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생활의 중요성2024-07-31 2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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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의 중요성 “왜 내 인생은 뒤엉켜 있는 걸까”하며 회의하고 고통 당하던 젊은이가 있었다. 비참한 생활을 하던 이 젊은이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로 하고 여관방을 얻어 칩거하며 기도했다. 3일째 되던 날 그는 ‘뒤엉킨 인생의 해법’을 찾았다. 기쁨과 자유를 안고 거리에 나온 이 젊은이는 고양이가 실을 헝클어뜨리고 있는 광고판을 보았다. 그 순간 그는 “고양이야, 너는 뒤엉키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풀어주신다”고 외쳤다. 이 사람이 후에 미국의 유명한 설교자가 된 폴 레이더이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첫째, 하나님께 만나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이다(사 55:6). 우리의 길이 막막하거나 많은 길 중에 어디로 가야할지 선택이 곤란하거나 길을 잃어 방황하게 될 때에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인생행로를 이끌어 주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유일한 채널이다. 따라서 기도가 없는 믿음은 믿음일 수가 없다.
둘째, 구하면 주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마 7:7~8, 시 10:17). 일본의 어느 마을에 한 기독교인이 천 그루 정도의 과수를 가꾸고 있었다. 열매가 맺힐 무렵,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약을 치고 잡아도 날마다 기승을 부렸다. 이 분은 철야기도를 했다. 가족도 다 모여 벌레가 없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백 마리의 이상한 새떼들이 몰려오더니 한 나무에 하나씩 붙어 한 시간 만에 벌레를 전부 쪼아 먹어버려 나무들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셋째, 예수님도 기도하셨기 때문이다(마 14:23). 예수님은 새벽 미명부터 기도하셨고(막 1:35), 피곤하신 때에도 기도하셨다(막 6:31, 46).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셨다.
넷째, 악한 무리에서 벗어나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다(살후 3:2). 흑인 성악가 로렌드 헤이스가 독일 베토벤 홀의 무대에 섰을 때 독일인들은 야유를 보냈다. 흑인의 베토벤 홀 입장은 독일의 수치라고 하며 개막 전부터 독창회 개최를 반대하던 그들은 공연 날에도 객석을 메워 거세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 헤이스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무대에 섰다. 헤이스는 청중의 야유를 받으며 피아노 앞에서 기도를 했다. 5분, 10분 헤이스의 기도가 계속되자 청중은 야유를 그치고 침묵했다. 그 때 피아노와 함께 헤이스의 영감 있는 노래가 장내에 한 줄기 빛처럼 퍼져나갔다. “당신의 평화”라는 노래였다. 그 날 독창회는 독일인에게 잊지 못할 음악회가 되었다. 마귀의 참소를 그치게 하는 것. 그것은 기도다.
다섯째, 성령을 받기 위해서이다(행 8:15). 세계 1차 대전 때 참전하여 다리를 다친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수도사가 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학력 부족으로 수도사가 될 수는 없었다. 수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그는 간청 끝에 수도원의 요리사로 들어갔다. 그는 비록 수도사가 아닌 요리사로 수도원에 들어왔지만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는 수도사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수도를 하는 동안에 그들을 위하여 주방에서 열심히 요리를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갔다. 그런데, 주방에서 요리를 하던 요리사가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수도사가 될 수 없었던 그가 어떻게 하여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을까? 그는 그의 모든 이론을 파기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자기의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였다. 그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시장 보러 갈 때에 “주님, 좋은 식품을 값싸게 구입하게 하시어 수도사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으며, 설거지를 하면서 “주님, 제가 그릇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내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심지어 불을 지피면서도 “주님이시여 이처럼 성령의 불이 내 마음 속에 타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 후 그는 대주교가 되었다. 우리도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히 4:16).
여섯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마 6:10).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려면 하나님께 많이 구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일곱째,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기 때문이다(벧전 5:8).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침에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다.”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기도한 것처럼 어두운 시대를 헤치고 나아가는 길은 오직 기도하는 것 뿐이다(행 16:25).
여덟째,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약 1:5). 솔로몬은 기도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었다. 주님을 위하여 큰 일을 할 때 길이 막히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길을 열어주시든지 난관의 터널을 뚫는 지혜와 힘을 주신다.
아홉째, 기도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1890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평양선교를 개척한 마펫목사는 가정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이런 경건한 정서에서 자란 다섯 형제는 모두 선교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의 아들 S.H.마펫은 후에 부모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는데 그 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결단을 할 때 그 기도소리가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열째,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벧전 4:7).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그 중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하나는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나이다”고 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시고 응답해 주셨다. 멸망의 날을 맞지 아니하기 위해서(막 13:18),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세리처럼 가슴을 치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 왕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는 죽게 되자 “주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통곡했다. 이에 여호와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15년을 더할 것이며…”(왕하 20:5~6). 이토록 그의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역사는 일어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개인과 가정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지혜와 능력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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