나 정작 모든 것을 맡겼을 때 과연 주님이 모든 것을 지켜주실지 확신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병에 걸렸을 때 주님이 치유하여 주실 것을 온전히 믿고 전적으로 맡기는 문제에서 우리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분이지만 자신의 병을 치유해 주실지에 대해서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런 형태의 두려움으로 인해서 우리는 영적 모험을 하기 보다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하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적당한 수준으로 타협하면서 신앙에도 손상이 가지 않고 우리의 삶도 위태롭지 않은 그런 절충을 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두려움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두려움은 다수의 선택을 항상 올바른 일로 만듭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이 안전하다고 여깁니다. 다수결의 원칙은 진리처럼 여깁니다. 다수의 선택은 항상 안전하다는 그릇된 상식을 가지고 삽니다. 이것은 우리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잘못된 결론입니다. 성경은 소수의 진리를 자주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 소수의 진리 편에 설 용기를 얻기를 권합니다. 영적인 일은 소수의 편에 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모험이 따릅니다. 베드로가 물 위에 발걸음을 옮겨놓는 일은 전적으로 모험입니다.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오로지 모험으로 행동했습니다. 영적인 일에는 이런 모험이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는 일은 두려움을 극복했을 때 가능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가능하다는 일을 믿음으로 도전하여 성취시키는 일이 능력을 행하는 일입니다. 성공에 대한 아무런 보장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힘이지만 그 믿음을 얻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여 믿음의 길로 나가는 데에는 우리의 노력으로는 사실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서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극심한 시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입장에까지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두려움을 이길 수 없습니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갈 때 우리는 그 상황을 고난이라고 표현합니다. 극한의 고난과 시험 앞에서 비로서 우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믿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경험함으로써 제대로 믿음이 생기게 되고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영적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반드시 고난이라는 굴레를 통과하게 되는 까닭이 이런 우리의 두려움을 떨쳐내야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두려움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적 성장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영적 변화는 사람들에게서 오해도 받을 수 있고, 자신 스스로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두려움을 이기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막다른 길로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 영적 변화에 대해서 담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경험한 지도자들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해서 담대함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영적 지식은 담대함을 얻게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담대함을 얻으면 우리는 막다른 지경으로 몰리는 그런 고난은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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